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라는 이름의 각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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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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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서 나무로

얼마 전 '신갈나무 투쟁기'라는 책을 읽었다. 고요할 것만 같은 식물에게 웬 투쟁이냐고? 하지만 그 책을 읽다 보면 어미 나무의 품에서 한갓 도토리로 땅위에 떨어져 한 그루의 나무로 자라기까지, 씨앗으로 출발한 그 일생이 치열한 투쟁이라는 데 자연스럽게 동의하게 된다. 낙엽 위로 바로 떨어지면 새, 다람쥐에게 먹히거나 사람에게 채집되는 통에 일생은 그대로 종료된다. 운이 좋을 경우, 적당한 높이에 떨어진 도토리는 찬 겨울을 얼어붙은 땅속에서 보내면서 조심스레 잔뿌리를 뻗어내는 것으로 생장의 실마리를 마련한다. 싹을 틔웠다 하더라도 곤충의 침입에 맞서야 하고, 적당한 햇빛을 확보해야 하며, 무심한 인간과 짐승의 발굽을 피하는 것까지, 나무로 서기까지 홀로 치러내야 하는 전투는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무색하리만큼 처절하고 다양하다. 

사람의 삶도 이에 못지 않은 태풍과 격랑으로 가득한 전쟁이다. 부모의 보호망아래 있는 유년기에도 철저히 아이 혼자서 학교의 또래 집단에서 자리를 잡고, 그 문법을 깨쳐야 한다. 머리가 굵은 다음에는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 전체가 전투의 대상이 되며, 그 전쟁을 홀로 치르는 게 힘에 부치는 아이들은 사회의 주변으로 나가는 길을 택해야만 한다. 제 몫의 생계를 챙길 만한 자리를 잡는 것이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누구나 겪는 시기지만 성장이라는 말만큼 서로 다른 역사를 내재한 단어도 드물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평범한 어른의 모습으로, 고요해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 속에는 모두 그들이 홀로 치러 낸 '전투'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다. 전면적으로 세상에 자신을 부딪쳐 나가는 열전이었든 고요히 자신 속의 어떤 모습을 지켜내는 진지전이었든 그 전투의 형태를 막론하고 말이다. '정복자 펠레', '세친구',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성장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성장기가 한톨의 씨앗에서 새싹이 되고, 마침내 제 땅에 탄탄히 선 나무가 되기까지의 지난한 역사를 나이테 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 영화를 만들고 보는 건 모두가 지나 온 그 시절의 좌절과, 작지만 힘찬 심장 박동의 기억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성장 영화다. 적대적인 기운을 사방에서 뿜어내는 세상과의 한판 대결에서 좌절하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런 한 발자국보다는 불안한 도약을 택할 수 있는 용기가 살아있는 스무살 무렵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

비주류의 틈에서 

감독이 고른 주인공은 스무살로 접어든, 주류라고 부르기 힘든 다섯 명의 여자아이다. 한 아이의 입을 빌어 자조적으로 표현되듯 '인천에서 제일 좋은 여상'을 나왔다는 것에서, 세상의 기준이 더 주시하는 건 '제일 좋은'이 아니라 '여상'이기 때문이고, 이 아이들의 성별이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고졸 여성. 이들의 사회적 입지는 사회라는 전장에서의 전투력으로만 따졌을 때도 상당히 불리하다. 다섯 중 그나마 취직한 아이는 증권 회사의 사무 보조원-흔히 대학을 나온 같은 여성조차 '여직원'이라는 정체 불명의 호칭으로 부르는 그룹뿐이고, 나머지는 대책 없는 백수거나 집에서 하는 맥반석 체험실에서 급사일을 보거나 아니면 길을 누비며 직접 만든 액세서리 행상을 한다.

한 콩깍지에서 흩어진 콩들처럼

'고양이를 부탁해!'란 제목이 부탁하고 부탁받는 어떤 믿음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처럼 영화 속 다섯 아이들은 같은 시간을 호흡하고 추억을 공유해 온 고등학교 시절의 단짝들이다. 개개인의 집안 사정이 다르고, 행과 불행이 갈라지는 경계도 달랐지만, 고등학교 때는 늘 같이 있을 수 있었고, 차이도 별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콩깍지에 들어 있던 콩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듯, 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이들의 동질성은 그리 탄탄하지 않았고, 각자의 삶의 조건에서 나온 고민들은 제 각각 다른 양상을 드러냈다. 문제는 심각한데 아무에게도 그 짐을 나눠 들어 달라고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고, 제 힘으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땅처럼 아이들을 짓눌러 왔다. 

그 중 한 아이 지영(옥지영 분)은 일종의 고아다. 버스에 올라 모종의 사정을 호소하던 이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조실 부모하고'가 딱 이 아이의 사정이다. 자리보전하고 누운 할아버지, 이빨이 부실해 총각김치도 제대로 베어 물 수 없지만 이를 해 넣을 돈이 없는 할머니, 천장이 무너져 내려도 이사가라는 주인의 퉁명스런 대꾸밖에 돌아오지 않는 처절한 가난이 이 아이를 둘러 싼 삶의 무게다. 제목에서처럼 아이들의 신뢰 관계를 상징하는 새끼 고양이를 처음 주운 것도 이 아이다. 

혜주(이요원 분)는 영화에서 증권회사 소속의 사무 보조원이다. 아이들 중 그나마 가장 나은 경우처럼 보이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이리저리 제 편할 대로 이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아이라고 마냥 편한 건 아니다. 부모는 이혼하고, 이 아이는 대졸 인력과 마찬가지로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노력과 무관하게 그의 위치는 영화 속 여자 애널리스트 상사가 툭 던지는 말처럼, 늘 남의 심부름이나 하는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정해져 있다. 

비류와 온조(이은미, 이은주 분)는 일란성 쌍둥이다. 씩씩하게 길을 누비며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파는 이 녀석들은 제 짐의 무게로 심각하기만 한 아이들 가운데서 웃음을 일궈내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아이 태희(배두나 분)는 뿔뿔이 흩어진 이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속깊은 아이다. 자원 봉사하는 제 또래 뇌성마비 남자아이의 애정에 연민이 아니라 동등한 애정으로 답할 줄 알고, 길에서 부딪친 미얀마 노동자들의 같이 놀자는 말에 편견없이 응할 줄 아는 대견한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태희의 이런 마음 씀씀이는 가족들의 눈에는 가당찮은 것이다. 개인의 차이나 소망, 희망의 가치 따위는 진작에 벗어버린 아버지는 태희가 보고자 하는 넓은 세상의 정확한 반대항이다. 

조각그림처럼 맞춰지는 삶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면서 놀랍다고 느낀 건 그 무렵 아무 대책없이 세상 속으로 휙 던져 진 평범한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개개인 다 포착해 주면서, 각자의 고민에 대한 경중의 평가를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제일 버거워 보이는 지영의 고민에 비해, 혜주가 품고 있는 상승의 욕구를 가벼이 진단하지 않으며, 태희가 가진 탈출의 욕구 또한 섬세하게 배려해 주고 있다. 또한 이 아이들이 처한 상황의 어느 한 모서리쯤에선 관객들 중 누구라도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하려는 듯, 절대적인 빈곤, 좌절된 상승욕으로 인한 절망, 자기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처럼 견고하게 자신을 둘러 싼 일상에 대한 갑갑함까지 '세상 속으로'의 모든 과정이 지닌 고민들을 골고루 제대로 포진시켰다. 

계획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지영, 그에게 계획을 물어보는 혜주에게 지영이는 취미인 Textile Design(직물디자인)을 들먹거리며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가당찮은 일인 줄 알지만 친구에게 그 지독한 가난을 들키기는 싫은 것이다. 하지만 정곡을 꼭 찌르듯 돌아 온 혜주의 대답은 이렇다. '유학은 아무나 가니? 돈이 있어야 가지.' 이 정답에 상처받는 지영이의 자존심에서 자기 삶의 어느 한 표정을 발견하는 순간 이미 영화 속 아이들의 얘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 망설이다 선원 모집소에 불쑥 들어가 여자도 배를 탈 수 있느냐는 대답이 뻔한 질문을 던져 보는 태희의 엉뚱함에서, 스무살 무렵의 자신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조각 그림처럼 짜 맞춰지는 이 다섯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성장기의 어느 한 조각을 발견하게 된다. 

고양이는 남고, 아이들은 떠난다

서로 분주하게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식칼을 물고 자정에 거울을 들여다보며 미래의 애인을 찾으려는 요즘 아이들다운 풍속도의 뒤편에 있는 아이들 나름의 설움과 시련, 꿈과 좌절, 그리고 희망까지 담아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여느 10대 영화나 청춘 영화와 달리 만듦새가 탄탄한 성장 영화의 모습을 띄고 있다. 덧붙여 이 영화는 맨 마지막 성장기 특유의 도약과 희망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주인공을 구제할 길 없는 상황에 몰아 넣은 후 문을 닫아 버리는 냉정함보다는 불확실하더라도 내일은 오늘과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남겨 놓는 따뜻함을 택했다. 

지영이의 손에서 태희의 손으로 넘겨졌던 고양이는 씩씩하고 정이 많은 비류와 온조에게 맡겨지는 것으로 그 여정을 끝내고, 태희와 지영은 길을 떠난다. 마치 '정복자 펠레'에서 펠레가 아버지를 뒤로하고 이민의 길에 홀로 오르고, '허공에의 질주'의 대니(리버 피닉스 분)가 음대 진학을 위해 다시 못 볼지도 모를 부모와 아픈 이별을 하듯, 이 아이들이 딛는 발걸음은 불확실하지만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가락에 발을 맞춰 고무줄 놀이를 하던 여고생들이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 모두의 성장기의 아이콘으로 조용히 가슴에 와 닿는다. 영화를 보며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갈 때면 최루 영화가 아닌데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게 되고, 그 아이들이 날아 오르려 할 때, 우리 속의 스무 살도 다시 도약을 꿈꾸게 된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행운을 접하지 못한 이라면 비디오로라도 이 아이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누구나 성장기를 한번은 관통하며, 사람에 따라 어른이 된 다음에도 성장기가 끝나지 않을 수 있으며, 누구나 한번쯤은 혼자서 짊어질 수 없지만 혼자 힘으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기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 중 몇몇은 젊다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다는 것, 어른으로 '사는' 것보다 아이로 '있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나서도 잊지 않는 대견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런 이들이 괜찮은 성장 영화를 쓰고 찍고 극장에 건다. 이 영화를 자신의 첫 장편 영화로 쓰고 연출한 정재은 감독도 그런 괜찮은 어른들 중의 한 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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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각본 정재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1기 졸업. 
졸업작품 <둘의 밤>으로 1999년 영상원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도형일기>로 제2회 서울여성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 단편영화 Filmography
1995년 <성인식>
1995년 <아이볼라 바이러스>
1996년 <방과후>
1996년 <17세>
1997년 <거리에서의 여성흡연>
1997년 <윤이상, 아다지오>
1998년 <도형일기>
1999년 <둘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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