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맞선 사회공공성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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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사회공공성’은 민주노조운동에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2003년 민주노총은 향후 5년간 추진해야 할 사회적 과제로 ‘사회공공성 강화’를 채택했다. 한발 더 나아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전략적 좌표로까지 이를 발전시키자는 이야기도 있다. 이를테면 2004년 4월에 있었던 공공연대 확대간부 수련회에서 오건호 민주노총 전 정책부장은 사회공공성 투쟁을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정체성 찾기”로 정의하면서,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전략적 좌표로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굳이 멀리 까지 갈 필요가 없다. 바로 현재 우리 노동운동 내에서도 ‘의료공공성’, ‘교육공공성’, ‘에너지공공성’, ‘공공 철도 건설’, ‘지하철 안전’, ‘문화예술 공공성’ 등이 떠들썩하게 이야기되고 있고, 다른 부문들에서도 노동운동의 당면 과제로서 ‘공공성’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사회공공성 강화’인가 

공공성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IMF 경제위기 이후 공공부문에 구조조정이 몰아닥치면서부터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지배질서 구축 차원에서 진행된 구조조정에 맞서, 저항의 담론이자 현장에서 치열한 대중투쟁의 도구로서 ‘공공성 강화’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기존에 ‘사회개혁투쟁’이 존재했음에도 왜 ‘사회공공성 강화’가 새롭게 제기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시하기도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노동사회』 2003년 12월호 권두언을 통해 ‘사회공공성 강화’와 ‘사회개혁 투쟁’이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하고, 사회개혁과 별도로 사회공공성 강화를 논의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기존 사회개혁 투쟁의 계승을 내세우며 사회공공성강화가 필요없다는 주장이나, 사회개혁투쟁은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으로 발전적 해소가 필요하다는 주장 둘 다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장 타당한 방식은 현재의 민주노총 지도부가 선거 당시 제시했던 구호처럼 “사회공공성, 사회개혁 투쟁 강화”를 병렬적으로 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민주노총 설립 당시부터 1997년까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 전개됐던 사회개혁투쟁 중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제기된 세제, 연금, 의료, 교육, 공기업 개혁 같은 주제들의 경우, 시장화·이윤화에 대한 대항투쟁으로서 사회공공성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일반 민주주의 개혁 차원에서 제기된 정치, 언론, 인권, 사법 개혁 등의 경우 여전히 민주적 개혁요구와 투쟁이 필요한 만큼 사회개혁투쟁으로서 정체성 유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 부문은 과거 ‘교육개혁’과 현재의 ‘교육공공성 강화’의 내용이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과거의 교육개혁은 교육민주화의 이름아래 민주적 참여가 가능한 학교운영 요구, 교과과정 및 교육내용의 민주화가 주를 이루었다면, 현재의 교육공공성 투쟁은 교육제도에서 경쟁 및 시장화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으로 중심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시장만능주의에 맞선 공공부문 노조의 새 전략

사회공공성 투쟁의 내용을 ‘시장화·이윤화에 대한 대항투쟁’으로 정리한 오건호 민주노총 전 정책부장의 견해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영역'을 ’필수 서비스‘로 한정한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사회공공성 투쟁이 관념적인 논의의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과 대중실천 속에서 결합되면서 점차 전략적 과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사회공공성 투쟁의 영역이 필수서비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과 민중의 이익을 위해 확보해야 할 사회경제적 영역 전체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사회공공성 투쟁은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전략’으로서 설정되는 영역과 ‘노동운동의 사회화’를 위해 필요한 영역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공공부문 노동운동에서 전략적으로 획득해야 할 과제를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공공부문 노동운동에서 제시했던 각각의 공공성 영역, 예컨대 ‘의료 공공성’, ‘교육 공공성’, ‘에너지 공공성’, ‘공공철도 건설’, ‘지하철 안전’, ‘문화예술 공공성’ 등은 처음에는 하나같이 단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소비자 또는 수혜자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적 소유 증대’, ‘민주적 지배구조 정착’, ‘공공서비스에 대한 정부 투자 증대’, ‘공공서비스의 질 제고’ 등의 내용으로 확장되고 구체화되었다. 

지난 99년 이후의 굵직굵직한 투쟁들은 이처럼 확장된 사회공공성 투쟁의 내용을 실천적으로 보여줬다. 지난 99년 서울지하철, 2000년 한국통신, 전교조의 2001년 집단연가 및 2003년 NEIS 반대 투쟁, 2002년 철도·발전·가스 연대파업, 2003년 지하철 3사 연대파업 및 철도 6·28 파업, 2000년 경기도노조 파업 이후 계속되는 지자체 환경위생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최근 2004년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 등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매우 많다. 

고립 벗어나 지지받는 노동운동을 위한 대안

다음으로 ‘노동운동의 사회화’, 즉 사회적으로 지지받는 노동운동을 위해 필요한 사회공공성 투쟁의 영역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 및 정규직화 투쟁, 주40시간제 도입에 따른 공공부문 인력충원, 사회연대기금 조성 및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사회임금 쟁취 투쟁, 국민연금 등 4대 보험 개혁 투쟁 등이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영역들은 전체 노동계급과 민중의 이해가 직결되어 있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빈부격차 등에 대한 사회적 대안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이러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투쟁들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소중한 대안이기도 하다.

최근 공공부문 노동운동에서는 ‘투쟁’에서 뿐 아니라 ‘일상사업’에서도 사회공공성을 확보하려는 주체적인 노력들이 가시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돈보다는 생명을”이라는 구호 아래 건강보험 재정 확대 및 보험 적용 의료서비스 확대, 그리고 이용자 중심의 각종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을 일상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밖에도 철도노조, 발전노조, 가스공사노조 등 국가기간산업노조들이 질 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배구조의 민주적 개선을 위한 일상적 정책활동을 전개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리고 비록 주목은 받지 못하지만, 문화예술노조와 사회복지노조 등의 투쟁과 정책사업에서도 공공성 강화는 매우 주요한 전략적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공공부문 노동운동에서 사회공공성 투쟁이 현실에서 아직 확고한 지위를 점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각 산업, 업종별 노조들이 그들의 고유한 요구를 사회공공성 의제로 집약시켜 대중투쟁과 대중실천을 결합하려는 노력이 조금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아직은 사회공공성 투쟁을 대중투쟁이 아니라 정책적 영역으로 한정해서 생각하는 인식, 또는 꽃도 제대로 피지 못 했는데 열매를 거두려고 하는 조급함도 사회공공성 투쟁 대중화의 한계로 작용하는 듯 하다.

중요한 건 논쟁이 아니라 실천영역의 확장

사회공공성 투쟁이 점차 대중적으로 발전하면서, 이것의 위상에 대한 논의들이 심심찮게 진행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사회공공성 투쟁이 ‘소유의 사회화’를 확대하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의 투쟁’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전망을 제시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직은 자본주의 ‘대안’운동에는 이르지 못한 자본주의 ‘비판‘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의는 노동운동의 질적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논의만 지나치게 확장되는 것은 현실에서 대중의 투쟁과 실천이 발전하는데 오히려 해악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질서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이고, 이에 대한 저항의 담론이 ‘사회공공성 투쟁’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 섣부르게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측면을 꿰어서 논쟁을 확대시키기는 것은 필요 없는 짓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노동자들과 민중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내고 대중 실천과 투쟁 속에서 이를 사회변혁 역량으로 엮어내는 노력들이 더 중요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필요한 것은 모처럼 본격화된 새로운 운동의 지평을 얼마나 올바르게 대중 실천 및 투쟁과 결합시켜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운동을 전체 노동계급과 민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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