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시대, 대중조직의 원칙을 중심으로 돌파해야

섹션:

글쓴이 :

여느 해보다 일찍 찾아왔다는 더위에 장마가 잇따르고 다시 폭염이 내리쬐는 7월, 여름의 한복판이다. 세상만사가 한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노사관계에도 큰 변화가 다가왔다. 복수노조시대의 개막이다. 기업단위에까지 복수노조가 인정되는 이 상황은 법제상으로는 반세기 가까이 지나 연출되는 변화다. 여러 가지 예상과 전망이 처지에 따라 달리 나오고 있고,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복수노조 인정 그 자체보다 단체교섭 창구단일화와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를 반대하여 법 개정을 요구한다. 6개월 또는 1년 만에 다시 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5․16 쿠데타 이후 단결권의 험난한 수난사

이 세상의 노동자들은 탄생과 더불어 단결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강고한 투쟁을 전개해 왔고, 가장 쉽고 강하게 뭉치는 단결의 방식을 강구해왔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래 미군정에 이르기까지 단결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는 주어지지 않았고, 1948년 7월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 제18조에서 비로소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되게 되었다. 그리고 1953년 3월 공포된 노동조합법은 일부 공무원과 사용자 쪽에 선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근로자에게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했다. 다만 단체협약은 공장 사업장 등 직장 단위로 체결하도록 하였으나 구체적으로 조직형태를 강제하지는 않았다.

단결의 자유가 제도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손상을 입기 시작한 것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이었다. 군사정권은 쿠데타 후 석 달 만에 노조 재조직을 조건부로 허용했다. 즉, 군사정권이 인정한 사람들만이 산업별노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설립신고증 교부를 의무화하여 ‘허가제’를 명시했다. 그에 따라 등장한 것이 한국노총체제이다. 그러나 과거 대한노총의 횡포에 반발했던 세력들이 군사정권의 방침에 반기를 들고, 공장, 기업단위에 제2노조를 만들며 그 세를 확장해나갔다. 군사정권은 1963년 4월 노동조합법을 개정 공포하면서, 새로운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를 노조 결격사유로 명시했다. 그리고 노조설립신고증 교부와 한국노총 인준증 첨부라는 수단을 통해 제2노조의 등장을 봉쇄했고, 기업, 산업, 지역, 전국 단위에서 하나의 노조만 합법성을 인정했다. 현업 공무원을 제외한 일반 공무원의 노조 결성 금지를 포함하여, 자유 단결권의 공동화, 복수노조 금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폭력적 조치들은 노동자들의 밑으로부터의 저항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곧 획일적 지배 통제에 익숙한 군부세력이 정권을 유지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강력한 통제가 가능한 일사분란한 단일 조직체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단결의 자유는 더욱 위축되었다. 1980년 12월 전두환 군사정권은 노동관계법을 전면적으로 개악하면서, “단위 노동조합의 설립은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한정하고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이 규정과 기존의 노조 결격사유가 결합되면서 기업별노조체계의 강제와 사업장 내에서의 복수노조는 완벽하게 봉쇄되었고 노동3권은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본격적으로 타오른 단결의 자유 향한 저항의 불길

노 동기본권이 봉쇄된 채 질식 상태에 빠진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생활이 돌파구를 찾은 것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악법의 굴레를 뛰어넘어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노동자들은 기존의 노조체제를 거부하고 민주노조진영을 구축해갔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1987년 11월28일 노동조합법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법은 과거의 악법조항들을 상당 정도 개선하면서도 단결의 자유는 더 좁혔다. “기존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경우”에 추가하여, “조직이 기존의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경우”에도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이다. 아울러 정치활동 금지, 제3자 개입 금지 조항도 그대로 존속되어 노동운동을 옥죄었다.

민주노조진영은 복수노조 금지 조항에 묶여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민주노조진영은 노동법 개정의 절박성을 인식하고, 개정투쟁이 전국적인 조직화와 포괄적인 정치사회개혁의 중요한 매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하에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기존 제도의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들의 이해와 엇갈려 노동법 개정은 추진되지 못했다. 1989년 여소야대의 국회는 상당 정도 민주노조진영의 요구를 반영하여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되고 말았다. 민주노조진영은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결성하고 ILO 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ILO공대위’)를 구성하여 노동법의 민주적 개정 투쟁에 박차를 가했다. 아울러 단결의 자유를 밑으로부터 쟁취해나가기 시작했다. 1988년 8월 한국자유금융노조연맹이 치열한 투쟁 끝에 한국노총 인준증 없이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았고, 1989년 5월에는 전교조 결성의 깃발이 올랐다. 언론노련이 1991년 12월 대법원으로부터 노조 설립신고증 발급거부는 위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낸 후, 병원, 전문기술, 대학, 건설 등이 속속 합법화함으로써 산업별 업종별단위의 복수노조 금지의 벽을 허물어트렸다. 또한 ILO결사의 자유위원회는 1993년 3월 ILO공대위의 주장을 거의 전적으로 수용하는 내용의 결정서 및 권고를 채택함으로써 민주노조진영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었다. 민주노조진영은 노동법 개정 요구를 한층 더 구체화하는 한편, 전국 중앙조직 결성에 온힘을 쏟았고, 마침내 1995년 11월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결성을 통해 자주적 민주적 내셔널센터의 출범을 만천하에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제도화되기까지

1992년 국제화 세계화를 내세우며 들어선 김영삼 문민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집단적 노사관계제도의 개혁을 천명하고 1996년 5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를 설치했다. 민주노총은 ‘참여와 투쟁’의 기조 아래 대표 2명을 한국노총 3명과 함께 참가시킴으로써, 실질적이고 대등한 노동계 대표로서의 위치를 공인받았다. 그러나 노개위에서의 논의는 사용자 쪽의 고용유연화 요구와 노조 쪽의 집단적 노사관계의 민주화 주장이 맞서 합의에 실패했다. 다만 공익위원 안으로 단체교섭 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복수노조는 전면 허용하되, 기업단위는 일정기간 유예한다는 등의 내용을 정부에 제시했다. 정부는 법안을 만들어 국회로 보냈고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26일 새벽 4시 국회본회의를 단독으로 열어 단 7분 만에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을 포함한 11개 법안을 날치기로 변칙 처리했다. 이 법안들은 당초 정부안보다 훨씬 개악된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노조의 총력투쟁은 필연이었다. 민주노총은 12월26일부터 사상 최초 최대의 전국 총파업에 돌입하였고, 한국노총 역시 적극적으로 총파업에 나서 정부 여당의 만행을 성토하였다. 국회는 1997년 3월13일 날치기법안의 폐지안과 여야합의안을 일괄 처리했다. 여기서 복수노조는 상급단체만 허용하고 기업단위 노조는 2001년까지 유예하는 것으로 정리되었고 교사와 공무원의 단결권은 유보되었다. 또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그 시행일을 2002년 1월1일부터라고 정했다.

1997년 말 엄습한 외환위기의 극복을 위해 국민의 정부에 의해 출범한 노사정위원회는 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였고 이에 따라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 합법화의 길이 열렸다. 이후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적 정부정책에 반대하여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하였다. 노사정위원회는 2002년 1월1일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기가 다가오자 대응책을 논의하고, 2001년 2월 이 과제 시행을 2006년 12월31일까지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2006년 3월 노사정위원회와 별도로 민주노총 대표가 참여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구성했다. 일부 조항에는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기에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다가, 9월11일 민주노총을 제외한 가운데 2009년 12월31일까지 3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2010년 1월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개정하여 2011년 7월1일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는 5월1일 근로시간면제 심의위원회의 결정으로 7월1일부터 근로시간면제제도로 바뀌어 시행되게 되었다.

복수노조 금지 철폐투쟁에 대한 성찰

1963 년 4월 복수노조가 금지된 이후 2011년 7월1일 복수노조가 전면적으로 허용되기 까지 반세기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영국에서 일반단결금지법이 1799년에 제정되어 1824년 폐지되기까지의 시간보다 2배 가까운 수준이다. 또한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자유 단결권 확보투쟁의 시발점으로 본다면 꼭 24년째가 되어서야 겨우 단결권의 기초조건을 보장받은 셈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노동자의 기본권 확보가 얼마나 지난한 것인가, 나아가 OECD 30여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만이 복수노조를 금지해왔다는 사실이나 ILO 협약 위반으로 13차례나 개선권고를 받았다는 사실에 이르면, 이 나라 노사관계의 후진성이 얼마나 오래 지속돼 왔으며 단결권을 거부하는 권력과 자본의 힘이 얼마나 완강한 것인가를 실감케 해준다. 이는 노동운동의 힘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약세이었는가를 반증해 주면서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아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투쟁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즉,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997년 법률상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삭제되기까지의 단계와, 1997년 이후 복수노조 허용이 시행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민주노조진영은 많은 조직적 역량을 복수노조 금지 반대에 투입했다. 이 투쟁은 정치투쟁, 제도개선투쟁의 일환으로 이루어졌고 정책참가의 한 방책으로 인정되었다. 그 결과로 10년 만에 법률상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삭제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복수노조가 전면 허용되기까지 다시 13년이 흘렀다. 더구나 민주노조진영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강제된 조직 형태에 관한 많은 제약조건을 극복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네 차례나 유예를 거듭하는 동안 민주노조진영은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빌미로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유예의 이유는 노사정 간 이해관계의 조정 실패와 준비부족이었다. 민주노총은 협상무대 밖에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해 당사자들의 복수노조 거부감에 기초한 시행유보의 담합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노동의 유연성 확대를 노동기본권 보장의 대가로 요구하는 권력과 자본의 강압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분명 자유 단결권의 확보는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또 조직형태를 비롯한 단결권의 실질적 내용 확보도 머뭇거리고 있다. 그로부터 민주노조진영이 법률상으로나 현실적으로 인정받고 산업별 지역별 조직과 이 나라 경제의 기반인 대기업, 공공부문을 장악했다는 현실에 안주한 결과는 아닌가하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절감되는 것은 제도개선투쟁이 얼마나 어려우며, 노동조합의 올바른 제도개선 투쟁 및 정책참가의 전략과 전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이다. 아울러 제도개선투쟁 또는 정책참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변혁의 기틀을 만들기 위한 정치세력화가 어디까지 진전되었고, 그 현상과 전망은 어떤 것인가를 되묻게 된다.

노동운동이 주도적으로 대전환 계기를 만들어내야

아무튼 복수노조의 전면허용은 노동조합운동이 위기라고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새로운 노사관계 형성과 노동운동 변화의 한 조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요소가 아울러 포함되어 있다. 법 시행으로 사용자 쪽은 교섭 창구 단일화로 인해 교섭력이 강화되고, 상대적으로 노조의 교섭력은 현저히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노동의 분열과 경쟁은 불가피하고 따라서 1대 다수의 유리한 전선을 지닌 사용자 쪽은 구조조정 압력과 유연성 확대공세를 강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조건이 유리했던 시대는 역사상 흔치 않다. 권력과 자본의 변화한 전략에 대응하면서 스스로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기도 하다. 이미 운동위기의 극복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고 보면, 새로운 상황 변화에 대한 대응 역시 그 과제에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운동의 시작과 끝은 노동조합이란 대중조직이라는 사실에 서 있고, 따라서 대중조직이 지닌 원리와 운영의 원칙을 어떻게 관철시켜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19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의 스물 네 돌과 때를 같이 하여 찾아온 복수노조의 시대, 24살의 성년이 되기까지 운동의 혁신을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무더운 7월이 대전환의 큰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