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제2절 자본주의의 부분적 안정과 소련 사회주의 건설 시기의 코민테른(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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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민테른 제6회 대회

코민테른 제6회 대회는 1928년 7월17일부터 9월1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렸습니다. 대의원 532명이 57개의 당과 9개 국제조직을 대표하여 참가하였죠. 조선 대표는 의결권이나 심의권도 갖지 못한 채 방청권만 가지고 대회장에 입장할 수 있었어요. 제6회 대회는 다음과 같은 주요 문제를 토의하였습니다. 코민테른 강령문제, 제국주의 전쟁 위험에 대한 투쟁 방침, 식민지․반식민지에서 전개될 혁명운동, 소련의 경제정세 문제 등이 그것이었죠.

코민테 른은 국제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고찰하고 앞으로의 발전 전망을 제시한 문서를 처음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코민테른 강령은 세계혁명은 “각각 시기를 달리하고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지적하고, 그것은 “곧, 순수한 프롤레타리아 혁명,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성장․전화해가는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 민족해방 전쟁, 식민지 혁명”이 그것이라고 설명하였죠.

대 회는 “제국주의 시기에 격렬해진 자본주의 발전의 불균등성의 결과로 자본주의의 형태는 다양하고 각국에서 그 성숙도가 형형색색이며, 혁명적 과정의 여러 조건이 다양하고 독특하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에 도달하는 길과 그 속도가 다양한 것, 많은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도달하기까지 약간의 과도단계가 필요한 것, 그 후에도 각각의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건설되는 형태가 다양한 것은 역사적으로 결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강령에서는 객관적 조건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세 가지 유형의 국가와 그것에 대응하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으로의 이행을 위한 세 가지 유형이 정식화 되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 드는 것은 강대한 생산력과 고도로 집중화된 생산을 수행 하고 있고, 소규모 경영의 비중이 비교적 작으며, 훨씬 이전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고도의 선진적 자본주의 국가들(미국, 독일, 영국 등)입니다. 두 번째 그룹을 이루는 것은 자본주의 발전이 중위의 수준에 있는 나라들(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헝가리, 발칸 국가들 등)로서, 이들 국가의 특징은 농업 부문에서 반봉건적 관계가 두드러지게 잔존하고 있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일정한 최소한의 물질적 전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변혁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죠.

세 번째 그룹에는 식민지, 반식민지, 종속 국가들이 속하는데, 이들은 “공업이 어느 정도의 맹아를 가지고 있거나 또 때로는 공업이 상당히 발달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주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에는 불충분하고, 국가의 경제에서나 그 정치적 상부구조에서나 봉건․중세적 관계들, 또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관계들이 우세하며, 마지막으로 주요한 광공업, 상업, 은행, 주요한 운송수단, 대토지 소유, 플랜테이션 등이 외국 제국주의 그룹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식민지․반식민지 국가들(중국, 인도 등)과 종속 국가들(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었습니다.


강령은 이 세 가지 분류에 따라 그 각 그룹의 혁명적 노동운동 전략 방침을 정식화하였습니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 강령의 기본적 요구는 사회주의 혁명의 직접적 실현이었죠. 중위의 발전수준에 있는 국가들의 경우, 일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상대적으로 급속한 성장․전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였고, 그 밖의 경우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성격의 임무를 광범하게 동반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종속 국가들의 경우, 여기서 중심적 의의를 갖는 것은 한편에서는 봉건제도와 전(前)자본주의적인 착취 형태에 대한 투쟁과 농민의 토지혁명 수행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독립을 위해 외국 제국주의와 투쟁을 전개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가 가능한 것은 일련의 준비단계를 거쳐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전화하는 시기에만 가능하고, 또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확립된 국가와 국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원조․지지를 얻을 경우라고 지적하였습니다(동녘, 1989 1: 116~118).

코민테른의 강령에서 제시된 전략․전술적 방침은 그 나라의 지배적인 사회 경제․정치적 관계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관계들에서 객관적으로 도출되는 노동자 계급과 근로대중 그리고 피억압자의 임무에 따라 규정되었죠. 그러나 몇 가지 원칙적인 문제는 미해결인 채 남아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 권력으로의 이행을 위한 정치적 슬로건과 요구조건에 관한 문제, 특히 노동자․농민 정부의 슬로건 문제였습니다. 또한 강령에는 혁명적 정세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기되는 과도적 요구가 고려되지 않았죠. 그러한 점에서 강령이 일정의 ‘도식주의’와 경직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강령이 이 시기 일반 민주주의적 요구가 지닌 자립적 의의를 과소평가한 것은 전략 방침에서의 도식주의와 ‘좌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접근에서 매우 협소한 이해에 따른 결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5 Volume 5: 154~155).

코 민테른 제6회 대회는 파시즘과 파시즘화의 위험에 대한 토론을 총괄하고, 강령 속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제국주의 시대, 계급투쟁의 격화, 내란 요소의 증대 ―특히 세계제국주의 대전 이후의 증대― 는 의회주의의 파산을 초래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통치방식과 형태가 생겨났다. 예컨대 내각 내의 실력각료 그룹(inner cabinet), 과두지배적인 흑막집단의 성립, ‘인민대의제’의 역할 저하와 위조, ‘민주주의적 자유’의 제한과 폐지 등이 그것이다. 부르주아․제국주의적 반동의 공세 과정은 특별한 역사적 조건에서는 파시즘의 형태를 취한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적 조건이란 자본주의적 관계들의 불안정성, 계급으로부터 탈락한 다수 사회적 분자의 존재, 도시 쁘띠 부르주아지와 인텔리겐치아의 광범한 층이 겪는 빈곤화, 농촌 프티 부르주아지의 불만, 프롤레타리아트 대중행동의 끊임없는 위협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강령은 또 파시즘적 방법을 “독특한 사회적 데마고그, 이를 테면 반유태주의, 고리대 자본에 대한 부분적인 공격, 의회에 대한 ‘말 많은 곳’이라는 공격적인 선동 등을 통해 프티 부르주아와 인텔리겐치아 등을 포함한 대중의 불만을 이용하여 결속된 유급 파시스트 전투대, 당 기관, 당 관료의 직계조직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그들을 매수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강령은 파시즘의 주요 임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죠. “노동자의 혁명적 전위, 즉 공산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 층과 그 간부들을 분쇄하는 것이다. 사회적 데마고그와 그 매수, 그리고 적극적인 백색테러를 결합시키는 것, 또 대외정책 부분에서 설정된 극단적인 제국주의적 침략성이 파시즘의 특징이다. 파시즘은 부르주아에게, 특히 위기적인 시기에는 반자본주의적인 언사를 사용하지만 일단 국가권력의 중추에 발판을 확보하면 그 반자본주의적인 언사를 버리고 대자본의 테러독재라는 정체를 차츰 분명하게 드러낸다.”(동녘, 1989 1: 93~94).

코민테른은 파시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견해에 대해서나 파시즘 도래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견해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경고하였어요. 이와 같은 문제 제기에 따라 파시즘 위협을 저지하는 데서 요구되는 결정적인 역할은 노동자계급과 그 동맹자의 투쟁이라고 지적하였죠(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5 Volume 5: 156~157).

코민테른 제6회 대회는 전쟁문제, 전쟁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코민테른의 이론․정치적 주장을 정식화하고, 각 지부에 대해 전쟁 위협에 대한 투쟁에서 필요한 실천적인 임무를 제기하였습니다. 코민테른은 강령에서 “세계의 새로운 재분할을 지향하는 거대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제국주의적 투쟁은 제1차 세계제국주의 대전(1914~1918년)으로 나타났다. 이 전쟁은 세계자본주의 전 체제를 뒤흔들고 그 전반적 위기의 시기적 단서를 열었다. 이 전쟁은 국가자본주의라는 무쇠주먹을 만들어냄으로써, 교전 국가들의 국민경제 전체를 전쟁에 봉사하게 하고, 비생산적 지출을 이를 데 없는 규모로 확대하며, 방대한 양의 생산수단과 살아있는 노동력을 파괴하고, 광범한 인민대중을 어려운 지경에 떨어트리며, 공업노동자, 농민, 식민지 국민에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부담을 지웠다. 이 전쟁은 불가피하게 계급투쟁을 격화시켰으며, 계급투쟁은 대중의 본격적인 혁명적 행동으로, 내란으로 성장․전화하기에 이르렀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코 민테른은 또 세계자본주의 전체의 격렬한 동요와 계급투쟁의 격화가 프롤레타리아 국제혁명의 단서를 열었으며, 유럽대륙에서나 식민지․반식민지 국가들에서도 혁명과 혁명적 행동을 촉발시켰다고 파악하였습니다. “1918년 1월 핀란드에서 발생한 노동자 혁명, 1918년 8월 일본에서 일어난 ‘쌀 폭동’, 1918년 11월 반봉건적 군주제의 지배를 무너뜨린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벌어진 혁명, 1919년 3월 헝가리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조선에서 행해진 봉기, 1919년 4월 바이에른에서 이루어진 소비에트 권력 수립, 1920년 1월 터키에서 벌어진 부르주아 민족혁명, 1920년 9월 이탈리아 노동자의 공장 점거, 1921년 3월 인도 선진적 노동자의 봉기, 1923년 불가리아에서 일어난 봉기, 1923년 가을 독일에서 발생한 혁명적 위기, 1924년 12월 에스토니아에서 일어난 봉기, 1925년 4월 모로코에서 발생한 봉기, 같은 해 8월 시리아에서 생긴 봉기, 1926년 영국에서 일어난 총파업, 1927년 빈에서 결행된 노동자 봉기. 이 모든 사실들과,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봉기, 인도에서 벌어진 심각한 동요, 아시아 대륙 전체를 뒤흔든 위대한 중국 혁명과 같은 사건들은 국제혁명이라는 단일한 사슬의 하나하나 고리이고, 자본주의의 극히 심각한 전반적 위기의 일부분이다”라고 강령을 통해 지적하였던 겁니다(동녘, 1989 1: 90~91).

코 민테른 제6회 대회가 채택한 제국주의 전쟁의 위험에 대한 투쟁 방침 테제는 전쟁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주장과 전술을 담았습니다. 테제는 “역사적 현상으로서 전쟁은 인간 고유의 ‘악한 본성’에 기인한 것도 각 정부의 ‘악한’ 정책에 기인한 것도 아니며, 사회가 착취․피착취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는 데서 연유한다. 자본주의야 말로 현대사에 있어 모든 전쟁의 원인이다”라고 표명하였습니다.

대 회는 전쟁의 종류를 분류했는데, 제국주의 국가 상호 간의 전쟁,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나 사회주의 건설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적 반혁명세력의 전쟁,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혁명 전쟁, 특히 식민지 국가들이 수행하는 전쟁 등이 그것이라고 밝혔죠. 대회는 또 “제국주의에 대한 피억압 민족의 전쟁은 정당할 뿐 아니라 혁명적인 전쟁이며, 현재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일환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노동자 계급은 민족혁명 전쟁을 지지하며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의 방위를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제6회 대회는 전쟁 관련 투쟁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 레닌의 지적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반대하는 투쟁에 더욱 큰 국제적 성격을 부여하고 혁명적 반전행동을 국제적 규모에서 결합․조정할 것을 모든 지부에 호소하였습니다(김성윤, 1986 Ⅰ:299~300). 코민테른 제6회 대회의 제3의제 “식민지에서의 민족혁명운동”은 8월14일의 제29차 회의로부터 8월21일의 제40차 회의까지, 12차례 회의에서 심의될 정도로 중대 사안이었어요. 대회는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에서의 혁명운동에 대하여”(동녘, 1989 3: 270~327)라는 테제를 채택하였죠.

테제는 “제국주의의 착취 대상인 식민지는 이전보다 더욱 커진 제국주의자 사이의 분쟁과 전쟁의 끊임없는 원천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 독립을 유지해온 여러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의 약탈 전쟁이나 새로운 전쟁 계획도, 새로운 식민지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격심한 전쟁 준비도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고 지적하였습니다.

테제는 식민지․반식민지를 둘러싼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하였어요. “광대한 식민지․반식민지 세계는 혁명적 대중운동의 꺼지지 않는 용광로가 되었다. 거대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이러한 현상의 바탕에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의 변화가 있다. 한 가지는 제국주의 전쟁 중 또는 그 후에 주요한 식민지․반식민지 내부의 경제․사회 구조에 생긴 변화로서, 자본주의적 공업 발전 요소의 강화, 농업 위기의 격화, 프롤레타리아의 증가와 그 조직화의 개시, 광범한 농민 대중의 궁핍화 등이다. 다른 한 가지는 국제정세에서 생긴 변화로서, 한편으로는 세계대전 중에 주요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부딪친 곤란과 전후 세계자본주의의 위기, 그 후 제국주의적 ‘평화’의 결과로서 영국․일본․미국․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의 식민지 정책의 약탈적 침략성이 더욱 강화된 것을 들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가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반(反)제국주의적 프롤레타리아 세력으로 전화한 것, 소비에트 연방 민족들이 독립을 지키기 위하여 세계 제국주의와 투쟁하여 거둔 승리, 소련에서 추진된 민족문제의 혁명적 해결과 사회주의 건설의 혁명적 영향, 뒤이어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진행된 공산주의 운동 강화, 그리고 식민지 옹호 행동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의 방대한 인민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큰 폭으로 촉진시켜 혁명․대중적 봉기를 불러일으켰고, 이들 봉기는 대부분의 경우 반제국주의 해방투쟁과 국내 계급투쟁 세력의 발전이 긴밀하고 독특하게 결합한 데 기초를 두고 있었다고 코민테른은 평가하였습니다.

테제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판단되는 중국 혁명운동을 비롯하여, 인도, 인도네시아,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들의 혁명운동 현상을 분석하고, “식민지․반식민지 혁명운동의 기본적인 문제는 모두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사이의 거대하고도 획기적인 투쟁 ―현재 세계적 규모에서는 제국주의와 소비에트 연방 사이의, 각각의 자본주의 국가 내부에서는 부르주아적인 계급지배와 공산주의 운동 사이의 투쟁― 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테제는 제국주의를 상대로 한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장책은 전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와 식민지의 근로 대중이 협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죠.

테 제는 또 ‘식민지 경제와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했습니다. 그 중심적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는 본질상 해당 종속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뿐만 아니라, 경제외적 강제에도 바탕을 둔 제국주의 국가 부르주아의 독점이다. 그때 이 독점은 두 가지 기본적인 기능으로 나타난다. 이 독점은 한편으로는 식민지의 무자비한 착취라는 목적에 봉사한다(각종 형태의 직․간접 공납 징수, 자국 공업제품의 판매, 자국 공업을 위한 저렴한 원료 획득, 극히 저렴한 노동력의 이용에 바탕을 둔 초과이윤 등). 다른 한편으로 제국주의적 독점은 자기의 존립조건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목적에 봉사한다. 즉, 식민지 대중을 예속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자 본수출의 기능과 관련하여 테제는,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은 식민지에서 자본주의적 관계들의 발전을 촉진한다. 수출된 자본 가운데 생산 목적을 위해 투자된 일부는 부분적으로 공업적 발전을 촉진한다. 그러나 이 발전은 식민지 경제의 독립성을 높이는 방향으로가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의 금융자본에 대한 식민지 경제의 의존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행해진다. 일반적으로 식민지에서는 수입된 자본의 거의 전부가 원료의 점유 취득과 채취 또는 1차 가공에 집중된다.”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수입된 자본은 또 원료의 송출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식민지를 본국과 한층 더 긴밀하게 결합시키는 교통수단 체계(철도․조선․항만 건설 등)를 확충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즐겨 사용되는 농업 투자형태는 값싼 식량의 생산과 막대한 원료 자원의 독점을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 농장(플랜테이션)에 대한 출자이다. 식민지의 저렴한 노동력으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의 대부분이 본국으로 보내지는 것은, 식민지 국가 경제의 고양과 그 생산력의 발전을 그만큼 심하게 지체시키며, 식민지의 경제적․정치적 해방에 장해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죠.

테제는 결론적으로 “식민지에 대해 제국주의가 시행하는 모든 경제정책에서 일관되고 있는 것은 식민지의 종속을 유지․강화하고 착취를 확대하며, 식민지의 자주적 발전을 가능한 한 억제하려는 노력이다”라고 서술했습니다.

코 민테른 제6회 대회에서 ‘식민지에서의 혁명운동’과 관련하여 집행위원회 동양서기국 책임자 쿠시넨이 기초한 테제 초안을 둘러싸고 큰 논쟁이 일었어요. 쿠시넨의 보고에서 큰 무게를 차지했던 것이 ‘탈식민지화론’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탈식민지화론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이 식민지의 공업화를 촉진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했죠.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영국 자본주의가 인도의 공업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영국 자본의 침입에 의해 인도의 봉건적 관계는 실질적으로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공업화가 진전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인도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의 정치적 불일치의 근거가 소멸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당시 영국과 인도 공산당 지도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것이었습니다.

쿠시넨은 탈식민지화론을 냉엄하게 비판하면서, 제국주의 정책이 인도의 공업화를 추진하기는커녕 거꾸로 그 예속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 토지혁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인도 농촌의 빈곤화가 공업 발전의 장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민족 부르주아지가 동요하는 정책을 펴고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대중운동을 격발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을 언급함과 동시에, 대중운동에 대한 민족 개량주의의 유해한 영향과 싸울 필요성을 강조했죠. 그러나 현 단계에서 주요한 공격은 민족 부르주아지가 아니라 지배적인 제국주의 블록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쿠시넨의 이런 보고에 대해 영국과 인도의 당 대표들은 완고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했어요. 대회는 탈식민지화 이론을 철저히 비판하면서 이를 배격했습니다(동녘, 1989 3: 270~271).

식민지 국가의 민족 부르주아지 특성에 관한 문제도 테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어요. 테제는 “식민지 국가의 민족 부르주아는 제국주의에 대해 동일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 부르주아의 일부, 우선 첫째로 상업 부르주아는 제국주의 자본의 이익에 직접 봉사하고 있다(이른바 매판 부르주아). 이들은 대체로 제국주의에 대한 봉건적인 동맹자나 높은 보수를 받고 있는 토착관료와 똑같이 민족운동 전체와 적대하는 반민족적․제국주의적 주장을 일관되게 옹호한다. 토착 부르주아의 나머지 부분, 특히 토착 공업의 이익을 반영하는 부분은 민족운동의 기반에 서지만, 특히 동요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타협으로 기울기 쉬운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 조류는 민족 개량주의(또는 제2회 대회 태제의 용어에 의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조류)라고 부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대회는 식민지 국가에서 혁명운동을 추진하는 데서 농민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습니다. “농민은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또 프롤레타리아의 동맹자로서 혁명의 추진력이다. 수백만을 헤아리는 방대한 농민 대중은 가장 발전한 식민지에서조차 주민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있다(몇몇 식민지에서는 인구의 90%를 점한다).”

대회는 또 테제를 통해 노동운동의 단계적 상황에 대해 고찰했죠. “식민지․반식민지 국가들에서 전개된 노동운동 최초의 고양(대개 1919~1923년)은 세계대전 후에 계속된 민족혁명운동의 일반적 고양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토착 부르주아를 선두로 한 반제국주의 투쟁의 이익에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이익이 종속되어진 것이 그 특징이었다. 노동자의 파업이나 기타 행동은 그것이 조직적 성격을 띠고 있는 한, 통상적으로 프티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에 의해 조직되었고, 인텔리겐치아는 노동자의 요구를 민족투쟁 문제에 한정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서, 코민테른 제5회 대회 이후 식민지에서 시작된 노동운동의 제2 고양 국면이 나타낸 중요한 특징은 식민지 노동자계급이 독자적인 계급세력 ―민족 부르주아에 대립하여 자기의 직접적인 계급적 이익을 위하여, 또 일반적으로 민족 혁명에서의 헤게모니를 위하여 그 민족 부르주아와 투쟁하는 세력― 으로서 정치무대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몇 년 동안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먼저 중국 혁명의 실례에 의하여, 뒤이어 인도네시아의 봉기 실례에 의하여― 식민지 혁명의 새로운 단계의 이러한 특성을 선명하게 확증하고 있다. 인도에서도 노동자계급이 민족 개량주의적 지도자의 영향으로부터 이탈해 가고 있고, 영국 제국주의자와 자국 부르주아에 대한 투쟁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모든 사정이 말해 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동녘, 1989 3: 299).

코민테른 제6회 대회가 채택한 「식민지에서 전개되는 혁명운동에 관한 테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조선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죠. “조선에서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추진하는 활동을 강화하고, 노동총동맹과 농민총동맹 조직의 활동성을 전면적으로 향상시켜 조직 강화를 꾀하여야 한다. 또 노동조합을 개조하고 노동조합으로 노동자 계급의 가장 중요한 층들을 끌어들여 경제투쟁과 정치적 요구들을 결합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약탈적인 식민지 체제의 조건에서 농민의 궁핍화가 극심해지고 있는 결과, 토지혁명은 점점 절실한 의의를 갖게 되었다. 대규모 종교적 민족단체(천도교)에 참가하고 있는 근로 대중 사이에서 끈질기게 혁명적 계몽활동을 수행하여 그들을 민족 개량주의적 지도자의 영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모든 혁명적 대중조직 내부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개인적 가맹에 기초한 일반적 민족혁명당의 설립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행동위원회를 수단으로 다양한 민족혁명 조직의 활동을 조정․통합하고, 프롤레타리아․공산주의적 지도 아래 혁명적 분자의 진정한 블록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때 프티 부르주아 민족주의자의 불철저함과 동요를 비판하고 그들을 대중 앞에서 끊임없이 폭로해야 한다. 특히 이것은 당 대열 내의 유해한 분파주의의 극복이라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을 쉽게 수행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동녘, 1989 3: 319~320).

코민테른 제6회 대회는 소련의 국내 정세와 소련 공산당의 당내 정세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였습니다. 소련의 경제 정세에 대한 바르가의 보고는 그 동안의 경제적 성과와 소비에트 사회에서 이루어진 사회주의적 요소의 성장을 지적하고, 소련 경제에서 계획화의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사회주의 건설의 어려움과 앞으로의 발전 전망을 제시하였죠. 마누일스키는 소련 공산당의 당내 정세에 관한 보고 가운데서, 트로츠키주의 반대파의 존재가 단순히 ‘일국적’ 현상이 아님을 강조하였습니다.

대 회는 소련에서 거둔 사회주의의 성공이 국제 노동자 계급의 지위를 강고히 하고 대중의 혁명운동을 촉진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며, 각국 당의 대표단은 소련 공산당과 중앙위원회의 정치․조직적 방침을 승인하였습니다. 대회는 또 “트로츠키 그룹은 강령문제, 정책문제와 조직문제에 관한 견해에서 멘셰비즘 노선으로 전락하였고, 객관적으로 소비에트 권력에 반대하는 투쟁기관으로 전화하였다. 따라서 이 그룹은 소련 공산당에서 제명한 것은 정당하고도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밝혔죠(김성윤, 1986 Ⅰ: 304~305).

그 리고 코민테른 제6회 대회는 조선, 쿠바, 뉴질랜드, 파라과이 공산당과 아일랜드 노동자연맹, 에콰도르 사회당, 콜롬비아 혁명적 사회당을 코민테른 지부로 승인하였습니다(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5 Volume 5: 149~150).

코민테른 제6회 대회의 특징적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일리는 제6회 대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좌선회’(left turn)로 표현하였습니다. 코민테른은 자본주의 역사의 ‘제1기(1923년까지)’와 ‘제2기(1924~1928년)’가 각각 혁명적 위기와 상대적 안정기라는 특징을 지녔다면, ‘제3기’는 위기가 다시 전개되면서 서유럽의 경제적 난관이 심화되어 혁명의 기회가 새롭게 열리는 시기로 규정하였다고 보았죠. 이 시기는 각국 공산당에게 철의 규율과 개혁주의자들과의 단호한 분리를 요구하였고, 또 공산주의 정당들에게 반자본주의 세력의 유일한 재집결지가 되어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개혁주의적 환상을 깨뜨리고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일체의 협력에 반대할 것을 요구하였다는 것이죠.

일리는 이와 같은 정세 판단에 따라 소련 지도자들은 제6회 대회를 기점으로 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대한 무비판적 복종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강요했으며,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동시에 소련 내부에서 스탈린주의의 부상을 나타냈고, 이제 소련은 코민테른을 자신의 궤도 안으로 완전히 흡수하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일리, 2008: 461, 467).

코민테른의 이러한 변화를 두고 일리는 매우 비관적인 평가를 했어요. “혁명적 낙관주의가 살아남은 공간이었던 소련과 그것의 조직적인 판박이인 코민테른은 지식인들에게는 갑갑하고 냉담했으며, 비판적인 이론작업을 퉁명스럽고 공격적으로 배척했다. 설상가상으로 비민주성도 점차 심화되었다. 1928년 이후 각국 공산당에서 이루어진 스탈린주의화는 헌신적이고 창조적이며 관용적인 사회주의 지식인들에게는 하나의 정치적인 패배였고, 특히 1934년 이후 소련에서 숙청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유럽 민주주의의 위기만큼이나 좌절을 불러일으켰다. 스탈린주의를 통해 마르크스주의는 하나의 이론적 전통으로서 대중적인 창조성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다. 독립적인 사상가들은 공산주의 운동의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바깥으로 쫓겨났다. 서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복잡한 부담의 이면에서 세 겹의 패배감에 괴로워했다. 서유럽의 혁명 실패, 파시즘의 승리, 소련의 스탈린주의화 앞에서 서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점점 더 뒤로 물러났다.”(일리, 2008: 476~477).

핼 러스는 코민테른 제6회 대회의 특징을 ‘초좌익주의’로 표현하였어요. “3기의 초좌익주의는 너무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각국 공산당들이 기권주의 입장을 취해 수동적 태도를 갖게 하여 노동자계급 운동으로부터 사실상 고립 당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공산당들은 자국 지배계급에게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못했고 소련 대외 정책에 아무런 위험도 제기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습니다(핼러스, 1994: 185).

[참고문헌]

김성윤, 1986, 『코민테른과 세계혁명 Ⅰ, Ⅱ』, 거름.
동녘, 1989, 『코민테른 자료선집 1,2,3』, 동녘.
Eley, Geoff, 2002, Forging Democracy, Oxford University Press Inc., 유강은 옮김, 2008, 『The Left 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뿌리와 이파리.
Hallas, Duncan, 1985, The Comintern, London: Booksmark. 오현수 옮김, 1994, 『우리가 알아야 할 코민테른 역사』, 책갈피.
Trotsky, Leon, 1969, Permanent Revolution and Results and Prospects, London: New Park Publication, 정성진 옮김, 1989, 『영구혁명―및 평가와 전망』, 신평론.
―― 1974, The Third Internationnal After Lenin, London: New Park Publication, 정민규 옮김, 2009, 『레닌 이후의 제3인터내셔널』, 풀무질.
水野直樹(미즈노 나오키), 2007, 「初期コミンテルン大會における朝鮮代表の再檢討, 「初期コミンテルンと東アジア」硏究會,『初期コミンテルンと東アジア』, 不二出版.
The USSR Academy of Sciences, The Institute of The International Working-Class Movement, 1985, The International Working-Class Movement-Problems of History and Theory, Volume 5, -Progress Publishers Mosc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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