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의 사각지대 ‘사내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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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명.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숫자다. 이 중 업무상사고 사망자 수는 1134명이었다. 하루 3.1명꼴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사고로 죽는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은 불명예스럽게도 터키와 멕시코에 이어 3위다. 선진국과의 산재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을 비교할 경우 2009년 기준, 일본은 0.20명, 독일은 0.16명인 데 반해 한국은 1.01명이다. 일본과 독일에 비해 무려 5.1배, 6.3배나 높은 수준이다. 최근 5년간 산재 사망만인율이 감소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산재사망률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보다 높다.

 

끊이지 않는 산재의 사각지대 ‘사내하청’

지난 3월 여수시 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사고로 17명의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이 중 15명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그보다 앞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는 산재로 3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었는데 사망자 중 2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올해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 역시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최근 사례만이 아니다. 2008년 4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2011년 이마트 탄현점 사내하청 노동자 질식사 등 시간을 거슬러도 사례들은 숱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련의 산재 사고 피해자 대다수가 사내하청 노동자, 즉 비정규직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통계자료는 없다. “노동부에서 통계 자체를 그렇게 뽑지 않는다. 통계의 한계다”라는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주 국장의 지적처럼 고용노동부에서 해마다 산재 발생 현황을 산출하지만 업종이나 사업장 규모별로 통계를 낼 뿐, 고용형태별로는 통계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전(全)산업에 걸친 간접고용 증가 추세와 사업장 규모별 산재 사망 현황 등을 근거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망률이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월등히 높다고 추정할 따름이다. 실제 지난해 산재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업장은 5~49인 미만(736명)과 5인 미만(422명)의 소규모였으며, 지난해 발생한 전체 산재 사고의 81.5%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4월18일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낸 보고서 「조선산업의 사내하청 산재 집중, 현황과 대책」에 따르면, 2001~2009년 조선산업 산재 사망만인율은 원청이 0.49인 데 반해 사내하청은 1.72배로 나타났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산재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원청 노동자들에 비해 3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 비중이 전 산업에서 가장 높다는 점을 감안해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산재율이 원청 노동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시민추모위원회'가 4월22일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노동자 집어삼키는 단기 이윤 추구의 늪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산재 비율이 원청 노동자보다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략 사용자, 노동자, 제도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사용자 측면에서 살펴보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은 노동자의 안전은 도외시한 채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는 기업의 무분별한 행태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대기업들의 단기적인 이윤 추구 행태가 갈수록 심화되고, 이에 따라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 활용을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2010년 8월 말 기준으로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수를 조사한 결과, 원청 노동자 대비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은 2008년 5월 기준 27.9%에서 32.6%로 4.7%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금속노조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함께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89곳의 비정규직 규모와 노동조건 및 조직화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해당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같은 기간 3만 9,167명에서 8만 4,439명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단기 이윤추구 전략은 원청업체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비용은 적게 들이면서도 하청업체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전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보고서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하도급업체 근로자 보호강화 방안(2007.11)」에 따르면 2007년 약 51개 원청업체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관리자의 40.8%가 “유해위험 작업이기 때문에 하청을 준다”고 답한 바 있다. 그 다음으로는 28.2%가 “하청의 임금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산재 비율을 높이는 안전관리 교육 및 감독 소홀 등도 단기 이윤 극대화 전략에서 비롯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따르면 원청업체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해도 법적 책임은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사업주, 즉 하청업체에게 돌아간다. 원청업체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안전관리 및 감독 책임은 있으나, 비용을 들여 작업장 안전시설을 개선하거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안전보건 교육을 할 의무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망 사고를 예로 들며, “위해·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전담 안전관리자를 두고, 이들에게 단순히 직책만이 아닌 실제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고 후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 결과, 삼성전자는 총 82개에 달하는 하청업체를 뒀음에도 담당 환경안전팀 직원은 1명밖에 두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리한 인건비 절감으로 인해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번 대림산업 폭발사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고 후 특별감독을 실시한 결과, 대림산업 여수공장은 모두 1,002건의 산안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압력상승에 의한 폭발을 막기 위해 안전밸브를 설치해야 하지만 일부 설비는 이를 설치하지 않았고, 하청업체에 안전보건관리비를 지급해야 하는데도 이행하지 않았다. 또한 화학공장설비 용접 작업자에게 특별안전보건교육을 실시했어야 함에도 시행하지 않았고, 취급 화학물질의 위험성과 비상조치요령 등을 알려주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교육도 진행하지 않았다. 아울러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운영해야 하는 안전보건협의체는 구성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무자격자에게 안전관리 업무를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극단적 이윤 추구에 따른 법제도 위반이 대림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노동계의 중론이다.

원청업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하청업체의 열악한 상황도 문제로 꼽힌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입찰 가격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의 인건비 일부를 쪼개야 최저가 입찰로도 이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원청업체가 갑의 지위를 이용해 공기 단축을 요구하면 하청업체는 무리한 요구여도 계약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대로 하청 노동자들에게 전가돼 무리한 작업, 미진한 안전교육으로 이어지고 결국 사고 발생 위험도를 높이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원청업체의 시설 등 작업 환경이 열악해도 쉽사리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는 업체 간의 전형적인 ‘갑을관계’도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다.

노동자 측면을 살펴보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과 작업장에 대해 지배력을 가져야 함에도 피고용자 신분, 특히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해 기업의 단기 이윤 추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하청업체의 안전관리가 소홀하거나 사전에 위험을 감지하더라도 개선을 요구하는 등 의견을 쉽사리 피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림산업 여수공장 폭발 사고 당시 노동자의 “‘공사기간이 짧아 작업이 어려우니 늦춰야 한다는 의견을 윗선에 얘기했지만 묵살되었다’라는 말을 사고 전날 생산부 직원에게 들었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저장되어 있던 물질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했다. 그냥 급하니 빨리하란 소리뿐이었다”는 증언은 만성화된 이 같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기홍 국장의 “사일로(저장조) 보수 업무를 정규직 노동자들이 했다면, 대림이 안전관리에 그렇게 무신경했을까?”라는 말 역시 곱씹어볼 대목이다.

법제도의 미비함도 하청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원인이다. 우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산안법의 미비함을 문제로 꼽을 수 있다. 유해작업 도급 금지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산안법 제28조에 따르면, “안전·보건상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작업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지 아니하면 그 작업만을 분리하여 도급을 줄 수 없”게 되어 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도급 가능한 작업은 도금, 수은․ 납 등 중금속 제련․ 가공 작업 등 일부만 해당할 뿐이다. 이번 대림산업 사고에서 보듯 고밀도 폴리에틸렌 같은 위해․ 위험할 수 있는 화학 물질을 다루는 설비․ 보수 작업은 도급 금지 업종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양대 노총 등 노동계는 한 목소리로 산재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한 업종을 조사해 도급 금지를 하는 등 도급 금지 업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산재 사망이 발생해도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사업주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산안법 제29조도 문제로 꼽히는 제도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제도에 따르면 원청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산재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하청업체에 전가된다. 실제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무려 40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청업체에 부과된 벌금은 2천만 원에 불과했다. 또 2011년에는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매 가스 교체 작업을 하던 4명의 하청 노동자가 질식사했지만, 원청인 탄현점 지점장과 이마트 법인에 부과된 벌금은 각각 1백만 원씩이었다. 이처럼 원청업체에는 ‘도의적 수준’의 책임만을 요구하고 하청업체에 법적 책임을 전가하는 제도는 원청업체가 작업장 안전관리에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써 필연 안전관리 교육 및 감독 소홀로 이어지는 것이다.

 

경영계, “고용관계와 산업안전은 관련 없어”

경영계에서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산재 비율이 높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경영계는 사내하청의 활용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시장의 거래’에 따른 계약으로, 고용관계와 산업안전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산업안전과 관련해 원청과 하청업체의 책임이 각자 조화롭게 분배되어야 하고, 기존 법제도대로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총의 이 같은 주장은 ‘사업주’를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이로 규정하는 산안법 29조에 근거해서다. 임우택 경총 산업안전보건팀장은 “최근 개정된 산안법에 따라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위험한 일을 시킬 때 위해·위험한 정보를 주어야 하고, 고지 의무도 생겼다”면서 개별 제도 탓이 아닌, 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문제 발생 원인으로 꼽았다. 아울러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협의체를 구성함으로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높은 산재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소홀한 안전관리 교육 및 감독으로 발생한 산재와 관련해서는 원청업체도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노동계의 도급 금지 업종 확대 주장에 대해서는 “시장 상황이나 위해·위험물질들을 살펴본 뒤 타당성이 있다고 하면, 검토는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사내하청의 활용을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의 자유 시장 계약으로 보지 않는다. 하청업체는 형식적인 고용주일 뿐, 실질적으로 노동력을 사용하고 작업장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 것은 원청업체라며, 사용과 고용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계, ‘원청 책임 확대, 도급금지 업종 확대’ 요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여수산단 폭발사고 대림산업 규탄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동과세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산재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원청의 책임 강화와 도급 금지 업종 확대라는 투트랙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원청의 책임 강화는 원청업체의 책임 범위를 ‘실질적인 산재예방’의 내용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즉, 원청 사업장에서 모든 위험 발생 시 해당 공간을 관할하는 곳이 원청업체인 만큼 노동자의 고용구조에 관계없이 원청이 모든 안전보건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는 동시에 산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건강연대’는 특히 안전보건 영역의 강화는 세계적 추세라며, 이에 맞춰 원청이 안전보건 예방 의무를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주가 노동자의 사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예방 조치 미흡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할 경우 기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한국노총의 의견도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민주노총은 산안법 29조가 하청 노동자의 산재에 대한 원청 책임을 △사업주 간 협의체 구성, △합동점검, △안전교육 장소나 내용 지원, △작업환경측정, △위생 시설 제공 및 원청 시설 이용 등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이는 산재 예방책으로 충분치 않다며 △안전교육,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원하청이 구성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산재 예방의 핵심 조항들은 원청이 직접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엄격한 법 집행도 요구되는 사항 중 하나다. 현행 산안법의 사업주에 대한 처벌 조항에 따르면,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한 경우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산재 사망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사업주의 실형은 거의 없고, 중대재해 1건당 평균 50만 원의 벌금에 그치는 수준이다. 실제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에서 실형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LG화학 청주공장에서 다이옥신 드럼통이 폭발해 8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지만, 실형을 받은 사람은 하급 관리인인 재료팀장 1명에 불과했다. 또 최근 3년간 산안법 위반으로 송치된 사건 중 2,290건의 중대재해가 있었지만 실형은 받은 사람은 없었고, 0.03%가 징역형, 57.2%가 수 백만 원의 벌금을 무는 데 그쳤다.

이에 노동계에서는 한국에도 영국의 ‘기업살인법’과 같은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산안법상 처벌조항이 있고 벌금 부과액도 높지만, 기업의 최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아래 지난 2007년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을 제정, 이듬해부터 이를 시행 중이다. 이는 산재 사고의 70% 이상이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재해이며, 안전보건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산재는 노동자에 대한 살인행위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에 법 시행 후 한 건설 노동자가 웅덩이 현장에서 사망하자, 영국 정부는 안전수칙 위반으로 해당 기업에 6억 9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또 법 제정 이후 영국의 산재사망 만인률은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호주, 캐나다도 영국과 비슷한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산재 사망에 대한 처벌 수위와 고용구조에 관계없이 원청의 책임을 강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도 특별법 제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유해·위험작업의 도급 금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산안법 28조에 유해위험작업 도급 금지 조항이 있지만 몇 개 작업으로 한정돼 있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에 조선업 비파괴 검사,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독성화학물질 설비·보수 업무 등 위험작업의 도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공통된 요구다. 다만 현실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발 맞춰 도급 금지 업종을 확대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정부와 기업의 실태조사 요구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도급 금지를 실질적으로 검토·논의할 수 있는 상설적인 논의 기구 법제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불법 도급 근절도 함께 요구되는 사항이다. 플랜트건설업을 예로 들면, 발주처에서 원청사에 1차적으로 공사를 발주한 뒤 원청사가 전문건설업체에 도급을 주는데, 이 단계까지는 합법 도급이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이 단계에서 다시 도급을 주는 경우가 만연한데 이는 불법 하도급에 해당한다. 실제 대림산업 폭발사고에서도 대림산업이 ‘유한기술’에 저장조 보수일을 하청했고, 유한기술은 다시 현장 노동자들을 불러 모아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었다. 불법 하도급이었다.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은 저장조 내부 물질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듣지 못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원청의 책임 확대 방안이 실현돼 원청 최고 경영자가 실형을 선고 받는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경제발전 기여’를 이유로 곧바로 사면시키거나 형량을 낮춰주는 일이 빈번하다며 사법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처럼 ‘산업안전보건청’으로 고용노동부의 안전보건 분야를 승격시키자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조기홍 국장은 “안전보건 분야가 독립해 위상을 강화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청은 입법기능이 없는 만큼, ‘산업안전보건처’로 승격시켜 근본적으로 안전 보건에 대한 문제를 짚고 현장 지도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의 단결과 세력화도 반드시 요구되는 사안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안한 고용구조로 인해 사용자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노동조합으로 뭉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단기 이윤 추구에 눈 먼 자본을 견제할 수 있는 노동자 세력이 필요하다. 산재를 은폐하려는 기업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일차로 노동자 세력에 있기 때문이다. 박종국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은 2차 대전 후 건설노조 측에 노무공급권을 줬고, 노조에서 인력을 파견 보내기 시작한 뒤로 재해율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조와 기업의 계약상에는 산업안전보건비를 책정하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는지 노조가 감시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 건설노조 조합원이 80만 명이 넘을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중대재해로 인해 노동자들을 산재의 위험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힘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보도조차 되지 않는 현실. 그나마 이번 대림산업 폭발사고처럼 다수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해야 언론도 국민들도 ‘반짝’ 관심을 갖는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산재로 사망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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