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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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이 죽인 사람은 죄 없는 여자, 아이, 노인들이었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했다. 이를 두고 반공군사국가였던 남한은 패망이라 불렀지만, 사실 베트남은 수백 년에 걸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사슬을 끊고 해방되었다. 그것도 오직 자신들의 피맺힌 투쟁으로. 

베트남전의 늪으로 내달리던 미국은 1965년 '베트남전쟁의 국제화'를 시도하고, 여기에 호주, 뉴질랜드, 태국, 대만, 필리핀, 영국, 한국 등 7개국이 호응했다. 하지만, 한국을 뺀 6개국은 의장대, 공병대, 의무대 등 비전투 부대를 파견했을 따름이고, 오로지 한국만이 수십 만 명에 달하는 전투병력을 베트남에 파견했다. 

20세기 중반까지의 역사는 한국과 베트남이 너무나 비슷하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렸고, 20세기를 전후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했으며,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로 분단되었고, 외세가 군사적으로 개입한 가운데 같은 민족끼리 내전을 치렀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와 두 나라는 비극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남한은 월남을 지원하고, 북한은 월맹을 지원했다. 특히 남한은 젊은 병사 수십 만 명을 베트남에 보내 미군의 용병으로 참전케 했다.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러"

"나는 지금도 한국군을 증오한다 … 그들이 죽인 사람들이 총 들고 싸웠던 베트콩이면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죽인 사람은 … 죄 없는 여자, 아이, 노인들이었다."

이 책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서 증언된 학살들은 미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미국에 의한 민간인 학살인 밀라이 사건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터무니없고 잔인하다. 스무 살 안팎의 가난한 집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한국군 병사들은 무엇 때문에 남의 나라(베트남)에서 벌어진 남의 나라(미국)가 주도하는 전쟁에서 민간인까지 죽이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던가. 

"붉은 무리 무찔러 자유 지키러 삼군에 앞장서 청룡은 간다." 이 책의 필자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빨갱이는 죽여야 한다'는 의식이 우리 몸에 내재되어 있었고, 베트남전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고 분석한다. "도착하기도 전에 베트콩에 대한 공포와 적개심이 생기지요, 아이들도 베트콩이니까 다 죽여야 한다. 강간한 다음엔 다 죽여야 한다. 안 그러면 골치 아파진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오는 종자들, 고문을 받으면서도 비명 한번 안 지르는 악독한 존재들.' 베트남전에 나간 나이 어린 병사들이 갖고 있던 선입견은 반공의 이름으로라면 아이도 여자도 죽일 수 있다는 집단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만대에 기억될 하늘에 가 닿을 죄악'

한국군의 민간인학살이라는 베트남전의 비극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학살과 1980년 광주학살의 중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세 사건을 관통하는 핵심은 이성을 읽은 국가권력과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힌 젊은 군인들이 '반공'과 '자유'를 외치며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데 있다. 도덕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국가권력은 평범한 남자를 살인자로 만들었고, 이들은 아무런 원한도 이유도 없이 살인을 저질렀다. 

전쟁은 끝났고, 국가는 무대의 뒤편으로 물러났다. 결국 모든 아픔과 고통은 가해자와 피해자 개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한국군측 피해만 5천명 전사, 1만명 부상, 수만명 고엽제 후유증. "우리가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쩐 득 루엉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한 말이다. 말 한마디가 '만대에 기억될 하늘에 가 닿을 죄악'을 빚 갚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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