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문제, 노동운동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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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38만 명 정도다. 체류 자격별로 나눠보면, 미등록노동자가 30만, 연수제도를 통해 들어온 연수생이 5만, 연수생을 거쳐 취업비자를 받은 연수취업생이 3만 정도다. 외국인 연수제도는 일본의 '기능실습제'를 모델로 했는데, 두 나라 제도에 차이가 있다면 일본에서는 일정기간 기능연수를 시킨 다음 현장에서 일하도록 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단 3일간에 걸쳐 연수회사를 이탈하여 불법체류하면 절대 안 된다는 협박으로 일관된 교육을 시킨 다음 바로 현장에 투입한다는 점이다. 

법 보호 못 받아 

연수생은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정부는 임금이 높아지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을 우려해 노동자들에게 '연수생'이라는 껍데기를 씌워놓고, 노동자가 아니니 보호할 것도 없다는 논리를 편다. 그렇다 보니, 연수생들은 한국인 노동자에는 비할 것도 없고,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보다도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미등록 노동자가 월평균 240시간 노동에 3,640원의 시간급을 받는데 비해, 연수생은 월평균 272시간 노동하고 시간급 3,030원을 받는다. 조사 대상 연수생 가운데 68.9%가 사업장을 이탈해서 '불법체류'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는데, 주된 이유는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돈을 더 벌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수생들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국에 들어오기 위하여 엄청나게 냈던 송출비용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연수생 도입과 관리에 관한 업무'를 이익단체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에 내줌으로써 결정적인 실책을 범했다. 중기협은 이 사업으로 막대한 이권을 챙기고 있다. 그 이권은 연수생 모집, 송출, 관리, 출국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며, 중기협이 이를 통해 거둬들이는 연간 수입은 4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400억 원 모두 연수생들의 피와 땀을 쥐어짠 돈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00년 조사에 따르면, 연수생들의 공식적인 송출 수수료는 950∼2,180달러지만, 실제 지출된 비용은 평균 3,147달러다. 한화로 계산하면 400만원 정도로 당시 연수생의 월 임금 361,600원을 일년간 고스란히 모아야 되는 돈이다. 사정이 이러니 2년으로 정해진 연수기간 중 절반인 일년동안은 공짜로 일하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연수생을 송출하는 국가들은 배당 받은 쿼터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연수생들이 부당하게 부담하는 엄청난 송출비나 처우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형편이다.

불법체류를 방조하는 정부 

30만에 달하는 미등록노동자는 관광·방문·비즈니스·선원비자 등으로 입국해서 비자연장을 하지 않고, 장기체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밀입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동시장에 필요한 적정 외국인력을 적게는 40만, 많게는 100만까지 본다. 현재 38만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취업 활동을 하고 있으니, 적어도 38만 명은 필요 인원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연수생으로 38만 명을 도입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텐데 정부가 정한 쿼터는 8만 명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인의 고용이 불가피하다면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야 하는데, 현행 산업기술연수생제도는 연수제도 아닌 연수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이 실질적인 연수생이라면 당연히 최소한의 실질적인 연수가 이루어져야 하고, 국내 직업훈련생과 같은 수준의 법적 보호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수 대신 근로를 시키고 있어 연수생은 사실상 근로자다. 정부도 이 점을 인정하여 연수생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 적용과 최저임금의 보장, 산업안전보건법, 산재보험과 의료보험 등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으로 인해 정부는 산업기술연수생의 숫자를 단순기능 외국인력의 수요보다 훨씬 적게 한도(Quota)를 정해 운영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외국 인력에 대한 초과 수요는 미등록 노동자를 양산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외국인의 고용 및 관리효율화 방안'에 관한 정책토론회 : 한국노동경제학회, 한국노동연구원주최 자료집 중에서)

위 자료를 다르게 해석하면, 정부는 '부끄러운 연수제도'로 채울 수 없는 노동력을 미등록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등록 노동자'가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활용하다가 경제가 나빠지는 등 조건이 변화하면 단속과 강제출국 등을 통하여 제한하기 쉬운 최고의 '유연성'을 지닌 노동계층이기 때문이다.

미등록 노동자는 연수생과는 달리 법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체류자격 상 불법체류이기 때문에 법이 정한 노동자의 권리를 누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미등록 노동자가 임금체불이나 산재로 법의 보호를 요구하려면 신분이 노출되고, 신분노출은 곧 강제출국으로 이어진다. 최근에도 친구의 죽음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폭행피해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체불임금을 노동부에 호소했다가, 사기·협박을 고소했다가, 산재치료와 보상을 요구하다가 도움도 받지 못하고 강제출국 당한 일이 일어났다. 결국은 노동자의 권리고 뭐고 쫓겨나지 않으려면 죽은 듯 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등록 노동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정부는 지난 15년 동안 미등록 노동자를 노동력으로 실컷 활용하다가 쫓아내는 방법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미등록 노동자를 합법화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대꾸도 없을뿐더러, '합리적인 외국인력 관련 제도'를 마련하라는 요구에는 이해를 달리하는 정부부처간 싸움으로 대답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실태

이처럼 미등록 노동자는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연수생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그 결과 미등록 노동자든 연수생이든 무척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한국인 비정규노동자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나쁘다고 보면 된다. 연수생은 고용기간이 1년으로(연수취업 2년) 정해져 있으므로 당연히 비정규노동자에 포함될 뿐 아니라, 미등록노동자 또한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여러 여건이 비슷하다. 게다가 국적에 따른 차별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는데, 아래 자료를 보면 외국인 노동자가 비정규노동자보다 임금은 낮되 노동시간은 더 길어, 한국인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노동조건만 열악한 것이 아니라 사회보장·교육·복지·문화혜택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의료 문제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미등록 노동자는 건강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고, 연수생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보험료 부담 때문에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프기라도 하면 의료비 부담 때문에 의료기관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다 질병에 대한 지식 부족, 언어소통의 문제, 병원 이용을 허락하지 않는 고용주의 태도로 인해 치료 시기를 놓쳐 작은 병으로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노동허가제 실시해야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 열쇠는 '연수제도 철폐'와 '노동허가제 도입'에서 찾을 수 있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외노협)는 1995년부터 연수제도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외국인 연수제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 향상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으로 제시하는 게 '노동허가제'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노동자 고용 및 인권보장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안의 내용을 대충 살펴보면, ① 한국에서 취업할 의사가 있는 노동자는 건강진단과 한국어 교육을 거쳐 일반노동허가를 받아 사업장에 취업한다. ② 동일 직종의 내국인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원칙으로 하고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③ 일반노동허가로 5년간 합법 취업한 노동자는 특별노동허가를 받아 업종 등의 제한 없이 취업 가능하다. ④ 노동자는 부당해고, 사업장 휴폐업, 인권침해, 차별대우, 계약만료 등의 경우에 사업장을 이동 할 수 있다. ⑤ 연수생과 미등록 노동자는 노동허가를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외노협이 1996년 '외국인노동자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이고 입법청원했으며, 수정·보완을 거쳐 2000년에 다시 입법청원했다. 2000년부터는 시민사회단체가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외국인노동자 차별철폐와 기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전국 캠페인과 범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나서야 한다

이처럼 질기다면 질긴 투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노동조합의 침묵' 또한 그 가운데 하나다. 그 동안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거의 방관하는 자세를 취해 왔다. 노동계가 다른 현안 때문에 여력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하여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던 탓이 아닌가 싶다. 소수이긴 하지만 일각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밥그릇을 빼앗기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연구결과를 보면, 제조업 등 단순기능분야의 노동력은 절대부족 상태에 있고,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한국인이 기피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 노동부가 고용허가제 실시로 나름대로 대안을 세우겠다고 하는 반면, 중기청과 산자부는 연수생 수를 현재 8만에서 20만내지 30만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등록 노동자도 점점 증가추세에 있는 데다 올해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외국인이 대거 입국할 예정이다. 자본은 말할 것도 없이 '저임금에 유연한 노동력'을 원한다. 밀려드는 외국인에 자본마저 선호하고 있는데, 특단의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정말 '밥그릇'을 빼앗기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설정은, 외국 인력과 직접 관련이 있는 내국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지금까지처럼 외국인력 관련 정책의 논의·결정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된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은 외국 인력 정책의 방향이 판가름나는 시기로, 노동계가 이 시기를 놓친다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규모와 노동조건이 내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노조 조직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노동통제의 도구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은 외국인력의 도입시기와 규모·방식·노동조건을 결정하는데 적극 개입하고, 또한 개입을 제도화하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또한 같은 차원에서 기존 노조는 외국인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내국인 노동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내국인 노동자와 동일한 노동비용을 부담하게 만들어 자본이 외국인 노동자를 선호하는 유인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도 그렇다. 더불어 외국인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노조 형태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하여 지금까지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해온 단체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이제는 노동운동이 나서야 한다.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하나이기 때문에. 

*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www.jcm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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