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없이 이뤄지는 대학교육, 괜찮으시겠습니까?

부 제목: 
대학강사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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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의 대학에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되는 비정규교수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시간강사라고 불린다. 나머지 비정규교수 역시 그 명칭이 무엇이건 변형된 시간강사에 불과하다. 정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총장 선출권도 없으며 법적으로 교원도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강사제도는 정통성을 보유하지 못한 군부정권이 지식인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마음껏 착취하기 위해 1962년에 고안한 것이다. 군사정권은 급기야 1977년에는 시간강사의 교원법적 지위를 완전히 상실시켰고, 이후 30년간 정권과 자본은 희대의 야만적 착취제도를 대학 안에 고착시키고 확대해 왔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1988년에 2만 명 정도에 불과하던 시간강사의 수는 2006년에 8만 5천 명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에 교원의 신분을 가진 전임교원은 2만 8천 명에서 6만 6천 명으로 증가했다. 해가 갈수록 비정규직노동자에 해당하는 시간강사의 수가 늘어난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 시간강사들이 처한 구조적 위치를 폭로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교원법적 지위 회복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시간급에 국한되는 노예제도를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시간강사를 대학강사로 바꾸어 사용한다.


[ 지난 2004년 국가인권회 앞에서의 교원지위확보결의대회 모습.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

“‘떡값’ 4봉투 갖고 일 년을 살라고?”

대학강사는 법적으로 노동자다. 2007년 3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기 전에도 대학강사는 노동자였는데, 요즘의 비정규악법의 용어로 본다면 기간제·단시간노동자라 할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2배쯤 날 경우 각종 언론은 심각한 차별이라 문제제기를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 차별을 겪고 있는 대학 안의 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외면한다. 

가끔씩 뉴스 때우기 식으로 보도되는 시간강사와 전임교원과의 물적 급부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대학강의는 대부분 6년 이상 준비하여 일정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만 맡길 수 있다. 전임강사와 대학강사는 그 자격 요건에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전임교원 중 가장 낮은 직급에 속하는 전임강사와 대학강사의 인건비를 비교해 보면 그 격차가 최소 4배에서 최대 10배 가까이 됨을 알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대학강사가 강의료로 받는 임금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보통 1주일에 10시간 정도 강의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1천만 원 수준이 된다. 전국 국공립대 중 가장 많은 강의료를 받는 경북대의 시간강사도 교원법정 강의시수 9시간을 지킬 경우 3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서면으로 작성된 근로계약서? 없다. 해고 사유 통보? 그런 것 받고 잘린 사람은 1%도 안 될 것이다. 퇴직금? 받으려면 소송을 하고 몇 년간 1인 시위해도 될까 말까다. 직장국민연금과 직장건강보험? 6시간 강의하는 전임강사에게는 적용해도 12시간 강의하는 대학강사에게는 적용을 안 해 준다. 전국 150여 개 대학을 조사해서 눈 씻고 찾아봐도 적용 대학이 없었다. 오히려 산재보험료조차 안 내려고 50여 개 대학이 소송을 낸 적도 있다. 고용보험 적용 대학도 그 수가 많지 않다. 가족수당? 자녀학자금 보조? 명절휴가비? 교통비? 급식보조비? 모두 다른 나라 이야기다. 영남대의 경우 2004년 전임교원의 명절휴가비가 10억 원이었는데 같은 해 대학강사의 인건비 총액은 40억 원에 불과했다. 소위 전임교원의 ‘떡값’ 4개로 대학강사들이 1년을 연명한 것이다. 오죽하면 2004년에 국가인권위가 즉각적인 차별시정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권고했겠는가?

‘대책’은 세워졌으나… 대학강사들의 노동권 향한 험난한 길

2004년 전남대학교에서 대학강사들이 파업을 했을 때 민주노총 간부가 와서 두 가지 크게 놀란 점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첫 번째는 대학강사들이 겪는 처참한 현실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강력히 단결해 싸우지 않는 대학강사들의 무력함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다. 노비근성 또는 노예의식이 오늘날의 대학강사문제 해결의 중요 걸림돌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 원인은 국가와 자본이 결탁해 저지르는 ‘제도적 사기’다.

인간은 항상 스스로 해결 가능한 문제를 제기하는 바, 대학강사 중에서도 투쟁하는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기의 비판을 높이 치켜들었다. 1987년부터 각 대학에서 협의회를 발족하여 전국대학강사협의회를 1988년에 결성했다. 1990년에는 전국대학강사노조(전강노)를 창립했다. 1994년에 합법성을 쟁취한 전강노는 1995년에 민주노총에 가입했고 산별단일노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학강사를 10여 가지로 분화시켜 단결을 저해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책략에 맞서, 2002년에 그 명칭을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비정규교수노조)으로 바꾼 것뿐이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전강노와 비정규교수노조는 그 조직 형편을 감안할 때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해 왔다. 그 결과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통령에게 「대학 시간강사 문제 해소대책」을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대책은 지금까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도 12대 국정과제의 세부 사항에 「비정규직대학교수대책」을 명시했지만 역시 지키지 않고 있다. 또한 2003년에는 서울지방법원이, 2004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학강사의 차별적 지위를 개선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기도 했으나, 아직 그 강제성이 미약하다. 

좀 더 세월이 흐른 뒤 2004년과 2006년에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대학강사를 교원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006년 열린우리당(현 통합신당) 이상민 의원 역시 대학강사와 일부 전임교원(전임강사)을 합쳐 ‘연구교수’로 하여 대학강사를 교원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2007년 스승의 날에는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 역시 대학강사를 교원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도 공동 발의)했다. 주요 3당이 비슷한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더욱이 비정규악법이 시행되면서 노동부는 박사학위를 가진 대학강사가 2년을 초과해 연속 근무해도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몰상식한 일을 저질렀다. 이에 비정규교수노조는 1년 이상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 2007년 9월7일부터는 아예 박사학위를 불태워버리고 국회 앞에서 90여 일이 넘도록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법안 통과를 위해 가장 큰 권한을 쥔 한나라당 및 통합신당의 간사와 국회 교육위원장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농성이나 1인 시위를 병행하고 있다. 그 결과 10월12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 교육위에서 논의를 하도록 만들었다. 얼마 전부터는 앞에서 언급한 모든 활동에 대해 대학강사의 교원화를 두려워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앞에서도 1인 시위를 시작했다. 


[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대학강사들의 법적 교원지위 확보를 요구하며 9월7일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농성에 들어가기 전 기자회견 모습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

교원법적 지위 회복, 국가의 ‘제도적 사기’ 막는 길

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 설명을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왜 국회 앞에서 농성하는가, 왜 대학강사에게 일반 노동자 지위가 아니라 교원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교원의 지위를 법률로 정하게 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한번 생각해 보자. 교원은 공식적인 교육자를 의미한다. 교육자 역할을 수행해도 그가 교원이 아니라면 엄밀히 말해 그는 ‘무자격자’이다. 

능력 유무를 떠나 의사 면허증 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판사가 아닌 사람이 판결을 내리는 것이 타당한가? 우리는 왜 신정아 사건에 분노하는가, 그가 권력층의 비호를 발판으로 자격을 속이고 국민을 우롱했기 때문 아닌가? 하다못해 자기 직업과 큰 관련이 없는 연예인이 학벌이나 학력을 속여도 냄비 끓듯이 비난하는 사람들이 왜 법적으로 교원 신분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대학에서 교육해도 가만히 있는가? 지금까지 대학을 졸업한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 또한 무자격자에게 배우고 학점을 받아 나간 무자격자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대학강사의 교원화는 국가와 자본이 저지르는 제도적 사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대학강사는 1949년에 제정된 교육법상 엄연히 교원이었고 지금도 교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임교원들과 대학강사들의 강의평가 결과는 별 차이가 없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06년 조사 결과 서울대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집단은 대학강사였다. 대학의 정규 교과과정을 3분의 1 이상 담당하며(상당수 사립대는 거의 절반 담당) 학생들에게 학점을 부여하는 권한을 가진 교육자인 대학강사는, 대학생들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모델을 수행하기도 한다. 또한 진리 탐구 활동을 통해 학문의 질과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교원지위를 회복시키는 것은 곧 대학을 바로 세우고 국민의 교육권을 수호하며 교육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첩경이다.

대학강사가 다시 교원이 된다는 것은 제대로 된 신분 보장과 함께 최소한의 물적 급부를 제공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 사회는 교원을 우대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두고 있다. 중등교육 현장의 기간제 교사들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제한된 권한만을 부여받지만 최소한 교원의 신분은 보장해 주고 있다. 그런데도 왜 유독 대학강사만 교원이 아니어야 하는가? 

누가 ‘제대로 된 대학’으로 가는 길을 두려워하는가

국공립대의 교원은 교육공무원이고 사립대 또한 국공립대에 준하여 신분과 물적 급부를 보장해 주고 있으므로, 대학강사가 법적으로 교원이냐 아니냐는 그들이 향후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과 권한 및 대우를 결정함에 있어 근본적인 기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와 대교협 및 그들의 눈치를 보는 반대자들은 기를 쓰고 대학강사의 교원화를 가로막고 있다. 그동안 착취해서 모아 둔 돈 보따리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의 돈이 더 들길래?

대학강사는 약 70% 정도가 결혼했고 자녀가 있다. 약 95%가 30대 이상인데 4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우리나라의 평균 가구원 수는 약 3명이다. 비정규교수노조는 이에 착안해 민주노총의 3인 가구 표준생계비 또는 국공립대 전임강사 평균 연봉의 3분의 2 수준을 대학강사의 연봉 수준(약 3,600만원)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돈을 국가가 전액 부담한다면 매년 1조 원 이상의 재원이 추가로 요구된다. 

하지만 이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면 이주호 의원이 제안한 국공립대 전임강사 평균 연봉의 2분의 1 수준(약 2,250만원)까지도 단기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때 국고 전액 지원이 힘들면 사립대와 국가가 나누어 부담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매년 약 4,600억 원이 더 필요하다. 이 정도 물적 급부 제공이 정당하고 타당하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현 상태의 유지를 원하는지의 두 가지 입장이 현재의 대립축을 이루고 있다. 독자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대졸 초임도 2천만 원을 넘는 시대에 30~40대 대학강사가 전임강사처럼 일할 경우 연봉 2,250만원을 달라는 것이 그토록 과도한 주장인가?

대학강사가 교원이 되면 할 일이 더 있다. 학생 수업권 확대와 교육환경 개선, 그리고 연구의 질 향상과 우리 학문 고양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원 충원률은 OECD 꼴찌 수준이다. 대학에 투여되는 고등교육예산도 그 규모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학 내 값싼 단시간 근로자의 양산은 대학사회를 차별의 온상으로 만들었고 그 경쟁력을 끝없이 추락시켰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대학들은 강좌를 축소하고 콩나물시루 교실을 부끄럼 없이 운영하며 일부 해외 유학파들끼리 동종교배하여 우리 학문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대학강사들이 교원이 되고 그들에게 국가가 물적 급부를 정당하게 지급한다면 제대로 된 대학을 만들 수 있다. 교원 1인당 학생 수를 대폭 줄여 밀도 있게 교육할 수 있고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충분히 개설할 수 있다.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연계하여 학문의 다양성을 지켜내고 양질의 우리 학문을 개척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대학을 가질 기회가 있는 것이다.
미래를 개척하는 싸움에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대학강사의 교원법적 지위 회복에 동의하는 독자들에게 몇 가지 부탁을 드린다. 첫째, 이 글을 나누어 읽고 토론하자. 둘째, 행동까지 가능하다면 자기가 속한 단체를 조직해 비정규교수노조에 연락하여 연대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셋째, 국회의원들을 선별해 찬성자는 지원하고 반대자에게는 다양한 방식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하자. 넷째, 시민들을 대상으로 교육권 수호와 인권 보호의 대열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염치 회복 운동’을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은 이번 17대 국회 회기 중에 끝날 수도 있고 장기화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밝게 다가온다고 했다. 다들 자신들이 수행하고 있는 투쟁이 힘들어도 자신이나 자녀의 미래를 개척하는 이 싸움의 대열에 합류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에밀 졸라의 말처럼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함께 쟁취할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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