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탈북자' 문제와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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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7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에 체류 중이던 이른바 ‘탈북자’ 468명이 정부당국의 특별전세기 편으로 국내로 들어왔다. 이후 한국사회에서 ‘탈북자 문제’가 주요 이슈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탈북자’ 대거입국사태로 말미암아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이후 진행되었던 남북장관급회담과 8·15민족공동행사 등 정부당국과 민간차원의 중심 교류가 모두 무산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까? 북한은 왜 남북교류를 전면 중단하면서까지 ‘탈북자 문제’를 중히 여기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탈북자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탈북자’ 468명, 누가 왜 한국으로 보냈을까

이번 대거입국사태가 문제되는 이유는 그 주체와 규모 그리고 시점에서 종래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문들이 있다.

먼저, 남측정부가 나섰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대북 인권단체를 표방하는 국내외 종교단체가 ‘기획탈북’의 주체가 되었는데 이번 경우 남측당국이 직접 나서서 해당국가(베트남)와 수 차례 외교적 협상을 벌인 것이다. 정부당국이 지금까지의 ‘조용한 외교’라는 관례를 깨고 나설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유라도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그 숫자가 대규모인 점이다. 종전에는 몇명에서 기껏해야 십수명에 불과한 소규모적인 것이었다. 한 자료의 탈북자 입국현황을 보면 2000년 312명, 2001년 583명, 2002명 1,139명, 2003년 1,281명으로 완만히 상승하다가 2004년에는 7월 현재 1,357명으로 급증해 이미 작년 수준을 넘고 있다. 따라서 누가 어떻게 한곳(베트남)에 대규모로 모았냐는 의문이 생길지 않을 수 없다. 그 ‘기획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그 시기가 미국 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된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작위적이다. 특히 남북관계가 김일성 주석 10주기 민간추모단의 조문방북불허로 인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미묘한 시기였음에도, 남측당국이 무슨 배짱으로 탈북자 국내입국을 추진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북한인권법안’은 이번 사태가 발생한 7월27일 미 하원을 통과했으며, △북한주민 인권 촉진, △북한주민 지원, △북한난민 보호 등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법안은 명목상으로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인권보호 등을 내걸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의 생존권을 향상시킬 경제제재 해제나 식량지원보다는 북한 주민의 이탈을 조장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

높아지기만 하는 북한의 대남 비난 수위

대거입국 사태 이후 당연히 북한의 대남 비난과 공세가 이어졌다. 북한은 자신의 ‘중심’과 ‘체제’를 건드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남측당국의 조문방북불허가 북한의 중심을 건드린 것이라면 ‘탈북자 대거입국사태’는 북한의 체제를 건드린 것이 된다.

북한은 ‘탈북자 대거입국사태’가 일어난 직후부터 대남 비난을 하면서 그 수위를 점차 높여 왔다. 지난 7월29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시작으로 조선인권연구협회, 조선외무성 등 대외공식창구-인권단체-정부공식기구 등의 순서로 ‘탈북자’ 문제를 다루다가, 8·15 이후에는 통일전선체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에 이어 남측 민간교류 창구인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까지 나섰다.

특히 북한은 8월3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최근 남한당국자들은 미국의 사촉과 지휘에 따라 대부분이 여성들과 어린이들로 구성된 수백명에 달하는 우리 주민들을 단계적으로 우리 주변을 통하여 베트남에 유인하여 놓고 남한에 집단적으로 끌어가는 이른바 ‘대량탈북 및 이송’ 사건을 조작하였다”고 비난했다. 여기에서 북한은 “이번 모략사건에 베트남이 공모해 나섰다”고 ‘베트남’을 적시함으로서, “대량탈북 및 이송” 사건을 ‘미국 사주 + 남측당국과 친미우익보수세력 실행 +베트남 공모’라고 규정했다.

또한 북한은 8월18일 통일전선 조직인 조국전선의 명의로 이례적으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남한에 끌려간 동포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다. 북한은 이 ‘편지’에서 “우리는 당신(탈북자)들이 절대로 조국과 민족 앞에 죄를 지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구태여 당신들에게 어떠한 죄도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들을 끝까지 믿고 언제나 따뜻한 동포애로 대할 것이다”면서 “돌아올 경황이 못되는 사람이라면 공화국(북한)의 품을 굳게 믿고 통일의 그날 고향의 부모형제 처자들과 떳떳이 만날 수 있도록 애국으로 사는 길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고 호소했다.

계속해서 북한 민화협은 8월20일 ‘이른바 ‘탈북자문제’의 진상고발장’(진상고발장)을 발표했다. 민화협은 특히 ‘진상고발장’에서 남측 언론매체들의 ‘탈북자’ 관련 기사들을 예로 들면서 △‘탈북자’란 그들의 자발적인 ‘탈북 망명’이 아닌 남측당국과 친미우익보수세력의 유인납치행위에 걸려들어 끌려간 사람들이며, △그들 ‘탈북자’는 남한 생활에서 인권을 짓밟히면서 버림받은 삶을 살고 있고, △결국 ‘탈북자문제’는 미국의 대북 고립압살 책동의 산물임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 인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탈북자’란 주로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 동북 3성 지역에 있는 ‘북한이탈주민’을 일컫는다. ‘탈북자’의 수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적게는 1만에서 많게는 30만으로 관측되며, 탈북의 주 원인은 식량문제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탈북자의 95% 이상은 식량부족으로 탈북을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식량을 구하면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답변하여 식량조달이 중요한 목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탈북자’가 ‘문제’로 되는 것은 누군가가 ‘탈북자’를 남측으로 데려오기 때문이다. 즉 ‘탈북자 문제’를 ‘인권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은 ‘정치적 문제’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탈북자 문제’가 그 본질에 있어서 인권 문제인가 아니면 정치적 문제인가를 밝히는 것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다시 말해 이번에 한국에 입국한 468명의 ‘탈북자’ 이송이 인권 차원의 행동이냐 아니면 정치적 차원의 행동이냐는 것이다. 이를 따지기에 앞서 ‘인권 문제’에 대해 잠깐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보통 시공을 초월해 보편적인 가치가 있으며, 천부의 권리인 ‘인권’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똑같이 적용되는 가치란 없는 법이다. 인권도 그러하다. 특히 미국과 전시상태에 놓여있는 북한에서의 인권과 미국에서의 그것이 같을 수 없다. 북한의 경우 ‘인권’보다는 ‘주권’을 중시여길 수밖에 없다. 보다 정확하게 북한의 경우 나라의 주권은 개인의 인권을 포함한 것이다. 그러기에 북한에게는 “인권보다 주권이 앞서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면 개인의 인권은 자동적으로 박탈당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국식 인권의 잣대를 체제와 상황이 다른 북한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물론 어느 나라든 완전한 체제나 공동체가 아닌 이상 인권문제를 갖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북한사회의 특성과 북한 인권문제의 특수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북한의 인권문제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식량난 이전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인권문제이다. 이는 북한 사회에서 비롯된 모순이므로 북한당국과 북한주민들이 해결하면 되는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식량난으로 발생한 인권문제가 있다. ‘탈북자 문제’가 이에 속한다. 식량난에서 기인한 이 문제들은 식량공급과 지원이 그 가장 확실한 해결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관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북한식량난과 북한인권』, (사)좋은벗들, 2004). 첫째, 북한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떠나 실사구시적 접근으로 북한 인권의 실체와 진실을 파악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북한 정부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의 입장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접근한다면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데 필요한 사안들이 정치적 쟁점에 의해 밀려날 우려가 있다. 셋째, 북한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부가 일정 부분 해야 할 역할이 있기에 인권개선을 명분으로 북한 정권을 압박하여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접근법에 의하면 북한 식량난을 계기로 발생한 북한의 인권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필요한 것은 ‘대량 탈북자입국’이 아닌 대량 식량지원인 것이다. 또한 ‘탈북자’의 국적은 북한이지 남한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로 일본에 피신해있는 미국인을 한국에 데려올 수 없듯이, 중국이나 제3국에 있는 ‘탈북자’를 남쪽으로 데려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부당한 방법으로 꼬이거나 강제 납치라야 가능하다. 즉, 범법행위인 셈이다.

게다가 한국에 온 ‘탈북자’의 삶도 그리 평탄하지 못하다. 인권의 이름으로 탈북자를 남쪽으로 데려와서는 다른 형태의 ‘인권문제’에 부닥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북한에서는 이번 ‘탈북자 대거입국’사태를 두고 ‘유인납치’, ‘기획탈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탈북자 문제’가 변질돼 정치적 문제로 되는 것이다.

‘탈북자 문제’가 정치 문제가 되는 이유

이처럼 ‘탈북자 문제’가 인권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임에도, 일부 국내외 인권표방 단체와 미국 등이 인권문제라 하면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어 그 폐해가 자못 심각하다. 그 정치적 행위는 북한의 인권신장 또는 북한 민주화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끝은 ‘북한 붕괴론’이나 ‘체제 교체론’에 닿아있다.

이처럼 탈북자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대북 인권신장을 표방하는 국내외 단체들이 ‘탈북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법안’의 전신인 ‘북한자유법안’ 입안에 기여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NED)은 그 설립구상 자체가 민간단체의 틀을 빌어 CIA가 수십년 동안 은밀하게 해왔던 행동들을 공공연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NED의 자금이 미 연방정부에서 직접 나옴에도 불구하고 미 의회는 NED를 민간, 비영리 법인으로 승인했다(유정애, ‘미국의 2003 북한자유법안: 과연 한반도 안보와 북 이권을 위한 것인가?’). 말하자면 NED는 민간의 탈을 쓴 ‘정보정치’ 단체인 셈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와 북한인권시민연합 등도, 지난 2002년 일본 마이니치(每日) 신문이 폭로했고 또 이들 단체들도 자인했듯이 NED의 자금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둘째, ‘탈북자’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는 이유는 그것이 ‘기획’되기 때문이다. 즉 어떤 목적을 가진 ‘기획탈북’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3월 중국 광저우에서 탈북자 기획망명을 실행에 옮기려다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16개월 간 수감생활 끝에 7월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난 오영필(34)씨는 ‘기획탈북’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고발했다. 오씨는 한 인터뷰에서 “탈북자 기획망명은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한 사업이 아니다. 그것을 통해 정치적, 상업적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오히려 탈북자들을 곤경으로 내몰고 있다”면서 탈북자 인권보호를 목적으로 내걸고 진행되는 기획망명이 실은 종교단체, 극우세력, 상업주의 언론의 정치적, 상업적 이해관계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어 오씨는 "한국 행을 희망하는 탈북자는 소수”라면서 “정치적 탈북이 아닌 생계형 탈북자가 대부분”이라고 증언했다.

셋째, 미국에 의해 대북 압살정책의 하나로 되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이 이른바 ‘북핵문제’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에서, 미국은 핵문제가 해결되면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 등을 제기할 것이고 이러한 군사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에 인권문제, 마약문제, 위폐문제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트집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7월말 ‘북한인권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북한은 이와 관련 “미국이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대북 고립·압살정책의 ‘2대 기둥’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북한의 불편한 심기를 엿볼 수 있다.

부담 더 커지기 전에 남측이 ‘결자해지’해야

6·15공동선언 발표이후 지금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경색된 것에는 남측당국의 ‘탈북자 대거입국사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는 6·15공동선언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그렇다면 결자해지(結者解之) 원칙과 6·15공동선언 이행의지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남측당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런데 남측정부 당국은 사태발생 이후 보름이 넘게 무대책으로 일관하다가 8·15때 해결의지를 보였으나 그나마 의지박약과 수위조절 실패로 인해 현재는 ‘백약이 무효’가 된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남북관계와 관련 의례적인 발언수준에 머무름으로써 남북대화 재개에 대한 의지박약을 드러냈고,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곧이어 “북의 오해로 당국간 대화가 중단된 것은 유감”이라면서 대북 화해제스처를 취했으나 수위조절에 실패함으로써 북측이 이를 진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분 있는’ 북한의 대남 공세는 그 수위가 높아질 것이고 그만큼 남측의 부담이 커질 것이 뻔하다. 그러기에 남측에서 북측과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북측의 대남 공세가 더 거세지기 전에 그에 걸맞은 사과표명과 대화의지를 밝히는 게 옳다는 지적이 많다. 늦으면 늦을수록 남측의 대북 사과수위와 대화의지 표명도 그만큼 높아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군사문제에서의 한미동맹도 탈피해야 할 판에 ‘탈북자 문제'와 ‘북한 인권문제’에 있어서도 한미공조를 이룬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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