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노총, 미완의 통합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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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제조연대 노조통합

글쓴이 :

moosoidoli@hanmail.net

노조 통합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추세이다.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의 범람은 산업 및 고용구조의 변화를 동반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조합의 조합원 감소로 귀결되어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로 인해, "능동적으로 적응하여 돌파할 것인가, 현실에 안주하여 몰락할 것인가"라는 기로에 선 노동조합운동은 노조간 통합이라는 조직재편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노조통합은 유럽, 호주,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민주노총 가맹 조직들을 중심으로 본격화되었다. 

한국노총 소속 조직들의 통합은 2003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첫 포문을 연 것이 금속·화학 두 개의 연맹으로 대표되는 '제조연대'이다. 이 조직들은 최근까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통합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조직통합 목표시점(2004년 3월)을 넘어선 현재까지, 금속·화학 연맹은 대내외적으로 공식적인 통합추진에 대한 재점검과 향후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과연 제조연대의 통합 노력은 중도 하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통합노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일까?


[ 2004년 1월 금속.화학 연맹 통합을 위한 금속노련 통합추진위원 세미나에서 이병균 위원장이 토론을 주재하고 있다.  - 출처:한국노총 금속노련 ]

변화된 노동환경, "돌파할 것인가, 몰락할 것인가?"

산업생산이 퇴조하고 서비스, 뉴미디어 등의 도입으로 제조업 내에도 전문직, 서비스 및 관리직이 증대했다. 그리고 핵심기술을 제외한 단순 생산라인에서마저 아웃소싱이 이뤄지면서 노동계층이 분화되고 있다. 제조업의 전통적인 산업들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매섭다. 섬유산업은 신소재를 제외하고는 이미 정리단계를 밟고 있고, 철강 생산은 수년 내 급감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조선 역시 멀지 않은 장래에 정체의 길로 접어들 것이 예견되고 있으며, 화학산업 경우 더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구조 변화는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의 텃밭임을 자부해오던 제조업의 축소와 노동력 구조의 변화를 몰고 왔고 노동조합에 불리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경제·노동정책이 빚어낸 반노조 입법, 반노동 정책까지 맹위를 떨치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본진영은 일찍이 90년대 초부터 '신경영전략'을 도입하고 외환위기 이후 노동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부당·불법노동행위, 노조탄압, 부당해고, 손배·가압류 등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노동조합은 조직화 노력을 위한 체계적 프로그램, 조직, 인원, 예산 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일상화된 구조조정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있다. 25만명의 조합원과 5개 산별로 구성되어 있는 제조연대를 보더라도, 상대적으로 활동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금속·화학연맹의 경우에도 한정된 인원과 자원을 서로 중복적인 업무에 소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속 화학 두 조직은 역사, 운영체제, 지역조직, 가맹노조수, 조합원수, 사업방식 등 주체적 조건들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두 연맹 모두 당면투쟁과 조직적 전망을 실현하는데서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다. 500개 내외의 방대한 가맹노조의 조직지도와 관리가 '문제사업장에 대한 선별적 해결'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현장에 대한 근거리 지원체계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금속·화학 두 조직은 통합을 통해 자원의 적합한 배합배치, 효율적인 운영, 현장과 연맹의 유기적 결합력을 확보하여 핵심적인 활동영역에서 위상을 강화하고 관철력을 배가할 수 있는 새롭고 큰 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그랜드 플랜에 동의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왔다. 

제조연대 통합추진 과정과 쟁점

1단계 : 제조연대 발족과 활동기(2000.818∼)
2단계 : 금속-화학연맹의 추진결의기(2003.3월∼)
3단계 : 추진준비기(2003.6월∼)

2000년 8월 실시된 금속·화학 두 조직의 공동연대선언은 한국노총의 다른 제조부문 연맹에 영향을 주어 2001년 1월 제조연대를 발족하게 된다. 총 5개 연맹의 상설 연대기구인 제조연대는 정책, 교육 등의 일상활동을 전개하여 매년 공동임단투 지침 발간, 총 26차례 교육, 노동시간단축투쟁1) 전개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또한 인천, 충남, 부산 등지에서 지역제조연대가 구성되고, 본부 사무실을 통합 운영하는 지역이 생겨났으며, 지역단위들이 임단투 기간 중에 공동투쟁을 전개한다. 이렇듯이 제조연대의 3년간 공동사업, 공동투쟁은 자연스럽게 제조노동자라는 동질성을 확인하고 연대의식을 발전시켜내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제조대통합의 토대를 제공하였다. 

2003년 2월 한국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노총 개혁과제로서 2006년까지 5개 대산별로 통합하고 산별노조로 전환한다는 조직재편과제가 채택되어 이행결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화학노련이 그 해 2월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제조대산별 통합을 결의하였고, 금속노련이 같은 해 5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화학노련과의 통합을 결의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두 조직간의 통합추진실무위원회가 구성되었고, 6월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통합추진실무위원회는 통합추진 경로와 계획 등을 마련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노조대표자 세미나(2003년 10월), 지역순회 간담회(2003년 12월) 등을 개최하였다. 

이후 2004년 1월, 두 조직은 각기 통합추진위원회에서 통합연맹의 청사진2)에 대해 연맹별 안을 마련한다. 그런데 두 조직의 통추위안은 대의원배정, 임원, 지역본부 등에 있어 확연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조율하기 위하여 양 연맹 사무처장간 협의를 통해 의견접근사항을 마련하고, 화학 중집위(2월4일)와 금속 중앙위(2월10일)에서 의견을 모아 통합추진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각 조직이 노력키로 한다. 

의견접근사항은 각 연맹 통추위 안중에서 차이가 있는 세 가지 중 '임원', '지역본부'에 대해서는 금속 통추위 입장을 기본으로 정하고, 나머지 한가지인 '대의원배정'에 대해서는 임원선출대회를 제외한 대의원배정은 현행 금속노련 방식을, 임원선출 시 배정은 조합원 200명당 1명, 200명 미만 노조는 1명 배정하는 절충안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라 화학노련은 2월4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의견접근사항을 추인받아 통합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반면 2월10일 금속노련 중앙위원회에서는 의견접근사항이 보고사항으로 처리되고 통추위에서 토의하기로 정하면서 통합추진이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한 채 답보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밥그릇싸움과 조직혁신 사이에서 길 잃다

금속·화학 두 조직의 통합은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동면기에 진입한 것일까! 확실한 것은 목표시점이 지났지만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 조직 가운데 통합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표방한 것은 화학노련이 지난 4월8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금속노련과 입장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 문제를 들어 통합을 장기과제로 전환시킨 것이 유일하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볼 때 두 조직 통합추진의 답보상황은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진척되기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불과 2003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두 조직의 통합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였다. 다른 여러 통합사례들과 비교해 봐도, 제조연대는 3년이 넘는 공동사업을 통해 상대 조직문화를 이해하고 공동체 의식을 배양시켜 목표를 충족시키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처지였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4년에 접어들면서 통합연맹 출범을 목전에 두고 통합의 항해는 궤도를 이탈하고 말았다. 통합은 서로 입장을 존중하고 양보하면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이해관계가 우선될 때 통합은 실험실 표본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서, 2003년 10월에 실시한 통합추진 관련 단위노조 의식조사 결과 중에서 몇 가지 특징적인 것을 살펴보면서 그것의 시사점과 현재의 상황을 검토해 보겠자. 

먼저 두 연맹의 통합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87%의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지만 통합에 대한 단위노조의 관심을 묻는 질문에는 74.6%로 찬성률보다는 약간 저조하게 나타났다. 명분에 대한 압도적 찬성과 실제적인 관심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원인은 △제조연대활동이나 통합연맹 건설이 단위노조의 요구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연맹중앙의 필요와 노력에 따른 것이라는 점, △3년 간의 제조연대의 공동사업과 통합추진활동이 정책, 교육 등에서는 활발히 이루어진 반면에 조직활동분야에서는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고 실제적인 활동도 배치되지 않음으로써 연맹중앙의 의지를 조직적으로 확산시켜내지 못한데 있다. 

다음으로 조직통합에서 가장 우려되는 질문에 대해 '중앙 및 지역간부들의 기득권 문제'를 1순위로 꼽고 있다. 이는 연맹 통합과정에서 기존 간부들의 기득권이 포기되어야 한다는 요구이며, 다른 한편으로 기득권 포기노력이 가시화되지 않을 경우 연맹통합에 대한 관심이 더욱 저조해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미 단위노조에서는 중앙과 지역단위의 상급간부들이 통합의 원칙을 지키고 통합과정에서 기득권 포기를 가시화하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위노조들이 연맹통합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그로 인한 구체적인 실익을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급간부들의 기득권 포기가 통합연맹에 대한 단위노조의 신뢰를 가늠하는 주요한 잣대일 수 있는 것이다. 


[ 2004년 1월 열린 한국노총 화학연맹의 산별통합추진위원회 회의 및 신년인사회   - 출처:한국노총 화학연맹 ]

통합은 포기할 수 없는 혁신전략!

총선이후 녹색사민당 참패 결과에 책임을 지고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을 비롯한 상근임원이 총사퇴했다. 격랑 위에 요동치는 '한국노총호'는 비상대책위원회로 체제가 전환되었다. 이제 한국노총은 6월 중순까지 개혁과제 이행과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해야할 운명에 놓여 있다.

가히 한국노총 50년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제조부문의 뒤를 이어 2003년 하반기부터 통합을 추진해온 공공부문 3개 연맹(공공건설연맹, 공공서비스연맹, 정투연맹)에 가맹된 단위노조들에서는 최근 한국노총에 대한 과감한 개혁요구가 들불처럼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노총 임원 선출을 직선제화하자는 것과 공공통합연맹을 당초 목표시점보다 앞당겨 6월내에 발족시켜 자기혁신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공공부문보다 먼저 통합을 추진해왔고 그동안 노동조합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자임해왔던 제조부문 노조들은 위기의 한국노총을 구출하기 위해 무엇을 도모하고 실천할까? '끝내 통합을 매장하고 밥그릇싸움에 연연할 것인가, 조직혁신과 개편이라는 딱지가 붙은 주머니 속 보물을 꺼내 들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오로지 제조노동자만이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느긋하게 대답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다.

[ 각주 ]
1) 제조연대 입장 개진 및 협상감시활동, 제조공투본 구성 및 각종 대응활동(공동토론회, 기자회견, 집회, 공동안마련 등) 
2) 통합추진실무위원회는 선언 강령 및 규약을 비롯한 제도 통일을 위한 준비와 추진활동, 통합연맹의 상 등 주요 논의과제를 정하고 세부적인 재편사항을 11가지로 분류하여 실무위안을 제시하였다. 
①통합연맹 명칭(제조연맹), ②통합 사무소, ③로고 및 마크, ④지역본부 재편과 운용, ⑤ 재정 및 의무금, ⑥통합대회(2004년 3월), ⑦업종분과 및 특별분과, ⑧임원, ⑨대의원 배정기준, ⑩사무처 직제 ⑪기타 
- 이중 대의원 배정, 임원 등 사항에 대해서는 단일안이 아닌 각 조직의 입장차이를 반영한 복수를 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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