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노사정 협의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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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섭틀 마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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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제14차 대의원대회(1999. 2. 24)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기로 공식 결정하였으며, 제23차 대의원대회(2002. 1. 30)에서 교섭과 관련하여 ‘노사정위원회 해체와 사안별 노정 교섭·노사정 교섭 등 대안적 교섭 모델을 마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최근 노동연구원, 노동관련 3개 학회, ILO를 중심으로 노사정 협의 모델에 대한 개편 논의가 진행된 바 있으며, 선거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경우 누가 집권하든 사회 협약과 관련하여 새로운 제도 개선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에 대한 민주노총 차원의 대안 마련과 대중적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민주노총에서 준비하고 있는 노사정 협의 모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만, 여기에서 제시되는 내용은 아직은 조직적 토론을 끝낸 것이 아니므로 민주노총 공식 견해가 아니다. 현재로서는 토론을 위한 문제 제기이다. 


[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해체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노사정협의(사회협약)까지도 부정하는가? 사진은 민주노총 집회에 참가한 철도노조 노동자들   ▷ 출처:매일노동뉴스 ]

1. 노사정위원회 경과

1997년 11월, 김영삼 정권의 IMF 구제금융 신청을 전후하여 경제파탄과 대량해고라는 상황에 직면한 민주노총은 노사정 사회협약에 적극 대응했다. 제1기 노사정위원회는 1998년 1월15일 발족되어 2월6일 정리해고제 도입과 근로자파견법 제정을 주요 골자로 한 노사정 잠정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가동되었다. 민주노총이 애초에 노사정위원회에 부여했던 적극적 의미보다는 정권이 의도하는 정리해고 법제화로 모든 중심이 이동되었다. 이런 문제점이 있어 2월6일 잠정합의가 이루어졌으나, 2월9일 대의원대회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고 집행부가 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1998년 2월6일, 제1기 노사정위원회 잠정 합의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부결 결정으로 1기 노사정위원회는 종결되었다. 정부는 잠정합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2월14일 국회에서 정리해고제 2년 유예조항 삭제, M&A에 의한 정리해고제 등 근기법 개악과 근로자파견제 제정을 단행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약속했던 부당노동행위 척결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6월10일 총파업을 준비하던 민주노총은 투쟁 동력, 정세 여건 등을 고려하여 6월5일 노정 합의를 이루었고,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에서 노정합의 수용과 노사정위원회 참여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서 6월5일 노정합의 사항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가운데 일방적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그 후에도 노사정위원회에서 사실상 노동측 의견은 관철이 되지 않았고, 자본과 정권의 일방적 구조조정, 정리해고, 부당노동행위는 지속되는데 반해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공무원노조 합법화, 노동시간 단축 등은 가시화 기미가 보이지 않아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지속되었다. 1998년 12월31일 민주노총은 교원노조 법제화 등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음에 따라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고, 1999년 2월24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기로 공식 결정하면서 구조조정·정리해고 중단, 노동시간 단축, 사회안전망 구축, 산별 교섭체제 등 주요 사안에 대해 대정부 교섭 틀 마련을 요구했다.

2. 노사정위원회 문제점

김대중정권 노동정책에서 핵심 제도는 노사정위원회다. 정권은 노사정위원회가 1960∼1970년대 서구 사회민주주의 체제에서 나타난 노사정간의 '사회적 합의기구'와 같은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노사정위원회는 대통령 자문기구에 불과하며, 서구의 계급 타협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조합주의의 형식적 틀만 유사할 뿐, 내용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노동배제 전략이며 노동시장(고용) 유연화를 핵심 요소로 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 혹은 사회적 조합주의(societal corporatism)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된 이해관계를 국가가 중재하여 부분적이나마 타협을 도출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그 핵심은 임금인상 억제와 물가안정-고용보장이라는 노동-자본간의 상반된 요구를 교환하고, 국가가 이를 정치·행정적으로 보장하고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때 자본과 노동은 각자 조직 내부(기업과 노조)에서 각기 고용을 보장하고,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조직적 통제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또 국가·자본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의무를 진다. 그러므로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조건은 자본과 노동, 양자 모두 중앙집권화되고 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조직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노동의 경우 그것은 중앙집중화된 산업별 노동조합이다. 또 높은 조직률, 이념적 통일성과 노동정당의 강력한 후원도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노동 또는 자본 어느 일방에게 압도적이지 않은 최소한의 균형관계, 노동과 자본간에 비교적 균형 잡힌 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상호 인정,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사회세력과 정치세력의 존재, 기업단위 임금교섭을 넘어서서 고용·산업정책까지 협의·합의할 수 있는 교섭구조, 이런 교섭 또는 협의를 통해 합의된 내용을 서로 이행하리라는 최소한의 믿음과 관행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조건은 노동운동 역량의 취약성, 기업별 노조체제, 낮은 노동조합 조직률, 노동조합 조직의 분산성과 낮은 중앙집중성, 힘있는 노동(진보)정당 부재, 힘있는 사용자단체 결여, 상호 신뢰부족, 정부정책의 자본 편향성, 합의사항 이행에 대한 신뢰부족과 실제 미이행 사례 등 조합주의 체제를 위한 토대가 전무(全無)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든 노사정 협의기구, 사회적 협의모델)를 언급하는 것은 논에다 선인장을 심으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시도이다. 현재 노사정위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것이다. 다른 문제는 설령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기술적인 것이기 때문에 치명적이지는 않고 문제가 되면 고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별다른 치유방법이 없다. 달리 말하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 하에 만들어진 이런 형태의 노사정위원회는 설령 민주노총에서 해체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가 서구 사회민주주의 체제에서 나타난 노사정간의 '사회적 합의기구'와 같은 것이라는 허구부터 스스로 깨야 할 것이다. 

교섭 내용을 살펴보면, 서구 조합주의는 거시 경제정책(성장률, 고용조정, 물가, 이자율, 환율 등) 결정에 대한 노동측 의사결정 참가를 내용적으로 보장한다. 합의 결과는 실업과 인플레이션 방지, 노동조합 경영참가와 산업민주주의 확대, 경제민주주의제도 도입, 노조조직 강화 등이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국가-자본은 거시 경제정책에 대한 참가를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에서 보듯 실업방지, 물가, 이자율 등 경제정책 기조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정부는 교섭할 의사가 전혀 없다. 결국 교섭 의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노동유연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초래된 부정적 결과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 정도로 매우 제한되어 있고, 노동측 참가는 포괄적 권한이 없는 형식적 정책 참여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서구 사회협약 모델과는 궤를 전연 달리 한다. 달리 말하면 무늬만 노사정협의기구, 사회협약 모델에 불과하다. 

합의사항 이행과 관련해서도 법적인 강제력, 또는 상호신뢰에 의한 실행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행이 보장되지 않으며,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실제로 제1기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 중 정리해고, 파견근로제 도입 등 자본에 유리한 법률은 합의 후 즉각 법제화했지만, 실업자 초기업 단위 노조가입, 공무원노조 합법화, 노동시간 단축 문제 등 노동기본권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합의 후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안조차 제출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법제화된 복수노조허용도 5년간 유예하기로 하는 등 오히려 사회적 합의에 역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3. 노사정협의(사회협약모델)에 대하여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이유로 민주노총은 현 노사정위원회에는 참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사정위원회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견해는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 검토와 의결을 거쳐 민주노총 공식 견해로 채택되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해체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노사정협의(사회협약)까지도 부정하는가? 일부에서는 민주노총에 대해 대화, 협의, 교섭 없이 투쟁일변도로 나간다고 근거 없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단 한 번도 대화를 거부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정부나 자본측에서 대화를 방해, 거부한 경우가 더 많다. 노사정위원회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참가했다가 위에서 말한 과정을 거쳐 탈퇴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대화, 협의, 교섭을 거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노총은 노사, 노정, 노사정협의(이하 특별한 서술이 없는 한 노사정협의는 노사, 노정협의까지 포함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사회협약이란 표현도 쓴다. 여기에서는 큰 구분 없이 다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현 노사정위원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노동시장 변화, 고용구조 변화, 자본과 정권의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고용불안이 심해지고 있다. 또한 역시 자본과 정권의 고용유연화, 임금유연화 전략으로 인해 노동자 내부에서도 임금 등 노동조건 격차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단위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 향상 노력 이상으로 산업, 때로는 전체 경제문제를 둘러싼 노사, 노사정 협의가 과거보다 더 절실히 필요하다. 예를 들면 산업 내부의 노동조건 격차 해소를 둘러싼 노사협의(때로는 노사정 협의)가 있을 수 있다. 민주노총은 이런 필요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온 바 있다. 

4. 노사정협의를 위한 전제 

노사정협의가 가능하려면 우선 상대방을 대화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이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라서 긴 언급을 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과연 자본과 정권은 민주노총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있는가? 지금 현재도 민주노총을 대표하는 위원장이 감옥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가 과연 가능하겠는가? 이는 단지 위원장이 감옥이 있으니 대화가 어렵다는 현상적인 측면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상대방을 대화상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문제제기이다.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노동자 전체를 과거와 같이 생산을 위한 통제대상으로 보거나 현 정부와 같이 철저한 노동배제정책을 취하면서 노동계에 대해 형식적으로만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것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다. 또한 사용자들도 최근 노동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부당노동행위, 사람 자르기 식 구조조정, 노조 불인정 등 대립적 노사관계를 펼치면서 대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 역시 노사정협의 정신에 비추어 보아 타당성이 없다. 노사정협의가 가능하려면 자본과 정권이 노동자, 노동조합을 대화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5. 민주노총이 생각하는 교섭 상 

1) 노정교섭 

예를 들면 노동법 개정, 사회보험 확대 등 정부와 노동자, 노동조합의 직접 대화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총연맹과 정부 교섭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사안에 따라 협의 또는 합의를 한다. 이들 사안 중 일부는 국회 논의가 필요한 사안일 것이다.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나서서 여당을 통해 국회 논의를 진전시키도록 한다.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사안별로 노정교섭을 진척시키는 것이 노사정위원회 구조보다 더 현실적이다. 노사정위원회는 모든 사안마다 노사정협의 또는 합의를 하기 때문에 논의가 더 어렵고, 많은 경우 정부가 노정 직접교섭을 회피하고 노사정위원회로 책임을 전가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노정 대화를 필요로 하는 내용에 굳이 사측까지 포함하여 대화 창구를 복잡하게 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면, 공무원노조 문제에 대해 사용자단체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 이에 대해 정부나 사용자단체 측에서는 "노동문제라면 결국은 사용자도 다 관련되는 문제이다"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연결되지 않는 문제가 어디 있는가? 굳이 사측과 대화가 필요하다면 정부가 나서서 사측과 별도 협의 또는 통지를 하는 정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안은 성격상 자주 발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꼭 상설 기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또한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는 "합의"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 합의는 그리 쉽지 않은 문제이다. 차라리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합의가 되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말 그대로 충실한 협의를 통해 상호 의사를 분명히 확인하고 이후 일정대로, 예를 들면 노동조합에서는 투쟁을 조직하고, 정부는 자신이 수용가능한 부분은 수용하고 나머지는 추후 과제로 미루는 형태로 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갈등 소지를 줄일 수 있다. 

노사정 모두에게 긴밀하게 관련된 사항이라면 노사정 모두가 참가하는 협의가 필요할 것이다. 노사정협의는 말 그대로 협의로 진행해야 한다. 물론 협의과정에서 합의에 도달한다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협의한 것으로 그치고, 그에 따라 각 주체별로 해당 내용을 충실히 이행 또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 된다. 합의가 어려운 사항을 기계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것이 실제로는 정부의 책임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리고 합의를 하는 경우라 해도 원론적인 합의에 그치고 세부 사항은 정부가 책임지고 입법을 추진하고 각 주체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예로 들어보자. 노사정합의는 2000년 10월 수준의 원론 확인에 그치고 이후 세부사항은 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 사용자단체와 협의를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2) 노사교섭 - 산별 교섭 

2001년 12월 말 현재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가입형태를 살펴보면 총 966개 노조 중에서 기업별노조가 871개 사업장, 조합원 344,150명으로 전체 노조수 대비 90.2%, 전체 조합원수 대비 57.8%로 가장 높게 집계되었다. 그 다음으로 산별노조가 23개이고 조합원수 238,547명으로 전체 노조수 대비 2.4%, 전체 조합원수 대비 40.1%에 해당한다. 앞으로는 산별 노조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이 이와 같이 달라진다면 그에 따라 교섭형태도 달라져야 한다. 민주노총(연맹, 산별 노조)에서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산별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측에서는 사용자단체가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조직형태는 산별이고 교섭 방식은 기업별인 기형적 형태로 계속해서 갈 수는 없다. 사용자측에서는 이제라도 변화된 노동조합 조직에 맞추어 교섭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 노사관계에서 교섭과 관련한 최대현안은 산별 교섭이다. 

사측에서는 산별 교섭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예를 들면 기업간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크다, 노동조건 격차가 크다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연 기업별 교섭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격차해소가 가능하겠는가?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무노조기업과 유노조기업, 지불여력이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노동조건 격차는 현재도 크고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격차는 노동계급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도 위화감 조성 등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이는 기업별 교섭을 통해서는 풀기 힘들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간 격차 해소,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저임노동자층 보호, 사회보장정책 확대를 통한 보호, 산업정책을 통한 구조변화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산별 교섭이 필수적이다. 사용자단체가 제기하고 있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산별 교섭이 필수적이다. 

사용자단체가 구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 아침에 산별 교섭을 하고 산별 협약을 체결하기 힘들다는 사용자측 언급이 산별 교섭을 회피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라면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를 들면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산재예방대책 등을 먼저 논의하는 것은 어떤가? 전국단위 최저임금을 결정한 후 그를 상회하는 수준에서 산업 지역별로 최저임금 협약을 맺고 이후 이를 노사공동으로 감시하는 것은 어떤가? 일단 업종별 협의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떤가?

3) 교섭의 양대 축 

민주노총은 결국 사회협약과 관련한 노정교섭(노사정교섭, 협의, 대화 포함. 사회협약모델)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산별 교섭을 양대 축으로 하는 교섭정책을 갖고 있다. 산별 교섭은 노동조건과 관련된 것이므로 별론으로 한다면,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 행하는 교섭을 대체하는 것은 노정교섭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상태에서 노사정위원회 참가냐 아니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더 이상 진행할 생각이 없다. 더욱 근본적이고 큰 문제를 집중 검토할 시점이다. 

최근 들어 소득격차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노동계급 내에서도 노동조건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를 기업별 교섭으로 풀 수 있겠는가? 저임금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저임금이 다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문제를 기업별 교섭으로 풀 수 있겠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보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들 보호를 위해서는 기업단위 임금인상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사회보험 적용 문제가 있다. 이를 노사간 교섭으로 풀 수 있겠는가? 산업정책, 고용정책과 관련된 내용을 언제까지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다룰 수는 없다. 여러 사회주체들과 협의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노동, 자본, 정부 모두 이런 문제에 대해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그 틀을 한 축에서는 산별 교섭, 다른 한편에서는 노정(노사정)교섭으로 풀어야 한다고 본다. 이제는 사회협약, 산별 교섭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할 시점이다. 근본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새로운 교섭 틀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사회협약모델과 관련해서 광범위한 대중토론을 통해 구체적인 상을 그려갈 예정이다. 그 첫 단계로 지난 1월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해체와 사안별 노정교섭·노사정교섭 등 대안마련을 사업계획으로 설정한 바 있다.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더라도 차기 정권에서 또 다시 사회협약과 관련해서 논의가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2002년 1년 동안 우리한테 적합한 사회협약 모델을 검토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3월 29∼30일에 있었던 '2002 노사정 포럼'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는 "노사정 학계가 모두 참여하는 격의 없는 대화의 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기업수준을 넘어서 다양한 사회적 협의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공동으로 이해하고", "노사정 포럼이 정례적으로 개최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동시에 다양한 노사정간 모임이 병행해서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물론 포럼 한 번 했다고 해서 노사정간에 대화가 갑자기 활성화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노사정위원회 이외의 새로운 대화 틀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런 대화 틀을 다양하게 모색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 김대중정권 노동 정책에서 핵심 제도는 노사정위원회다. 사진은 노사정위원회의 장면  ▷ 출처:매일노동뉴스 ]

6. 결론에 대신하여 - 제안 

1) 산별 교섭관련

구체적으로 경총에 산별 교섭과 관련하여 공동연구를 제안한다. 최근 수년간 진행되고 있는 노동조합 조직변화, 노동시장 변화를 고려할 때 새로운 교섭형태를 도입할 필요는 없는가, 필요가 있다면 어떠한 형태로 만들어갈 것인가, 그 과정에서 과도적인 형태로 업종별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어떤가, 처음부터 임금 등 노동조건을 다루기 힘들다면 과도 단계로 다룰 만한 내용으로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을 함께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공동연구 과정에서 합의를 보기 어려운 부분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은 그대로 놓아두고(노동과 자본이 의견일치를 보기 힘든 내용이 많다는 것은 당연하다. 자연스럽게 이를 인정하는 것이 논의를 진전시키는데 더 유용하다) 서로 의견 접근을 보는 부분 중심으로 제도, 관행을 개선하고 이후 차이를 조금씩 좁혀 나갈 것을 제안한다. 경총에서 이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면 민주노총, 경총, 학계가 공동연구진을 구성하고, 필요하다면 산별노조(연맹), 사용자단체, 노동부 관계자를 초청하여 워크숍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경총 이외의 사용자단체(각종 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주5일 근무제를 예로 들어보자. 정부 입법으로 추진되든, 단체협약으로 추진되든 조만간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양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사무직, 계절적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 교대제 사업과 그렇지 않은 사업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업종별로 적합한 주5일 근무제 도입을 노사공동으로 연구하여 단위사업장·노조에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주5일 근무제를 예로 들었지만, 이런 공동대응은 그 외로도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 노동안전보건 문제 등 다양하다. 사실 이런 문제는 사측에서 먼저 들고 나와야 하는 문제 아닌가? 

노동부에 대해서도 제안을 한다. 노동조합 조직형태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고, 이들 노동조합들이 산별 교섭(그에 준하는 교섭형태)을 요구하면서 노사간에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노동부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노동부가 이런 상황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돌이켜 보면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 선도하는 노동행정을 펼쳐도 부족할 판에 뒷북치는 행정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노동부가 나서서, 예를 들면 노동연구원이나 노동교육원 등과 함께 산별 전환, 산별 교섭과 관련하여 실태를 조사하고 연구결과를 내놓을 계획은 없는가? 구체적으로 2003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산별 관련 항목을 신설할 계획은 없는가? 노동계와 사용자단체가 자율적으로 논의를 진전시켜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노동부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2002 노사정 포럼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노사관계 혁신을 위하여 노사관계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교섭제도, 새로운 사회협약 모델 형성을 위해 노동부가 적극 나설 것을 제안한다.

2) 노정 교섭 

노정교섭과 관련해서는 노동조합법에 규정된 단체교섭과는 달리 법적·제도적 틀이 없기 때문에 구체화시켜 나가기가 더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대화, 협의, 교섭 틀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유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단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라는 틀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지난 4년간 실험을 통해 현재의 노사정위원회 틀의 한계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부로서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합의"라는 유일한 방안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화통로를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ILO와 학회가 중심이 되어 추진했던 노사정포럼 같은 경우 유의미한 실험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노사정간 다양한 대화가 필요하다. 이 자리에서는 노사관계, 산업정책, 사회보장 정책과 관련된 사안들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협의가 된 사항에 대해서는 서로 지킨다는 최소한의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런 최소한의 상호 신뢰가 구축된다면 이를 토대로 노사정 협의사항은 지킨다는 암묵적인 관행을 마련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정교섭, 사회협약은 그 성격상 형식적인 법으로 규정하는 것보다 관행과 상호신뢰를 통해 규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우리는 정부에 대해 일단 대화 물꼬를 틀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후 노정교섭의 상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마련해나갈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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