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장선거 평가와 민주노동당의 과제

섹션:

글쓴이 :

민주노동당 부산시지부는 4·13 총선 패배의 후유증으로부터 당이 소모적인 논란에 휩쓸리지 않도록 총선 직후부터 이번 지방선거를 준비해왔다. 근 1년에 걸친 지방선거특위 활동을 통해 시정 개혁 정책을 다듬어 왔고, 지방선거 전략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지방선거 200일 전인 2001년 11월 29일 시장후보를 선출하는 등 후보를 일찍 내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 주민을 만나 이야기하는 김석준 민주노동당 부산시장 후보  ▷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지부 ]

부산시장 선거의 복병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제2당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가지고 도전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첫 번째는 월드컵이었다. 지방선거일이 월드컵과 겹치지 않게 한 달 정도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예상과 달리 원래 일정대로 치러지게 됨으로써 사상 최악의 투표율이 예견되었다. 두 번째는 노풍이었다. 우리는 애초 노무현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예상했다. 민주당이라는 보수적 지역할거주의에 안주해 온 패거리 붕당구조에서 조직도 돈도 없는 노무현이 후보가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노사모'라는 자발적인 운동 주체와 국민경선이라는 운동 형식이 서로 맞물리고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노풍이라는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노무현이 대선후보로 결정되었다. 

노무현이 후보가 되면서 이른바 '신비판적 지지론'이 고개를 들었다. 노무현이 영남지역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석을 얻지 못하면 '재신임'을 묻겠다는 약속으로 인해 부산 시장선거가 말 그대로 대선 전초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특히 유력한 시장후보로 '문재인 변호사'가 거론되면서 상황은 더욱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문 변호사의 후보 출마 가능성이 크진 않았지만, 또 어떤 상황으로 발전할 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2당을 목표로 한 선거 전략 전반이 헝클어지고 있었다. 계급투표라도 제대로 조직할 수 있을까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가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부산시장 공천권(?)을 백지 위임하고, 박종웅 등이 거론되면서 문재인 카드는 물밑으로 가라앉았고, 이른바 신민주 대연합이라는 허구적인 구도에 집착한 노무현 캠프의 오판 덕택에 다행히 이 문제가 정리되면서 다시 자신감을 회복했다. 거기다가 후보 등록일에 노창동 씨가 후보 등록을 포기함으로써 시장 선거의 후보구도가 3자 구도로 최종 확정되면서 우리 후보가 TV토론에서 마이너로 취급될 가능성 자체가 없어졌고, 선거 보도에서도 크게 밀릴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이제 문제는 우리를 얼마나 차별화 시키느냐 하는 것만 남았다.

TV 토론에서의 선전

그런데 선거 초반 낮은 지지율은 다소 의외였다. 본격 선거전 돌입 직전의 KBS 부산방송국 여론조사에서 나온 2.7%, 한겨레 여론조사 1.8%는 충격이었다. 김석준 후보의 경우 교수 생활 20년에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왔고, TV토론 사회, 라디오 방송 MC 1년 등 부산지역 교수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언론에 많이 알려진 후보였다. 이런 활동은 우선 언론계에 김석준 후보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 수 있는 자산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이었다. 앞으로 치러질 미디어 선거에서 김 후보의 과거 언론계 활동은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부산지역 언론계 내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어 유리한 요소가 되었다. 

어쨌든 초반 인지도는 바닥세였다. 그러나 TV토론 등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책팀에서는 TV토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착실히 준비해왔다. 이것이 주효해 차별성을 부각시키며 인지도, 지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TV토론은 월드컵 방송에 밀려 공식 선거 돌입 전과 선거 기간 중에 각각 1회로 총 2회에 그쳤다. 그나마 두 번째는 오전 시간이어서 직장인들은 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TV토론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비록 시청률은 낮았지만, 우선 기자들이 김석준 후보에게 매료되었다. 그리고 토론을 본 사람은 누구나 김석준이 단연 돋보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포지티브' 선거전 - 정책선거

선거 초반부터 폭로전과 인신공격으로 흘러갈 때에도 정책선거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정책 테마 유세로 밀고 나간 것이 주효했다. 언론에서도 이런 새로운 선거문화 실험을 우호적으로 보도하는 등 득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테마 유세는 5월 24일 부산의 도시고속도로 '번영로' 통행료 폐지를 위한 후보 일인 시위를 하면서부터 기조가 정해졌다. 이와 같은 정책 테마유세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1년 전부터 준비해 다른 후보들에 비해 가장 완성도 높다는 평을 들은 100대 정책공약집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테마 유세는 미디어에 민주노동당의 차별성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무기였다.

한편, 부산의 민주당 후보가 한이헌으로 결정되면서 김이 빠지긴 했지만 노풍을 배경으로 한 민주당 한이헌 후보와 정권 탈환이라는 목표를 내건 한나라당 안상영 후보 간의 이른바 '대선 전초전' 구도는 우리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선거 초반에서 노무현씨는 부산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우리는 여기에 적극 대응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자회견이나 성명, 논평 등을 통해 대선 전초전으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분권과 자치를 생명으로 하는 지방자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세차게 몰아쳤고, 언론에서도 이런 지적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었다. 다분히 선거용으로 기획된 대규모 음악회 '바람이 분다'에 노무현과 한이헌을 동반 출연시키려는 시도를 무산시킨 것도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한이헌에 대한 노사모의 지지를 대중화시키려는 흐름을 저지시킨 우리측의 적극적인 대응 사례다. 

'대선 전초전론'이 잘 먹히지 않으면서 국면은 '저질 폭로전'으로 옮겨갔다. 안상영 후보가 시장 재임기간 중 부하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폭로에 대해서도 우리는 '정책선거' 기조로 일관성 있게 대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상황의 주도적 변수가 되지 못했어도 거리를 두고 비판함으로써 선거판을 양자 구도가 아닌 3자 구도로 유지할 수 있었고, 한이헌 측이 폭로하면 할수록 결국 우리만 유리해지는 판을 만들 수 있었다. 


[ 부산역 앞에서 민주노동당과 김석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노동자들  ▷ 출처:민주노동당 부산지부 ]

득표 분석

노무현의 적극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한이헌 후보가 얻은 표는 기존의 민주당 고정표인 14% 안팎에서 노사모 표인 5% 정도를 합친 것에 불과했고, 노풍은 제대로 수렴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우리는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표와 한나라당 이탈 표를 수렴해 저조한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17%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 20, 30대의 기권율이 높은데 비해 우리는 모든 연령층의 지지를 고루 받았다. 매일 지하철 투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층이 시큰둥한데 반해 오히려 40, 50대가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지하철 투어는 광역단체장 후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운동방식이었고, 상당히 의미 있는 운동이었다. 선거 초반에는 '웬 약장사(?)' 정도로 보던 이들도 선거 종반으로 가면서 우호적으로 반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변화의 흐름, 바닥 민심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선거 종반에는 이런 저런 여론조사 분석 자료들이 입수되면서 한이헌 후보를 따돌렸거나 맹렬하게 추격해 차이가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알았다. 유권자들을 만나면서 오는 '감'도 그런 것이었다. 수행팀도 엄청나게 고무되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이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낮은 투표율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고정 지지표를 갖고 있는 정치세력을 따라잡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했다. 조직의 확대 강화 없이 선거 과정에서의 차별화만 가지고는 기성 정치세력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 않다. 민주노동당의 고정 지지세력을 구축하고 확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향후 노동현장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속에 당 조직을 뿌리내리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조직선거, 계급투표는 어디에?

우리는 조직선거, 계급투표를 위해 이른바 10만 네트워크와 민주노총 조합원과 그 가족의 계급투표를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조직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원과 민주노총의 역할을 몇 마디로 단정해서 얘기하기는 어렵다. 

민주노총도 노동자 계급투표를 강조했다. 이것이 내용에서 얼마나 관철되었는지 민주노총의 자체 평가가 있어야 하겠으나, 민주노총의 선거운동 결합이나 모금 과정을 보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10만 네트워크 등 의욕적으로 제기된 조직사업도 당원들을 준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그 파장이 넓게 퍼지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방선거특위 조직팀 활동보고에 따르면, 10만 네트워크 조직 현황은 3천6백 여명에 그쳤고, 시민후보 추대위원회도 애초 목표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지방선거의 조직적 목표로 지구당, 지회 조직의 확대 강화와 지역 주민 속에 대중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로 삼자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적 목표는 충분히 달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선거 과정에서 당원조차 동원시키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고, 지역 주민 속에 뿌리를 내리는 사업은 후보를 낸 지역의 성과로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남은 과제는 이렇게 확보된 우리 당에 대한 인지도와 지지도를 당 조직의 확대 강화로 연결시키는 사업일 것이다. 

선거 이후의 과제
 
우리는 부산에서 제2당이 되겠다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2당인 민주당 후보를 2% 정도의 근소한 차이로 따라붙는 저력을 발휘함으로써 영양가 없는 정치세력에서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부각되었다. 더군다나 비록 43대 1이지만, 시의회에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이제 언론으로부터도 초미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이제 일상적으로 언론에 포착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신시가지가 들어선 해운대 구의회에도 2명의 당원이 당선되었다. 시정과 구정에서 모범을 창출해 민주노동당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대안 정치세력'으로서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 틀을 논의하고 있다. 시의원 및 구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고, 의정활동에 따른 정책을 생산하고, 지방자치를 위해 당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가칭) 지방자치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설치할 것이다. 이 기구는 노동계 및 시민사회단체와 정기적인 정책 간담회를 열어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의정에 반영하고, 정책 세미나를 통해 보다 전문화된 정책을 생산하며, 이것을 의정에 반영시키기 위한 지원팀을 가동할 것이다. 

이렇게 차별화된 의정활동으로 당 인지도 및 지지도를 지속적으로 높일 때,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우리가 얻은 134만 표를 깎아먹지 않고 지지세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대선을 맞게 된다. 이제 제3당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를 TV토론에서 제외할 명분은 없다. 다른 선거도 비슷하겠지만, 대선은 특히 미디어 선거전이 될 것이다. 중앙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지구당, 지부는 이번 대선에서도 '노동자 계급투표'를 조직해야 하고, 지구당 조직을 지역 주민 속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부, 지구당은 대선 그 자체보다는 1년 8개월 밖에 남지 않은 2004년 총선을 준비하는 관점에서 대선이라는 계기를 활용할 때 보다 주체적으로 대선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