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노조 파업이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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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 발전노조의 38일 파업이 멈췄지만, 상황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정부는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전소 매각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발전노조 파업과 관련한 '4·2 노정합의' 이후 그 경위 확인과 내용 비판, 파업철회 결정의 문제점 논란, 비대위 구성을 둘러싼 혼선과 몇 차례의 주요 회의 유회를 겪었다. 후유증은 한 달 넘게 계속되었고, 민주노총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지만, 발전노조 정상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발전노조 지도부 구속·수배, 348명 노조간부 및 현장 활동가 해임,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가처분 결정에 따른 급여가압류, 복귀서·서약서·감사 등을 둘러싼 회사측의 인권 탄압과 노조원들의 반발 등 노사·노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노조원들 사이에는 감정 섞인 파업 평가가 제기되고, 사태 수습안을 둘러싸고 이견이 난무하는 속에 조직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산자부 및 발전회사 경영진은 파업복귀 이후 산별노조 와해와 기업단위 노조로의 재편을 기도하고, 해임자 처리, 손배 가처분 등의 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노조의 반발을 초래하고, 노조는 현장탄압 및 민영화 추진 방침에 반발, '제2파업 추진'을 둘러싼 논란을 거듭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발전노조 파업을 둘러싸고 제기되었던 쟁점과 파업에서 비롯된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냉정히 말해 지금 국면은 노동조합에 유리하지 않다. '경이적인 파업'은 지금 '조직 수습'을 위한 벼랑끝 대치로 내몰려 있다. 이런 시점에서,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평가는 당면 위기를 수습하는데 온 힘을 모은다는 원칙 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장기 파업의 동력 

2월25일을 앞둔 시점에서 노동계에서 발전노조의 파업을 말하는 이는 적지 않았으나, 그 파업의 양태가 어떠할지, 최소한 초기 파업 참여 정도가 어떠할지를 가늠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발전노조 집행부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정보경찰 등 공안 관계자들은 발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조합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강성집행부를 공격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당시 파업에 돌입한 공공부문 3사 중 가스, 철도는 파업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발전만 파업을 예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안기관의 판단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뚜껑을 열어 확인한 첫 파업대오는 놀라운 것이었다. 5,700명 조합원 중 5,300여 명, 압도적인 참여였다. 서울대에 모인 조합원들도 놀랐다. 

누구도 자신 있게 발전노조의 파업 양태를 말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발전노조의 파업이 준비되고 기획된 파업이라는 주장은 유보해야 한다. 발전노조는 출범한지 6개월을 조금 넘고 있었고, 조합원 조직화는 매우 부실했다. 현장의 지도력은 굳건하지 않았고, 조직 내부의 통일성 역시 대규모 파업을 감당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발전노조의 부실을 메운 것으로 철도노조의 연대파업 돌입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철도와 발전은(그리고 가스노조까지) 각각의 부족을 연대투쟁이라는 틀 속에서 보완하면서 공언해온 파업에 돌입하기에 이른다. 철도, 발전, 가스 노조는 2001년 10월 말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한 후, 두 차례 대규모 집회 등을 통해 민영화 정책 철회라는 공동 요구를 제기했고, 집행부 차원의 공동행동, 기자회견과 간부수련회, 파업찬반투표 등을 통해서 공동 일정을 수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공동투쟁위원회 활동은 각 조직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파업 돌입 결단을 관철할 수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 

단순하지만, 발전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이 파업 돌입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 역시 틀림없다. 민주노총(및 공공연맹)은 발전노조 집행부의 취약한 경험을 보완하고, 파업 돌입으로 가는 과정을 안내했으며, 과정 하나 하나에서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를 높이도록 작용했다. 파업 초기 '민주노총'에 열광하던 파업 참가 조합원들의 반응은 이를 확인시킨다. 이런 이유들로 발전노조(그리고 넓게는 공공3사)의 파업이 민주노총 등 노동계 한 주체들의 '부추김'으로 이루어졌다는 정부측의 인식을 낳았다. 

정부의 관료적 통제에 대한 불만

그러나 상급단체의 역할은 파업을 '있게 한' 작용이었지만, 그것이 대규모 파업 참여와 38일 파업의 동력 그 자체일 수는 없다. 동력은 역시 내부에 있다. 파업 초기 서울대에서 마주친 조합원들의 흔한 반응 중 하나는 "산자부 너희들, 이젠 죽었다"는 것이었다. '허둥댈 산자부를 생각만 해도 묶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산자부는 전력산업(한전, 발전자회사 등의 기업)에 대한 감독주무부처다. 1994년 이후 전력산업 구조개편 연구를 지휘하고, 1998년 이후 발전소 매각 방침을 결정하고 추진해온 부처다. 일상적으로 한전과 자회사(파업에 참여한 발전노조 조합원이 속한 발전회사는 모두 한전 자회사임)의 예산, 조직, 인사, 노사관계를 감독하는 부처다. 이 부처의 관료적 통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파업이라는 계기를 통해서 분출했다. 물론 감독 부처가 산자부라는 것일 뿐, 이 불만은 공기업에 대한 관료적 통제, 곧 정부행정에 대한 공기업 종사자의 누적된 불만 그 자체다. 

발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게된 2월 말은 그동안 정부가 거듭해서 밝힌 '5개 발전자회사 중 1개를 매각하겠다'는 2002년 상반기다. 정부는 2월 말까지 매각을 다짐하다가 일정이 밀리자 2월 말까지 매각대상 발전회사를 선정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지난 3∼4년 동안 전력산업 구조개편, 그리고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전력산업의 분할·민영화가 차근차근 진행되어 왔으나, 여전히 전력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내부 구성원의 반발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전력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당사자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진행을 지켜본 조합원들의 분노 역시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어 왔다. 그리고 매각대상 회사 선정, 상반기 중 1사 매각 완료 방침을 대하면서 누적된 분노는 출구를 찾고 있었다 할 것이다. 

파업의 동력은 공기업에 대한 관료적 통제 그 자체에 있었다. 정부는 사회 문제인 발전소 매각 정책을 사회적 합의나 민주적 논의를 무시한 채 밀어 부쳤고, 조합원들은 사회적 의제에 대응하지 않는 정치권의 알맹이 없는 논의를 지켜보아야 했다. 자신들의 일터인 발전소의 매각 정책에 반대하지만 그 반대를 표출할 수단이 없는 노조원, 심지어 직원 전체의 분노는 마침내 노조의 파업 선언을 통해 순식간에 타올랐다. 이 점에서 이번 파업을 '2000년 12월 파업이 지연되었다가 분출한 것'이라는 평가 역시 틀림없는 것이었다. 

발전노조원 특유의 집단성 

한편, 발전노조원들의 특유의 집단성(팀 작업, 다수의 수도공고 출신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택 생활을 통해 이루어진 생활에서의 결합 등) 역시 초기 산개 투쟁은 물론, 파업 38일을 관통하는 투쟁의 주요 동력이었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사택 생활을 통한 생활의 결합은 장기 파업에 따른 조합원들의 동요를 조직 내부로 수렴하면서 투쟁 대오를 지속시킨 주요 동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3월 이후 강도 높은 발전소별 가족대책위원회 구성 및 활동에서도 확인된다. 

4월26일 이후 파업 중단 때까지 계속된 산개 투쟁 역시 독특한 전술이다. 조합원들은 고립을 견디며 투쟁대오를 지켰다. 인터넷, 무선통신은 고립을 견디는 수단이었고, 산개조를 연결하는 수단이었다. 수 차례의 '전원해임 협박'을 견디며 최후까지 3,500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대오를 유지했다. 파업이 지속되면서 교섭에 대한 기대와 발전업무(특히 운전분야)가 요구하는 업무의 전문성 때문에, 대체인력을 통해 견디는 회사측의 양보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가정일 뿐이지만, 만약 정부나 회사가 합리적이었다면, 노동조합의 강력한 문제제기에 직면해서 최소한 '매각 정책의 타당성 여부를 재검토해보자'는 수준에서 문제를 풀어나갔을 것이고, 그것이 옳다.) 

또 민주노총의 연대투쟁(2.26 연대파업, 조합원 숙식제공, 3.26 대의원대회를 통한 연대파업 결의 등), 사회단체·민중운동단체들의 지지 등이 이런 내부 동력을 고무시켰다. 마무리 과정의 과오 때문에 여러 성과의 빛이 바랜 듯 하지만, 이를 소중한 경험과 자산으로 만드는 작업이 노동계의 과제로 남아있다. 

노동조합에 대한 관료적 대응은 노조의 주요 요구였던 단체협약 체결과 관련한 발전자회사 경영진의 대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출범한지 6개월, 단체교섭이 시작된 지 4개월 여에 이르도록 노조와 발전자회사는 단 하나의 단체협약 조항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회사는 노조를 무시하고자 했고, 노조는 맞대응했다. 그렇게 교섭기간이 흘러 파업에 이른 것이었다. 경영자나 국가권력이 노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당연하다고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매우 '상식적인' 관념, 이것이 사태를 키운 것이다. 

이번 파업에서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확인하고 배워야 할 것은 '노사자율', '노사자치주의'야말로 산업 현장의 민주주의를 위한 전제조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통제는 반발을 부른다. 더구나 지금(민주사회라 하든, 민주화 과정이라 하든, '외피만 쓴 민주주의'라 하든) 통제는 기껏해야 집행부의 행동 반경에 그칠 수 있을 뿐, 수많은 조합원, 더 많은 노동자의 저변에 흐르는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 


[ 지난 3월 김대중 정부의 노동자 탄압을 규탄하기 위해서 방한한 국제노동계 대표단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출처:매일노동뉴스 ]

협소한 전망과 경험 부족 

발전노조 파업은 현 정부 들어 더욱 노골화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구조조정)의 핵심 의제인 '공기업 민영화' 정책의 문제점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구한 투쟁이었다. 이런 점에서 파업 투쟁의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파업의 주체였던 노조운동의 성과와 한계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발전노조는 발전소 매각에 반대하는 투쟁을 폭발시켰으나,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지금도 여전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진행중이다. 이미 발전 자회사가 분할되었고, 한국전력공사에서 분리되었다. 기존의 한국전력공사 체제(발전-송전-배전이 통합된, 대규모 단일조직에 의한 전력공급체제)에 대한 다양한 반발도 존재한다. 이런 조건에서 노조가 주장하는 전력산업의 개편 방향은 당연히 사회적 관심사다. 노조는 "지난해 1조 7천 억의 순이익을 내었는데 무슨 개편이냐"는 말로 안주할 수 없다. 진행중인 구조개편에 대한 노조의 의견과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구조 개편은 신자유주의고, 그러니까 반대한다'라는 주장만으로 대중을 제대로 설득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한편, 이번 파업에서 두드러진 것은 시민단체·민중운동단체의 적극적인 의사표현과 활동이었다. 많은 시민단체, 학자, 여론형성의 상징인 진보적 사회인사 등이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견인되어, 노조의 요구·투쟁에 대한 지지를 적극 표현했다. 발전소 매각을 유보하고, 사회적 합의에 맡겨야 하며, 발전노조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는 단일 노조의 투쟁에서 유례가 드문 현상이었다. 

3월7일, "전력생산의 60%를 차지하는 5개 화력 발전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는 충분한 토론과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강원룡 목사 등 사회원로 988명의 성명서를 필두로,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3월8일), 박형규 목사 등 사회원로 5인(3월16일), 경제학·경영학 전공 교수 102인(3월 19일), 사회학 교수(3월20일), 교육의료 13개 단체(3월26일), 환경연합·녹색연합·참여연대·여성연합·민주노총(3월27일), 문화예술인 105명(3월 28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3월28일), 정치학자 30명(3월29일), 경실련(3월29일), 천주교 인천교구(3월31일), 영국 유학생 40명(4월1일), 대구지역 학계·법조계·종교계·시민단체 등 332명(4월1일), 그리고 한국산업노동학회 (4월1일)의 성명서가 봇물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런 의사 표현이 노동조합의 투쟁을 빛나게 하는 보조 역할 이상을 담당하지 못했다는 점을 돌아보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촉발한 사회적 담론은 시민사회에서 더욱 확산되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투쟁 철회로 집중점을 잃고 유실되어가고 있다.
 
민주노총의 연대파업 결의가 담고 있듯이, 발전소 매각정책 등 필수공공서비스사업(또는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 의제다. 이 점에서 무엇으로 신자유주의 구조개편 정책에 맞설 것인지에 대한 성찰 역시 필요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민중의 파편화, 이중구조화, 내부 차별화를 지향하고 있다면, 이에 맞서는 수단은 역시 '사회적 연대'일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단체의 지지와 동참은 노동조합의 투쟁을 위한 보조물을 넘어 사회적 의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민주 세력의 폭넓은 연대를 뜻하며, 이 점에서 시민사회의 움직임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후퇴·수정을 압박할 수 있는 지원군이며 핵심동력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여기에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 상급조직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 진영의 협소한 전망과 경험 부족으로 솟아오는 시민사회의 역량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파업 종결에 이르렀다. 

투쟁 기조와 교섭 기조의 불일치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시민사회의 미성숙, 관료집단의 의사결정 독점 등의 조건 위에서 관철되고 있다. 당연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민영화·유연화 공세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의 민주성 제고, 사회적 논의 활성화 등 관료적 의사결정구조의 개편 요구와 결합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의제를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관점 역시 절실하다. 발전소 매각을 둘러싼 노정 갈등, 그리고 사회적 갈등 역시 노정 교섭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해결해 가는 것이 정당하다.(물론 노정간에 교섭해야 할 사항이 없지 않고, 정책의 수립과정, 재검토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이해당사자로서의 발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발전소 매각이 5,700 발전노조 조합원과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이 '사회적 해결'의 모색보다는 '노정 교섭'을 통한 해결에 치우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적 논의'는 정부와 노조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메우는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발전노조 파업은 사실상 기획되지 않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노동조합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넘어선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투쟁은 예상을 뒤엎고 강고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략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노총·공공연맹·발전노조 집행부는 투쟁 동력을 감당하기가 벅찼고, 정부가 강경 방침을 고집하고 교섭교착이 계속되면서, '끝까지 투쟁'이라는 단순 전략을 벗어나지 못했다. 파업대오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대량해고 협박에 몰린 조합원의 동요는 거듭 확인되었지만, 국면을 새롭게 타개할 만한 전술은 진지하게 모색되지 못했다. 

한편으로 노정교섭을 통한 타결에 집착한 상급단체의 교섭 전략은 투쟁 기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4월2일 이후 정부나 교섭단이 설명하고 있는 보고에 따르면, 노동조합 교섭단은 3월8일 중노위 직권중재를 앞둔 시점부터 '민영화 노 코멘트'를 제안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2월 말 파업돌입 전후에 파업을 막기 위해서 또는 파업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서 정부가 내놓은 제안이기도 했다. 

이렇듯, 투쟁기조는 '계속 투쟁'이고, 교섭기조는 '끝내자'는, 투쟁과 교섭의 불일치가 계속되었다. 투쟁에서의 '좌편향', 교섭에서의 '우편향'이라 할만한 교섭과 투쟁의 불일치는 결국 4·2 합의로 귀결되었다. 


[ 4·2 노정합의에 대한 현장조합원들의 반발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퇴 발표를 하고 있다.  ▷ 출처:매일노동뉴스 ]

내부 단결력과 외부 연대 강화해야

발전 조합원의 복귀 이후 현장 상황은 대단히 어렵다. 주요 현장지도력이 현장으로부터 분리되고, 단순하게 보면 해임자 규모가 348명에 이른다. 무노동무임금 적용은 물론, 3,900여 조합원들이 사측의 피해보전 가압류조치로 급여의 절반 이상을 압류당하고 있다. 투쟁의 주역들이 복귀서, 각서, 감사, 가압류 등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고, 투쟁기간 동안 가족대책위원회에 결속되었던 가족들도 흔들리고 있다. 조직 와해를 노린 회사와 관료들의 치밀한 공세 속에 조직 내부의 갈등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서 우선 정부와 사측의 공세를 차단하고, 노동조합의 단결을 도모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현재의 탄압이 반인권적이며 반사회적이라는 점을 직시하고, 이를 규탄하는 다양하고 폭넓은 대오를 노동조합 안팎에 확보해야 한다. 조합원들을 옭 죄고 있는 급여 가압류 조치의 위법성을 고발·시정하고, 대규모 해고사태의 부당성을 공격해야 한다. 실제로 워낙 '발전인들의 집단성'에 근거한 대중적인 투쟁이었던지라 특정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근거가 모호하고, 그러다 보니 파업 이전에 노조의 직책을 맡았던 모두에 대한 해고조치로 대응하고 있다. 한편 노사간 교섭 틀을 시급히 복원하고, 현장에서의 노조 조직력을 지켜내야 한다. 

조합원의 자신감만 복구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파업 평가에 대한 대중적 논의를 조직하고, 그 논의 내용과 결과에 열린 자세로 응해야 한다. 나아가 파업 기간 중 치솟았던 발전 매각 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를 추슬러야 한다. 발전소 매각 유보 및 재검토 요구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여전히 일방적인 민영화 정책 강행 기조의 문제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이는 노조 상급단체와 사회단체가 담당할 몫이다. 

예정된 선거국면 등을 적극 활용해서 '전력·철도 등 필수공공서비스사업의 민영화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차기 정부로 정책 과제를 이관시키고, 사회적 재논의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황이 어렵고, 과제는 벅차지만, 이럴 때일수록 패배감에 젖지 않고 위축된 대중의 상태를 감안하면서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키우고, 외부의 연대를 조직하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들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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