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제2절 코민테른 제3, 4회 대회와 노동자계급의 통일행동 문제(Ⅱ)

부 제목: 
[김금수의 세계노동운동사 39]

글쓴이 :

 


[ 제3차 코민테른을 기념하는 소련의 공식 포스터 ]

3. 코민테른 제4회 대회와 노동자 정부 문제

1922년 11월5일, 코민테른 제4회 대회가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렸습니다. 그 이후의 회의는 11월9일에서 12월5일 사이에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고요. 대회에는 58개국의 66개 공산당과 노동자 조직을 대표하는 대표의원 408명이 참가했습니다. 이 가운데 의결권을 가진 사람은 343명이었죠. 자격심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이 당시 각국 공산당의 대열에는 125만 3,000명의 당원이 있었고, 그 가운데 당원 82만 5,000명이 자본주의 국가의 공산당에 소속하고 있었습니다. 17개 당은 당원 수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김성윤, 1986 Ⅰ: 183).

대회의 제1회 회의에서는 레닌이 보낸 인사말이 낭독되었습니다. “큰 곤란이 각국 공산당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은 성장하고 강화되었다. 주요한 임무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다수를 획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임무를 달성해야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회에서는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활동보고, 러시아 혁명 5년과 세계혁명의 전망, 자본과 파시즘의 공세, 코민테른 강령, 노동자 정부 슬로건, 통일전선 전술, 노동자·농민 정부, 대중활동 문제 등이 토의되었습니다. 이제 그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보죠.


[ 제4차 코민테른과 러시아 10월 혁명 5주년을 기념하는 소련의 공식 포스터 ]

- 집행위원회 활동보고

대회에서 행한 집행위원회 의장 지노비에프의 활동보고와 라데크의 자본공세에 관한 보고에서는 국제정세에 대한 평가와 함께 노동자계급의 방위투쟁 임무가 설명되었고, 통일전선 전술을 계속 적용할 필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노비에프가 한 보고 가운데 혁명의 발전 전망에 관한 보고가 논쟁을 불러일으켰어요. 지노비에프는 자본주의가 현재의 상태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중앙 유럽 전체에 걸쳐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할 것이 예상된다고 했죠. 그리고 그는 파시즘화는 모순의 첨예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은 곧 혁명화의 과정이고, 특히 이탈리아에서 취해진 파시즘의 권력 장악은 역사적인 전망에서 본다면, “이 나라에서의 정세 격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숙”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대회는 ‘좌파’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지노비에프의 견해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회에서 채택된 문서는 당초의 초안을 근본적으로 수정한 내용이었어요. 전술에 관한 테제는 부르주아지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노동대중의 투쟁을 탄압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민주주의적인 통치제도를 파시스트적인 지배체제로 바꾸려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코민테른 제4회는 파시즘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항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 규정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모든 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일상적 요구를 전면에 제기할 필요, 통일전선의 필요, 방위투쟁의 필요를 강조했습니다(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4, volume 4: 597). 

- 노동자정부, 노동자·농민정부 슬로건 

제4회 대회는 프롤레타리아 통일전선 전술에서 도출되는 불가결한 결론으로서 ‘노동자정부’ 슬로건을 제기했습니다. 대회에서 이 슬로건이 제기되자 격렬한 토의가 벌어졌어요. 

지노비에프를 비롯한 ‘좌파’는 노동자정부라는 슬로건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대의원들은 이런 견해를 비판하면서 노동자정부 슬로건은 통일전선 전술에서 직접적으로 도출되어 대중을 쉽게 투쟁과정에 동참시키는 것으로, 노동자정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적 형태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죠. 

코민테른 제4회 대회는 노동자정부를 부르주아 권력과 투쟁하며, 최후에는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결속된 모든 노동대중의 통일전선, 모든 노동자 당의 연합으로 간주했습니다. 또한 노동자정부는 의회를 통해서도 성립될 수 있으나, 부르주아지에 대한 혁명적 투쟁을 굳게 결합시키고 대중을 중심으로 혁명운동을 강화해 가는 대중투쟁의 과정에서 비로소 성립될 수 있다고 했죠. 그러나 정치적 슬로건으로서 그것이 현실적인 의의를 가지는 경우는, 노동자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역량관계에서 정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실천적인 당면과제에 이른 국가에 한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노동자정부(또는 발칸 국가들,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기타 노동자와 빈농의 정부)의 임무는 노동자계급을 무장시키고 부르주아 반혁명단체의 무장을 해제하며, 생산통제를 실시함과 아울러 주요한 조세부담을 유산계급에게 떠맡기고, 반혁명적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4, volume 4: 599~600). 

노동자정부 슬로건과 함께 ‘노동자·농민정부’ 슬로건도 제기되었어요. 코민테른 제4회 대회는 ‘농업 행동강령 개요’를 채택했는데, 이것은 제2회 대회에서 결정된 농업문제 테제를 발전시키고, 노동자계급과의 공동투쟁에 농민들을 동원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 강화를 촉진하기 위한 슬로건이었습니다. 노동자·농민정부라는 슬로건은 자본의 공세, 반동과 파시즘에 대한 전 인민적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노동자계급과 근로농민의 동맹 필요성을 표현한 것이었죠. 노동자·농민정부는 노동자정부 슬로건을 한층 더 구체화한 것이며, 통일전선 전술을 실천하기 위한 기반 확대를 의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노동자정부 슬로건이나 노동자·농민정부 슬로건은 1923년 독일의 작센, 튀링겐, 브런즈윅에서 존재했던 노동자정부와, 1923년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정부에 대항하기 위한 반파쇼 인민전선의 구축의 필요성, 그리고 1923년 선거에서 ‘노동자·농민 블록’ 또는 ‘코뮌’ 창설 등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 코민테른 4회 대회 미국 대표단 ]

- 러시아 혁명 5개년과 세계혁명 전망

1922년 11월13일 회의에서는 레닌이 ‘러시아 혁명 5개년과 세계혁명의 전망’에 관한 보고를 했습니다. 제4회 대회는 레닌이 마지막 참석한 코민테른 대회였어요. 레닌의 보고는 먼저 ‘신경제정책(NEP)’의 성과와 의의, 소비에트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레닌은 경제 부흥에서의 어려움과 성공, 중공업 발전을 위한 집중적 노력에 대해 언급했죠. 또 그는 러시아 공산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경제 관리를 배우고,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며, 전 세계 혁명투쟁의 주요한 요새인 소비에트 공화국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4, volume 4: 594). 

또한 보고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주요 임무를 제시했어요. 레닌은 노동자계급 투쟁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공세로 전환할 가능성뿐만 아니라, 퇴각할 가능성과 퇴로를 확보할 필요성 또한 미리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러시아의 동지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동지들도 러시아의 경험을 교조적으로가 아니라 창조적으로 습득하고, 혁명이론을 실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죠. “혁명적 활동의 조직, 구성, 방법, 내용을 충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때와 장소의 구체적인 조건을 요량하여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레닌은 보고에서 내전이 끝난 뒤 소비에트국가 발전에서 제기된 근본적인 문제들과 사회주의 건설의 임무, 신경제정책의 성과를 분석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노동자를 위해 권력을 탈취했다. 이 권력의 도움을 빌어 사회주의 제도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경제를 경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죠(김성윤, 1986 Ⅰ: 188~189). 

러시아 혁명 문제와 관련하여 제4회 대회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 노력만이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킬 수 있다고 지적했고,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소비에트 러시아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노동자 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강화는 곧 자신의 적대계급인 부르주아지에 대한 투쟁에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를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 반파시즘 통일전선

제4회 대회는 국제파시즘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향과 지위 향상을 위한 그들의 모든 노력을 폭력적으로 억누르고자 하는 거대 부르주아지의 방편이라고 특징지었습니다. 대회는 동시에 파시즘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전반적 기초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죠. 따라서 반파시즘 통일전선에 비프롤레타리아 층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대회는 “이 활동 분야에서도 통일전선 전술을 단호하게 적용하고, 반드시 비합법적 조직방법을 통해 파시스트 도당(徒黨)과의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선두에 서야한다”고 천명했습니다(The USSR Academy of Sciences, 1984, volume 4: 601~602).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3회 총회에서는 체트킨이 ‘파시즘에 반대하는 투쟁’ 보고를 했습니다. 체트킨은 파시즘을 “이 시기 세계 부르주아지가 수행하는 총공격의 가장 강력하고 가장 집중적이며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규정했어요. 체트킨은 파시즘을 부르주아지의 폭력적인 테러로밖에 보지 않는 단순한 사고를 반박하면서, 파시즘이 국민의 상당 부분 ―프티 부르주아지, 계급탈락분자,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후진층― 에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형태의 반동적인 부르주아 독재와는 구별된다고 지적했죠. 

체트킨은 “파시즘은 각국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두 가지 근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 광범한 사회대중의 분위기, 이익, 요구에도 교묘하게 적응하는 사이비 혁명적 강령이고, 다른 하나는 극히 잔혹하고 극히 폭력적인 테러의 행사라는 지적이었죠.

보고자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투쟁에서는,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중간층, 소농민, 지식인 등 한 마디로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악화됨에 따라 대자본과 점점 첨예하게 대립해가는 층”의 지지를 획득하거나, 또는 이들이 중립적인 위치에 서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어요(김성윤, 1986 Ⅰ: 207). 또 파시즘의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무장된 자위(自衛)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투쟁과 자위는 프롤레타리아 통일전선을 전제로 하며, 노동자·농민정부 슬로건은 반파시즘 투쟁의 불가결한 요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코민테른 제4회 대회와 집행위원회 제3회 총회의 통일전선 관련 결의들을 둘러싸고, 여러 부문에 걸쳐 그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이 모색되었습니다. 그 한 가지 갈래로서 노동조합운동에서의 통일행동 모색도 치열하게 추구되었죠. 1922년 11월19일부터 12월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적색노동조합 인터내셔널(프로핀테른) 제2회 대회는 노동자 통일행동 전술을 구체화했습니다. 노동자 통일전선 전술이 현실적 과제로 대두된 것은 반파쇼 통일전선 구축의 일환이라는 점에서도 중요성을 갖고 있었지만, 당시 국제적 노동전선의 분열 양상이 크게 부각된 데서도 연유되었죠. 

1922년 여름에 이미 국제적 뷰로를 창설했던 가장 완강한 무정부주의적 생디칼리스트는 1922년 12월25일 독일 베를린에서 대회를 소집했습니다.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독일,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 등 13개국 생디칼리스트 조직의 대표였죠. 이들은 대회에서 ‘국제노동자협회’(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를 창립했는데, 이 조직을 제1인터내셔널의 상속자라고 했으며, 스스로를 개량주의와 자본주의 반대자이고 ‘자주관리생산자’ 제도의 옹호자라고 자처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에 속한 조직들은 조직의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치적 적극성을 발휘하고 있었어요. 암스테르담 파는 1922년 12월10일에서 15일까지 헤이그에서 열린 ‘경제회의’에 맞춰 같은 도시에서 제2인터내셔널과 제2반 인터내셔널과 함께 국제평화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대회에는 노동조합, 협동조합, 사회주의 정당, 각종 평화주의 단체 대표 700명이 참석했죠. 코민테른과 프로핀테른은 이 대회에 초청되지 않았으나, 전 러시아노동조합중앙평의회 대표단은 초청을 받아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 노동조합 대표자는 14개 항으로 구성된 노동자 통일전선의 구체적 행동강령을 제안했습니다. 이 강령은 특히 전쟁 위험 반대 투쟁을 위한 국제위원회 창설, 반군국주의 선전주간 실시, 24시간 시위적 총파업에 의한 투쟁주간 마무리 등을 제안했어요. 그러나 대회는 러시아 대표단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회는 보고를 통해 전쟁과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 전개에서 노동운동이 수행해야 할 임무를 천명했습니다. 무기의 생산과 수송에 대한 감시를 비롯하여 경제적 보이콧과 국제적 총파업 행사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죠. 특별결의는 프랑스의 루르 점령과 독일 영토의 병합에 반대하고 또 국제연맹의 개조를 권고했습니다.

- 반제 통일전선

코민테른 제4회 대회는 식민지·종속국가들에서 전개된 민족해방운동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했어요. 대회는 민족·식민지 문제에 대한 코민테른의 정책을 구체화시켜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반제 통일전선의 강령은 독립공화국의 수립, 정치제도의 민주화 등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의 실현을 그 내용으로 했죠. 또 대회는 민족부르주아지의 불철저성을 지적하면서, 민족혁명을 지지하고 반제투쟁의 기본 과제를 실현하는 데서 민족 부르주아지가 가지는 관심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회는 또 반제 통일전선운동에서 제기되는 노동자계급의 임무를 지적했죠.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의 노동운동은 무엇보다도 전체적인 반제전선 속에서 자주적인 혁명적 요인으로서의 위치를 실천적 투쟁 속에서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운동의 이 같은 자주적인 의의가 인정되고 그 정치적 독립성이 유지되는 경우에만 비로소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과의 일시적인 협정이 허용될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의 노동자계급은 그들 나라의 농민과 반(半)프롤레타리아 대중 사이의 연계를 쟁취하는 데 대해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죠.

대회는 결론과 다름없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제시했어요. “아직 크고 작은 맹아상태에 있는 동방의 식민지·반식민지 국가에서의 당은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모색하며, 모든 운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식민지·반식민지의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통해서만 혁명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으며, 노동자계급이 경제적·정치적으로 조직되는 것만이 투쟁의 혁명적 규모를 증대시키는 최선의 길이다”(김성윤, 1986 Ⅰ: 194).

<참고문헌>

김성윤, 1986, 『코민테른과 세계혁명 Ⅰ』, 거름.
동녘 편집부, 1989, 『코민테른 자료선집 1, 2, 3』, 동녘.
Duncan, Hallas, 1985, The Comintern, Bookmarks: London, Chicago and Melbourne, 오현수 옮김, 1994, 『우리가 알아야 할 코민테른 역사』,책갈피.
Eley, Geoff, 2002, The Left, 1848~2000, Oxford University Press. Inc., 유강은 2008,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뿌리와 이파리.
水野直樹(みずのなおき), 2007,「初期コミンテルン大會における朝鮮代表の再檢討」, 初期コミンテルンと東アジア硏究會, 『初期コミンテルンと東アジア』, 不二出版(日本).
The USSR Academy of Sciences, The Institute of The Internationnal Working-Class Movement, 1976, The International Working-Class Movement-Problems of History and Theory, volume 4, -Progress Publishers Moscow.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