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신뢰 잃은 경제정책과 ‘무능한 보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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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제목: 
이명박 정부 1년 평가와 노동운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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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2008년도 사회경제학계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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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신자유주의와 개발독재 이데올로기의 기묘한 결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2008년 2008년 11월25일 최저임금법 개악 추진을 규탄하는 민주노총의 기자회견. ▶ 노동과세계 ]

이명박 정부의 전체적 국정기조는 ‘선진화’이다. 선진화의 방향은 자유화, 시장화, 법치화로 설정되어 있다. 따라서 선진화는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화는 교육, 의료 등과 같은 사회 서비스의 상업화나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의미한다. 법치화는 자유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법적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기조를 실현하기 위한 두 가지 주요 정책수단은 규제완화와 감세로 제시된다. 주지하는 바대로 규제완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 요소이다. 

신자유주의 모델과 개발독재 모델의 기묘한 동거

이러한 국정 기조에 비추어볼 때 결국 이명박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영미형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경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구미의 선진경제에는 자유시장경제와 조정시장경제라는 두 모델이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 = 자유시장경제화’라는 등식을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은 ‘작은 정부’로 주어진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식적 경제정책 기조와 더불어, 지난 8개월 동안 이명박 정부는 과거의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개입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정 품목의 물가를 행정적으로 집중 관리하는 것이라든가 수출 증대를 위해 고환율 정책을 실시하는 것,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들에게 쌓아둔 달러를 매도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글로벌 경제 시대에 이러한 개발독재적 경제관리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러한 구태의연한 경제운영을 진행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를 국정 철학으로 내건 정부가 반시장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 프로젝트에서 본 것처럼 토목사업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려고 했는데, 이는 지식기반경제가 요구되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대운하가 아무리 환경친화적으로 건설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건설공사일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도로 건설, 운하 건설과 같은 사회간접자본 형성을 위한 대규모 국책 사업이 아니고, 지식기반경제로의 완전한 이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다. 재앙적 수준의 환경파괴를 수반할 것이라는 경고와 투자비용에 비해 예상 수익이 미미하다는 분석에 따른 국민 반대 여론으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일단 유보되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구상자들의 대규모 토목·건설 사업 지향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최근까지도 정부가 발표하는 성장 촉진 관련 정책들 속에서 이러한 지향성이 많든 적든 비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신개발주의라 규정되기도 한다.

MB 녹색성장론, ‘생태주의 대전환’일까 ‘대기업 프렌들리’일까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같은 개발지향적 대규모 국책사업을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던 계획이 촛불집회로 표출된 국민 저항의 벽에 부딪쳐 좌절되자, 이명박 정부는 지난 8월15일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를 통해 이른바 ‘저탄소 녹색 성장’이라는 새로운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녹색기술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녹색성장은 녹색기술에 기초한 성장으로, 이산화탄소 발생과 환경파괴를 줄이는 녹색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성장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이다. 그것은 오늘날 선진국에서 지속가능한 선진경제의 한 구성요소인 청정경제(clean economy)를 실현하면서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녹색성장론은 지금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중추적 지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녹색성장으로 선진한국”이라는 슬로건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것만 보면 이제 애초에 이명박 정부가 국정 방향으로 내건 선진화의 내용이 녹색성장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녹색성장이 ‘성장’에 강조점이 찍힌 하나의 성장전략인지, 아니면 ‘녹색’에 강조점을 둔 새로운 국가전략인지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 녹색성장론이 만약 성장전략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녹색기술 투자로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녹색은 단순히 성장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다. 반면 국가전략으로 격상된다면, 그것은 이명박 정부가 대선시기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기를 거쳐 현재까지 지향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생산력주의(liberal productivism) 패러다임을 완전히 포기하고, 녹색을 경제와 사회의 구성 원리로 설정하는 생태주의적 패러다임으로 대전환하는 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인사들의 성향,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성격,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기업과 부유층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 등에 비추어 볼 때, 아무래도 녹색성장론은 단순한 성장전략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특히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정을 직접 담당하는 각부 장관, 청와대 참모, 국가경쟁력위원회 등 대통령 소속 주요 자문위원회 위원장들이, 대부분 과거 개발독재 시절의 성장지상주의와 개발주의, 즉 ‘선 성장 후 분배’, ‘선 성장 후 환경’ 관점에 편향되거나, 아니면 신자유주의 이외의 “대안이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명제를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욱 이러한 추정을 하게 된다. 

만약 녹색성장론이 단순한 성장론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결국 대규모 녹색투자를 할 재원이 있는 대기업들에게 새로운 투자기회를 제공하고, 그 대기업들에게 국가예산을 지원하는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으로 끝나버리고 말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지지와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경제정책

앞에서 본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한편으로 한국의 1987년 이전의 개발독재 모델 -즉, 박정희 모델- 의 잔상을 좇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80년대에 미국과 영국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모델은 김대중 정부 시절 초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하에서 외적 강제와 자신의 선택을 통해 부분적으로 도입됐고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 주저하면서 절충적으로 선택됐던 것인데,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전면적이고 본격적인 도입이 시도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로의 급선회는 예기치 못한 촛불시위로 제동이 걸렸다.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변형된 형태로 우회로를 통해 실현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수정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세계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에 이미 작동 불가능한 개발독재 모델과, 최근의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것임이 증명된 신자유주의 모델 둘을 동시에 좇고 있는 형국이다.

개발독재 모델은 물론이고 신자유주의 모델도 더 이상 ‘선진화’ 모델이 아니다. 만약 선진화를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체제로의 진화로 이해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를 지향한다고 선포해 놓고 비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결과를 초래할 개발독재 모델과 신자유주의 모델을 따르는 것은 자가당착이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진정한 선진화는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지난 8개월 동안 이미 생명력을 다한 1970년대 한국형 개발독재 모델과 1980년대 영미형 신자유주의 모델 사이에 오락가락하는 일관되지 못한 정책 노선을 걸어왔다. 그 결과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과 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폭락하고, 시장을 강조하는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국민보다 민주의식 낮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 폭락

먼저, 국민의 지지 급락은 물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졸속으로 재개한 것이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국민의 평균적 의식 및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과 인사를 단행한 것에도 크게 기인했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지적할 것은 이명박 정부의 민주의식이 국민의 평균적 민주의식보다 낮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부와 국민 간의 민주의식 격차는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비민주적인 정부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섬기는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제1의 국정 방향이다. 여기서 “섬기는” 대상은 물론 국민이다. 하지만 국민의 정서에 반하는 치부를 해온 장관들과 참모를 기용한 인사 실패, 금산분리 완화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정책과 같이 ‘경제 살리기’란 명분으로 재벌과 부유층의 요구만을 수용하는 정책 추진, 미국을 맹종하는 태도 등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아니라 “미국과 재벌과 부자를 섬기는 정부”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력 강화란 명분으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의 추구는 비수도권 주민들에게 “수도권을 섬기는 정부”란 인상을 심어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런 까닭에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펴겠다고 했을 때, 다수의 국민은 그것을 “재벌 프렌들리”, “부자 프렌들리”, “수도권 프렌들리”로 받아들였다.

정책 일관성 없는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 상실

다음으로, 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사회 갈등 심화는 시장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계기였다. 시장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에게 있어서 정부의 일관된 정책기조 유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정책에 일관성이 전혀 없었다. 한반도 대운하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하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치자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뒤 최근에는 국토해양부 장관이 “국민이 원한다면 다시 추진할 수도 있다”는 의중을 보인 점, 혁신도시 건설을 재검토하겠다고 하다가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이 일자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점,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려다 반대에 부딪치자 “민영화가 아닌 선진화를 하겠다”고 모호하게 후퇴한 점, 수도사업 민영화 방침을 철회한 점, 고환율 정책을 실시하다가 저환율 정책으로 선회한 점 등등은 정책의 일관성 결여를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러한 정책 일관성 결여는 시장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에게 혼란과 불신을 초래하여 경제 불안정성을 증폭시킨다. 즉 이명박 정부는 시장에게 일관되지 못한 엇갈리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경제주체들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반면 투기 심리는 조장되었다. 특히 최근 세계금융위기에 대응하여 미국과 유럽에서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은행을 국유화하는 등의 강력한 규제정책을 실시하려고 하는 것과는 반대로, 금융위기 속에서도 규제완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한 국민과 시장의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의 자유화가 진전되고 시장 금융시스템이 도입되며 금융주도 축적체제 요소가 강화되는 등, 미국식 금융 자본주의가 글로벌 스탠더드의 확립이라는 이름으로 이식되어왔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런데 바야흐로 세계금융위기의 발발로 마침내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파탄이 분명해진 상태임에도, 이명박 정부는 취약한 금융감독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금산분리를 완화하여 재벌의 은행소유를 가능하게 하고 금융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의지를 보이고 있다. 세계금융위기에 직면하여 차제에 그동안 도입된 불안정한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전면 개혁하여 안정적인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구축해야 마땅함에도, 오히려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강화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완고한 역행이 시장의 불신을 강화하고, 따라서 외국인 투자자의 철수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 2008년 11월3일 민주노총 임원들과 산별연맹 대표자들의 '이명박 정부 규탄 및 신자유주의 시장화정책 폐기 촉구' 기자회견.  ▶ 민주노총 ]

위기관리 능력 없는, “무능한 보수정부”

이뿐이 아니다.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국토를 파괴하고 환경재앙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한반도 대운하 추진, 사교육을 강화하고 계층 간 학력격차를 확대시킬 영어몰입교육 실시, 의료소외 계층 양산과 의료서비스 양극화를 초래할 병원 영리법인 설립 허용과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시도, 수도요금 인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수도 민영화, 공기업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초래할 공기업 민영화 등, 환경·의료·교육·복지·고용 등의 측면에서 국민의 실생활을 위협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전례 없는 대규모의 장기간 촛불 시위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회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불안해지고 경제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불신이 커지게 된 것이다. 

아울러 참여정부에서 강력히 추진되어온 국가균형발전정책이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후퇴함에 따라 비수도권 주민의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정부 공문서에 ‘혁신’이란 말을 빼라는 지시에 따라 참여정부에서 추진된 ‘혁신주도 지역발전’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이 비수도권에 뿌리내리기도 전에 유실될 지경에 이르렀다. ‘균형’과 ‘혁신’이란 두 개의 키워드가 빠지면 ‘중앙집권-수도권 일극발전체제’를 ‘지방분권-다극발전체제’로 전환시킬 동력이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미약하나마 형성되어온 지방의 희망이 사라질 우려가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아래에서는 정치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정책은 효과가 없고 지속 불가능하다. 이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정착되어있는 한국에서 이와 같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경제정책이 성공할 리가 없다. 무엇보다 정책일관성의 결여가 국민의 지지와 시장의 신뢰를 잃게 만든 최대의 요인이었다 할 수 있다. 더욱이 촛불시위에 따른 정치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했고,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국내 여파를 타개할 효과적 방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이러한 정치적 및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무능한 보수정부”란 국민의 질타가 이명박 정부에 가해지고 있다. 

혁신주도 동반성장체제와 새로운 뉴딜로 가야

현재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진전된 양극화를 해소하고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한국경제의 전면적 위기로 전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기조를 견지하고 어떤 정책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인가?

먼저, 개발독재적 경제운영방식과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양자 모두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구현해야 한다. 즉 과거의 한국 모델인 개발독재 모델 혹은 발전국가 모델과 미국형 신자유주의 모델이 아닌, ‘한국형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이미 파탄 난 미국형 금융주도 신자유주의 모델을 추종하고 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한국경제를 추락하게 만들고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경제정책 기조를 대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고 사회경제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동반성장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금융주도 경제가 아니라 지식주도 경제로 나아가고, ‘혁신주도 동반성장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여기에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녹색성장이 결합되어야 한다. 금융위기를 차단할 경제안전망(economic safety-net)과 양극화를 해소할 사회안전망(social safety-net)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경제정책 기조의 설정과 함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핵심 정책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라 금산분리를 견지해야 한다. 부유층을 위한 감세가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감세를 해야 한다. 따라서 종부세 완화 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 ‘재산소득 증세-근로소득 감세’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건설투자 중심으로부터 인적자원투자 중심으로 정부의 재정계획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연구개발(R&D)투자와 인적자원개발(HRD)투자가 균형을 이루도록 정부예산 지원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국영기업은 민영화할 것이 아니라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합리화를 해야 한다. 

노동시장 정책은 유연성과 안전성이 결합된 유연안전성(flexicurity) 실현의 방향으로 설정돼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은 충분히 유연화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안전성 실현을 위해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ALMP)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축소와 차별 해소를 위해 정부, 사용자, 정규직, 비정규직이 동참하는 사회적 타협을 도출하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이런 의제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위상과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들은 결국 사회통합이 이루어지는 혁신주도경제, 다시 말해서 혁신주도 동반성장체제에 기초한 한국경제의 제3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심각한 경제위기 국면에서 지금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것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뉴딜(New Deal)이다. 1997년 위기 때 공적자금으로 재벌기업과 금융기업을 회생시켰다면, 2008년 경제위기에서는 중산층,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 지역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플랜이 필요하다. 이 뉴딜은 미국의 1930년대식 건설투자 중심의 구 뉴딜이 아니라 인적자본투자와 녹색기술투자 중심의 새로운 뉴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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