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당'은 민주노동당을 강화할 것인가

섹션:

글쓴이 :

합법적인 진보정당운동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그것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 첫발을 내디딘 지 십 년을 훨씬 넘어섰지만, 아직 보수정당체제에 대적할만한 실체를 확립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진보정당운동은 여전히 시험받고 있으며, 아직 많은 한계를 가진 제한된 세력으로 남아 있다. 

2002년은 권력재편기로, '3김 시대'로 통칭되는 기존 정치질서가 변화하는 첫 시기가 될 것이다. 만약 진보정당운동이 2002년이라는 정치적 격변기에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새 정치질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경우, 그나마 미미한 실체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이 전개하고 있는 재창당 논의나 사회당과의 통합 논의는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한 것이며, 그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능동적 대응이기도 하다. 


[ 2000년에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출처:민주노동당 강북을지구 ]

외연 확대에 치우친 '재창당' 논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재창당 관련 논의는 작년 10·25 보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눈앞에 드러난 저조한 득표의 선거 결과는 당 면모 쇄신의 필요성을 부각시켰고, 이를 이루지 못할 경우 2002년의 정치적 진출에 실패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높였다. 이 분위기에 발빠르게 조응한 것이 '재창당' 논의였다. 2000년 총선 이후 당내에 한 흐름으로 자리한 기왕의 재창당 논의가 이 시점에서 다시 활기를 띠며 추진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기득권 포기' 선언과 함께 여타 사회단체들을 향해 진보진영의 통합 결집된 진보정당 건설을 제안하는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신년 벽두에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국연합, 전빈련, 한총련, 전농 등 6개 단체 대표자 합동수련회가 있었고, 이 모임을 뒤로 4월 재창당설이 나오면서 당 분위기는 한때 술렁이기도 했다. '재창당'이 실현되는가? 물론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고, '재창당'은 오히려 심드렁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재창당 논의는 당 일각의 반대가 없지 않으나, 민주노동당이 여전히 협소한 기반에 서있다는 점에서 명분을 갖고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참여세력의 확대를 이뤄 진보정당운동을 강화해 대중정치세력으로 부상하자는 제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창당' 논의는 민주노동당(진보정당운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는다. 현재의 재창당 논의가 외연을 확대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어 당의 대중 토대를 강화하고 지도력을 쇄신하는 등 당 조직 자체를 강화하는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실 그 외연조차도 전국농민회(전농)를 제외하면 대부분 민주노동당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있어 재창당에 걸맞는 외연 확대로서는 부족하다. 노동운동의 경우, 민주노총의 간부와 활동가에 한정된 결합이 아니라 조합원 대중의 지지와 참여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현재의 재창당 논의에는 이를 위한 고민과 노력이 거의 없다.

여기에는 재창당에 대한 태도 차이가 있다. 현 상태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변화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는가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는 현 시기 진보정당의 중심과 기반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차이에 따른 것으로, 재창당 논의에 대한 태도를 다르게 하는 배경이다.

'반조선로동당'에 발목 잡힌 사회당

사회당과의 통합(합당) 논의 역시 작년 10·25 보선 이후 빠르게 발전되었다. 진보정당운동의 세력이 미미한데 그나마 쪼개져 있는 상황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명분도 작용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두 당 사이의 논의는 양당 대표의 회담으로 이어져 서로를 통합의 일차 상대로 '존중'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전제조건 없는 통합'을 강조한 데 반해, 사회당은 '조선로동당 반대'의 태도를 통합의 전제로 요구하면서 다시 한 번의 대표회담을 약속한 것 외에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반조선로동당' 문제는 옳든 그르든 통합 논의의 일방이 핵심 사안으로 주장하는 까닭에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대한 태도 표명을 미루거나 애매하게 하면서 통합 논의를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이는 토론과 논쟁을 통한 정책 합의를 목표하는 것이 아니기에 태도 표명 자체가 통합 논의를 종결시킬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강령을 통해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지적하면서 남한 및 통일국가의 발전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7.4 공동성명과 6.15 선언을 지지하며, 북한과 정당 차원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북한 및 조선로동당에 대한 태도와 견해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모호함이 없지 않으나, 양당의 통합 논의에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다. '강력한 진보정당이 되는 원칙'은 무엇을 반대하는가의 합의가 아니라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대한 합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북한과 그 체제에 대한 평가 및 판단과 북한에 대해 어떤 정책을 갖고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이 점에서 오히려 사회당이 남북통일에 대해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북한 집권당과 일체의 대화와 관계를 거부하는 것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당은 이에 앞서 '반조선로동당'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진보정당 통합 논의에서 스스로 발목을 묶어 버린 꼴이 됐다. 이는 통합 논의에 임하는 사회당의 진심이 의심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재창당' 논의가 나아갈 바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추진 활동은 무작위 대중이나 단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당은 언제나 재창당 과정에 있는 것이다. 현재의 재창당 논의는 사회당과 농민 대표조직 등의 참여가 성과의 지표가 된다. 그 결실이 난망할 수 있음은 아쉬운 일일 수는 있지만, 상상하기 어렵거나 견디기 힘든 일도 아니다. 

진보정당운동의 외연을 더욱 넓히고 단일한 진보정당을 통해 당면의 정치적 재편기에 대응할 수 있다면, 이 운동의 성공은 그 만큼 빨라질 것이다. 재창당 추진 논의의 현실적 설득력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와 시기가 있는 문제며, 또 진보정당운동으로서 이념과 정책, 대중 기반을 튼튼히 하는 일과 병행할 때에 그렇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수립하고 민주노동당이 대안정치세력으로 나서는 것은 사회당과 통합을 포함하는 재창당 추진이 무망해진다해서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포기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성과가 불분명한 재창당 논의를 지속하는 것은 오히려 당을 위축시킬 수 있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무언가 결핍된, 그래서 조만간 대체돼야 할 상태의 당으로 비춰지게 함으로써 당을 중심으로 정치활동의 성과를 모으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재창당 논의는 민주노동당이 1987년 대선이래 진보정당운동에 동의·참여하는 다양한 세력들간의 정치적 합의의 과정이어야 하며, 그 역사적 산물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야 한다.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