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미사일을 쏘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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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1970년대 한국사회의 난장이는 서울 재개발지역의 공장 굴뚝 위에서 달나라를 향해 작은 쇠공을 쏘아 올렸다. 작가 조세희는 그 작은 공에다 산업화시대 소외계층의 ‘빈곤’과 ‘절망’을 실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동해 공해상에 미사일 7발을 쏘았다. 북한은 왜 미사일을 쏘았을까? 미국과 53년간 사실상 전시상태에 있는 북한이 미사일에다 싣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 광복 61돌 통일대축전이 열린 연세대 주변에 내걸린 깃발들.  ▷ 민중의 소리 ]

미사일 발사 전후의 상황변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두고 아직까지 그 내용과 의미에 있어 의견이 분분하다. 단, 중거리미사일은 그런대로 성공했으나 장거리미사일인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실패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두고도 단순 실패가 아닌 ‘전략적(의도적) 실패’라는 엇갈리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아예 애초부터 ICBM을 쏘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전반적으로 미사일 발사가 북한의 전략적 판단 미스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결국 미국도 더 이상의 대북 제재를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이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미사일 재발사나 지하 핵실험 등을 통해 새로운 한반도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어쨌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지 두 달째가 되도록 지금까지 이른바 ‘미사일 국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미사일 발사의 위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을 터다. 미사일 국면을 조성한 것은 북한이다. 북한이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한반도 주변의 어느 나라도 미사일 국면을 바꾸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거의 예외 없이, ‘전략의 나라’ 북한은 무슨 일을 저지르기 전에 반드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의미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날짜조차 가려잡는다. 택일(擇日)을 해서 효과의 극대화를 노린다. 북한의 미사일 시위는 남한을 향한 게 아니다. 미국을 향한 것이다. 7월5일은 미국 날짜로 7월4일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 날은 미국 독립 230주년이자,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발사하는 날이었다. 미국인들이 독립기념일과 디스커버리호 발사를 축하하기 위한 불꽃놀이를 즐기려는 날 색다른 폭죽이 터졌다. 미사일 폭죽이 퍼레이드로 터진 것이다. 자존심 강한 미국과 부시 대통령이 입었을 상처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미사일 발사 후 일본을 앞세운 미국의 대북 압박은 무지막지했다.



[표]에는 미사일 발사 전후 북한과 주변국들 간의 입장 변화가 나와 있다. 발사 전 북미는 6자회담 재개문제를 놓고 서로 ‘선 금융제재 해제’ 대 ‘선 6자회담 복귀’로 대립하다가, 발사 후에는 미일이 공조해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일본은 이 과정에서 ‘대북 선제공격론’을 주장하며 대북 압박의 선봉에 섰다. 북중 관계도 다소 미묘해졌다. 일부 언론은 중국 측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말라”고 호소했음에도 북한이 이를 외면했다며, 북중 불화설을 부추겼다. 이로 인해 대북 안보리 결의에 중국도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남북관계다. 남측이 북측의 미사일 발사 이후 쌀과 비료의 지원 유보를 결정하자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중단 선언으로 맞대응하면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게다가 북한은 집중호우로 큰물 피해까지 입었다. 북한은 큰물 피해를 이유로 아리랑 공연과 8·15대축전을 취소했다. 남북 간 대화 채널이 막혔다. 북한으로서는 ‘미사일+큰물’이라는 이중 악재에 시달렸다. 이를 두고 외부세계에서는 내우외환이라고까지 했다. 이처럼 미사일 발사 전과 후의 북한의 대차대조표는 형편없어 보인다.


[ 북한의 큰물피해를 돕기 위한 인도적 지원으로 냉각되던 남북관계는 해소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통일뉴스 ]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원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전과 발사 후의 이 같은 엄청난 차이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작전의 나라 북한이 이 차이를 따지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북한에겐 이 차이로 인한 손해를 능가하는, 그 어떤 절박성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미사일을 시험 발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른바 미사일 국면의 전개과정은 아래와 같다. 

먼저 지난 5월19일 일본 언론에 의해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관측됐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은 6월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면서 미사일 관련 첫 공식입장을 밝힌다. 북한은 이 담화문에서 “미국이 진실로 (9.19)공동성명을 이행할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면 그에 대하여 6자회담 미국 측 단장이 평양을 방문하여 우리에게 직접 설명하도록 다시금 초청한다”면서도 “미국이 우리를 계속 적대시하면서 압박 도수를 더욱 더 높여 나간다면 우리는 생존권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부득불 초강경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미국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북한 방문을 초청하면서도 이것이 이뤄지지 않고 미국의 대북 압박이 계속될 경우 지금의 국면을 규정하고 있는 “미사일 발사”라는 “초강경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됐다. 

이어 『조선신보』 6월21일자는 “무수단리에서 ‘탄도미사일’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강변하는 측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밝혀 대화를 위해 미국이 먼저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또한 6월20일 한성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도 “우리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미국이 우려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그러면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해 북미 직접대화를 명확히 밝혔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몇 가지 이유

그렇다면 미사일을 발사대에 걸어둔 북한의 의도는 명확했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바랐다. 북한은 최후통첩으로 힐 차관보를 불렀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비정하게 뿌리쳤다. 마지막 대화 제의를 뿌리친 미국에 대해 ‘빈말을 하지 않는’ 북한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힐이 방북하지 않으면 미사일을 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 형태가 ‘군사훈련’으로 나타났다. 미사일 발사 다음날 북한은 외무성 답변을 통해 “이번에 있은 성공적인 미사일 발사는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위해 우리 군대가 정상적으로 진행한 군사훈련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모든 나라에서 그렇듯이 북한에 있어서도 ‘군사훈련’이란 ‘실전’의 다른 말이다. 미사일 발사가 실전용임은 발사한 미사일이 단·중·장거리라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단거리미사일은 동해상에 접근하는 미 선박을, 중거리미사일은 일본 내 미군기지를, 그리고 장거리미사일은 미국본토를 향한다는 것이다. 

한편 실전과 관련 재미 거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이를 매우 실감나고 긴박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 소장은 통일학연구소 사이트에 게재한 “반제국주의 미사일강령과 한(조선)반도 정세인식”(2006년 7월28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은 자국의 정찰위성들이 무수단리 발사장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니라 인공위성을 탑재한 우주발사체 ‘대포동 2호’를 발사할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대포동 2호가 아닌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긴급보고를 받고 그만 아연실색하고, 그 이유가 “자기들이 예상치 못한 시각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북(조선)의 미사일 발사훈련이 실시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를테면 실전상황에서 북한이 기습공격을 했고 미국은 허를 찔렸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미국의 대화(힐 방북) 거절에 어떤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미국과 53년 동안 전쟁을 해 오고 있는 북한이, 최후통첩성 대화 제의에 미국이 거절하자 이에 느꼈을 전쟁 공포를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더 나아가 북한은 미국의 오판으로 인한 침략을 우려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군사훈련을 통해 전쟁 억제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화 거절-전쟁 공포-오판으로 인한 침략 우려-억제력 과시’의 순환회로를 거친 것이다. 미사일 시험발사 후 북한이 전시상황에 들어갔음은 30여 차례 북을 방문한 바 있는 북한전문가인 미 조지아대학교 박한식 교수가 확인해 준다.

7월 중순 북한을 방문했던 박한식 교수는 “북한이 전쟁을 대비하고 있다”고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의 동향을 전했다. 박 교수는 “전쟁 대비”의 의미를 “악의 축의 일원으로서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것을 대비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하고, “북한의 군부가 미국으로부터 공격당하게 됐다고 철저히 믿게 되면 지금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며 만들어 놓은 무기가 그대로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 그 근거라고 설명했다.

이는 자연히 전쟁억제력으로 나아간다. 북한은 1998년 8월31일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함으로써 ICBM 생산능력을 세상에 알렸으며 8년이 지난 지금 이 ICBM 성능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을 것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 후 북한 외무성 답변은 “성공적인 미사일 발사가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위한 것임을 밝혔으며,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미사일 발사 훈련은 한반도에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전쟁 억제력을 강조했다.

완전한 실패인가 의도된 실패인가

셋째, 미사일 수출을 겨냥한 성능 시험의 가능성이다. 북한이 미국 등과 마찬가지로 무기 수출, 미사일 수출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힐 차관보는 “북한은 중동지역 나라들과 미사일 거래관계가 있고, 그에 관심이 많아 우려스럽다”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당시 1명 이상의 이란 정부 관계자들이 참관했었다고 밝혔으며, 또한 외교통상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 교수는 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인 대포동 2호 미사일 개발은 이란과의 협력을 통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7발 가운데 대포동 2호를 제외한 노동 및 스커드 미사일 6발이 북한이 사전에 설정한 항행금지구역 내에, 즉 북한이 목표했던 대로 반경 약 50km의 원안에 착탄했음이 미일 양국 정부의 분석에서 판명됐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미사일 성능은 입증된 셈이다.

남는 것은 실패했다는 대포동 2호의 문제다. 대개의 언론들은 대포동 2호가 발사대로부터 1.5킬로미터 지점의 북한 영공에서 폭발, 수십 킬로미터 이내 근해에 떨어졌다면서, “발사는 완전한 실패”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 측의 ‘의도된 실패’로 규정했다. 또한 한호석 소장은 애초부터 ‘대포동 2호’는 없었다고 분석했으며, 박길연 대사는 미사일 시험은 실패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1998년에 발사한 광명성 1호가 성공한 사실을 알 것”이라면서 “그 기술은 더욱 축적되고 향상되었는데 어떻게 대포동 2호가 실패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미국은 우리 기술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미사일 위기를 넘기고 북미 간 미사일 협상이 열릴 경우 미국은 이번에 발사된 단·중·장거리 미사일 모두를 달러를 내고 구입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북한은 미국에 팔 미사일을 미리 선보인 셈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치상태에서는 성능 실험에 성공한 미사일을 원하는 나라에게 팔 것이고, 미국과 화해를 한다면 미국에게 전량 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미사일이 많고 또 성능이 높을수록 가치가 있는 것이다. 눈치 빠른 미국이 이미 미사일 가격을 매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날의 칼 ‘압박 카드’, 누구 피를 볼 것인가 

북한에 있어 미사일은 핵과 함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사일의 경우 자위적 무기이자 과학기술 발전의 척도이며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원이라는 다목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이유로 인해 미사일은 핵과 함께 미국에 대해 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북한이 지난 7월5일 동해 공해상에 발사한 미사일에다 싣고자 한 것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대화’ 아니었을까?

북미 간 힘겨루기는 표면상으로는 미국의 대북 ‘6자회담 복귀’와 북한의 대미 ‘금융제재 해제’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미국의 대북 제재(북한 붕괴)와 북한의 대미 대화(북미 관계정상화)가 맞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카드, 보다 정확하게는 상대편을 굴복시킬 수 있는 압박 카드가 소진되지 않고 남아 있느냐이다. 북한이 지난 7월5일 사용한 미사일 카드 역시 대미 대화를 위한 압박 카드임은 분명하다. 중요한 건 그 미사일 카드가 현재와 향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상하건대 미사일 발사가 단기적으로는 북한에게 ‘절대 불리’로 나타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유리’로 바뀔 공산이 크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모두가 알다시피 미사일은 군사무기이고 미사일 발사는 군사문제이다. 게다가 미사일 시험발사는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미사일 발사로 인한 정치문제의 유·불리이다. 북한과 미국은 모두가 이 문제를 노렸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측의 정치적 공세가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증명이 됐다. 미국은 일본을 앞세워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결의안을 내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 다음 미국은 북한에 압박을 가할 뾰족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미국의 대북 제재가 힘을 발휘하려면 한국의 동조와 중국의 동참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남북관계와 북중관계가 소원해지는 듯 했지만 이는 잠깐이었다. 최근 중국은 “현 시기 국제정세가 복잡하지만 중-조(북) 친선협조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두 나라 인민들의 염원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으며 남북관계 역시 북한의 큰물 피해 이후 미사일 발사 이전 관계로 급속도로 복원되고 있다. 남측에서는 민간-당국, 여-야, 진보-보수를 떠나 범국민적 차원의 대북 지원에 나섰으며 이러한 국민적 열기에 정부의 “미사일-쌀 연계 방침”은 사실상 철회되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북한의 경우는 어떤가? 정세 주도권과 관련해서 지금의 미사일 국면을 바꿀 카드로 북한의 대포동 2호를 비롯한 제2의 미사일 발사와 지하 핵 실험설 등이 최근 솔솔 나오고 있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과 핵 등 대미 압박 카드는 양날의 칼처럼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 정세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압박 카드라는 면에서는 유효하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은 대북 압박 카드가 빈약한 것에 비해 북한의 대미 압박 카드는 아직 더 여유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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