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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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이하 FTA)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현재 남미의 칠레와 FTA를 체결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일본과는 본격적인 협상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나 이미 공동연구를 완료한 상태며, 비즈니스 포럼을 운영 중이다. 그밖에 태국, 뉴질랜드와는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즉,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칠레, 일본, 태국, 뉴질랜드 총 4개 국가와 FTA를 추진 중이며, 그 중 칠레와는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사항에 대해 교섭을 벌여 왔다.

그 동안 정부는 FTA를 체결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하여 각계의 호응을 촉구해 왔다. 재계는 정부와 보조를 맞춰 FTA를 희망한다는 목소리를 모아 왔다. 우연의 일치로 지난 3월에는 우리나라 등이 수출하고 있는 철강제품에 대해 미국이 수입제한조치를 내렸다. 그러한 미국의 조치에 대응하여 유럽연합(EU)에서는 철강제품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키로 결정하며 맞섰다. 

이러한 주변 여건에 힘입어 정부와 재계가 주장하는 FTA 체결의 필요성 논리는 더욱 탄탄한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반면, 유일하게 반대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해 온 농업계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농업계는 정부가 칠레와 FTA 체결을 위해 협상을 가질 때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외롭게 반대 입장을 펼쳐 왔다. 이러한 사회세력의 배치도 안에서 노동자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정립해야 할까.

FTA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FTA의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어느 영역에서 진정한 이해관계가 대립하는지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을 거친 후에야 우리는 FTA에 대한 사회 세력들의 현실적 대립관계가 어느 쪽으로 기운 것인지 파악할 수 있고, 노동자로서의 입장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확산되는 FTA

FTA란 협정을 체결한 국가간에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거나 부분적으로 완화하여 서로에게 자유로운 무역을 보장해주는 양국간 또는 지역간 특혜무역협정을 가리킨다. FTA를 국가간 경제통합의 형태, 또는 발전단계로 보는 입장에 따르면, 국가간 경제통합의 형태는 자유무역협정의 단계, 관세동맹의 단계, 공동시장의 단계, 경제통합의 단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FTA는 이들 중 가장 통합 정도가 낮은 단계의 경제통합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FTA의 요체는 협정을 체결한 국가 사이에 상품 및 서비스의 교역에서 관세와 기타 무역장벽들을 제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무역협정은 2001년 11월 현재 WTO에 통보된 것이 240개, 그 중 발효 중인 것이 172개로 알려져 있다(통상교섭본부, 2002). 이 중 1995년 WTO 출범 이후에 통보된 지역협정은 107개로 최근 지역협정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일반적으로 개별 국가들이 모여 FTA 등을 체결하고 지역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이유는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고, 대규모 시장을 형성하며, 역내 보호주의적 무역규제를 회피하고, 여타 지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일반적인 목적에서 더 나아가 WTO와 같은 다자간 협정체제로 만족할 수 없는 자국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즉, FTA는 소수 회원국간의 배타적 특혜무역협정으로서 서로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상호간에 주고받을 수 있고, 효과도 다자간 협정체제에 비해 빠르고 실질적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자간 협정체제를 선도하고 있는 국제무역기구(WTO)에서조차 FTA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FTA 등 지역주의는 회원국들에게 국제 규칙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다자간 협정의 학습과정으로 활용될 수 있고 다자간 협상과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FTA가 세계화의 또 다른 창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FTA는 이제까지 다자간 협정체제에 머물고 있는 국제교역질서 속에 비집고 들어가 소수 회원국간 배타적 교역조건을 마련하고 역외국에 대비하여 상대적으로 특수 이익을 누림으로써 특유의 도미노 효과를 초래하며 다시 한번 세계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FTA 동향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국제투자와 다국적 기업의 활동을 용이하게 하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부가 FTA를 추진하는 배경

우리 정부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이유에서 FTA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첫째, 정부의 개혁과 개방정책을 지속적 추진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르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개혁과 개방정책을 견지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 정책 수단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둘째, 지역주의 확산에 적극 대응할 필요성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WTO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무역체제의 우월성을 지지하고 있으나, 지역주의가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임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양자간 또는 지역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이 실익이 크다는 입장이다.셋째, 우리 경제구조의 개선과 국민후생의 증대를 위해서다. 이에 따르면, 우리 기업은 첨단기술보다는 중간급 제조기술의 비교우위에 근거한 생산체제를 유지하여 왔으나, 최근 선진국과 개도국으로부터 공히 우리의 수출시장이 위협받고 있으며, 외국 선진기업의 첨단기술과 우리나라 기업의 생산기술, 마케팅 능력의 결합을 통하여 생산구조의 고도화와 수출능력 배양이 절실한 바,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선진 기업들과의 제휴를 증대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넷째, 외국인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 거점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르면, 주요국과의 FTA 체결을 통해 국내시장이 역내 시장으로 확대됨에 따라 역내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생산 거점기지로 활용하려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확대될 수 있고, FTA 체결을 통해 상대국의 투자시장이 확대되고 투자보장이 강화됨으로써 우리기업의 안정적인 투자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기업들은 FTA체결 상대국을 거점지역으로 삼아 주변국가들의 시장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며, 해당국이 다수국과 FTA를 체결한 경우 무관세 특혜를 받는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다섯째,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다. 이에 따르면, 냉전의 종식이후, 자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블록을 형성하여 공동의 이해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경제적 블록을 형성하여 우리나라와 공동의 이해관계를 추구할 세력형성이 긴요한데, 특히 정치·경제적 위기시 자국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들로부터 지원과 협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다

우리나라 정부가 FTA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적극적으로 경제활성화의 기회를 모색하는 내용으로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FTA 추진노력이 어찌하여 국민들로부터, 노동자들로부터, 농민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일부 언론지면을 통해 형성되고 있는 FTA에 대한 여론은 농업계와 비농업계의 대립만 부각시킬 뿐이다. FTA에 관한 연구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도 현재 세계적으로 100여개가 넘는 FTA가 WTO에 통보되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칠레 FTA가 농업 분야에서의 입장 차이로 답보상태에 있다고 전할뿐이다. 최근에는 대한상의, 무역협회 등에서 농업분야가 국익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언론에 유포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칠레 FTA 협상이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비전과 의지에 대한 대외신뢰도에 손상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FTA 체결을 둘러싼 대립관계는 마치 농업계와 비농업계의 대립이 본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FTA를 둘러 싼 대립관계의 본질은 해당 국가의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안전장치를 확보하였는가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세계화의 진행에서 잠재적인 위험은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노동자의 사회적 보호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데 비해 자본에 대한 세금부과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에 있음이 누차 지적되고 있다. FTA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여기에는 투자협정이 따르게 되며, 상대국에 따라 자본이 이동하게 된다. 단순히 국민후생이 증가하고 수출부문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에 젖어 들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본의 이동은 실험대상이 될 수 있지만 노동자·농민의 안전장치 없는 자유무역협정은 실험대상이 될 수 없다. 농업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노동계에서는 아직 피부로 느낄 만큼 충격이 크지 않은 점에서 농업계와 노동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농업계에서는 칠레에서 포도, 사과 등의 과일이 낮은 관세에 대량으로 수입되면 국내 농산물 시장에 큰 충격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안전장치를 정부 쪽에 요구하고 있다. 과일은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작목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포도가 시장에 대량으로 출하되어 가격이 낮아지면 다른 과일의 가격도 영향을 받아 낮아지고, 판매량도 줄어들게 된다. 이는 농가소득에 크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파산하는 농가도 속출케 하고 농촌경제도 연쇄적으로 침체위기를 겪게 하는 악순환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것도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외면되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자유무역협정과 투자협정이 미치는 파급효과는 산업부문의 성격에 따라 추정된다. 미국과 멕시코의 자유무역협정이 미치게 될 파급효과를 경계한 한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멕시코에서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자본이동이 일어나게 될 것인 만큼 이에 대비한 노동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FTA의 문제는 세계화의 문제, 즉 사회적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비용을 분담하지 않고 자본의 이해만 추구하려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정부 독주를 막아야 

지금 발전노조 파업을 두고, 정부는 '민영화는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우기고 있다. 마찬가지로 FTA 관련 토론장에 나온 정부측 인사는 "FTA를 해야 한다, 또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논의의 대상일 뿐이다"고 말한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찬밥 신세이기는 노동자나 농민이나 그 처지가 마찬가지다. 국민적 합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민영화에 대해 노동계가 반대하면서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하듯이, 농업계 역시 FTA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희생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듯이, 농업경제와 농민보호를 위한 안전망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지금부터라도 본격화되어야 한다.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서도 노동자와 농민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을 행정부가 혼자서 결정하고 있다. 이러한 행정부의 독주에 국회나 시민사회단체들은 아무런 견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FTA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국회가 나서야 하고,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농업문제는 국민의 먹거리 문제이고, 그런 점에서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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