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대미 불가침조약을 제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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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초 미 특사의 방북이후 터진 이른바 ‘북핵 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북핵 문제를 우려하며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positiv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두 단계 내렸다. 이에 국내 증시가 출렁거렸다. 지난 1월말 임동원 특사의 방북에서도 보여지듯 한국의 역할은 소진한 듯하고, 국제적 노력도 결정적 역할은 못하는 듯하다.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한치의 양보도 없다. 과연 북핵 문제의 해법은 없는가?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이슈별 입장

표에서 보듯, 북한과 미국 양측은 북핵 문제의 출발이 되는 핵개발계획 시인 여부에서부터 입장을 달리 하고 있다. 미국은 켈리 특사 방북시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사용한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강압적으로 나오기에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었다’며 원론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 후 미국이 북한에 대해 ‘대화는 없다’며 선(先)핵포기로 선공하자 북한은 대미 불가침조약 제의(2002.10.25)로 대응했으며, 미국이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앞세워 ‘대북 중유 11월분 제공 12월분 이후 중단’(2002.11.14) 결정을 내리자 한달 후 그를 확인한 북한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핵시설 가동. 건설 재개’(2002.12.12)를 선언했다. 해를 넘겨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조종하여’ 북한에 대한 ‘핵 프로그램의 해명 촉구와 포기’(2003.1.6)를 결의하면서 압박을 가하자 북한은 곧바로 정부성명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2003.1.10)라는 초강수를 선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북미기본합의서 파기 여부’, ‘다자회담’, ‘주변국 중재’ 그리고 ‘유엔 안보리 등 국제기구로의 상정’ 등에 있어서 공방을 하면서 입장을 달리하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북핵 해법과 관련된 것이다. 북한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하고 있음에 비해 미국은 처음에는 ‘일체의 대화는 없다’고 하다가,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최근에는 ‘문서상으로 불가침조약을 해줄 수 있다’며 다소 유연하면서도 후퇴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핵 문제로 인해 북미관계가 급속도로 긴장상태로 가던 지난해 10월25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에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것을 제의했다. 북한은 담화를 통해 핵문제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인해 생긴 문제라 하면서, 미국이 ‘첫째로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둘째로 불가침을 확약하며, 셋째로 우리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이(핵)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계속해서 북한은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 제거를 위해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대북 핵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 북한도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면서 대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의했다. 이로써 북핵 문제 해법으로서 불가침조약이 부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불가침조약이란 무엇이고 또 평화협정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불가침조약과 평화협정과의 관계

먼 저, 불가침조약이란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에 의하면 “나라들 사이에서 서로 영토와 자주권을 존중하며 내정에 간섭하거나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확인하는 국제조약”이다. 국제사회에서 주로 동맹국간에 체결하는 ‘동맹조약’이나 ‘상호원조(방위)조약’이 제3국에 대항하는 의미가 있는데 비해, 이 조약은 체결국간에 전쟁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안전보장에 관한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불가침조약은 대부분 국제정세가 긴장될 때 체결됐다. 2차대전 때 중국-소련(1937년), 독일-소련(1939년), 일본-소련(1941년) 간에 맺은 불가침조약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불가침조약은 대부분 국가들 간에 개별적으로 체결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조약을 위반할 경우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없다는 약점이 있고, 실제로 독-소, 일-소, 중-소 불가침조약 등은 정세변화에 따라 모두 사문화했다. 물론 북한이 제의한 불가침조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 효력에 있어서는 ‘미국과 국제법에 따른 자주적이며 평등한 실체로서 적대관계를 영원히 해소해 버릴 수 있는 법률적 담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불가침조약과 평화협정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북한은 이제까지 미국에 대해 주로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북한이 1974년 미국에 처음 제안한 평화협정은 다음과 같은 4개항으로 되어 있다. 첫째 “서로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고 직접적 무력충돌의 모든 위험성을 제거한다”, 둘째 “쌍방은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을 그만두며 북한 경외로부터 일체 무기와 작전장비, 군수물자의 반입을 중지한다”, 셋째 ‘외국군대 철수 및 무기 철거’이며, 넷째가 ‘평화협정 단계로 이행’이다.

통일관련 전문가나 운동가들 사이에서 불가침조약과 평화협정과의 관계에 대해 대략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불가침조약이 평화협정 ‘전단계’라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불가침조약이 평화협정의 ‘대체’라는 견해이다. 전자의 견해는 바로 앞에서 지적한, 북한이 1974년 제안한 평화협정 첫째 항이 2002년 10월25일 제안한 불가침조약과 의미가 같다는 것에서 뒷받침된다. 따라서 평화협정의 첫째 항을 불가침조약과 같은 것으로 본다면, 북한은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먼저 체결한 후 그 다음에는 평화협정의 둘째 항부터 단계를 밟아 순차적으로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후자의 견해는 전통적인 의미의 평화협정을 지금 적용하기는 무리라는 데서 출발한다. 즉 전쟁의 책임조항, 전쟁종결에 따른 보상문제, 비무장지대 설치, 군비통제, 유엔평화유지군 배치, 국제적 보장 등이 포함되는 전통적인 평화협정을 한국전쟁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고, 실제로 2차대전 이후 국교정상화, 일방선언과 묵시적 수락, 공동선언 등으로 대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북미관계가 반세기 전인 냉전시대의 군사적 대치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변화·발전했음을 감안할 때 전통적인 평화협정보다는 불가침조약이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가 어느 쪽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북한이 언론매체를 통해 연일 ‘정전협정의 유명무실’을 지적하며 북미 불가침조약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에 미루어 볼 때, 불가침조약이 평화협정의 대체이거나 또는 평화협정으로 이행하는 과정 등 두 가지 뜻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북한이 이제까지 미국에 제안한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그 내용에는 한국전쟁의 종식은 물론 미군철수 및 양국의 관계정상화에 이르기까지 북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불가침조약은 ‘무력공격 방지’라는 현안과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평화협정을 제쳐두고(혹은 미루고)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의한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국교수교)를 포기하는 대신 ‘전쟁 없는 상태’라는 최소한의 관계만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불침공-미군철수-국교수교’라는 일련의 과정을 담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쌍방 자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 불침공’이라는 즉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불가침조약을 원하는 것이다.


[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미불가침조약체결 촉구 집회  ▷ 출처:통일뉴스 ]

북한의 불가침조약 제의 배경

미 국은 부시 행정부 출범이래 시종일관 대북 적대정책을 펴면서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묶어놓고 ‘악의 축’으로 지정했으며, 급기야 핵선제공격 대상국으로 분류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느꼈을 압박과 위기의식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과거 북한은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될 때면 준전시상태에 들어가 전시훈련과 등화관제를 하곤 했다. 핵 최대 보유국인 미국이 핵으로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내용은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 이전에 자주권과 생존권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남한과의 민족공조를 강조하거나 러시아 중국과의 전통적 관계를 복원하고 또 일본과의 과거청산 및 수교선언을 하고, 유럽연합과의 관계개선 및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대체한 것 등등은 모두가 미국과의 결별을 위한 장기 포석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미국과의 ‘결별’ 또는 ‘관계정상화 포기’라는 표현은 액면 그대로 미국과의 관계를 청산내지 포기한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현재 상황을 반영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이제까지 북미관계를 규정해온 정전협정과 북미기본합의서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 1953년 정전협정과 1994년 기본합의서는 모두 유명무실한 상태다. 한마디로 양국 관계를 설정해줄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불가침조약은 양국 관계를 비교적 쉽고 빠르게 설정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때문에 정전협정마저 유명무실해진 지금 불가침조약의 체결은 더욱 절실하고 긴박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거나 또는 “물론 1994년의 북미기본합의문도 법적 성격을 띤다. 그 이행은 미국과 우리(북한)의 동시행동 조치로 담보될 수 있는데 오늘의 조건에서 여기에만 매달려서는 북미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할 수 없지 않는가”라는 북한측의 주장에서 보여지듯, 북한은 불가침조약을 정전협정의 대체이자 북미기본합의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셋째, 최근 북미간의 갈등과 대립은 핵과 미사일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발생된 것이기에 이를 집중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즉 현재의 북미간 군사적 적대관계는 50년 전의 6.25전쟁과 그에 대한 정전상태의 연장선에서의 군사 갈등이라는 측면도 있으나, 그보다는 새로운 차원 예컨대 미국의 MD체제 구축, 테러와의 전쟁, 악의 축, 핵선제공격, 북한의 선(先)무장해제 등의 차원으로 북미간의 군사적 적대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지난 1월 중순경 북한 외무성 오성철 국장이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종전부터 우리가 주장해 오던 평화협정은 정전상태, 즉 1950년대의 6·25전쟁이 일시 중단된 상황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체제로 전환시키자는 것인데 불가침조약은 주로 핵문제, 북미가 서로 핵으로 위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능성부터 제거해 버리자는 데 목적이 있다”는 입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불가침조약을 둘러싼 북미간의 입장

미 국은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 제의에 대해 지금까지 다른 국가와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경우가 없고, 또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체결은 불가능하다면서 이를 일축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불가침을 문서로 보장할 수 있다’는 선까지 물러섰고 몇몇 의회 지도자들은 “북미 불가침조약은 왜 안 되느냐”며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느니, 안전담보를 해줄 수 있다느니 하면서도 불가침조약을 법적으로 확약 못할 이유가 어디 있냐며 압박하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1994년 북미기본합의서와 그를 가능케 한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담보서한을 파기하거나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2000년 ‘10.12 북미공동코뮤니케’도 무효화시켰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 라서 북한은 ‘국회의 비준도 받지 않고 언제 유명무실하게 될지 모를 부시 개인의 담보서한이나 공동성명’이 아닌 또한 미 ‘행정부가 교체되는데 따라 법률적 구속력이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문건’도 아닌, 미국과 국제법에 따른 자주적이며 평등한 실체로서 적대관계를 영원히 해소해 버릴 수 있는 법률적 담보가 필요한 불가침조약을 요구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불가침조약을 통해 체제보장을 확실하게 담보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앞둔 미국이 ‘시간 끌기’를 통해 장차 북한을 붕괴시키려는데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핵 문제의 사단을 먼저 일으킨 미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측의 명분과 공세에 밀려 입장을 완화하면서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2차대전 당시 몇 나라들의 예에서도 보여지듯, 불가침조약은 일방에 의해 쉽게 파기될 수 있는 약점이 있는데도 왜 북한은 불가침조약을 계속 고집하는 것일까? 그것은 북한이 불가침조약의 구속력 자체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불가침조약 체결 과정에서의 대미공세를 통해 미국의 궁극적인 대북 붕괴전략 자체를 근본적으로 폐기시키려는 전략적 의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북핵 문제의 해법에 있어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화를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보다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자는 북한의 입장이 더 명분이 있다는 점이다. 또하나 분명한 것은 올해 초 이라크전 개전과 내년 선거일정 개시 등을 앞두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불가침조약 체결 공세에 지공작전을 쓰면서 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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