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초기단계 노동자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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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장 노동자계급의 출현

노동자계급 형성 과정의 새로운 단계는 산업 노동자계급이 출현하는 공장제 생산의 확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노동자계급 형성의 주요 전제는 산업혁명입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사회관계 형성을 완료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지요. 이 혁명은 기술적·경제적 변동을 초래하면서 종래의 사회·경제 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동력이었습니다. 18세기 마지막 1/3에 해당하는 시기와 19세기 전반에 도입된 기술상의 발명들(기술혁명)은 산업혁명의 출발점이자 기초였어요. 이전에 손 작업으로 행하던 매뉴팩처 생산공정들이 작업기계 쪽으로 옮겨진 겁니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생산 전체에 걸쳐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 즉 매뉴팩처로부터 공장으로의 이행을 가져왔습니다.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생산자 

산업혁명 시대에는 생산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이를 테면, 이전에는 비교적 독립적이었던 영세 생산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임금노동자 대열에 가담하게 된 것이지요. 또 공장제 산업의 발달은 직접 생산자의 새로운 범주인 공장 노동자계급을 만들어냈습니다. 자본주의 생산의 대규모 발전은 임금노동자계급의 존재를 영구화하고, 그 수를 증대시켜 독자적인 계급이 되게 합니다. 

공장 노동자계급은 매뉴팩처 단계의 노동자계급과는 달리 훨씬 집중화한 사회집단으로 등장하게 되었지요. 대규모 자본주의 산업은 집중을 위한 방편이었고요.  

이러한 산업노동자계급 형성과 출현의 과정은 국가에 따라 다릅니다. 영국은 대략 1760∼1830년, 프랑스는 1789∼1848년, 독일은 1800∼1850년, 미국은 18세기 말부터 1860년, 러시아는 1830년대 무렵부터 1861년 러시아 황제인 짜르가 농노해방령을 발표한 이후의 10년 동안이었습니다.

이처럼 각국에서 진행된 산업혁명의 과정은 독자성과 특수성을 나타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공통성과 일반적 특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두 가지의 주요한 구성 요소를 공통으로 갖고 있는데, 노동자수의 점차적인 증대와 사회적 지위의 질적 변화가 그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산업노동자계급 형성의 사회적 원천은 도시와 농촌의 초기 노동자층과 소(小)자산가층이었어요. 다시 말해, 산업혁명 과정에서 몰락한 수공업자, 가내공업 노동자, 매뉴팩처 직인, 농지 경작자 등 도시와 농촌의 근로자, 반(半)프롤레타리아, 소(小)소유자가 공장노동자 형성의 기반이었습니다. 여기에 소경영자, 소상인, 소금리생활자 등이 합류합니다. 또 여성, 미성년, 아동 노동 역시 산업혁명 초기단계 공장노동자계급을 보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노동자 집중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른 또 하나의 특징은 노동자의 집중입니다.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몰려들어 신흥 공업도시나 공업지역이 생겨나고,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생산시설의 집중과 생산규모의 확대가 이뤄집니다. 노동인구의 도시와 대기업으로의 집중은 노동자계급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노동자계급의 발전 과정에서 대도시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가부장제 관계'(노동자의 노예 상태를 위선적으로 은폐한 관계)의 마지막 흔적까지 없애버리게 됩니다. 

공장노동자 출현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 하나는 이전 시기에 비해 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산업예비군'이 창출되었다는 점입니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대량 실업은 산업자본주의 출발부터 발생한 현상입니다. 사실 노동 수요를 초과하는 노동 공급, 이른바 '상대적 과잉인구'는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본질적 특질입니다. 

산업혁명 초기에 가장 먼저 기계화가 진행된 분야는 섬유공업입니다. 여기서 노동자계급의 내부 구성은 대단히 복잡했습니다. 여성과 아동노동이 수적으로 많았고, 비숙련 노동이 지배적이었어요.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이미지는 산업혁명이 완료되면서 변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수공업형의 노동자와 농업에 얽매인 '반(半)농=반(半)노동자'의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세대에서 세대에 걸쳐 대공장 생산과 밀접히 결합된 노동자의 비중이 커집니다. 

2.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진행된 노동자계급 형성

일본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은 19세기 중엽까지 국제적으로 고립상태에 놓여 있었고, 그에 따라 통치자가 자본주의의 침투를 저지하고 봉건제도의 안정을 보장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 노동자계급의 형성은 크게 늦어져, 노동자 형성이 그 초기단계에 들어서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서입니다. 이 무렵 유럽형 공장제 산업이 출현하고, 산업 노동자계급의 맹아가 나타납니다. 

개항(1854년)과 더불어 진행된 외국자본의 침투는 봉건제도를 밑으로부터 뒤흔들었으며, 봉건영주와 고리대자본으로 고통받던 농민과 수공업자들의 몰락을 재촉합니다. 당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산업 노동자계급의 발원은 도시로 유입된 농민, 외국과 벌인 상품 경쟁에서 견뎌낼 수 없었던 도시와 농촌의 수공업자군, 그리고 지위를 상실해 가던 하층 무사들이었습니다. 1860년대 말에 산업혁명은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며 임금노동자 수도 적었습니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위로부터의 부르주아 개혁의 단초를 열고 자본주의 국가로 바뀌게 됩니다. 한편으로 산업혁명이 급속히 전개되면서, 19세기 말에 이르러 공장 노동자계급이 본격적으로 형성됩니다. 

중국

중국은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반(半)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점차 편입됨으로써 현물 경제가 해체되고 자본주의의 침투가 강화됩니다. 또한 기계설비를 갖춘 기업이 설립되기 시작하지요.  

19세기 철도를 비롯한 교통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은 기계제 대공업이 자리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가운데는 권력을 장악한 군벌의 발의로 '자력강화'라는 명목에서 건설된 국유공장 체제로 대포와 탄약 생산을 위한 기계공장과 병기 또는 조선기업이 가동되기도 합니다. 1861∼1872년에는 11개의 군수공장이 건설되었어요. 이처럼 중국에서 민족 산업의 최초 형태는 군수공업이었어요. 산업 노동자계급이 형성된 것도 바로 이 부문이었지요. 다른 한편, 1860년대에 이르면, 외국 기업이 기계화된 기업의 건설을 주도하게 됩니다. 외국 자본은 중국을 불평등 조약의 그물에 얽매어 놓은 채, 자기 상품을 보급했습니다. 외국 자본은 중국을 원료와 값싼 노동력의 공급국으로 바꾸려 했지요. 

이런 상황에 따라 중국에서 산업 노동자계급의 맹아는 민족 자본가가 형성되기도 전에 출현하게 됩니다. 중국에서 진행된 산업 노동자계급 형성의 또 다른 특징은 노동자의 대부분이 이웃 성(省)에서 일시적으로 도시로 나온 농민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계절 생산에 종사한 노동자나 주로 일용노동을 이용한 광업부문 노동자는 토지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수공업자는 농민 다음으로 노동자계급 형성의 원천이 되었지요. 그리고 수많은 도시의 하층민들, 즉 제대한 병사, 행상인, 짐꾼, 야경꾼, 청소부, 뱃사공 등이 공장제 산업을 위한 노동력 공급의 거대한 저수지 구실을 했어요.

중국 산업 노동자계급은 1870년대 무렵에는 극소수였고, 임금노동은 주로 '산업화 이전' 범주의 노동자들, 즉 소규모 수공업 작업과 매뉴팩처의 직인과 도제, 도시에 유입된 농촌 빈민 출신의 잡역부, 운수 하역 노동자, 일용인부, 계절노동자에서 우세했어요. 그리고 쿨리와 인력거꾼은 전형적인 식민지 범주의 노동자였지요.

인도

인도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로 포섭되었습니다. 1840∼60년대에 영국 식민지체제가 확립되었지만, 공장 노동자 층은 매우 얇은 편이었어요. 식민주의자들이 온존시킨 봉건제도의 유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았습니다. 동시에, 인도가 세계무역에서 영국의 농산물 원료 공급원으로 편입된 것은 이곳에 공장 생산을 이식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형성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인도에는 본래 의미의 매뉴팩처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1830년대에 들어 인도 상인들이 산업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농산물 가공을 위한 매뉴팩처형의 기업을 설립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영국 자본가와 인도 상인이 최초의 공장제 기업을 설립했는데, 이들 기업에 필요한 기계와 인원은 영국에서 들여왔지요. 1840년대에 들어 증기기관을 포함한 영국제 설비를 갖춘 제당 공장들이 가동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이어 면방 공장들이 세워지고 광산개발 등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들 기업에 사용된 임금노동은 영세 토지소유자와 소작인, 일을 찾아 도시와 철도건설 그리고 수리사업에 몰려든 계절 노동자들에서 보충했습니다. 인도에서 공장 노동자가 출현하게 된 것은 1860년대 이후였으며, 봄베이를 비롯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한국에서는 17세기 이후 상품 화폐경제의 발전과 농민층의 분해가 시작되면서, 종래의 인신 구속에 의한 노동형태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공납제를 대신하여 대동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가의 제반 부역 노동이 쇠퇴하고, 고립제(雇立制)를 통한 고용노동이 발전하기 시작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임금노동의 맹아형태는 농업뿐만 아니라 광산, 수공업 사업장의 임금노동자나 도시 여러 분야의 임금노동자로 흡수되어 확산됩니다. 조선 후기 임금노동의 진전은 1876년 개항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남미

남미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비로소 노동자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이 지역의 몇몇 나라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1870년대부터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 속한 나라들은 수세기에 걸쳐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습니다. 독립전쟁을 통해 독립국이 되었으나(1810∼1826년), 선진공업국들의 경제적 이해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게 됩니다. 


[ 19세가 철도를 비롯한 고통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은 기계제 대공업이 자리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외국 자본의 확대가 가져온 경제 발달의 한 측면과 반봉건적 착취형태 및 노예제를 포함한 기존 사회 구조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이 양자의 결합이 노동자계급 형성을 규정하는 주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노동자계급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광산, 철도운수(예컨대 브라질에서는 1872년 약 21,000명 정도가 철도부문에 종사했음), 제조업(주로 농산물과 원료 가공), 수출을 주로 행하는 대농장 등입니다. 이들 부문에 대한 노동자계급 형성의 원천은 주로 농민수탈에 의해 이루어졌어요. 또 하나의 원천은 수공업자들의 분화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는 인디언을 토지에서 폭력으로 추방한 것이나, 서서히 폐지된 노예제도도 노동자계급 형성의 원천이 되기도 했지요.

광산업이나 철도부설 작업에서 노동력 확보를 위해 널리 사용된 것은 반농노 상태의 농민을 모으는 일이었어요. 신분상의 자유를 획득하고 높은 임금을 받고자 하는 농촌의 많은 젊은이들이 모집인과 계약을 맺고 광산과 항만 건설지, 공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농촌 수확기나 불경기에는 '자기의 땅'으로 돌아갔으나, 그 후 다시 광부나 제련공 또는 직조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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