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을 찾아 민중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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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o2@kdlp.org

 

 

국회의원 후보로 선출되고 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 봐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구당에서도 총선기획단에서도 그렇고 스스로 생각해도 '진보정당 후보의 지역 모범활동 사례'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정이 이러니 우선 보통 정치인들이 하듯, 일단 상가를 중심으로 인지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연 정말로 보수정치인들이 상가를 돌며 인지도를 높일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상가를 돌며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면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호감도가 분명히 상승했지만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더 큰 게 사실이었다. 반응은 크게 세 종류로 나타난다.

'조소' 속에 스며있는 정치 불신 

첫 번째는 당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형. "어, 민주노동당이네요. 젊으니까 좋네요. 확 좀 바꿔야지, 이거 어디 살수가 있습니까. 민주노동당도 이제 많이 컸으니까 내년에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아요. (의원이) 몇 명 나오겠죠. 저도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형.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호감이 없는 게 느껴진다. "아, 그러세요. 예, 수고하세요."
세 번째는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 형. "에이, 누가 하더라도 똑같지 뭐. 민주노동당이라고 다르겠어요. 국회에 가면 돈 받아먹지 않을 놈이 누가 있어요."

무관심한 사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지만, 정치권 전반에 대해 불신을 하는 사람에게는 슬쩍슬쩍 말을 건넨다.
"그럼 선생님은 당원들이 내는 당비를 가지고 운영되는 정당이 한국사회에서 가능하다고 보셨습니까. 국회의원 한 명 없이 당원들의 당비만 가지고 운영되는 정당이 바로 민주노동당입니다. 기업들에게 돈 받지 않고, 당원들이 내는 1만원 당비로 운영되니 가장 무서워해야 할 사람이 바로 당원입니다. 이런 정당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으셨잖아요.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그걸 해내고 있습니다." 

설득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완강한 사람이 더 많다.

"그래도 국회에 가면 옛날 일 기억하겠어요? 지금이야 민주노동당에 돈준다는 기업이 없으니까 못 받는 거고, 의원 되면 준다는데 안 받기 쉽지 않을걸요. 386들도 똑같이 돈 받아먹었잖아요."

한나라당은 차떼기로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 내년 4월15일 선거일에는 또 다시 한 표를 찍을지 모르지만, 그건 일종의 '분노'였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액수가 아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소위 '개혁세력'에 대해서는 "거봐라, 너희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조소'를 보냈다. 그 조소야말로 "누가 정치를 하더라도 똑같다"는 정치권을 향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억울하게도 민주노동당 역시 도매금으로 기존 정치세력과 함께 취급되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 반나절 상가를 돌면 힘이 쭉 빠진다. 사실 상가를 돌면서도 정작 얘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았던가. 음식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편의점 파트타임 노동자, 카센터의 노동자….

나는 그들과 최저임금에 대해, 체불임금에 대해, 노동조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하지만, 그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내가 점포 주인과 이런저런 설전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대화에 껴들 수가 없는 위치였다.

튼튼한 다리와 두꺼운 노트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선전하고 싶은 대상에게 접근해 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었다. 뭔가 다른 식으로 접근할 수는 없는 걸까. 

노동자와 서민의 정당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들을 만나지 못하고 상가의 주인들만 상대하느라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나. 자영업자와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자영업자에게만 온 시간을 할애하는 방식이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후보라면 한번쯤 고민해 봤을 문제였을 것이다.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나왔고, 그건 바로 직접 "민중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이 무엇이고, 어떤 정책이 잘못됐고, 지구당이 지역에서 어떤 정책적 대안을 내어야 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상가에 들어가 단순히 인사를 하던 것에서 탈피해 두꺼운 노트를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젠 상가에 들어가더라도 언제 상가를 계약했는지, 건물주로부터 횡포를 당한 적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시작 단계지만 자료가 쌓일수록 당의 실력도 쌓이지 않을까 싶어 절로 기운이 났다.

일단 이렇게 방향을 선회(?)하자 지역 곳곳이 조사할 대상들이었다. 서울 신촌 지역에서 홍대 지역까지 노점이 적지 않은 편이다. 서울시는 생계형 노점과 기업형 노점을 구분해서 단속하겠다고 했는데 생계형과 기업형의 기준이라는 것은 노점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아직까지 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월평균 수입 그리고 지출, 노점을 하게된 계기, 가족관계…. 기록할 것이 너무 많았다.

무턱대고 이런 것들을 말해주는 노점상은 없다. 하지만 평소 친분이 있는 노점상의 경우 어렵지 않게 그들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전라도의 어느 산골에서 올라와 이십 년 동안 노점을 하는 한 상인은 "이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노점 단속권이 있는 구청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해 본적이 없는 것도 큰 문제라 했다. 구청은 때가 되면 단속하고 그 시기가 지나면 잠잠했다. 평상시에 서로 노점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화 채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점 상인들과 직접 대화를 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알게 됐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당이 구청과 노점상 사이에 대화 채널을 신설하도록 권유하는 것도 또 하나의 대안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지구당 위원장이 인간관계 위주의 활동이 아닌 정책 위주의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아 보였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정치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그리고 최근 터져 나오는 정치권 비리로 인한 맞바람을 민주노동당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얼마전 지역에 있는 사회복지기관에 전화를 걸어 마포 지역의 독거 노인들에 대한 생활실태 조사를 위해 협조를 요청했다. 복지기관에서 무료로 독거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해 주고 있어 함께 배달을 하면서 노인들의 주거 형태, 소득, 생활보호대상자 여부 등을 파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전화로 될 일이 아니다 싶어 복지기관을 직접 방문해서 협조를 구했지만 윗선에서 불가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독거 노인을 소개(?)시켜주면 안 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도 당 활동하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쓰레기를 줍는 한 할머니를 알게 됐다. 7년째 박스를 주워서 고물상에 되파는 일을 하고 있는 박윤희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도 알지 못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는 이 할머니는 하루에 리어카 2대가 채워질 만큼 종이와 박스를 주워 고물상점에 갖다줘도 5천원 벌기가 벅차다. 

박스는 1킬로그램에 40원, 신문은 1킬로그램에 5백원을 받기 때문에 신문이 무더기로 쌓여 있으면 그 날은 '횡재'하는 날이다. 춥거나 덥거나 상관없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하루종일 슈퍼 앞에 앉아 있다가 박스가 나오면 얼른 챙기는 박윤희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다. 아니,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비단 제도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박윤희 할머니뿐이 아닐 것이다. 

바로 그들에게 발로 뛰며 머리로 생각하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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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섭 

1971년 태어나 서울 중앙고등학교와 서울예술대학를 마치고, 독학으로 국문학사를 얻었다. 경력은 특이하다. 연동야학 교사를 거쳐, 중부지역 야학협의회 의장을 지냈다. <국민승리 21>과 진보정당 창당추진위원회 홍보국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이었으며, 민주노동당 기관지 주간 <진보정치> 취재기자로 삼년 동안 현장을 누볐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마포을지구당 위원장, 학교급식조례제정 마포공동운동본부 공동대표, 서부민중연대 공동대표, 이라크파병반대 마포공동행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노동사회』 편집위원겸 네트워크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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