제3의 사용자단체, ‘암참’(AMC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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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한국을 ‘아시아의 물류중심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외자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단체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사절단에는 외국인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암참의 윌리엄 오벌린 회장과 태미 오버비 수석부회장이 포함되었다. 정부가 이례적으로 암참 회장단을 사절단에 포함시킨 이유는 미국인의 눈으로 한국 경제를 설명함으로써 미국기업의 한국투자 유치를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정부와 암참의 협력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암참 발언의 범위도 점차 넓어지는 추세이다. 지난 10월8일 윌리엄 오벌린 암참 회장은 한국능률협회 주최로 열린 ‘제24회 한국인 재개발·인사혁신대회’ 초청 강연에서 “전체 노동자의 12%에 불과한 소수의 노조가 한국을 노동문제에 있어 호전적 국가로 인식되게 하고 있다”고 한국 노사관계를 평가했다.(『파이낸셜뉴스』10월8일자) 태미 오버비 부회장도 9월 한국은행 워싱턴 사무소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국 개혁의 초점은 첫째 노동분야, 둘째 규제완화 분야에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하면서 “내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노동시장 유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노동시장 유연화란 기업의 노동자 임의 채용 및 해고 능력을 말한다”고 하였다.(『문화일보』9월25일자)  


[ 암참의 기자회견,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암참의 윌리엄 오벌린 회장 ]

외자유치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 암참

정부가 암참과의 관계에 비중을 두는 이유는 명확하다. “외국기업 관계자들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기업환경을 듣기 위해서”다. 외국인 투자정책을 담당하는 산자부 투자정책과 박기영 사무관은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이 한국에 관하여 정보를 얻는 곳은 한국의 주한상공회의소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도 대통령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주한외국기업인단체장들로 구성된 ‘외국경제인회의’를 신설하였다. 여기엔 윌리엄 오벌린 암참 회장, 다카스기 노부에 서울재팬클럽 회장 등이 참여한다. 또한 전 암참 회장이자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인 제프리 존스는 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암참 수석부회장 태미 오버비는 외국인투자자문단의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외자유치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도 산업자원부의 경우 반기마다 장관과 암참의 대표단 사이의 간담회가 있으며 기타 별도의 모임에 꼭 초청을 한다. 또한 실무를 담당하는 실·국장의 경우도 “암참의 부회장 태미 오버비와 수시로 연락한다”고 한다. 

경총의 전직 간부는 최근 암참의 영향력 증가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국민들이 외환위기 이후 외자유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한 결과 자연스럽게 국내에서의 위상도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암참은 어떤 조직이기에 정부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걸까. 그 이유는 암참 회원사들의 면면을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 암참은 매월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미팅을 개최하여 투자정보를 공유했다.  - 출처:암참 ]

국내외 자본가들의 집합 장소

일명 ‘암참’(AMCHAM)으로 불리는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erican Chamber of Commerce in Korea, 약칭 AMCHAM)는 1953년에 설립되어, 현재 회원수가 기업회원 1천명, 개인회원 2천명의 거대한 조직이다. 회원자격에 제한이 없어 미국기업 뿐만 아니라 유럽기업, 일본기업 그리고 한국기업들도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경 없는 사용자단체라 할 수 있다. 

암참의 활동 내용은 투자를 위한 법제도 환경 개선에 맞추어 진다. 암참의 대표적인 일상 활동으로는『연례무역보고서』(2000년부터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 개선』(Improving Korea's Business Climate)으로 명칭을 바꿈)를 매년 발간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암참이 만든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보고되고 다시 미국 무역대표부의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에 반영되어 통상요구 사항으로 되돌아 온다.

암참의 주요 구성원을 보면 주한 미대사인 토마스 허버트가 명예회원이고, 윌리엄 오벌린(보잉코리아 대표이사) 회장, 태미 오버비 수석부회장과 웨인 첨리 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 사장을 비롯한 5인의 부회장, 그리고 12인의 이사(Governor)가 집행부로 활동하고 있다. 

태미 오버비 부회장을 제외한 집행부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기업의 대표들로서, 보잉코리아, 다임러크라이슬러, 모건스탠리, UTI, 오웬스코닝, PwC, 화이자제약그룹, 휴렛패커드, AIG 증권,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시티뱅크, TNS Korea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밖에도 기업회원에 등록한 기업을 보면, 알리안츠생명, AT&T Global Network, 한국 바스프, 한국 네슬레, 김&장 법률사무소, 한국 레고, 테트라팩 등이 있다. 이밖에 한국기업 회원으로는 삼성전자, 삼성생명, LG전자, LG 텔레콤, LG-필립스 LCD, 현대증권, (주)효성, SK(주), SK텔레콤, JP 모건체이스 은행, 연세대 등이 있다. 회원 수가 많고, 회원들이 유력 인사라는 사실보다 더 주목할 것은 회원들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 다양하고 활발하다는 점이다.

암참의 회원은 매월 실시되는 ‘미팅’을 통해 주한 미국대사, 한국 장관 및 내각들이 연사로 참여하는 미팅에 참여할 수 있다.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연사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산업별로 항공 및 국방, 건설, 자본시장, 인터넷, 북한, 자동차, 벤처, 부동산 등 32개에 달하는 분과위원회에 회원들이 참여한다. “위원회에 따라 1~3개월마다 열리는 위원회 모임은 회원간 투자 정보 수집과 교환에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오버비 부회장은 말했다.

따라서 암참 분과위원회의 강한 네트워크가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암참의 회원으로 가입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다른 한편, 외자유치를 필요로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국내 외국기업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암참을 상대함으로써 정부의 입장을 손쉽게 설명하고, 외자기업 대표들의 요구를 들으려는 서로의 요구와 조건이 맞는 관계라 볼 수 있다.

“말만하면 다 들어준다”

지난 3월 『문화일보』는 암참 소속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들은 한국에서 경영활동을 하는데 가장 큰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 첫째로 ‘행정규제’를 꼽았고, 다음으로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지적했다(3월19일자). 굳이 새로울 것 없는 기업가들의 떼쓰는 소리에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이들의 요구에 정부가 민감히 반응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경기도 지자체는 올해 100억 달러(약12조원) 규모의 외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하여, 행자부가 주최한 ‘2003년 지방자치단체 해외통상 우수사례 연찬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암참의 기업회원인 LG필립스 LCD가 경기도 파주에 대규모 공장을 짓기로 경기도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 행사의 후원사인 『매일경제』10월7일자에 따르면, 수도권 대규모공장 건설은 규제의 대상이었으나, 산업자원부가 법을 개정해 줌으로써 가능했다고 한다. 『매일경제』는 이것을 산자부가 “과감한 규제완화로 화답했다”고 표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사관계에 대한 외국기업의 불만에도 정부는 신속히 “화답”했다. 암참의 회원이기도한 한국 네슬레, 한국 오웬스코닝, KGI 증권이 직장폐쇄를 단행하면서 외국기업의 노사문제가 언론에서 불거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9월22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파업을 줄이고, 해고를 쉽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뒤질세라 9월30일엔 산자부, 노동부, 검찰청, 경찰청 관계자들이 외국기업 대표 30여명과의 오찬 자리를 마련하고,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을 설명하였다. 또한 산자부와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는 외국인 투자유치 대책마련의 내용 중에 노사문제에 대한 특별관리 방안을 포함시켜 노동부, 경찰청, 검찰청 등에 외투기업 노사분규 전담자를 지정하기로 했다. 산자부와 노동부뿐만 아니라 검찰과 경찰도 참여했다는 것은 정부가 노사관계를 “대화와 타협”이 아닌 “법과 원칙”으로 풀겠다는 방침과 일맥상통한다. 

암참의 성장에 관심 가져야

윌리엄 오벌린 암참 회장은 지난 1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은 암참의 올 한해 최우선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미 상호투자협정(BIT) 체결”이라며 “한미 상호투자협정이 체결되면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가는 길도 훨씬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한국 노사관계에 대하여 암참의 전 회장 제프리 존스는 “개인적으로 한국에는 네덜란드식 모델보다 영미식 모델이 적합하다는 생각”이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의 무역 자유화와 개방화를 통해 한국 시장을 잠식하겠다는 의도이며,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만들어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얘기다. 이같은 암참의 기업가적 발언을 마치 객관성 있는 학자의 진술처럼 보도하는 국내 언론의 태도도 문제지만, 외국 기업인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벌벌 떠는 정부의 자세도 한층 ‘암참’의 발언력이 높아지는데 일조하고 있다. 

한국의 전경련과 경총처럼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암참의 역할은 갈수록 증대할 전망이다. 암참 회원이 정부 기구에 참여하고, 암참과 정부 부처간에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의 기업가도 암참 회원에 가입하고 있다. 반면 암참의 성장에 대해 노동계는 별 반응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암참 소속 회원사들의 노사관계가 악화되자 정부가 적극 대처하는 등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해지고 있다. 노동운동도 암참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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