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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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의 꿈』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15편의 짧은 소설들과 ‘해동이네’를 무대로 펼쳐지는 짧은 연작 13편을 묶어 낸 소설집이다. 작가 김하경은 1992년에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고, 1999년 민주노동사 연구의 소중한 모범이자 치열한 보고문학인 『내 사랑 마창노련』을 출간했다.   

숭어? 맛이 없어서 회도 구이도 안되고 탕으로 밖에 잘 안 먹는 물고기다. 하지만 숭어의 알로 만든 ‘어란’은 예전에는 임금께 진상하고 명문대가 식구들이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단다. 작가 김하경은 숭어의 모습에서 암울한 고난 속에서도 건강하고 팔팔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본다. 물론 이는 찌개 냄비 속에서 입 쩍 벌리고 보글보글 끓고 있거나 배가 째져서 알을 모두 빼앗긴 채 말라 비틀어져 가는 숭어가 아니다. 

‘꿈을 꾸는’ 숭어들은 사라진 것처럼, 없는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이따금씩 수면 위로 도약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숭어, 결코 미끼를 물지 않는, 살아있는 숭어들이다. 그리고 87년 이후 거센 탄압 속에서도 노동조합을 꿋꿋이 지키며 노동, 민주, 인권, 평화, 사랑이라는 단어들에 생명을 불어넣은, 살아있는 노동자들이다. 

흔히들 노동자가 노동운동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강철의 제련과정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슬픔, 분노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불꽃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강철 말이다. 그러나 그런 모질고 독한 비유는 자글자글한 잔재미가 있는 우리네 노동자들의 삶을 넉넉하게 포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불의를 보면 못 참아하면서도 쥐꼬리만한 월급, 자라나는 자식들 때문에 움츠러들고, 서로 부둥켜 싸우고, 보듬고, 울고, 웃는 여린 마음 또한 노동자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꿈을 꾸는 숭어’에서는 ‘단련된 강철’이라는 표현에서 보다 그러한 ‘살아있음’을 더 느낄 수 있다. 

밋밋하고 평범한 이야기들이 전하는 감동

이 소설집 속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밋밋하고 재미없다. “어쭈, 소설 쓰고 앉았네”라고 말할 때의 그 소설, ‘선남선녀들의 비범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의 격렬한 사랑과 이별, 극한 상황에 몰린 이의 영웅적인 행동과 비극적인 죽음 따위가 없다. 

이 소설들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몇 걸음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가끔 손배·가압류의 놀라운 효과에 감탄하는 사장님들 같은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노조활동 때문에 가족과 부인에게 소홀해진 남편과 그런 남편이 얄미운 아내의 알콩달콩 치열한(?) 하룻밤 공방 이야기, 가족을 위해 뿌듯한 마음으로 마련한 ‘자가용’의 할부금 때문에 초과근무에 시달리다 코피를 쏟고 마는 노동자의 이야기 등은 잘 떠올려보면 언젠가 수다를 떨다가 한 번은 들어봄직 했을 만큼 현실과 가깝다. 그럼에도, 아니 그럼으로 해서 이 책은 “소설 쓰고 앉았네” 소리를 듣는 이야기들 보다 훨씬 감동적이다. 

『숭어의 꿈』이 밋밋하면서도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은 일상을 보듬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사실, 『숭어의 꿈』에 나온 소재들은 충분히 비극적으로 각색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창백한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면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삶 또한 구질구질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던 작가가 참담한 비극의 현장에서도 “다리를 절룩이며 웃고 떠들고 농담까지 나누는” 노동자들과 오랜 세월 함께 하며 얻은 깨달음이 그 밋밋함과 구질구질함 속에 있는 빛나는 삶의 진실을 캐 올린다. 그리고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른 숭어가 잠깐 맛 본 세상과 같은 그것의 울림이 읽는 이들의 가슴속에서 잔잔한 감동으로 오래도록 파문을 그리는 것이다. (김하경 짓고, 갈무리 냄. 8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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