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산별운동 15년이 한국 노동운동에 던지는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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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3년 9월26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최한 노동포럼 <현장으로부터 듣는 노동운동 위기 진단과 대안 모색>에서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발표한 내용을 정리·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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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보건의료노조 이주호입니다. 의미있는 기획토론회에서 발제를 맡게 되어 기쁩니다. 전 ‘보건의료노조 산별운동 15년이 한국 노동운동에 던지는 화두’를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987년 개별병원에서부터 시작한 보건의료 노동운동이 올해 25년을 넘어서고 있고, 산별노조운동은 1998년 시작했으니 15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건의료노조에서의 구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산별노조운동의 가능성, 한계, 과제 세 축으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가능성·한계·과제로 보는 보건의료노조 15년
우선 산별노조운동의 가능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산별노조운동의 정체와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저는 산별노조운동에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1998년 산별노조를 만들 당시 ‘산별노조는 이렇게 가야한다’ 라는 당위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지난 15년 동안 실천을 했습니다. 그 때 자료를 보면 10년 안에 산별노조를 완성 한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완벽하게 해결된 계획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한국도 그렇게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확인했습니다. 
산별노조의 한계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제가 우리 보건의료노조를 그림으로 그려 보니 작은 배가 거친 태풍 속에서 항해하는 모습이더라고요. 왜 배가 침몰하지 않는지를 들여다보니, 선장과 몇몇 사람이 태풍을 잘 피하면서 운행을 하고 있는 수준이지 바닥 곳곳에서 물이 새고 부서지고 있더라구요. 모든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한계를 저희들도 똑같이 갖고 있고 내부적으로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산별노조운동의 과제를 봤을 때, 제가 오랫동안 산별노조 간부로서 산별교섭과 보건정책, 전략사업을 담당해오면서 의료 공공성 투쟁 등 큰 투쟁 과제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유지현 위원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저희가 내세운 슬로건은 ‘기본에 충실한 산별노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같이 더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희 보건의료노조는 그동안 노조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보건의료노조는 위기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를 심각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결국 결론은 ‘간부’와 ‘사람’을 화두로 현장 조직을 강화하면서 노사관계를 바로세우지 못하면 그 뒤에 나오는 사회 공공성, 정치세력화, 비정규직 등의 사업들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뒤처질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 공중전화? 휴대폰?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현재 우리 노동조합은 공중전화인가 휴대폰인가 한번 고민해 봤습니다. 위기의 노동조합이 최소한 명맥유지만 하는 공중전화 신세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의 요구와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수시로 변화․발전하는 휴대폰(스마트폰)으로 계속 진화할 것인가?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노조스럽다’는 얘기를 들어도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별종이긴 해도 현장에서 노동자와 조합원을 지키고, 한국 사회에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의미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갈수록 안 좋은 의미로 그런 말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 간부나 활동가들이 ‘외부와 고립된 외딴 섬’ 이나 ‘별종의 화성인’ 같다고나 할까요. 또한 요즘 툭하면 언론에서 ‘강성귀족노조’라고 노동조합을 매도하는데 사실 한국 사회에 진정한 강성노조와 귀족노조가 어디 있습니까? 오히려 문제는 우리 노동조합들 대부분이 전임자 중심노조, 관리형 노조로 전락한 것이 더 큰 문제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현장 조합원과 함께 준비기-교섭기-투쟁기-마무리-평가기라는 정상적인 임단협 프로세스를 밟아나가고 있는 노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1500만 노동자 - 80만 민주노총 - 4만 산별노조 - 지역본부 - 현장조직 - 조합원 이라는 체계와 유통구조 하에서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배달사고가 나서 전체로 노동자들의 힘과 요구를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있을까요. 최근 현장 선거에서 1987 세대의 재등장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전 귀족노조라는 식의 악의적 비난보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노조가 역사적 시대적 과제 해결에 제 역할을 못하고 그 존재감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노동운동 내부에서 새로운 변화, 새로운 시도가 많이 보이는데요. 이런 움직임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사실 요즘 노동운동이 재미가 없으니 언론으로부터 산별노조운동, 노사관계 이런 것보다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 협동조합, 진보정당 등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노동조합의 기본을 고민하면서 이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대 자본 노사관계(단체교섭)를 기본으로 하는 전통적·고전적 의미의 노조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다양한 시도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새로운 정세에 맞춰 새로운 모색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노동운동의 새 출발은 산별노조로부터
오늘의 주제인 ‘산별노조운동’도 이런 문제의식을 기초로 다시 첫 마음으로 노동운동의 기본을 세워가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출발은 더 큰 단결과 더 큰 투쟁을 만들어가는 산별노조로부터 시작돼야한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산별노조운동 평가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점이 ‘무늬만 산별노조인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늬만이 아니라 속까지 그 내용을 충실하게 채우고 있는 산별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공허한 논쟁을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산별운동 10여년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 산별노조가 내걸었던 기치들을 얼마나 실현해왔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오히려 의미 있을 겁니다. 아울러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고, 넘어서지 못한 한계와 벽이 있었다면 왜 거기서 전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는지 냉정한 자기비판과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런 평가를 바탕으로 미래의 산별노조운동의 형식과 내용,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교섭과 투쟁의 내용들을 어떻게 채워 갈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오래전부터 위기에 빠진 한국 노동운동의 돌파구가 있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 발표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현재 우리 노동운동이 안고 있는 속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새로운 모색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산별노조 건설의 의미와 과제 돌아보기
산별노조가 던지는 화두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왜 산별노조를 만들었는지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지면서 고민을 시작해보죠. 
1998년 산별노조를 건설하던 당시 우리는 △사회적 연대와 평등 실현, 차별과 양극화 해소, 동일가치노동에 동일임금 실현 △산업정책 개입을 통해 의료 공공성 강화, 무상의료 실현, 환자권리 확보 △조직 확대, 미조직 사업을 통해 노동시장 장악, 독점 △기업을 넘어 산업차원의 고용안정, 인력확보 △사회민주화, 사회 공공성 강화, 자주 통일과 평화,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앞장 △재정과 사람의 집중, 산별총파업투쟁으로 강력한 힘과 투쟁력 보유 △현장에 뿌리를 둔 튼튼한 산별노조운동을 산별노조 건설의 의미와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1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이 과제들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 노동운동이 힘을 합해도 그 어느 것 하나 실현하기 힘든 의제더군요. 실제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올바른 방향이기 때문에 산별노조로서 포기하지않고 이 과제를 끝까지 부여잡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다만 한국적 실현방안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듯합니다.
 
산별운동 15년이 노동운동에 던지는 첫 화두, 가능성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보건의료노조 산별운동 15년이 한국 노동운동에 던지는 첫 번째 화두는 가능성입니다. 최근 모두가 노동운동을 비판하는 분위기 탓에 노조에 대한 칭찬에는 인색하고 부족한 점만 부각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특히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보다 더 할 말이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 가능성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로서 나름 잘하고 있는 점은 산별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산별교섭 +의료 공공성투쟁 +산별집중투쟁’ 이라는 큰 그림 하에 노동운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오고 있다는 점과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실험과 경험, 실천들을 다해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보건의료노조는 척박한 노사관계, 법 제도적 제약을 딛고 ‘산별교섭’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왔습니다. 지금은 한국형 모델로 가는 조정국면 시기로, 산별교섭 실험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그 동안의 경과를 살펴보면 연맹 합법성 쟁취를 계기로 1994년부터 교섭권 위임을 통한 공동교섭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별 집단교섭이 성사됐고, 1998년에는 대 병원협회 중앙교섭 성사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후 2000년에 5개 산별노조 공동으로 대정부 법제화 투쟁을 벌였으며, 2002년 현장 단협 확보를 통한 아래로부터 산별교섭 성사투쟁을 통해 이듬해에는 특성별 집단 노사간담회를 성사시켰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2004년과 2006년에는 각각 1만명 산별총파업을 통한 산별중앙교섭 시작과 산별 5대 협약을 체결했고, 2007년에 사용자단체를 정식 구성하고, 임금인상 1.8% 분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사용하기로 하는 역사적인 산별합의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2009년에 노사간 극심한 갈등으로 산별중앙교섭이 중단되고 급기야 사측은 사용자단체를 해산했죠, 하지만 우리는 다시 2011년부터 기존 산별교섭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정상화로 가기 위한 보다 유연하고 창조적인 교섭전술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산별교섭 완전 정상화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했고, 올해는 ‘산별 특성교섭을 통한 산별중앙교섭 첫 자율타결 그리고 산별 노사공동포럼 병행 추진’이라는 보다 진전된 과정으로 한발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보건의료노조로서 ‘돈보다 생명을!’ 이라는 기치를 들고 보건의료분야에서 산업 정책 개입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의료 공공성 투쟁을 확대해온 점입니다. 우선 공공성 강화투쟁의 성과를 보면, 보건의료노조의 사회정치적 존재감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성공한 의제들을 살펴보면, 의료보험 통합과 보장성 확대, 암부터 무상의료운동, 영리병원 반대, 공공의료 확충, 지방의료원 복지부 이관, 개인간병 문제 해결을 위한 보호자 없는 병원, 환자안전을 위한 의료기관평가제도 개선 등이 있습니다. 전국을 뜨겁게 달구면서 지금도 진행중인 진주의료원 폐업철회 및 재개원 투쟁도 산별이기에 가능한 투쟁입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현장 문제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채 제도 상층중심으로만 진행된 의료 공공성 투쟁, 산별교섭 중단과 함께 의료 공공성 투쟁도 동반 약화된 점, 상대적 대자본 현장 투쟁의 약화로 인한 병원 현장에서의 영리화 추진에 대한 감시자로서 역할 부진, 대중적 주체 형성과 연대 운동에서의 한계 등이 그것이죠. 그래서 이후 의료 공공성 투쟁은 제 2의 의료 공공성 투쟁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당위적 의제보다는 병원 현장문제를 기반으로 현장의 힘이 뒷받침되는 의료공공성투쟁을 벌여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보건의료계를 대표하는 산별노조답게 한국 의료공공성투쟁을 선도하면서 큰 판을 짜는 투쟁을 벌여나갈 것입니다. 의료를 넘어 복지국가 운동과 정치운동, 산별운동과 결합하여 사회대개혁투쟁으로 승화 발전하는 투쟁도 벌여야겠죠.
이어서 5천명 진보정당 집단입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실험을 했다는 점이 세 번째 가능성입니다. 2012년 총선 당시 우리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에 5천명이 집단입당하고, 전략적으로 후보를 출마시켰습니다. 전 조직적 총선 투쟁을 벌이기도 했고요. 이는 산별운동을 선도해온 보건의료노조가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과 정치적 실험에 나서면서 의미 있는 산별활동의 경험을 축적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조합원들의 잠재된 정치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다만, 당 비례후보 선거제도의 모순과 문제점으로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이후 대중조직의 진보정당 참여와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진정한 노동중심 진보정당 건설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과도기라는 시기적 특성과 공조직 약화, 의견그룹이 주도하는 당의 내부 질서 하에서 산별조직과 대중조직이 당에 들어설 공간이 매우 협소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고요.
네 번째 가능성은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가하고, 국회 법안·예산안 수립 과정, 각종 선거에 후보와 정책협약식을 통해 적극 개입한 점입니다. 우리 보건의료노조가 정부 위원회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따져봤더니, △의료기관 인증위원회 △의료기관 평가인증원 △보호자없는병원 시범사업추진단 △서울시 환자안심병원지원단 △특수의료장비 T/F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T/F △중소병원 인력 T/F △건강보험이의신청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국민행복의료기획단 등 정말 많더라고요. 물론, 그동안 산별노조 활동의 성과로 참가하게된거죠. 저는 이런 현황을 보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정부 지원 방침과 노사정위원회 참여 등의 논쟁을 넘어 산별노조가 자기내용만 더 준비되면 이전보다 훨씬 더 열려진 정치적 공간에서 제도 개선과 정부 정책에 있어 더 많은 개입과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산별노조라는 우산 하에서 수백일, 길게는 7년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는 장기파업․ 장기투쟁으로 민주노조를 지켜온 점, 산별노조로서 돈과 사람을 집중하면서 활동에 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 사업을 체계화·정교화한 점, 노조 최초로 정책사업비 연 1억원 돌파 등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하고 창조적인 일상 활동을 전개했다는 점도 산별노조의 가능성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산별노조 활동을 가능케 한 다양한 원동력
이번에는 앞서 말한 활동들이 가능했던 원동력에 대해 살펴보죠. 첫 번째 이유는 산업적 동질성입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노동자를 포괄하는 산별노조로서 그 어느 연맹 조직보다 조합원의 산업적 동질성이 높아서 공동사업의 토대가 튼튼합니다. 다만 9%밖에 안되는 공공의료 비율, 직종의 다양함과 규모의 편차, 경영상태의 편차는 산별활동의 장애물입니다. 
다음으로 주체적 관점에서는 전문직이면서도 높은 육체적 노동 강도를 요구하는 교대근무노동의 특성상 현장 요구가 역동적이어서 투쟁의 근거가 확고하고, 여성사업장 특유의 부드러움 속에서의 강인함과 순수함, 헌신적인 노조간부, 산별노조에 대한 현장의 애정과 신뢰 등이 산별노조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와 더불어 정파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조직 문화 속에서 모든 논의를 공조직 중심으로 진행하며, 조직의 공식 결정은 반드시 실천하는 병원 노동운동 특유의 조직문화와 역사적 전통 역시 산별 건설과 활동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기득권을 흔쾌히 포기한 대병원 노조들의 용기와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노조들은 산별의 모든 사업과 투쟁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중심을 확고히 세워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보건의료산업이 고령화사회복지국가로 가는데 있어 성장산업이란 것도 보건의료노조 활동에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고요.
 
두 번째 화두, 산별노조운동의 한계
이번에는 보건의료노조 산별운동 15년이 한국 노동운동에 던지는 두 번째 화두를 보겠습니다. 바로 한계입니다. 저는 우리가 위기의 노동운동을 극복하려면 이 한계 측면에 대해 많이 얘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건의료노조도 사실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데, 겉으로 보면 어려움이 없어 보이죠. 그 이유는 산별노조운동이 15년을 경과하면서 안정적인 구조와 울타리가 생겨, 그 틀 안에서 부족한 점이 커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점들이 포장되어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거죠. 그런데 산별노조운동의 큰 흐름이 이후에도 유지․확대․발전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조직의 지속가능성은 대단히 불투명합니다. 산별 주체의 힘과 더불어 전체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의 변화발전 가능성, 정치·경제·사회적 환경변화 등 여러 변수를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계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하는 지점은 현장 동력 약화와 힘의 우위에 기초한 대등한 노사관계 후퇴, 사측의 신인사 신경영 등 고도의 인사노무관리에 대한 발 빠른 대응과 투쟁이 쉽지 않으면서 현장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노조 활동에 있어 현장 조합원 참여가 저조하고 지부 선거 경선도 줄어들었으며, 길어지는 임단투로 인해 1년에 3분의 2 이상이 임단투 일정으로 소비되는 상황입니다. 이는 결국 일상 활동의 시간과 공간을 갈수록 협소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또, 산별을 강조하다보니 외부 활동·보건의료정책 활동 과잉, 1회성 이벤트식 기획사업이 넘쳐나는 반면, 상대적으로 현장 노동정책, 임금, 단협 투쟁이 소홀해집니다. 산별임금정책, 고용정책, 직종 정책 등 구체적 현장 정책 관련 콘텐츠도 부족합니다. 이것은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노조활동에 비춰 볼 때 현장 투쟁 동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특히 노조활동이 1년 단위로 가다보니 중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한 요구나 사업들을 꾸준히 진행하지 못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이 밖에도 보건의료노조가 과연 당면한 사업을 넘어 사람 중심 활동을 벌였는지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번에 보건의료노동운동 25년사를 정리하다보니 노조를 거쳐 간 지부장과 활동가, 현장 간부들만 해도 수백, 수천 명이 넘는데 이 간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과연 노동조합이 사람을 남기고 있는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이들과 새로운 인간, 새로운 병원,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해왔는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듯합니다.  
 
마지막 화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보건의료노조 산별운동 15년이 던지는 마지막 화두인 ‘과제’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요? 올해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확정된 보건의료노조 2013 주요 슬로건은 ‘기본에 충실한 산별노조! 현장에서 다시 시작하는 희망대합창!’입니다. 확인된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에서부터 제2산별노조운동을 시작하자는 것이죠. 이를 위해 핵심 키워드로 ‘현장, 사람, 노사관계 바로세우기’를 잡았습니다. 사실 전 산별노조 간부로서 그동안 줄기차게 산별교섭, 비정규직, 사회공공성, 정치세력화, 지역운동 등 수많은 과제와 의제를 던지면서 산별다운 활동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현장과 우리 자신을 둘러보니 사람을 준비하면서 현장을 복원하고 노사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한 기본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이런 산별적 활동들이 대중조직으로서 노조활동인지 NGO 수준의 전문가활동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워 질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현장 요구를 발굴․조직하고, 노조 활동가 간부 육성과 체계적인 교육 훈련, 현장 중심․사람 중심의 사업 기풍을 세워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선후 관계로 접근할 문제는 아닙니다. 현장강화와 정치, 지역, 공공성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서로 힘을 받으면서 갈수 있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며 공중전과 지상전의 조화 또한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산별노조에 걸맞은 산별교섭-초기업교섭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원칙론적인 접근보다는 중층적 교섭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창조적이고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며, 기업별노조체제 중심의 현 노동법 전면개정투쟁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전면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조항만 바뀌어도 큰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산별 의제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조합원의 참여와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는 두루뭉술하게 조직 강화를 외치기보다는 지역과 특성, 직종, 세대, 비정규, 미조직 사업 등 각각 세부 영역에 맞는 조직사업 방식이 요구됩니다. 이어 네 번째는 2030 청년세대 조직, SNS 등을 통한 소통, 창조적 교육방식 등 실력과 감동을 주는 조직 활동을 고민하고, 다섯 번째로는 정책연구소, 교육원 등 건립, 변호사, 박사 등 전문가 채용 및 정책 네트워크 강화 등 보다 전략적, 전문화된 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민주노총 전체로 볼 때는 조직 통합과 재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기약없는 대산별 논쟁이나 무질서한 각개약진을 넘어 표에 나오듯이, 기존의 규모와 질이 불균형한 16개 산별연맹 체제를 통합 개편하여 내용적으로 5~6개의 대산별연맹으로 정비해야 합니다. 또 그 산하에 실질적인 교섭과 일상 활동 등 노동 3권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중(소)산별노조 15~20개로 재편하면서, 지금의 지역본부를 대폭 강화하여 종축, 횡축으로 조직 시스템을 전면 재조정,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되어야 민주노총이 보다 효과적으로 현장, 산별과 지역의 힘을 하나로 모으면서 제대로 된 큰 투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방향에 대한 공감대만 형성되면 획일적 추진보다 일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준비된 조직부터 단계적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특히 이는 투쟁과정에서 추진되어야 탄력을 받을 수 있겠죠.
 
이제 마지막으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첫 마음으로 노동운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자본에 각을 세우고 현장 복원 운동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준비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지역, 정치, 공공성, 연대 등 해야 할 과제는 넘쳐나는데 현장이 침체되고 약화되면서 노조 활동가나 간부 등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갈수록 노동운동 전체를, 세상을 한꺼번에 확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함께 하자’고 기다리지 말고 나부터, 우리부터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전체가 동시에 하는 투쟁을 넘어 작은 모범과 모델을 만드는 투쟁부터 시작합시다. 보건의료노조든 금속노조든, 일반노조든 어떤 개별 노조든 자기 단위에서부터 모범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조직과 세상을 바꾸지 않으면, 다함께 동시에 바꾸자는 것은 결국 한걸음도 전진을 못하고 지리한 논쟁과 책임공방에만 머물 우려가 큽니다. 위기를 넘어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여전히 산별노조의 가능성과 힘을 믿고 노조의 사회적 역할, 시대적 전략적 방향은 분명히 세우되 ‘현장, 사람, 노사관계 바로세우기’ 라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지금 가능한 것을 우리부터 시작하자는 것이 제 이야기의 요지입니다. 사례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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