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좌담] 박근혜 정부 4년, 한국 사회 후퇴와 2016년 정세 전망

섹션:

글쓴이 :

 
------------------------------------------------
○ 일시: 2015년 12월 18일 오전10시~12시30분
○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장
○ 사회: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 참석: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박인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나다 순) 
------------------------------------------------
  
사회) 2016년이면 박근혜 대통령 집권 4년차를 맞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 큰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경제위기론까지 겹쳐 대단히 혼란스럽고 복잡한 상황입니다. 결정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권 3년에 대한 간략한 평가, 그리고 현재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면 그 퇴행의 원인과 전망은 무엇인지부터 얘기해보죠. 
 
 
‘신종 권위주의’ 박근혜 정부
김동춘) 박근혜 정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요. 파시즘이라고 봐야 할지 권위주의라고 봐야할지 독재라고 봐야 할지, 사실 혼란스럽습니다. 사회과학자들은 정부의 성격을 무능력과 직무유기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신종 권위주의 같습니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고 전 세계적인 우경화 흐름과 맞물려 있습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공화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이고, 최근 아르헨티나 정권은 우익으로 교체 됐으며 프랑스도 지방선거에서 우익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영국, 러시아를 비롯해 일본의 아베 정권 등 우경화가 세계적인 현상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우경화의 원인은 2008년의 준경제공황으로 볼 수 있는데, 즉 내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한 탓이 아닌가 합니다. 토대의 허약함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중국가’ 세력 혹은 저는 ‘국가 위에 국가’ 세력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러한 세력을 제대로 청산, 극복하지 못한데 따른 후과입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체제에서 제도정치 위에 있는 국정원, 국가보안법, 공안검찰, 보수언론으로 대표되는 ‘국가’ 세력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60년 동안 보수‧관변세력들이 장악한 지방정치나 지역사회를 바꾸지 못한 탓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우리 사회의 직업집단이 기본 직업윤리 정립이나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권력에 줄을 섰기 때문입니다. 언론과 관료집단이 대표적이고, 교수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정권에 ‘노(No)’라고 할 수 있는 직업집단이 없는 허약한 근대성 등 세 가지 문제가 맞물려서 오늘의 결과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사회 불평등과 빈곤, 자살,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은 물론 관료집단이나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가 비판받지 않으며 견제받지 않고 있습니다. 야당이 약한 탓이라고 하지만, 사실 야당 역시 독립변수보다는 종속변수의 측면이 큽니다. 정부가 2014년 통합진보당을 해산했는데, 해산의 본디 목적은 진보정당을 넘어 야당 무력화였습니다. 실제 새정치민주연합은 종북세력과 자신들을 끊임없이 구별‧차별화시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집권 여당의 헤게모니 안으로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결과 정치적 반대 스펙트럼을 스스로 좁혔습니다. 이에 따라 경제개혁이나 진보적 담론을 내세우기 어려워졌죠. 정부‧여당 쪽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인규) 박근혜 정부 3년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입니다. 유신체제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심하게 말하자면 저는 식민지적 상황이라고 봅니다. 대통령 한 명만 자유롭고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거죠. 
1987년 이후 우리 정치 흐름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만의 잘못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과제를 푸는 과정에서 역대 정부가 실패를 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평양에서 벌어진 남북협상에서 안기부 소속 이동복 씨가 대통령 훈령을 조작해서 남북관계를 파탄 내버렸습니다. 대선에서 보수세력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 결과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긴 했지만 이는 국내 정권 유지를 위해 남북관계를 희생시키는 보수정권의 전통적 악습이 재연된 것이었습니다. 남북관계의 긴장을 통해 정권 안보를 도모하는 악습은 이명박 정권 이후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서 자본시장 개방과 금융 자유화 정책을 전격 시행했고, 이는 97년 IMF위기의 단초가 됩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악화된 금융‧외환시장 위기를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 해결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우리 정치세력은 87년 민주화 이후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도 있겠지만, 87년 이후 정치세력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긴급한 과제에 대해 깊게 인식하거나 대응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정치 자체의 실패인 겁니다. 야당의 무능도 실패에 포함되고요. 
지금은 정치 주체들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정치 주체들의 문제를 먼저 짚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체가 서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과제를 말한들 소용없습니다. 2012년에는 우리 사회 과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고 얘기됐고, 박근혜 후보도 그것을 강조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런데 당선 되자마자 까먹었죠. 우리 사회의 과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능력과 진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역대 대통령들을 당선 전에 만나 봤는데,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만 있지 무엇을 해야겠다는 어젠다가 없더라, 한마디로 국정방향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치지도자들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고 나아가야 할 과제에 대해 방향이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최근의 선거구 획정 문제로, 정치학자들은 비례대표제 확대 같은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합니다. 그런데 국회 논의를 보면 어림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 주체에 봉착해 있는 겁니다.  
 
이병훈) 박근혜 정부는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입니다. 국정 현안에는 매우 무능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화법’에서 보듯 매사 남 탓을 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처럼 이념대결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나만 옳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입니다. 
박근혜 정부를 받쳐주는 보수 세력이 매우 강고하다는 점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조사 결과나 정부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은 정부를 감싸주고, 중고령층‧특정지역을 지지기반으로 대통령은 계속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내년 4월 총선거나 차기 정권까지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더 이상 나빠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장사꾼에서 독재자의 딸로 대통령의 스타일만 바뀌었을 뿐 그들의 보수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분열과 갈등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노동 이슈로만 초점을 좁히면, 박근혜 정부의 철도 민영화 추진에 따라 철도노조 파업이 크게 일어났고,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침탈 사태’가 있었습니다. 올해 초에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 국회에서 대타협기구를 구성해 나름 의미 있게 연금 개혁에 합의했음에도 대통령이 몽니를 부리면서 합의를 실질적으로 거부했고, 연이어 노동개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대통령이 오만과 독선으로 정책을 밀고, 반대하는 사람은 때려잡으며 무조건 법안 통과만이 살길이라고 윽박지르는 것입니다. 
 
 
경제 위기에도 ‘무위’로 세월 보낸 정권
김공회) 경제 분야로만 좁혀보면, 이 정부는 ‘무위 정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한 것이 없습니다. MB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많이 실시해 문제였다면, 이번 정부는 정반대인 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당 후보임에도 파격적으로 복지,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는데 막상 집권 후 공약은 휴지조각이 돼 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 고용률 70% 달성, 중산층 복원, 통일대박론까지 굉장히 파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다 공수표가 됐죠. 
문제는 그러는 사이에 우리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불평등입니다. 실제 불평등 문제를 공론화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지난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죠. 가계와 기업 간의 불평등이 굉장히 커지고 있고, 각 부문 내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제는 조금씩 성장해왔는데, 이는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부채가 쌓였다는 뜻입니다. 덧붙여 최근 대외적 불안요인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유럽의 수요가 정체되고, 이는 중국의 저성장으로 연결되어 중간재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 경제에도 압박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이 금리를 인상한 것도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부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정권은 국민을 겁박하는 수단으로 경제위기를 악용하고 있고요.
당연히 이상의 문제들은 낮은 성장률과 저조한 고용 성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2016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정부가 이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는 부채와 부동산에 의존하는 기존의 성장 모형과 구태의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제 침체를 핑계 삼아 소극적인 재정정책을 정당화할 정도입니다. 앞으로 ‘인구절벽’이 올 수 있으니 지금 돈을 많이 쓰면 안 된다고 말하는 식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정책은 4대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이 유일합니다. 최대한 중립적으로 봐서 4대 개혁을 통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이 지난 수년간 한국경제가 발전해온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노동자들을 더 짜내 성장을 도모하긴 어렵습니다. 노동보다는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만 해도 궁극적으로는 민생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수 정부가 민족주의적 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온 나라가 이 프레임에 그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야당을 포함해서 대항세력들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동춘 교수님께서 야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좁아져 여야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경제적으로는 정반대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그 어떤 이도 현재의 거대 야당을 대한민국에 혁명을 가져올 수 있는 세력으로 보지 않습니다. 야당을 보수 여당에 비해 조금 더 개혁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인식하는데, 그렇다면 경제 관련 이슈에서도 그런 개혁적인 면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야당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재벌을 해체하자거나, 사내유보금을 환수하자는 얘기를 툭툭 던집니다. 비정규직도 다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얘기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의제에 동의하지만 과연 보수 야당이 내놓을 만한 의제일까요. 현재와 같은 거대 야당이라면 사회의 움직임을 실행 가능한 형태로 받아 안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틈새’를 만들어낼 만큼 경제적으로 ‘실력’이 없는 것이죠. 굉장히 ‘안전’하고 ‘선명’해서 야당의 입장을 부각시키는 데는 좋겠지만 의회 내에서 실현시키기 까다로운 주장을 함으로써 야당은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야당의 행태는 운동진영 전체에도 파괴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사회) 네 분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네요. 대통령은 있는데 정치는 없고, 특히 경제 쪽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내일을 전망할 수 없을 만큼 캄캄한 상태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항 혹은 대항 세력이 취약한 것도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4월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야당은 분열하고 있고, 진보진영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새누리당의 일방독주체제가 더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습니다. 내년 총선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1여 다야 구도 속 어두운 총선 전망
박인규)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굉장히 어려울 것은 확실합니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습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같이 가기 어려운 것 같고 갈라서는 것이 맞기는 합니다. 한 원로 정치인은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면 상당수 의원이 따라서 탈당하고, 천정배 의원과 결합하면 세는 굉장히 커지겠지만 결과적으로 야당은 패배할 것이라고 보더군요. 그렇게 되면 1여 다야 구도가 되는데, 지금 야당의 지도력으로 봐서 구심점과 지향점 있는 야당이 되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평가인데, 야당이 잘할 수 있었던 적이 한 번 있긴 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입니다. 무상급식 어젠다를 내세워 김상곤 후보가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되고, 이 흐름이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야당이 제대로 된 정치 의제를 만들어낸 경우입니다. 이 교수는 그 때 야당이 오만해진 것 같다고 보더라고요. 당시 야당이 대선에서도 이길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정작 2012년 대선에 가서는 지리멸렬 했거든요. 전망이라는 것은 틀리기 마련이어서 예측하기 힘들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으로 갈라진 세력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유의미한 세력으로 남을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사회)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는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를 내세웠습니다. 이때처럼 여야의 의제가 비슷한 때는 없었죠. 과연 내년 총선의 국민적 관심사는 무엇이 될까요?
 
 
총선 표심 움직일 정권교체의 가시화 여부
김동춘) 총선은 대선의 전초전 성격이 있습니다. 따라서 정권교체의 가시화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가장 큰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정권교체가 가시화 되려면 대선 유력후보가 중요하겠죠. 그렇다면 대선 유력후보를 어디서, 어떻게 가시화 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호남지역 사람들의 표심은 정권교체가 가능한 쪽으로 기울어 질 겁니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정권교체 당위성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문재인, 안철수 의원이 갈라진 것을 바람직하다고 표현하긴 어렵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보고,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이 그대로 가는 것이 더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야당들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새누리당을 얼마나 강하게 타격할 수 있느냐로 경쟁한다면 이번 총선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지지는 새누리당도 새정치민주연합도 싫은 사람들, 소위 개혁적 보수세력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급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현실의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야당 편으로 끌어들여야 총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변수는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20~30대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될 것이고요.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얘기지만 계급정치가 없는 한국에서는 결국 세대가 제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30~40대의 참신한 인물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전면 배치 혹은 공천하느냐가 선거 승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세대를 통해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치세력이 커져야 하고, 정치 바깥 제3세력들이 조정에 나서 일정 정도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것으로 선거 전략을 짜야합니다. 후보단일화를 한다는 것은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 일정 정도의 야권연합 정부를 꾸린다는 암묵적인 합의 같은 정치 전략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석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현재 택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정의당이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의당과 시민사회가 대략 10% 정도의 표를 갖고 있다고 본다면, 새정치민주연합과 안철수 신당이 싸울 때 조정자로 나서 양쪽의 타협을 강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총선 전략을 짜야 할 것입니다. 
 
사회)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대정당 체제에 굉장히 익숙한데, 이런 상황일수록 시민사회진영의 영향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덧붙여 또 다른 전략은 없을까요?
 
 
총선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
이병훈) 내년 총선이 중요하지만, 현재 ‘정치판’ 대로라면 비관적이고 암울합니다. 하지만 흔히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죠. 저는 ‘요물’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실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희망의 여지가 있다는 거죠. 박근혜 정권 3년에 대한 심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부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많기 때문에 총선에서 이를 어떤 형태로든 모아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김동춘 교수님의 견해와 달리, 총선과 대선이 연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선이 열리는 2017년 연말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남았고, 여야 내부의 어지러운 상황들을 걸러내는 과정이 먼저 부각될 것 같습니다. 
총선에서 몇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 총선의 최전면에 등장할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공천 문제를 두고 ‘진박(眞朴)’과 ‘비박(非朴)’으로 나뉠 정도로 여당 내 박근혜 대통령의 상징성과 영향력이 워낙 큽니다. ‘선거의 여왕’인 대통령도 총선에 관여해서 승리한다면, 남은 임기 동안 권력의 누수 없이 하고픈 일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야당에서는 기존 보수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 거기서 분열된 그룹, 진보정당이 있는데, 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연합이나 조정이 될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조정이 되지 않은 채 1여 다야의 구도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짜는 판에 휩쓸려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여’에 맞설 수 있는 선거판을 만들고 그에 따른 전략을 구상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정의당은 물론 국민들도 선거 연대‧연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민사회진영의 힘도 예전 같지 않아 난감합니다. 
둘째, 총선 이슈가 나름대로 있을 것입니다. 현재 정부가 노동개혁 법안의 연내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는데 올해 처리는 힘들 것 같습니다. 진보진영이 걱정하는 것은 지금이 1라운드고, 총선 후 2라운드가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그 때 거대여당이 탄생하면, 정부 정책을 그대로 밀고 갈 것입니다. 또한 노동개혁 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가 계속 어렵다면, 정부는 총선에서 이를 적극 이용할 것입니다. 야당이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놓기는 했지만, 대중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경제위기 상황을 정치적 호재로 이용해 압박하는 상황에서 야당이 ‘박근혜식 경제 살리기는 틀렸다’, ‘내수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정치쟁점으로 만들어낼지가 총선 이슈가 될 것입니다. 일자리 문제도 각 정당마다 대안을 내놓으면 총선의 화두가 될 것이고, 선거구 획정 문제와 같은 정치개혁 문제도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공회) 경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일자리와 한국경제 성장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제시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만, 이런 것을 총선에서 풀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선거들을 좌우한 복지 이슈들과는 달리 이런 경제문제는 지역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걱정스럽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에 ‘규제프리존’이라는 정책을 내놨습니다. 또한 국민연금의 부동산·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를 늘려 건설 경기를 부양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어떻게 봐도 총선 국면에서 지역들을 들썩이게 만들만한 포석인데, 과연 야당이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 대응해 질 좋은 고용과 건전한 성장에 대한 그럴싸한 비전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보단 정부‧여당에 끌려가는 양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경제 영역에선 고만고만한 정책들이 경쟁하고 정치 측면에서 결판이 나기가 쉽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세대가 중요합니다. 저는 20~30대보다 40대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청년비례대표의 공천 대상 연령을 만45세로 높이면서 빈축을 샀는데요, 제가 보기엔 그런 결정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만45세라면 1990년을 전후해 성년이 된 세대, 소위 ‘86세대’ 직후 세대인데요, 86세대에 비해 이들은 정치적으로 과소대표되어 있습니다. 앞 세대에 대한 ‘박탈감’도 심합니다. 실제 우리가 알만한 정치인 중에 그 세대에 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대체로 87학번 이후는 ‘86세대’로 쳐주지 않는 게 상례이니, 만45세는 오히려 너무 낮게 책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선‧총선을 거치면서 386세대의 자녀뻘 되는 사람들이 부각됐지만, IMF 세대, 응답하라 세대라 할 수 있는 중간층은 여전히 비어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투표율로도 나타납니다. 예컨대 지난 선거 투표결과를 보면 40대 투표율이 20대 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역대 40대 투표율만 놓고 보면 아주 낮은 수준이라는 거죠. 투표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직접적으로 어필하는 방법은 부동산이나 개발 같은 이슈들보다는 같은 세대에 속하는 젊은 후보를 많이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파격적인 모습이 없이는 야권이 총선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새누리당 내부 분란과 장담할 수 없는 외부 상황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되겠죠.
 
이병훈) 박근혜 대통령 스타일이나 ‘박근혜식 정치’를 보면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그림자가 매우 클 것으로 보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선 이후에도 그림자가 영향력을 발휘할까봐 걱정입니다. 반면 야당은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지도 갑갑합니다.  
그런 면에서 큰 자산으로 돋보이는 인물이 박원순 서울시장입니다. 박 시장이 선거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도 대선까지 내다본다면, 이번에 서울시가 청년수당(청년활동지원사업) 문제를 놓고 정부와 대립한 것처럼 박원순 시장이 ‘반박근혜’ 전선을 어떻게 만들고 전국적인 인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박 시장을 중심으로 야권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진보정당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진보정당이 중장기적으로 노동자‧서민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으로 힘을 되찾고 어떻게 입지를 강화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통합진보당 후과가 크다는 것이 문제죠. 종북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통합진보당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진보정치세력들이 정의당 등을 창당해도 대중들은 이들 진보정당을 종북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합니다. 또한 통합진보당 문제를 놓고 진보정당을 뒷받침하는 민주노총과 노동자‧농민 단체들의 입장이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운동권 내부의 정파 문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고요.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캐스팅보트 역할이라도 해야 할 텐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힘이 없다보니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기가 갑갑할 겁니다. 진보정당이 대선까지 이런 구도 속에서 어떻게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죠.
 
 
총선 목전에 둔 진보정당의 향방은?
사회) 자연스럽게 진보정당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네요. 최근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와 진보결집 더하기 등 4개 단체가 모여 통합 정의당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큰 지지기반인 민주노총은 여전히 정치방침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선거가 다가오니 민주노총 산하 현장 조직은 대단히 갑갑해하고 있습니다. 향후 진보정당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박인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 진보정당들은 상가임대차 보호법, 무상의료, 무상급식처럼 상당히 참신한 정책을 제시하곤 했습니다. 큰 담론보다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같은 대중의 경제적 곤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현실성과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김동춘)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가 오려면 진보정당이 집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하거나, 교섭단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총선이 진보정당 재건을 위한 경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최대강령 문제, 즉 북한을 어떻게 볼지의 문제로 토론하면 보나마나 다 쪼개집니다. 
우선 민주노총은 상부에서 정치위원회를 공격적으로 가동해야 하고, 지역 차원에서는 지역구별로 노동자 민중정치위원회를 가동해야 합니다. 소선거구제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는 사표가 되는 구조이기에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선출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찍고, 지역구 후보는 지역구 정치위원회 출신 후보 등 단일한 목소리를 내도록 조직해야 합니다. 목소리의 초점은 우선 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들을 조직화하고, 이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를 지지하거나 혹은 그 입장에 반대했던 기존 국회의원을 퇴출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SSM(기업형슈퍼마켓), 신용카드 수수료, 상가임대차보호법 문제뿐만 아니라 세입자 문제, 최저임금 문제 등에 대해 진보진영 내 어느 정도 합의가 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그 합의에 동의하는 범위 내에서 후보 전술을 구상해야 합니다. 예컨대 그동안 국회에서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았던 의원들은 퇴출시키고, 나머지 야당 후보에 대해서는 진보진영의 입장을 얼마나 지지하느냐에 따라 후보전술을 구사하는 겁니다. 
그리고 총선 후에는 진보정당 재건을 위한 지역 맹아조직을 만들고, 중앙에서는 진보정당이 필요하며 적어도 진보정당이 의회교섭단체를 구성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최소 합의를 위해 정치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정치활동을 해서 왜 정치적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해야 합니다. 정치적 개입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이번 총선을 활용하는 것이 현재 진보진영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중심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또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유명무실한 정치위원회를 재가동해서 대중들의 생활과 관계있는 문제들을 정치화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번 국회에서 반노동 입법에 앞장선 당과 의원들을 퇴출시키는 작업을 해야겠죠. 현역 반노동 국회의원 블랙리스트, 친노동 혹은 중립적인 사람에 대한 의회활동 성적표를 만들어서 모든 조합원들에게 유포하는 정치개혁 활동을 해야 합니다. 소위 시민운동식 정치운동인데 이러한 일을 민주노총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공회) 새로 출범한 통합 진보정당이, 거기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결국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세력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선거 전략과도 연관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상균 위원장의 구속 상황에서 얼마나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울러 정부의 강력한 노동개혁 드라이브에 진보진영이 힘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도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리는데, 국민적인 지지를 어떻게 실제 지지세력으로 전환해 동원할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개인적으로 최저임금 문제가 일정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도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높은 수준이라고는 못 합니다. 또한 최저임금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청년이기도 합니다. 즉 이것은 노동이슈이자 청년이슈로서, 양자를 함께 풀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여당의 노동개혁 움직임에 대응합니다. 마침 내년 최저임금 투쟁이 총선 일정과 맞물려 있으니, 총선 국면에서 모든 정치세력들, 특히 여권을 압박해, 2017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일종의 ‘불가역적인’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낸다면, 선거의 구체적 결과와 상관없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노동운동, 시민운동, 언론운동 포함해서 현실적인 대안을 들자면 원론적이긴 하지만 교육이 답이라고 봅니다. 저도 과거에 언론노조운동을 해봤는데 일상적으로 교육을 한 적은 없고, 걸핏하면 파업 투쟁을 했죠. 
또한 제가 언론운동의 일환으로 새언론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구성원 나이가 다 50대 이상입니다. 재생산이 안 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돈과 같은 물적 토대가 약하고 운동의 이념, 현실 인식과 관련한 대안을 찾는데 토대가 될 교육활동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과 관련해서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해야 그나마 언론 보도가 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작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하려면 이제 노조도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투쟁에 더해 교육과 연구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죠. 
 
이병훈) 그동안 진보정치가 계속 분열, 후퇴해 왔는데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바닥을 치고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 민주노총이든 노동단체든 집토끼의 결집을 원한다면 정파와 분파의 벽을 넘어서는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산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기존의 구닥다리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고요. 집토끼는 단합하고 산토끼에게는 진보의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국회 내 의석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진보정치에 관심을 갖고 희망을 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년을 기점으로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남북관계 악화되면 남한 민주화에 문제 생긴다”
사회) 국내 정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남북관계입니다. 그런데 현재 남북이 독주체제로 가다 보니 남북관계 문제가 정치 문제에 묻혀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중 간 세력 다툼 속에 갇힌 듯한데, 남북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박인규) 남북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인데도 대다수 국민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백낙청 선생은 87년 이후를 남북관계와 민주화의 선순환 체제라고 했습니다. 남한이 민주화되었기에 남북관계의 발전이 가능했다는 겁니다. 거꾸로 말하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남한의 민주화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실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은 퍼주기 논란과 남북관계 개선의 지체를 초래했고, 2010년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가 단행되면서 남북관계의 악화가 종북 프레임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관계의 악화가 국내 정치에 이용되는 측면이 있는 거죠.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이명박 정부 때 두 번의 수평적 정치교체를 이뤘으므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보니 아니더라고요. 비록 박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지만 사리사욕을 챙기기보다는 공적인 책무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북관계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 대통령이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죠. 박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말했지만 지난 8.25 회담 이후 8년 만에 열린 12월11일의 남북 당국회담은 끝내 결렬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보면 국민들을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협상이라면 모름지기 주고받아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무조건 따르라’는 식입니다. 북한의 제1관심사는 금강산 관광 재개인데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전면 생사확인, 환경‧민생‧문화 등 3대 통로 개설,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협상이 아닌 굴복을 원하는 방식입니다. 
전경련 쪽에서도 남북한 경제협력 문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남북문제가 민주화의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와도 관련이 있다는 방증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북한이 남한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쌀값이 엄청 떨어지고 재고미도 많다는데,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한에 쌀, 비료를 지원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했습니다. 남북관계를 풀려면 단적으로 말해 북한이 원하는 경제적 지원을 하면 됩니다. 남북관계 개선이 우리 경제의 돌파구인 동시에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중요한데, 정부는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올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함께 미일 양국의 동맹이 강화됐습니다. 그러면 중미 간의 군사대결도 강화될 것이고, 한국으로서는 두 강대국의 군사 대결에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12월11일 회담이 결렬된 것을 보니 당분간 남북관계의 개선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동춘) 내년 총선 이후 대통령의 권력에 누수가 생긴다면 기업가들이 순전히 경제적 이유 때문에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할겁니다. 원래 노무현 정부 때 개성공단 2단계 개발 및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 같은 남북한 개발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한 자본의 출구가 없잖아요. 자본의 이해 때문에라도 권력에 누수가 생기면 자본 측에서 문제제기할 겁니다. 
현재 남한은 오로지 경제 성장만을 갖고 북한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가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한의 공멸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필요합니다. 저도 최근 다산연구소 칼럼에 ‘통일을 잊자’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항상 통일을 생각하되, 통일을 말하지는 말자고 했습니다. 대신 어떤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인가를 갖고 이야기 하자고 했습니다.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봐도 좋습니다. 우리는 미국,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있는 탓에 어차피 양쪽 심기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르는 척하면서 무엇이 우리나라에 더 이익이 되는지 합리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집단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병훈) 두 분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정치와 관련해서 솔직히 고민이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이 보수 진영으로부터 통렬한 비난을 받고 대중으로부터 표를 잃은 것은 ‘서민들의 민생은 파탄 났는데 북한에는 돈 싸들고 간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이 먹혔기 때문입니다. 대북관계, 통일문제는 우익에게 틈새 이슈가 됩니다. 그리고 자본이 싼 인건비를 찾아 북한에 진출한다면, 진보진영에는 정치‧노동‧경제적으로 어떤 후과를 초래할지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이 또한 필시 정치적으로 크게 악용될 것 같습니다. 
 
김공회) 남북문제와 관련, 자본 측이 북한 진출을 원할 것 같은데 왜 경제협력이 지지부진이냐는 목소리가 종종 나옵니다. 표면적인 문제는 5.24 조치와 미국의 제재 조치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남북경협 실무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고, 최근 중국 주도의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상황은 급진전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의 신년메시지를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갖는 의의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중소기업 위주로 되다 보니 사실 경제적으로는 그 성과가 크지 않았습니다. 되돌리기 어려운 성과, 북한 입장에서도 포기할 수 없고 안달할 만한 성과라기엔 다소 미흡하다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대기업이 대규모로 진출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진보진영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 경제학자로서 이 문제는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한편에서는 재벌 위주의 경제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대기업들이 북으로 대거 진출해야 한다고 하니 말씀입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북한과의 경협이 대기업에도 ‘군침도는’ 사업이라면 이를 가지고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일정한 사회적 의무를 강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성격이 바뀌어야겠죠. 
 
사회) 이제 본격적으로 경제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현재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밀어붙이는 것이 노동개악입니다. 요즘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하철, TV 광고가 많아졌더라고요. 경제문제, 민생문제가 전부 노동개혁으로 모아지는 형국입니다. 경제 문제와 노동 개혁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정부는 왜 저렇게 노동개혁에 목을 매고 있는 걸까요. 
 
 
우려스런 정부 프레임 “노동개혁 못하면 경제 망한다” 
김공회) 정부의 무리하다싶은 노동개혁은 경제 실정의 책임을 노동계에 돌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현재 경제 전반이 어떤지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는데요, 지금 경제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불평등·양극화가 심해지니 돈이 소수에 집중되고 이들을 뺀 나머지는 소비하거나 투자할 돈이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정부 세수도 줄고, 적극적인 증세도 하지 않으니 정부마저도 돈이 없습니다. 이러니 빚이 늘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도 경제 전반이 침체돼 있고 미래는 불안하니 돈이 있어도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너무 안일해 보입니다. 정부가 내놓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그 증거입니다. 특히 민간소비의 경우 정부는 매년 5% 정도씩 증가하리라고 예측하지만 최근 실적은 1~2% 증가에 그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3분기에는 민간 소비가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낙관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다 알면서 국민을 일부러 속이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 이렇게 경제가 계속해서 취약해지고 있는 데는 아랑곳 않고 정부는 건설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건설투자 위주로 성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태의연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내년에 미분양 주택 문제가 터질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는 상황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한 발상입니다. 십분 양보해 이런 방식을 통해 성장이 된다 해도, 그것은 경제의 취약화를 대가로 할 것입니다. 이런 기본입장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입니다.
제가 앞서 박근혜 정권을 무위정권이라고 했습니다.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정권 출범 초기에 복지, 일자리가 경제 영역에서 핵심 화두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기초노령연금을 포함해 다양한 복지정책을 수행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증세 대신 ‘증세 없는 복지’를 통해, 즉 지출을 효율화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정책관리목록에서 이는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정부는 오히려 지출을 줄이려 합니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고용률 70% 달성’이 있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2013년 6월에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했고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취업자 수를 240만 명 가까이 늘려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올해 고용률은 67%가 되어야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전망하는 올해 고용률은 65.7%입니다. 즉 45만 명 정도가 더 취업을 해야 올해 목표치가 달성되는 것입니다. 이번 경제전망에서 발표된 내년도 고용률 전망치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 벌어져, 결국 2017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2017년에는 100만개 이상의 새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쯤 되면 ‘고용률 70%’라는 목표는 포기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한편 2013년 2월 출범 뒤 1년여 간 사실상 표류하던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2014년 초에 느닷없이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비판도 많았지만, 어쨌든 정부로서는 향후 우리 경제를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나름의 중기적인 청사진을 내놓은 것입니다. 고용률 70% 달성은 바로 이 3개년 계획에서도 골간을 이룹니다. 그렇다면 고용률 70% 달성이 사실상 물 건너갔으니 정부는 3개년 계획도 실패로 판명한 셈인데요, 이번 <2016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동개혁을 중심으로 한 4대개혁의 성공이 3개년 계획 성공의 전제조건’이라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3개년 계획이 공식 발표된 2014년 2월에는 제기조차 되지 않았던 노동개혁 등 4대개혁이 3개년 계획 성공의 전제조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조경제 구현, 고용률 70% 달성이 아니라요.
결국 이런 사정을 보면, 현재 정부는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실패의 책임을 노동에 떠넘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경제성장과 관련해서 노동개혁은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정부는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어서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지난 15년간 한국 노동시장은 계속 유연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몇 년간 기업 수익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요.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겠죠. 오히려 지금은, 기업이 노동자들을 윽박지를 게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허용하면서 위기 극복을 위해 협조를 구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역할을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겠죠. 복지확대도 그 일환이겠고요.
 
이병훈) 저는 노동개혁으로 범위를 좁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 정부의 차이만 있을 뿐, 박정희식 경제모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도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업 살리기 정책을 폈습니다. MB 정부는 처음부터 친기업 정책을 내놓았죠.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부의 친기업 정책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 온 채 기업의 투자를 통해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소득이 올라가고 일자리가 해결된다는 그들의 선순환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에 있어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김현숙 고용복지수석과 같은 신자유주의 지식인들과 최경환 장관을 비롯한 관료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정답인 것처럼 손에 틀어쥔 채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며 윽박을 하는 국면입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질을 올리겠다)’ 공약을 제시했는데 그것만큼 괜찮은 정책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당선 후 늘지오 공약을 폐기했고, 고용률 달성에도 실패했으며 그나마 늘어난 일자리조차 질이 낮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이 성사된다면 이후 노동시장의 모습은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사용자 멋대로 취업규칙 변경, 변하지 않는 장시간 노동체제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받은 충격에 더해 노동시장은 완전 유연화되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평생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국민들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진보진영이 정치권 내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부입니다. 노동운동의 경우 2014년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을 벌이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침체에서 벗어나 반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올해에도 정부의 노동개혁에 맞선 총파업, 민중총궐기를 통해 여전히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의 중심이 되어 정부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노동운동을 비롯해 진보진영이 결집해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과연 총선 전까지 정부의 밀어붙이기를 막아낼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세대 구도 극복 위해 조직노동이 나서야
김동춘)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은 명분 쌓기용 입니다. 내년 경제상황이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부는 분명 노동개혁 법이 통과되지 않아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노동개혁 문제가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계속 그렇게 주장해서 실제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를 모면하거나 총선에 대비하기 위해서인 거죠. 
물론 노동계의 잘못도 있습니다. 이른바 ‘귀족노조’에 대해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 결과, 정권에게 공격의 명분을 줬습니다. 저성과자 해고 문제도 전체 고용의 10%도 되지 않는 일부 대기업 노동자의 문제인데 이를 계속 강조하니 일반 비정규직들이 굉장한 불만을 갖게 된 것 입니다.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대 간 대결 구도를 극복해야 합니다. 청년세대는 불행하고, 기성세대는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잖아요. 며칠 전에 뉴스를 보니 1차 퇴직시기가 53세라고 합니다. 노동개혁 문제는 50대 이후의 삶, 20~30년 미래 전망과도 관련되어 있는데 정부는 마치 청년만의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구도 자체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노동이 맞서 싸워야 합니다. 결국 관건은 청년, 비정규직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될 것입니다. 노동 문제를 어떻게 사회적 담론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과연 모든 사람들이 비정규직이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인지 얘기해봐야 합니다. 민주노총도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부 의도대로 민주노총이 무너지면 비정규직‧미조직노동자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는지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현 국면을 정면 돌파해야 합니다. 
 
이병훈)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노동계는 노동개악 저지 투쟁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진정한 노동개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전략은 포용성입니다. 현재 정부는 비정규직이 어려우니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는 식으로 노동자 간 대립 구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노동이 미조직, 비정규직과 청년노동자를 포용하는 모습은 물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구체적인 예로 임금피크제와 일자리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조직노동이 ‘임금과 고용 등 내 것은 하나도 건드릴 수 없다’라며 울타리 치고, 정부가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 반대한다면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은 조직노동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임금 공유제’를 도입한 SK하이닉스처럼 자신의 몫을 내어 주어야 조직노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공공부문에서도 내부적으로 임금피크제를 통해 일자리를 나누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면 청년 일자리 창출을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협상을 해야 하는데, 최근 모습을 보니 도입을 막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조직노동에 대한 정당성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아울러 절망스러운 점은 우리 사회가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함께 손잡고 문제를 풀기보다, 내가 알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많이 퍼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큰 주체는 여전히 노동운동입니다. 단결체인만큼 조직노동의 힘에 기반 하여 우리 사회의 이기주의‧개인주의‧파편화를 극복하고 연대‧나눔‧공유의 포용 전략을 좀 더 적극적, 공세적으로 펼쳐나간다면 이 위기에서 탈피하여 반전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는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의견 나누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위기극복 위해 시급한 사회적 세력 복원
김동춘) 지금 우리는 정책 토론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책 대안의 제시도 불가능하고, 대안을 제시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유신 말기의 상황처럼 참 갑갑합니다. 모든 문제가 다 정치로 통한다는 것은 엄청 후진적인 겁니다. 유신 체제 이후 40년이 지났는데 모든 문제가 대통령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도 우리 사회가 굉장히 퇴행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정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정치변화가 일어나 야권이 집권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상으로 잘 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장기적인 담론, 적어도 한 세대 정도는 내다보는 일종의 사회, 정치, 경제개혁에 대한 구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당연히 환경 문제와 인구 감소 문제 등도 포함되어야 하고요. 그런데 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또 꾸준히 고민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없습니다. 저는 그것이 진짜 위기라고 봅니다. 
사실 정치가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고, 정당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정치 바깥의 세력이라도 꾸준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죠. 단기적 과제는 정권 교체를 담당할 정치주체의 형성이지만, 중기적 과제는 한국적 정책모델을 일관되게 만드는 작업으로, 그 정책이 실행될 수 있도록 정치세력을 확보하는 작업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제가 얼마 전 대학교 강의 종강 때 학생들과 청년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해봤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과 책이 소위 대박을 쳤는데 요새는 완전히 조롱당하고 있더라고요. 3년 만에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거짓말 하지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년들의 심경이 변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전망이 없다, 잘될 것 같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분노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분노는 있는데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분노를 표현할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더군요. 청년들이 분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완전히 고립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뮤니티, 지역사회, 직능집단, 노조의 역할을 복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비전과 정치적 문제에 대한 대안 제시가 가능할 텐데, 지금은 집단들이 다 해체되어 있는 탓에 고통스러운데도 문제제기를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회적 세력을 복원하기 위한 일들을 같이 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박인규) 우리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세월호 때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물론, 야당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고 하는데 실제 정치인들은 그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잊고, 같은 인간끼리 공감과 존중이 사라져 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4~5년 전 우리 사회의 공통정서는 불안이었는데,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로는 무기력함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국민적 분노가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또 개인의 분노가 아니라 집단적 분노가 될 수 있을지 갈림길에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한겨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나는 행복하다”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60%인데, “우리 사회가 행복하다”라고 답한 비율은 40%더라고요. 연대가 안 되고 있다는 거죠. 
또한 학계, 지식인들의 사회 전체를 보는 시각이 부족하고 파편적인 것 같은데, 전체를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사회 변화 위해 대중 결집·연대시켜야
이병훈) 요새 한국 사회가 ‘헬조선’, ‘N포세대’, ‘각자도생’의 나라가 되었다고 하죠. 경제, 사회 상황이 지옥처럼 느껴지거나 포기 혹은 좌절하게 만드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인데, 상황이 계속 악화될 것인지 아니면 반전시킬지 수 있을 것인지 내년 총선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내년 선거에서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민생도탄의 상황에서 대중이 자동으로 분노하거나 선거에서 표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보의 가장 큰 숙제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소수가 부와 혜택을 독식하고 나머지 사람을 ‘흙수저’로 만드는 상황에서 진보라고 한다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대중을 결집시키고, 연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보의 가치와 의미를 현실화시켜야 하는데, 실제로는 못하고 있죠. 저는 요새 토론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 어떻게 결집할 것인지를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보의 목소리만 높이면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는 생각과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 비정규직, 지역 등 각자의 상황에 맞게 진보진영을 결집시킬 수 있는 정치적 고민과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갖고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겪는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공회) 저는 뻔뻔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살기 어려운데, 권력자들은 책임지지 않고 뻔뻔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요새 정부는 청년을 볼모로 잡아서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여러 의제들을 밀어붙이고 있죠. 최근 두산인프라코어에서 20대 신입사원에게 희망퇴직을 실시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경영상 어려움에 따른 것이라는 회사측의 설명과는 달리, 회사가 무리한 M&A(인수합병)를 추진했음이 밝혀졌고 그런 와중에도 모기업에 대해서는 거액의 불필요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지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1997년 이른바 ‘IMF 사태’부터 지금까지 노동자, 서민이 경제위기의 비용을 졌습니다. 전체 일자리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변했고,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으며, 퇴직 후에는 유일하다시피 한 재산인 퇴직금이나 주택을 담보로 사업하다가 망하기가 일쑤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빈털터리가 됐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을 발판으로 경제는 어느 정도 성장했습니다. 모자란 수요는 부채로 틀어막았습니다. 1,2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는 그 결과입니다.
이렇게 지난 10여년 간의 경제성장은 우리 민중들의 희생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경제는 어렵습니다. 자본과 정권은 뻔뻔스럽게도 노동자들에게 또 다시 손을 벌립니다. 그래도 예전엔 읍소라도 했는데, 이번엔 아예 노동자 세력을 노골적으로 악마화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부는 청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놓지만, 실상은 그들을 수탈해 현재의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로부터 뭔가를 빼앗기보다는 응당 그들에게 줘야할 것들, 응당 그들이 누려야 할 것들을 박탈함으로써 말입니다. 이 또한 뻔뻔스러운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사회 불평등, 노동시장 양극화, 경제 위기 등 문제가 산적한 그야말로 엄혹한 상황이지만, 지적해 주신대로 연대‧나눔‧공유의 포용 전략을 바탕으로 노동운동과 시민사회를 포함한 진보진영이 분발한다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진보진영의 분발을 기대하며 좌담을 마치겠습니다. 긴 시간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