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제1절 파시즘의 위협과 그 대응

부 제목: 
김금수의 세계노동운동사 53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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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노동자계급의 형성과 노동운동의 발생
제2장 정치적 자립을 향한 노동운동 전진
제3장 국제노동운동의 출범과 사회주의 이념의 대두
제4장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노동운동
제5장 파리 코뮌
제6장 제2인터내셔널과 식민지 종속국의 노동운동
제7장 20세기 초두 노동자계급 투쟁의 새로운 단계
제8장 제1차 세계대전과 대중적 노동자계급운동
제9장 사회주의 혁명과 국제노동자계급
제10장 세계 노동자계급 투쟁전선의 확대
제11장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야기된 경제위기와 노동자 계급의 통일 행동
제12장 소비에트 러시아의 방위와 ‘신경제정책’
제13장 1920∼1930년대 노동상황과 자본주의 일시적 안정기의 노동운동
제14장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코민테른 활동
제15장 1929~1933년의 세계경제공항과 노동자 투쟁
제16장 파시즘과 전쟁 위협에 대한 투쟁
     제1절 파시즘의 위협과 그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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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파시즘과 전쟁 위협에 대한 투쟁

제1절 파시즘의 위협과 그 대응

“파시즘은 객관적 상황의 필요에 대한 대응으로서 나타난 정치운동이었으며, 결단코 우발적 요인들이 합쳐져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또 동시에 파시즘이라는 해결 방식이 퇴행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것도 명백하다. 파시즘은 그 당시 수많은 나라들이 겪고 있었던 본질적으로 유사한 제도적 교착 상태에 대한 하나의 탈출구를 제시했지만, 그러한 치료법을 시행하게 되면 어디에서나 죽음에 이르는 병을 낳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여러 문명들이 절멸해가는 방식이다.”

칼 폴라니

 

파시즘 연구의 권위자인 놀테(Nolte, Ernst)는 제1차 세계대전 종결 다음해인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를 “파시즘의 시대”로 규정합니다. 놀테의 이러한 테제에 대해 비퍼만(Wippermann, Wolfgang)은 “유럽에서 전개된 파시즘의 역사는 동시에 반파시즘의 역사이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김수용 외, 2001: 2).

1920년대 후반 들어 이탈리아 파시즘은 ‘민주주의 이후의 체제’(post-democratic regime)로 점점 변화하였습니다. 스페인, 폴란드, 리투아니아,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등은 모두 1920년대에 의회민주주의를 땅에 묻어버렸고, 헝가리의 권위주의는 1932년에 쥴러 굄뵈스(Gyula Gömbös) 치하에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1933년에는 중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심장부 역시 무너졌죠. 오스트리아는 엥겔베르트 돌푸스(Engelbert Dollfuss)의 가톨릭 권위주의를 통해, 독일은 나치의 권력 탈취를 통해 무너졌고, 결국 1918년의 민주공화국 가운데서 체코슬로바키아만이 유독 살아남았습니다. 1934년에는 불가리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에서 우파의 무자비한 진군이 계속되었고,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1936년에 무너졌습니다. 파시즘은 국제적으로는 제3제국의 해외침략을, 국내적으로는 자국 사회의 주된 위협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 민주주의, 평화, 문화적 자유, 너그러운 문명의 가치, 개인의 자유, 진보 등에 대한 위협― 을 의미했습니다(일리, 2008: 479~481).

이와 같은 파시즘의 발흥이 유럽 전체를 휩쓰는 가운데, 반파시즘 투쟁이 완강하게 전개되었어요. 투쟁을 주도한 사람들은 파시즘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던 공산주의 투사, 기층 사회주의자, 좌파 지식인 등이었습니다. 반파시즘 투쟁의 주요 사례로는 1934년 2월12일 경찰의 억압에 저항하여 린츠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킨 오스트리아 방위동맹의 필사적인 항거, 같은 날 우파의 폭력에 대항한 프랑스 사회당과 공산당 주도의 전국 총파업과 시위, 그리고 아스투리아스 광산노동자들의 14일에 걸친 반란을 비롯한, 1934년 10월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봉기 등을 꼽을 수 있죠. 이 밖에도 각국에서는 크고 작은 반파시즘 투쟁이 계속해서 전개되었습니다. 파시즘의 위협과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역량과 정치적 동맹의 강화가 요구되었고, 이와 함께 자본과 반동세력의 공격을 저지․극복하기 위한 과학적인 전략과 전술의 수립․실천이 강구되어야만 했죠.

1.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192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파시즘에 관한 연구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해석과 서로 다른 견해들로 점철되었습니다. 이것은 유럽에서 수행된 파시즘의 전개가 전체적으로 볼 때 고양과 후퇴의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파상적 양상을 보였고, 또 국가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와 다양한 특징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권력획득의 방법도 서로 달랐던 사실을 직접 반영하고 있죠. 

파시즘의 사전적(辭典的) 의미는 매우 단순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배외주의적 정치이념, 또는 그 이념을 따르는 지배체제를 말한다. 파시즘은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식의 일당 독재를 주장하며 지배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또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국수주의․군국주의를 지향하며 민족지상주의, 반공을 내세워 침략정책을 주장한다.” 

‘완성된’ 파시즘 체제가 지닌 기본 측면들로서는, ⑴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 운동의 분쇄와 이들 계급을 체제 내로 강제 통합, ⑵ 자본축적을 위한 국가의 광범한 개입, ⑶ 시민의 권리 박탈과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감시․통제체제의 수립, ⑷ 의회제 통제로부터 국가권력 집행기구의 자립과 이를 통한 무제한적 국가 폭력 사용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김세균, 1987: 7). 

여기서는 파시즘에 관한 몇몇 특징적인 정의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파시즘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팩스턴(Paxton, Robert O.)은 파시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그리고 희생에 대한 강박관념적 편견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보상적인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다. 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또는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대내적 정화와 대외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다(Paxton, 2005: 218).” 매우 정교하면서도 난해한 정의죠. 

일본의 파시즘 연구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파시즘은 20세기 가장 첨예하고 전투적인 형태의 반혁명세력이다”라고 간략하게 정의합니다. 세계사의 진행 자체가 정지되지 않는 한 완전한 동질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파시즘은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게 될 것이며, “그 때문에 반혁명의 총체적인 조직화를 지향하는 이른바 끝없는 운동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파시즘은 현대 사회에서 ‘능동적 허무주의’가 숙명적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다”라고 서술하였죠(서동만, 1983: 30~31).

파시즘에 대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정의는 흔히 코민테른의 규약이나 결의를 기초로 하여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파시즘은 금융자본의 가장 반동적이며 가장 배타적 애국주의적이고 가장 제국주의적인 분자의 공공연한 테러 독재이다.”는 정의가 그것입니다.

코민테른 제6회 대회는 ‘강령’에서 파시즘 대두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죠. “제국주의 시대, 계급투쟁의 격화, 내란의 요소 증대 ―특히 세계제국주의 대전 이후의 증대― 는 의회주의의 파산을 초래했다. 그 결과, ‘새로운’ 통치방법과 형태가 생겨났다(예를 들면, 내각 내의 실력 각료그룹: inner cabinet, 과두지배적인 흑막집단의 성립, ‘인민대의제’의 역할 저조와 변조, ‘민주주의적 자유’의 제한과 폐지 등). 부르주아․제국주의적 반동의 이러한 공세 과정은 특별한 역사적 조건에서는 파시즘의 한 형태가 된다. 그러한 조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자본주의적 관계들의 불안정성, 계급으로부터 탈락한 다수 사회적 분자의 존재, 도시 프티 부르주아와 인텔리겐치아 등 광범위한 층의 빈곤화, 농촌 프티 부르주아의 불만,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 대중행동의 끊임없는 위협―. 자기의 권력을 한층 더 안정시키고 그것을 강고하고 항구적인 것으로 하기 위하여 부르주아는 부득이 의회제도로부터 정당의 상호관계나 결합에 구애받지 않고 파시즘적 방법으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강령은 파시즘의 주요 임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노동자의 혁명적 전위, 즉 공산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층과 그 간부들을 분쇄하는 것이다. 사회적 데마고그와 그 매수, 그리고 적극적인 백색테러를 결합시키는 것, 또 대외정책 부분에서 드러나는 극단적인 제국주의적 침략성이 파시즘의 특징이다. 파시즘은 부르주아에게 특히 위기적인 시기에는 반자본주의적인 언사를 사용하지만, 일단 국가권력의 중추에 발판을 확보하면 그 반자본주의적인 언사를 버리고 대(大)자본의 테러 독재라는 정체를 차츰 분명하게 드러낸다(동녘, 1989 1: 93~94).” 

파시즘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파시즘 체제의 생성요인에 대한 이론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파시즘 체제의 생성요인에 관한 연구는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되고 있습니다. 중산층 이론, 마르크스주의 이론, 대중사회 이론, 도덕적 위기론 등이 그것입니다(강기용, 1995: 5). 

‘중산층 이론’은 중산층의 지지에 따라 파시즘 체제가 성립했다고 주장하는 이론으로서, 노이만(Neuman, Sigmund), 콘하우저(Kornhauser, William), 립셋(Lipset, Seymour Martin) 등이 중산층론의 주창자들입니다. 이들은 파시즘의 생성 요인이 중산층의 역할에 있다고 보고, 사회계층 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된 중간층의 불안 심리와, 돌발적인 경제 불황에 따른 사회․경제적 지위상실에 대한 ‘중간층의 공포’가 파시스트 정당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하죠. 그러나 이 이론은 중산층을 중간적 지위로 편의에 따라 해석하고 있고, ‘중간층의 불안감’이란 개념도 막연할 뿐만 아니라, 중간층이 지지했기 때문에 파시즘 체제가 성립되었다는 판단은 매우 단편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강기용, 1995: 8~20).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사회파시즘론, 반파시즘 통일전선론, 독점자본주의 위기론 등으로 세분할 수 있습니다. 사회파시즘론은 1928년 코민테른 제6회 대회를 거치면서 명료하게 되었는데, 파시즘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운동과 혁명적 상황의 성숙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대응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시즘 체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정치적 구조와 그 체제의 모순 속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혁명이 눈앞에 임박했다는 증표가 된다고 하였죠. 또 코민테른은 사회민주주의도 계급투쟁을 부정하고 반공을 앞세우기 때문에 파시스트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사회파시즘론은 노동자계급의 통일전선 구축을 가로막았으며, 파시즘은 내부 모순 때문에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죠.

반파시즘 통일전선론은 1935년의 코민테른 제7회 대회에서 행한 디미트로프의 보고로 집약됩니다. 파시즘의 권력 장악은 “하나의 정부에서 또 하나의 정부로 단순히 교체”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한 국가형태, 즉 의회제 민주주의가 또 하나의 국가형태인 공공연한 테러 독재로 대체”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죠. 그리고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반드시 파시즘화된다는 명제는 폐기되었고, 파시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반파시즘 통일전선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조되었습니다(마루야먀 마사오, 1983: 40~41).

마르크스주의자 돕(Dobb, Maurice)은 파시즘 체제의 생성요인을 독점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찾습니다. 돕은 독점자본주의의 위기는 독점자본 체제가 착취할 수 있는 분야의 광범위한 발전은 물론이고 더욱 집약적인 발전까지도 봉쇄됨에 따라 발생되었고, 이러한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종류의 특수한 정치체제, 즉 독재체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돕은 파시즘의 생성요인으로 세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투자분야의 한계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놓인 채 정상적인 해결을 찾지 못하는 자본가계급의 실망, 둘째, 대안 부재의 상태에서 파시스트의 강령을 통해 기운을 되찾은 궁핍한 중산계층 또는 몰락계급의 존재, 셋째, 노동자계급의 단결력과 계급의식 부족, 그리고 정치적인 취약성 등이 그것입니다. 

풀란차스(Poulantzas, Nicos)는 파시즘 체제의 형성요인을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모순의 축적에서 찾죠. 그는 파시즘 체제의 생성은 지배계급 내의 새로운 분파, 즉 거대독점자본층이 헤게모니를 독점하려는 정치권력 블록의 재조직화를 의미하며, 지배계급의 내적 모순 심화와 첨예화 과정은 곧 파시즘의 발생과 권력 장악 과정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풀란차스는 또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 위기와 혁명조직의 위기가 나타나면서 파시즘이 대두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 위기는 노동조합주의, 개량주의와 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무정부주의, 대중자발주의(spontaneism), 농민 반란 같은 프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죠. 나아가 풀란차스는 파시즘이 성립하는 데는 중간계층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강기용, 1995: 30~31). 

풀란차스의 파시즘론은 구조주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의 부문이론’(The regional theory of the political)을 구축하려는 시도로서, 코민테른이 갖는 경제주의 측면에 대한 비판을 행하고 있습니다. 풀란차스는 파시즘을 제국주의 단계의 정치적 위기에 상응하여 발생하는 ‘예외적’인 국가 형태라고 정의했죠. 그는 파시즘 이외에도 예외적 국가 형태로서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과 군사독제체제(military dictatorship)를 들면서, 이러한 예외적 국가의 형태들은 공통적으로 정치 위기에 상응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풀란차스는 사회구성체가 제국주의 사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정치 위기’와 ‘혁명적 상황’을 구분합니다. 이런 구분에 따라, 러시아의 경우는 사회구성체가 제국주의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했고, 파시즘이 성립한 독일과 이탈리아의 사회구성체는 다음으로 약한 고리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다고 설명하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스위지(Sweezy, Paul Marior)는 파시즘의 발생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제국주의 재분할 전쟁의 결과, 경제․사회적 구조가 심각하게 교란된 국가들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토대로 한 계급균형의 시기가 도래한다. 그러한 조건에서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면, 국내에서 심각한 공황이 일어나고 그 공황은 제국주의적 팽창이라는 의례적인 방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파시즘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토양이 된다(스위지, 2009: 460).” 

마르크스주의 파시즘 이론에 대한 비판은 독일의 대자본이 파시즘 체제의 생성에 어떠한 영향력도 주도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데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현실을 호도한 측면이 큽니다. 실제로 독일에서 나치즘이 대두할 시기에 독점자본가들 사이에는 ‘강력한 권력’ 수립과 의회민주주의 폐지에 대한 요구가 차츰 커졌고, 거대 금융자본은 나치당을 실제로 여러 측면에서 지원하였죠. 

파시즘의 생성요인과 관련하여 ‘대중사회 이론’은 파시즘 체제를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대중사회의 산물로 파악하고, 대중사회의 특징을 파산한 대중, 사회의 원자화, 경쟁적인 사회 환경, 도시화와 그것에 수반하는 판단 부재 현상, 고립감, 고독감 등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대중사회의 특징은 대중의 절망적인 불안을 낳게 되고, 대중의 불안은 파시즘 체제의 토양이 되며, 정치선동가들은 이런 토양을 이용하여 파시즘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죠.

대중사회 이론과 유사한 맥락에서 ‘도덕적 위기론’이 파시즘 체제의 형성 이론으로 등장했습니다. 도덕적 위기의 특징으로서는 도덕적 가치가 배제된 몰가치적 부의 추구, 권력에 대한 맹목적 광신, 이성의 위기, 도덕적 가치의 붕괴와 해체가 지적되고 있죠. 이러한 이론들은 객관적인 요인을 도외시할 뿐만 아니라, 주관적 가치에서 파시즘 생성의 요인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 본 이러한 파시즘에 대한 정의와 생성요인에 관한 이론들은 개별적이거나 경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파시즘에 관한 연구는 매우 광범위하죠. 예컨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파시즘론, 전체주의론의 파시즘론, 근대화론의 파시즘론, 세계체제론의 파시즘론 등이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세계체제론의 파시즘론은 중심, 주변, 반(半)주변으로 지역을 나누어 파시즘 연구를 비교사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끕니다.

세계체제론자인 골드프랑크(Goldfrank, Walter L.)는 그의 『파시즘과 세계경제』에서 파시즘을, 각국에서 각기 다른 정도로 실현되는 각 ‘단계’와 여러 ‘이론’을 통해 해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파시즘 이론은 크게 보아 ‘자유주의적인 것’과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으로 대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골드프랑크는 자유주의적인 이론들이 이데올로기, 분파, 운동 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파시즘을 고찰하려는 데 반해,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론들은 정권과 그 기능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려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은 파시스트 정권에 대해 논의할 때, 운동단계에서 일어나는 의회주의 정권에 대한 위협과 시민권에 대한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적인 제한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결국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똑같이 과격하고 독재적인 집단으로 규정한다. 반면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반공주의․반노동자적 독점자본 정권의 배후에 가려진 의도와 전략을 읽어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결국은 파시즘과 자유주의를 똑같이 자본가 집단으로 규정한다.”고 주장하죠. 또 그는 자유주의 이론은 ① 근대화에 따른 긴장, ② 개발 독재, ③ 민주주의 붕괴를 중시하고,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은 ① 극단적인 위로부터 혁명, ② 제국주의 상호 간의 경쟁, ③ 위로부터 벌어지는 반동적인 계급투쟁 등을 강조한다고 서술하였습니다.

골드프랑크는 ‘파시즘과 세계체제’와 관련하여 몇 개의 가설적 명제를 제시해요. 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파시즘이란 핵심부에서 발생한 생산력 과잉, 심각한 인플레이션, 높은 실업률과 주변부의 생산품에 대한 침체된 수요 등으로 인해 정체하고 있는, 심지어는 수축하고 있는 세계경제가 드러낸 현상이다. 
둘째, 파시즘은 단순한 경제적 침체 때문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세계정치에서 영국 지배로부터 미국 지배로 패권이 이행된 데 따른 불안과 혼란이 초래한 결과로서 생성된 것이다.
셋째, 서로 다른 그룹들이 세계체제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기회를 사용하여 차별적인 호소, 성공, 결과 등에서 발견되는 파시즘의 많은 변종들을 그 시대 세계적인 흐름의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그는 결론 부분에서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현재와 다가올 미래는 어떠할까”와 “이탈리아와 독일의 경우가 그러했듯이, 오늘날의 반주변부의 파시스트 정권들이 핵심부에서 예견되는 파시즘 전조(前兆)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가 그것입니다. 

오피츠는 제3세계 파시즘 현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사회 내부의 경제관계가 산업적으로 미발전된 농업국가일지라도, 그 사회에 수립된 독재체제가 외국 독점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치체제이면 파시즘체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김세균, 1987: 94).

지금까지 보아 온 대로 파시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의 명확화’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1960년대 후반 이후의 파시즘론을 둘러싼 학계의 동향은 한마디로 ‘혼란과 부적응’이라는 표현으로 총괄될 수 있고, 파시즘론의 계보를 설정할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파시즘론의 세계적 르네상스 중심지가 된 서독에서는 놀테가 1967년에 ‘고전적 파시즘’(양차 대전 사이의 파시즘)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대표적 이론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 뒤로 서독의 아벤트로트(Abendrotd, W.)가 탈하이머(Thalheimer, A.), 마르쿠제(Marcuse, H.), 로젠베르크(Rosenberk, A.), 바우어(Bauer, O.), 타스카(Tasca, A.)의 연구들을 분류하여 집약했죠. 1968년에는 퀴놀(Kühnl)의 연구를 비롯한 연구 성과들을 전체주의 이론의 거부라는 관점에서 분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73년에는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학자의 한 사람인 쿤(Kuhn, A.)의 연구에 따라 ‘분류학’으로서는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야마구치 야스시, 1983: 33~42).

쿤은 그의 저서 『파시즘의 지배체제와 현대 사회』에서 연대기적 분류, 정치적 기준에 다른 분류, 체계적 기준에 따른 분류라는 세 가지의 상이한 기준에 따른 분류방법으로 이제까지의 모든 파시즘론에 대해 위치를 부여하고, 그 위에서 독자적인 파시즘론을 구축하려 하였습니다. ‘연대기적 분류’에서는 마르크스주의 파시즘론, 민족 파시즘론, 전체주의 파시즘론, 근대화론적 파시즘론을 다루었죠. ‘정치적 기준에 따른 분류’에서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의 세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체계적 기준에 따른 분류’에서는 ① 초(超)정치적(transpolitisch)과 정치내적(binnenpolitisch), ② 특수화적(singularisierend)과 일반화적(generalisierend), ③ 자율적(autonomistisch)과 타율적(beteronomistisch)으로 나누었습니다.

야마구치 야스시는 그의 논문을 통해 쿤의 분류 작업이 갖는 한계와 보완해야 할 내용까지를 검토한 뒤, 오늘날의 파시즘론이 답해야 할 몇 가지 물음을 다음과 같이 던집니다. 

첫째, 파시즘은 세계사적으로 볼 때, 이미 과거의 역사(예를 들면 놀테가 말하듯이 ‘파시즘 시대’=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가?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아직 파시즘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고도 자본주의 국가에서인가 아니면 개발도상국가에서인가? 셋째, 그 각각에 있어 가능한 파시즘의 새로운 형태는 어떠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숙고해 볼만한 명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처럼 ‘혼란’과 ‘부적응’ 을 떨치기 어려운 파시즘의 정의와 개념 정립은 아무래도 파시스트 운동에 대한 비교 연구를 필요로 합니다. 이른바 ‘비교 파시즘론’의 이론틀이 요구된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비교연구를 통해 추출된 최소한의 중요한 공통점들을 파시즘의 본질로 규정하고자 하는 겁니다. 

놀테가 제시한 ‘유럽 파시즘의 공통된 성격’은 이러한 비교연구의 한 효시가 되고 있습니다(김수용 외, 2001: 10). 놀테가 제시한 이른바 “파시즘이 갖는 최소한의 공통점”은 3개 항에 걸친 파시트적 ‘부정(否定)’, 1개 항의 조직 원칙, 1개 항의 조직 특성, 1개 항의 기본 목적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죠.

⑴ 부정: 반마르크스주의, 반자유민주주의, 반보수주의
⑵ 지도의 원칙
⑶ 당의 군대
⑷ 전체주의 목적

놀테의 이러한 파시즘의 기본 성격 규정은 경제적인 측면이 배제되었다는 사실과, 파시즘의 본성으로서 ‘반보수주의’가 적시되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편, 미국의 정치학자 스텐리 페인(Payne, S.G.,)은 놀테의 모델을 기본으로 하여 파시즘의 개념을 구성했습니다. 페인은 파시즘의 본성을 다음과 같이, 파시스트적 부정, 이데올로기와 목적, 스타일과 조직 등의 3개 범주로 분류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했죠.

1. 파시트적 부정
가. 반자유민주주의
나. 반공산주의
다. 반보수주의

2. 이데올로기와 목적
가. 민족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새로운 국가의 창조
나. 초계급적이며 통합된 국민경제의 조직
다. 제국의 창설, 또는 주변 세력과 관계에 있어서 과격한 변화 추구
라. 이상주의적 성향의 새로운 문화 형성 추구

3. 스타일과 조직
가.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 연출과 미학적 구조의 강조 
나. 당의 군대 창설을 목적으로 하는 대중 동원의 군사화
다. 폭력의 정당화와 폭력 행사를 향한 강한 의지
라. 극한적인 남성 위주와 남성 지배의 원칙
마. 젊음의 강조와 젊은 세대의 찬양
바. 권위주의적이며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원칙

놀테와 페인의 비교연구를 통한 파시즘론은 파시즘의 생성 요인에 대한 정치사․사회사적 분석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으나, 파시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종합적인 고찰에 이바지했다는 점은 널리 인정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파시즘의 비교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본의 파시즘 연구자 야마구치 사스시의 방법론입니다. 야마구치 야스시는 파시즘 비교연구에서 ‘운동으로서 일반적 특성’, ‘사상으로서 일반적 특성’, 그리고 ‘파시즘 체제의 특질’을 기본틀로 삼고 있습니다.

먼저, 운동으로서 일반적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지도자 원리’를 조직원칙으로 하고 있다. 
② 제복을 착용한 정치적 폭력의 전문부대(예컨대 이탈리아의 돌격단: squadre, 독일의 돌격대: sturm-abteilung=S.A)를 불가결의 요소로 한 새로운 유형의 정치운동을 창출한다. 
③ 이런 경우에도 대중운동의 주된 기반을 거대자본과 사회주의적 노동자운동 사이에서 협공당하는 넓은 의미의 중간적 계층들에서 찾는다. 
④ 운동의 지도자층에는 제1차 대전에서 낙오된 군인 전역자를 중심으로, 그 밖의 여러 유형에 속하는 사회적 ‘탈락자’ 집단 출신자들이 많이 집결한다.

다음으로, 사상으로서 일반적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국민사회가 빠져있는 심각한 ‘통합의 위기’를 민족주의의 격렬한 고양과 강렬한 ‘지도자’ 숭배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② 파시즘이 단순한 보수반동과 다른 것은, 단지 민족주의와 지도자 찬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성 전통적 지배체제에 대한 상당히 과감한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재편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재편성의 구상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과격한 적대와 기성의 전통 지배층에 대한 반발로부터 유래하는 독특한 양면성을 나타낸다. 
③ 이러한 경향은 파시즘 사상이 그 나라 지배층의 위기의식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몰락 위기에 놓인 중간계층의 위기의식까지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파시즘은 다음과 같은 사상의 내용을 갖죠. 첫째, ‘민족공동체의 해체를 기도하는 자’에 대한 폭력의 긍정, ‘지도자’ 원리에 바탕을 둔 국가와 사회의 재편성, ‘민족성’의 강조와 ‘민족공동체’의 재건, 강대한 ‘권력국가’ 건설과 ‘민족의 활력을 끌어내고 민족 생존의 유지와 그 발전을 꾀하기’ 위한 전쟁의 긍정과 찬미입니다. 둘째, 한편에서는 반사회주의(반마르크스주의), 반자유주의(반의회주의), 반국제주의인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경우 단순한 보수주의나 전통주의에도 그리고 금권주의적인 자본주의에도 반대한다는 ‘기성 사상의 전면 부정’입니다. 셋째, 심정, 감성, 직관, 행동, 폭력이 이성에 대해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생의 철학’과, 차별을 합리화하고 ‘강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 다윈주의’라는 두 가지 요소를 혼합한 파시스트 특유의 인생철학과 사회철학이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요컨대 프랑스 혁명정신에 대치됩니다.

마지막으로, 파시즘체제의 특질은 다음과 같죠. 

① 일당 독재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제적 동질화’(gleichschaltung)의 획일적이고 전면적인 조직화 강행 
② 자유주의 권리의 전면적인 억압과 정치경찰을 중핵으로 하는 테러의 전면적 제도화 
③ 파시즘 사상을 체현한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인간 형성’을 위한 대중의 동원
④ 군․관료기구․재계․교회 등 기성 지배층의 반동화된 부분(이른바 ‘권위주의적 반동’)과, 넓은 의미의 중간계층을 기반으로 한 급진적 대중운동의 지도자층이나 그것에 대체되는 ‘혁신 장교’ 또는 ‘혁신 관료’(이른바 의사혁명=擬似革命)와 맺는 정치적 동맹 등(야마구치 야스시, 2006: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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