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소 위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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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양극화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화 일로에 있다. 정부는 사회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양극화 해소를 당면 목표로 천명하며 동반성장을 강조하였으나 문제 인식과 구체적인 정책은 전혀 별개인 듯해 우려스럽다. 실제로 부동산정책을 제외하고는 시장경쟁력 제고를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에 무게가 실려 있을 뿐 제대로 된 양극화 대응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노동의 경영참여가 아직 요원하고 노사정 사회협약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비정규직의 대우를 더욱 낮출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한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할 예정이어서 노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 현상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업경쟁력 확보를 통한 경제회복을 다른 어느 가치보다 우선시하였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시장소득(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이자·배당·임대소득), 사적이전소득(상속·증여 등)을 모두 합친 것으로, 세금 및 정부 공적 부조(이전소득)를 합산하기 이전의 소득 단계)이 급격히 불평등해지기 시작했다. 몇 가지 지표들로서 외환위기가 심화되었던 무렵과 최근의 양극화 정도를 비교해 보면 아래의 표처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복지와 시장을 분리하여 시장에서는 경쟁을 추구하여 불평등을 양산하면서 이로 인한 모든 폐해를 복지제도에 떠넘기는 분리주의적 기조를 유지했다. 즉, 노동시장 양극화는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고, 조세를 통한 재분배 또한 경기부양을 위하여 포기했으나 복지정책을 통한 재분배정책은 강화하였다. 그러나 시장소득의 양극화 정도에 비하여 복지정책을 통한 보완은 간에 기별도 안 갈 정도로 미미하였다.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도 김대중 정부와 비슷하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며, 부동산 정책과 사교육비 절감 정책에서 분배구조 개선 노력을 약간 하고 있지만 조세나 복지정책을 통한 양극화 해소 노력은 미미한 편이다. 


[ 세계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58개 빈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기초생활보장법 전면개정 등 빈곤철폐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 출처 : 민중복지연대 ]

원인 하나. 노동시장 유연화

양극화의 원인은 노동시장 유연화, 소득분배정책의 실패, 빈약한 조세와 복지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로 나뉠 수 있다. 각각을 더 세밀히 살펴보자.

지난 10여 년간 일자리의 증감 추세를 보면 근로조건이 비교적 양호한 소득분위 8~10분위에 속하는 계층의 일자리는 2백만개 이상 증가한 데 비하여 근로조건이 열악한 1~3분위 계층의 일자리는 11만9천개가 증가했다. 이에 비하여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일자리는 정체하거나 감소하였다. 또한 지표상으로 나타난 실업률은 3%대로서 높지 않으나 취업률은 2003년의 경우 OECD 평균 취업률이 65%인데 비해 한국은 63%로서 평균보다 낮다. 

게다가 낮은 실업률과 증가추세에 있는 취업률에도 불구하고 표에서 본 바와 같이 노동소득분배율이 악화되고 있다. 피용자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이 감소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의 지속적 증가 때문이다. 2004년의 비정규직은 816만명으로, 2001년 673만명보다 크게 높아졌으며, 2004년 8월 현재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경우 평균 정규직 임금의 57.0%, 여자는 37.2%에 불과하다. 즉, 비정규직 부부는 둘 다 일하더라도 정규직 평균임금의 94.2%밖에 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은 대다수가 퇴직금, 4대 사회보험, 학비·주거비 융자 등 기업복지에서 제외되어 있다. 또한 고용이 불안하며 정규직으로의 상향이동 가능성이 희박하다. 따라서 많은 비정규직이 빈곤 탈출의 희망이 거세된 ‘신빈곤층’으로 침전되고 있다. 

이 외에도 비정규직, 외국인 이주노동자, 자활사업 참여자 등의 비(非)노동조합 가입자의 노동기본권 미확보가 문제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최근에 ‘자활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내놓았는데, 정부의 이러한 작태는 명백한 노동권 침해이기 때문에 자활노동자들이 장기농성 중에 있다(이 개정안은 최근 법제처의 심사과정에서 법체계 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삭제되었다. 그러나 복지부는 법제처의 지적은 자활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를 떠나 법체계 상 맞지 않는다는 부분이므로 노동부의 행정해석 등을 바탕으로 내년 초 이와 관련한 지침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최근의 양극화 심화는 노동시장 구조 변화의 산물이므로 노동시장 양극화의 해결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데, 노조가 힘이 있어야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노조 조직률은 점차 낮아져 2003년 노동조합 가입률은 10.8%(155만명)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79.0%, 영국과 독일은 각각 29.1%와 26.6%, 일본과 미국도 19.6%와 12.9%로서 한국보다 높다. 영미형 시장론자들은 미국처럼 노조가 약화되는 것을 이상적인 사회모델로 보고 있으나 이상적인 모델은 노조의 협상력이 사측과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유럽형이다.  

정부·여당 내에는 대기업의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을 특권세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현상적으로는 이들의 저항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들이 가진 힘을 특권으로 보기보다는 다른 특권에 대한 대항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설사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위가 다수의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서는 특권이라 하더라도 그런 특권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원인을 먼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사회운용기조에서 노동부문이 정상적인 사회적 파트너로 복원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정부와 사용자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를 전제하고서 노동 측에게 이 정책기조에 동의하면 대화에 나오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정책기조 자체를 노동계와 협의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을 사회적 파트너로 복원시키지 않고서는 경제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지정책도 사실상 불가능하며 양극화 해소도 불가능하다. 

원인 둘. 소득분배정책의 실패

참여정부 들어서 이렇다 할 소득분배정책은 없어 보이지만 굳이 분배정책의 범주에 드는 정책을 찾으라면 부동산투기 방지정책과 사교육비 절감정책을 들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사회는 신용불량 사태로 인한 구매력 저하라는 암을 앓고 있어 360만 신용불량자들에게 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소득분배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시급한 사안은 소홀히 한 채, 소득분배정책을 편답시고 부동산투기 방지정책과 사교육비 절감정책을 시행했다. 이와 같은 정책을 성매매특별법과 금융시장의 방카슈랑스와 같은 일련의 정책들과 함께 경기침체 시기에 시행한 결과 많은 건설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 생활설계사, 유흥산업 종사자와 같은 한계계층이 일자리를 잃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는 다시 저소득층의 구매력 저하로 연결되어 경기침체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대구의 건설일용직 노동자가 굶어 죽은 아이를 장롱 속에 닷새 동안이나 방치한 사건은 정부의 서투른 시장개입정책이 초래한 시장실패의 비극적인 사례이다.

원인 셋. 빈약한 조세와 복지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  

2002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9.8%로서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 꼴찌에서 둘째이며, 세전 소득과 세후 소득의 지니계수(소득분배의 불평등도) 개선 정도를 통하여 살펴본 2003년 소득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는 2.11%로서 다른 선진국(4~10%)보다 크게 낮은 편이다. 이 원인은 소득과세의 세수규모(비중)가 작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조세부담률이 현 수준보다 10분의 1씩 상승할 경우 소득재분배 효과는 0.19~0.23%씩 증대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득세의 누진체계 강화, 간접세 비중 축소, 포괄적 소득세제 강화(분리과세 범위 축소), 자영업자 소득파악률 제고, 근로소득지원세제(EITC) 도입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반대로 2004년에 내수경기 부양책이라면서 소득세 인하, 사치품의 특소세 폐지, 자영업자의 소득세 감면정책을 내놓았고 시장론자들은 소득세를 더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지니계수 변화를 기준으로 살펴본 2003년 공적이전소득(정부의 공적부조)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1.96%로서 다른 선진국(4~10%)보다 크게 낮게 나타났는데, 가장 큰 원인은 공적부조제도의 미비이다. 최저생계비는 1988년에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45%이었으나 해마다 낮아져서 2004년에는 30.5%로 떨어졌다. 정부는 이렇듯 최저생계비 자체를 낮춤으로써 많은 수급권자들을 배제하고 보장수준을 낮추고 있다. 최저생계비는 상대적 빈곤을 기준으로 설정되어야 하며, 그 수준은 1988년 수준인 근로자가구 평균소득의 45%로 책정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정부 발표를 보더라도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지만 사각지대에 방치된 수급권자들도 177만명에 달한다. 게다가 너무 까다로운 부양의무자 기준, 너무 높은 재산의 소득환산율 적용, 정부의 소득파악 능력 부족을 빌미로 함부로 남발하는 추정소득 부과 등이 가장 큰 사각지대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수급신청 탈락가구의 25.7%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해 탈락되며, 이들 중에 56.2%가 부양의무자로부터 사적이전소득(상속, 증여 등)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화와 간주부양비(부양의무자가 있을 경우 소득으로 처리되는 부양비)의 하향조정이 필요하다. 

선진국 중에서 복지제도가 가장 열악한 편인 미국의 수혜자 선정기준은 기초생활보장 최저생계비의 130%, 노인의료 및 요양보장 전 국민 대상, 저소득층 의료보호 최저생계비의 180%, 영유아 딸린 모자가정 지원(WIC) 최저생계비의 185%,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는 최저생계비의 200%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최저생계비선까지의 보장도 요원하다. 


[ 지난 9월 23일 출범한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종합적 밑그림 없는 정부 정책

그래도 근로무능력자들을 위한 공적부조제도는 그나마 근로능력이 있는 실업빈곤층에 대한 대책보다는 후한 편이다. 정부 통계만을 보더라도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된 근로빈곤층은 96만명~166만명이다. 근로빈곤층을 위한 대표적인 소득보장정책은 자활사업인데 현재 기초수급자 4만명과 차상위계층 2만명이 자활사업에 참가하고 있다. 정부는 2009년에 자활사업 참여자를 10만명으로 증가시키고, 현재 7천명이 참가하고 있는 가사·간병도우미사업 등의 사회적 일자리를 2007년부터 연간 1만개씩 확충하고, 현재 2천명이 참가하고 있는 직업훈련을 2009년에는 3천명으로 증가시키겠다고 한다. 

설령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고작 11만 1천개로서 총 근로빈곤층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여전히 남아 있는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대한 대응책으로 총 예산 규모를 2조원, 1.5조원 및 0.5조원으로 하는 세 가지 모델의 근로소득지원세제(EITC)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4조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근로유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것으로 예측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근로소득지원세제의 도입이 자칫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 인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와 복지계는 만약 이 제도를 정부가 도입한다면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를 상대적 방식을 도입해 일정 비율로 정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근로빈곤층의 소득보장은 자활사업, 기초생활보장, 긴급지원, 근로소득지원세제, 사회적 일자리 사업, 창업지원 등이 서로 맞물려 있는데, 정부는 종합적인 밑그림 없이 각각의 제도를 따로따로 땜 때는 식으로 설계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 긴급지원 특별법과 자활사업 제도개선을 근간으로 하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상정될 예정인데 근로소득보전세제가 시범사업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고려 없이 개별 법안들이 중구난방으로 개정되고 있다.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개별적인 제도가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사회보험을 살펴보면 대규모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2002년의 경우 국민연금은 경제활동인구의 48%를 제외하고 있었으며, 고용보험의 경우도 임금근로자의 48%, 산재보험은 20%를 제외시키고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에는 197만명이 보험료를 내지 못하여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각지대를 축소하기 위하여 국민연금의 기초연금제 실시와 저소득층의 사회보험료 대납제도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복지를 사회적 투자로 인식해야

일차적인 사회안전망은 공공재로서 스웨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선진국들은 교육과 의료가 공공재로 간주되어 조세를 재원으로 공급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의료와 교육이 공공재로서 조세방식으로 공급되고 주거복지제도가 확충되어야 할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투자를 ‘퍼주기’, ‘성장잠재력 훼손’, ‘낭비예산’에서 인적자본투자, 사회적 투자로 그 인식을 바꾸는 사회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양극화 해소 방안은 시장소득과 자산형성 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분배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것과 조세제도와 사회복지제도와 같은 적극적 재분배정책을 통해 사회임금을 상승시키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말로는 양극화 대책이랍시고 요란하게 떠들고 있으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중 어느 한 가지 정책으로도 양극화의 증폭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지도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노조의 힘이 약화된 가운데 정부가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의회 또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양극화문제를 풀 수 있는 희망은 민중의 힘뿐이다. 이러한 가운데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시민연대가 발족되었다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시민연대가 민중세력을 규합하여 커다란 연대의 힘으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 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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