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진전보다 퇴행 막기에 바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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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아온다. 해가 바뀌면 아무리 힘들어도 덕담을 건네고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인사도 건성으로 한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고 이참에는 더욱 그렇다. 가슴 설레는 새벽이기보다는 덧없는 세월만 탓하는 막막함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그만큼 지난 시간들이 유난히 험난했고 올해도 썩 달라질 것 같지 않다. 2015년은 권력자의 불통, 독선, 오만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앞선 해보다 훨씬 강도 높게 통용되었다. 권력세계는 대통령의 ‘입’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이의를 달면 반역이요, 배신으로 낙인찍히는 진풍경이 거듭 연출됐다. 거대야당은 민생문제를 외면하고 직무유기를 일삼는 파당(派黨)으로 규정되었고 진보정당은 아예 백안시되었다. 각계각층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꾸지람과 훈계를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 했다. 법과 원칙, 비정상의 정상화, IS와 복면시위, 역사의 심판 등등 거침없는 훈화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국회의장에 대한 직권상정 강요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어느 나라보다 빠른 시간에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형식으로나마 남아 있는지 자괴감이 든다.
 
경제에 목매는 정부와 짙어지는 빈곤의 그늘
권력자와 그 집단의 유아독존에 가까운 정치적 아집은 경제 살리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경제를 살릴 테니 군말 말고 따르라’는 주장이고, 나라살림이 어려운데 민주주의 따위의 비효율적인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시대적 의제라고 스스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다 팽개쳤다. 그리고 어릴 적 찬연(燦然)한 고도성장의 신화-대재벌이 주도하는 수출제일주의의 경제개발전략-를 밀어붙였다. 낙수효과라는 경제이론으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하면 된다’는 새마을운동의 낡은 철학을 동원했다. 
하지만 그토록 목을 매는 경제는 생각대로 살아나지 않았다. 세계시장도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엄청나게 돈을 풀었는데 가계부채만 늘었고 재정적자의 적신호만 키웠다.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경제성장률은 계획치를 한참 밑돌았다. 권력의 위엄을 웃어넘길 만큼 커버린 재벌들은 투자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고 앞을 다투어 곳간만 쌓아올렸다. 그리고 투자여건을 획기적으로 고쳐달라고 채근했다. 사회적 격차는 ‘숟가락 계급론’, ‘헬조선’으로 참상을 더했고, 빈곤의 차디찬 그늘은 더욱 짙어졌다.  
 
고용유연화의 결정판인 ‘노동개혁’
지배권력은 경제회생이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노동개혁’에 온 힘을 기울였다. 노동개혁은 기업이 바라는 곳에 언제든지 투자할 수 있게 ‘노동규제’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임금비용은 줄이고 노동시간은 늘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도 포함됐다. 통상임금 축소, 노동시간 연장, 비정규직 확대에 ‘근로계약해지 요건 명확화’라는 점잖은 이름의 일반해고제 도입이 그 핵심적 내용이다. 노동유연화의 결정판이었다. 권력은 분할통치전략을 구사하면서 이른바 ‘사회적 합의’라는 형식을 동원했고, 급기야는 합의의 울타리를 무너트리고 자본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했다. 노동개혁이 청년 일자리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해결책이라는 정부의 선전이 언론 매체를 메웠다. 하지만 어디까지 노동개혁과 노동유연화를 하면 재벌들이 곳간을 헐고 경제가 살아날지에 대한 약속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희망퇴직’을 가장한 구조조정이 기승을 부리는 형국이다. 행정부는 물론이고 국회, 법원 등 모든 권력기관이 권력 정점의 의지에 따라 수구세력의 이해를 관철하려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오죽하면 점잖은 교수들마저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올해의 경구로 삼았을까. 
 
대중의 요구에 탄압으로 답하는 정부
근로서민대중의 반발은 필연이었다. 민주노총 등 저항세력은 총파업과 민중총궐기대회를 통해 청와대에 폭주를 멈추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노발대발하여 차벽 감옥에 시민들을 가두고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대량으로 퍼부었고 그 와중에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헤매는 중상을 입었다. 정부는 사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노동단체에 압수수색을 벌이고,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등에게 군부독재 시대에나 써먹었던 소요죄까지 씌워 구속했다. 집회 때마다 운집한 거대 군중의 불만과 요구는 일부 반국가적 불순세력의 선동에 놀아난 바보들의 행진으로 엄정한 처벌의 대상일 뿐이었다. 근로대중의 요구는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답은 ‘법과 원칙’을 앞세운 잔혹한 탄압이었다. 이 같은 지배권력의 상명하복식 일방통행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이미 반민주‧반노동‧반평화의 수구 결집체인 이명박 정권의 횡포에서 입증되었거니와 그 계승자로서 박근혜 정권은 스스로 내건 대선공약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세월호 참사를 외면함으로써 이미 그 진면목을 드러냈었다.  
 
보수 지배권력도 영원할 수는 없다
보수정권의 폭주는 아주 특별한 상황의 변화 없이는 가까운 시일 내에 바뀔 것 같지 않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정치제도와 구조, 계급‧민족‧지역‧세대의 분열‧대립‧갈등에 권력의 바탕을 두고 있는데다 한번 밀리면 끝장이라는 역사적 학습을 어느 정권보다 깊이 새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항세력이어야 할 야당은 무능의 졸전을 거듭한 끝에 총선거라는 정치결전을 앞두고 사분오열되는 정황(政況)을 연출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재정비를 서둘렀다고 하지만 지난날의 쓰라린 상처를 치유하고 진보세력의 통일과 전진을 당장 기대하기는 어려운 지경이다. 그렇다고 보수 지배권력의 독단과 독점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근거 역시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민주 진보세력의 끊임없는 투쟁과 도전을 통한 치열한 준비가 필요하며 그 과정이 철저하면 할수록 참된 민주주의는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 오랜 역사의 가르침이다.    
 
무장해제 위기에 몰린 노동운동의 갈 길은?
정치적 격돌의 시대, 권력재편의 격전지대에서 지배권력이 집요하게 관철하려는 것은 노동개혁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 정권이 지금이야말로 자본축적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세계 곳곳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보수화 경향은 총자본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이다. 입법‧사법‧행정에 언론까지 거의 완벽하게 장악되어 있고 대항정치세력은 지리멸렬하다. 직접 당사자인 노동의 무게는 현저하게 가라앉아 있다. 조직률 10%에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다. 단체협약 적용율 역시 그 수준이어서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여전히 낮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옆으로 비껴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숨 가쁜 생존조건도 갈수록 악화일로다. 기업별노조의 관행이 완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시도 때도 없는 구조조정 압박과 치열한 경쟁체제의 도입으로 현장 조직력은 갈수록 무력화되고 투쟁력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제대로 자리 잡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노동조합의 역량은 조직규모, 조직형태, 현장장악력, 전략목표, 투쟁력, 정치세력화 등 주요 측면에서 어느 때보다 취약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은 기존의 특성과 함께 과거와 다른 새로운 양상들을 내보이고 있다. 총자본의 잔혹한 공격에도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이 완강하게 자리를 잡고 노동조건의 퇴화를 가로막고 있는데다 조합원 수의 증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양적 증가와 치열한 투쟁에 따른 성과의 쟁취, 청년노동운동의 대두,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도 강화, 양대노총의 연대 강화 등이 새로운 현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물론 아직 이들은 운동의 대세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오랜 침체상황에 비추어 보면 새로운 가능성의 일단(一端)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로 이 두 가지 상황에 대비한 것-기존 민주노조운동의 잠재력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운동변화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노동개혁의 진짜 속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개혁은 기존 민주노조운동의 명맥을 끊기 위한 무장해제이자 노동운동의 혁신을 무력화하기 위한 총자본의 치밀한 전략인 동시에 노사 어느 쪽도 물러설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노사 간 대립과 갈등은 더욱 첨예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만큼 노동운동진영의 긴장도는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될 것이다. 
 
노동운동 소생 위해 또다시 지혜‧용기 모아야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변화에 조응하기 위해 노동운동진영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노동운동진영은 오래 전부터 많은 과제에 직면해 왔다. 올해는 여기에 더하여 전례 없이 긴박한 도전이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몰아갈 조짐이 짙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고 해가 바뀌면 노동자들의 처지도 개선되는 것이 순리일 텐데 왜 우리네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어둡고 팍팍해 지는지, 최소한의 생활조건과 노동운동 소생의 여지를 찾기 위해 또다시 많은 지혜와 용기를 모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해방 70년, 민주혁명 55년을 넘기고 노동자대투쟁 30년에 가까운 병신(丙申)년, 이래저래 새해는 희망에 찬 역사의 진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의 퇴행을 막기 위해 바쁜 해가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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