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조직혁신 방향 및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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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민주주의·현장조직력·연대성의 실천적 강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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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조직을 바꿔 새롭게 함.” 국어사전에서는 혁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변화와 혁신’ 우리가 자주 만나는 단어 중의 하나다. 민주노총에서도 혁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의 각종 회의에서 혁신 또는 혁신위원회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그 어느 때보다 “바꿔 새롭게” 하여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다. 


[ 3월 15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출처:매일노동뉴스 ]

아프게 밀어야 묵은 때가 벗겨진다 

지난 해 말, 조직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에 들어간 것도 민주노총 사업 전반을 점검하고 새롭게 하여야 한다는 조직의 요구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 민주노총 내에서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다. 몇 차례 조직 혁신을 위한 기구가 구성되어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몇몇 대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직 내부의 혁신에 대한 요구가 공식적인 조직혁신 활동에서 구체화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일부에서는 혁신사업을 추진하던 집행부가 집행부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혁신사업을 활용한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혁신사업이 상층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조합원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하면서 좌초될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혹자는 아직은 위기의식이 부족하여 혁신이 어렵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간의 혁신사업이 성공하기 어려웠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현 질서에 대한 관성이 아니었나 한다. 기업별 노동조합의 오랜 관행에 묶여있는 노동조합 간부들에게는 현재 노동조합 체제가 가장 익숙한 것일 수밖에 없다. 구호로서의 혁신과 현실로서의 혁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기업별노동조합을 극복하고 산별노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일은 한국노동조합운동에서 가장 핵심적 과제다. 상당수의 노동조합이 산별노조로 전환하였으며 일부 노동조합에서는 산별교섭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본격적인 산별노조 시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데에는 영향력이 큰 대기업노동조합이 여전히 기업별노동조합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노조는 기업노조 자체로도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어 산별전환의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새롭게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거나 변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변화에는 고통이 불가피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혁신은 쉽지 않은 과제다. 변화에는 저항이 있다. 그리고 그 저항은 항상 나름대로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으며 변화를 꺼려하는 세력은 여기에 힘을 보태기 마련이다. 변화와 혁신에 대한 추상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곧바로 혁신이 성공하는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커진 ‘위기’ 목소리, 그 바닥에 깔려있는 것들

최근 민주노총 주변에서는 혁신에 대한 요구가 높다. ‘위기‘라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간부의 63.6%가 민주노총이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 조사결과도 2004년 10월에 나온 것이다. 현재 상황을 봤을 때 만약 지금 조사를 한다면 위기라는 응답이 훨씬 많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안고 있는 위기적 요인은 매우 복잡하다. 대의원대회의 폭력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조직 내 민주주의의 현주소에서부터 일부 노동조합의 비리문제까지, 다양한 내부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있다. 외부적으로는 세계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몰고 오는 경제구조와 노동시장 구조변화가 노동자의 삶과 노동운동의 기반에 치명적인 균열을 가하고 있다. 또한 국내 정치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여전히 배제와 소외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노동운동의 사회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외부적인 위기 요인으로는 노동자의 삶을 하향질주의 무한경쟁으로 몰아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파도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에 따른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으로 우리 경제는 세계화에 휩쓸렸다. 시장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는 구조조정의 일상화로 불안한 일자리를 구조화시키고 있으며, 노동시장의 불안정 심화는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등 나쁜 일자리에 머물도록 만들면서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했다. 한편, 정보와 지식경제로의 이행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술혁신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이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성장산업과 전통산업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다. 그리고 시장 개방 가속화는 경쟁력 있는 기업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반면 농업, 중소기업 등 ‘경쟁력’이 약한 부문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게다가 역설적으로 ‘정치 민주화의 진전’이 양극화를 강화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정치민주화가 함께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민주화의 진전으로 개발연대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해체된 빈자리에 재벌·관료·언론권력이 주도하는 보수적 민주주의 질서가 자리 잡게 됨에 따라 계급구조의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개발독재시대에는 강압적으로 노동자 전체의 복지수준이 ‘하향평준화’ 되었으나, 그것이 해체된 자리에서 정치민주화가 경제양극화와 겹쳐지면서 대기업·정규직노동자와 중소기업·미조직노동자 사이의 틈새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노동운동 민주주의

내부적으로는 아무래도 관성이 되어버린 기업별 체제를 들 수 있다. 기업노조 중심의 활동은 조직노동자의 권리향상에는 기여하였지만 그러한 활동이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때문에 양극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고용안정투쟁은 기업의 울타리를 넘기 어려웠으며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표하는 활동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어 정권으로부터 ‘귀족노조’ 운운하는 비난을 받기까지 이르렀다. 기업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산별전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다수의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조체제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억압적인 정권 하에서의 ‘전투적인 운동’과 ‘최대강령주의 노동운동’ 방식은 다원화된 정치지형에서 그 적합성이 약화되고 있음에도, 노동운동의 사업작풍은 여전히 비타협적인 전투적 조합주의와 최대강령주의에 묶여 있다. 투쟁과 대화의 병행이 절실히 요청되는 현재의 노사관계 질서에서는 비타협적인 전투주의나 최대강령주의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노동운동 내부의 민주주의적 질서에 대한 원칙이 위협받고 있다. 최근 대의원대회에서 나타난 현상은 심각한 지경에 이른 내부 민주주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는 한편으로 기업별노동조합 체제가 노동조합조직 외부자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으며, 조직노동자가 노동계급을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외부자 불만의 변형된 표출’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분석에 의하면 소수자를 어떻게 노동조합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직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내의 소수자를 조직 중심으로 포괄할 수 있는 방안과 외부에 존재하는 노동계급의 권리확보를 위한 활동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라는 과제를 노동운동에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민주노총 내부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파탄’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조합원에 의해서 선출되어 전체 조합원의 의사를 대변하여 민주노총의 방향을 결정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는 대의원대회가 ‘폭력’에 의해서 기능이 정지된 엄중한 사태이다. 일반 민주주의 원칙은 물론이고 민주노총이 스스로 정한 규약과 규정을 파괴하고 있다. 또한 대의원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의 선출방식이나 선출구역 조합원의 의사반영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조직 내부 민주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혁신이 요청되고 있다.


[ 현재 노동운동 최대과제인 비정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직혁신이 시급하다.  -출처: 금속연맹 ]

‘원칙’에 대한 합의마저 없는 건 아닌가 

이와 같은 민주노총 내외의 상황을 감안해 볼 때 혁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노동운동을 위협하는 외부적 요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내부의 혁신이 절실하다. 내부 조합원으로부터 지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내부 혁신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음은 물론, 전체 노동계급과 국민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혁신은 민주노총이 최우선적 역량을 결집하여야할 지점이다. 

혁신의 방향은 노동운동의 원칙을 재정립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노동운동이 자본 중심의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본의 질서와 투쟁할 수 있는 노동자의 원칙과 규율이 확립되어야 한다. 내부 민주주의 파탄, 연대성의 약화, 비현실적인 투쟁 노선, 의견그룹 갈등의 부정적인 측면 등 산적한 문제의 이면에는 노동운동 원칙에 대한 내부 동의의 결핍이 놓여있다. 최근 터진 비리 사건이나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는 일부 노동운동이 사회 일반의 발전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퇴행적인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운동이 사회변화를 이끌어가기는커녕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동운동의 원칙을 다시 점검하는 일이 혁신의 핵심적인 방향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운동의 원칙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혁신사업은 조직민주주의와 현장 조직력 강화, 연대성 강화에 우선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 조직민주주의와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와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우선 꼽을 수 있다. 현재 노동운동의 위기적 요인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조직체계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조합 조직체계를 산별로 전환하면서 조직 확대와 계급대표성 강화를 모색하여야 한다. 

조직민주주의·현장조직력·연대성의 강화

또한 노동운동 위기론의 진원지인 약화된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조직화 사업과 함께 미조직노동자를 포함한 노동계급 전체의 요구를 노동운동 사업의 전면에 배치하여야 한다. 지금도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동계급의 과제를 요구로 제출하고 있지만 조직의 역량이 집중되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연대성과 계급대표성 강화를 위한 대책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경우, 조직노동자들은 자신이 던진 부메랑에 뒤통수를 맞게 자기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도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각종 의결기구나 집행기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대의원대회의 운영이나 대의원 배정 및 선출 방식, 대의원의 선출구역 대표성과 의사소통에 대한 점검과 대책 마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총연맹-산별노조(연맹)-지역본부간의 역할에 대한 점검과 재정비가 요구되고 있다. 아울러 선거제도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 필요하며 선거제도는 대의원대회와 관련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획기적인 현장조직 강화방안이 제출되어야 한다. 현장 일상활동 강화를 위한 대책과 현장 일상 활동을 지역 등과의 연대적 관점에서 조직할 수 있는 길도 모색해 보아야 한다. 현장 조직력 강화를 위해서 현장교육과 현장토론을 활성화시키는 대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민주노총 내부의 인적·물적 재원의 재분배와 재정자립방안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필요하다. 총연맹은 재정부족으로 사업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민주노총 지역본부도 마찬가지이다. 산별연맹도 차이는 있으나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재정자립을 위해서는 의무금 인상이 불가피하며 납부방식을 정률제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민주노총 산하 조직의 재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요구된다. 특히 전임자 임금문제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노동조합 재정자립에 대한 대책은 혁신사업의 중심적인 항목이 되어야 한다. 또한 몇몇 노동조합에서 불거진 비리사건을 근절하기 위해서 윤리강령 제정, 회계감사제도 강화 등의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현장 참여만이 과감한 혁신 만든다      

산적한 혁신과제들을 어떻게 추진할 수 있을까? 민주노총 내외에서 획기적인 혁신방안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기발한 혁신방안’이란 없다. 혁신하여야 할 과제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하였던 일들이 대부분이다. 지체되었던 과제들 중에서 시급한 일에 힘을 모아 추동하는 것이 혁신사업이다. 따라서 혁신사업을 추진할 힘을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가가 혁신사업의 관건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혁신의 힘은 현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장 조합원이 혁신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노동운동의 혁신을 위해 떨쳐 일어날 때 혁신은 성공할 수 있다. 지도부는 조합원의 요구를 결집하여 혁신방향을 제시하고 핵심적인 혁신방안을 제출하여야 한다. 현장과 지도부가 함께 호흡할 때 혁신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혁신사업은 지금 바로 시작해도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주체가 능동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상황에 떠밀려 가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그러나 더 이상 혁신을 늦출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민주노총 내에 확산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혁신을 위한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노동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지금 노동운동은 과감한 혁신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열차를 타야한다. 주저할 시간이 없다. 혁신을 위해서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간부들의 솔직함과 결단, 그리고 조합원 대중의 주도적인 참여가 요청된다. 희망으로 가는 열차 티켓은 여전히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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