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새 지도부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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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은 보다 논쟁적인 글을 소개하고 있다. 글에 대한 본론은 언제든지 환영하며,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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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열린 민주노동당 당 대회 및 지도부 이·취임식, 신임 김혜경 대표가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출처:판갈이 ]

민주노동당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선거에서 민족해방파가 압승을 거두었다. 김혜경 대표 최고위원은 민족해방파와 좌파를 포함한 여러 정파의 지지를 받았다. 울산연합의 대표적 인물 김창현 후보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일반 최고위원 선출의 경우, 민족해방파의 최규엽, 이영희 후보가 당선되고, 김종철 후보만 민족해방파가 아니면서 당선되었다. 여성 최고위원 선출에서도 모두 민족해방파 인사들로 분류되는 김미희, 유선희, 이정미, 박인숙 후보가 당선되었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6월12일부터 16일까지 결선투표를 한 정책위원장 선거에서는 민족해방파 내부에서도 이용대 후보의 지나침을 우려해서인지 좌파인 주대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른바 세팅 선거가 문제였다. 민족해방파는 자신들이 세팅한 후보들에게 투표하도록 지지자들을 유도하였다. 그 결과 그동안 당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지 않았던 일부 민족해방파 후보들조차 최고위원으로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일반 당원들은 놀랐다. 3인과 4인을 뽑는 일반 최고위원, 여성 최고위원 선출에서 각각 3표, 4표씩을 행사하도록 한 이상한 선거제도가 이러한 세팅 투표를 가능하게 했다. 

당내에서는 선거결과에 대한 우려가 높다. 일부 당원은 당의 정체성 변화 가능성을 전망하고 탈당의사까지 내비치고 있다. 당 밖에서도 대체로 우려의 진단이다. 반미투쟁이나 남북문제 등에 주력하는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의회 진출을 계기로 당의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당 차원의 충분한 연구와 정확한 대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과 대중조직은 가는 길이 틀리다

민주노동당의 그동안의 실천은, 반미를 중시하고 연방제 통일을 견지하면서 북한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온 전국연합 방식의 활동과는 달리, 민중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입장에 충실하려 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민주노동당이 지금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지지율이 15~20%에 이르게 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족해방파 인사들이 당의 주요 직책을 맡게 되면서, 앞으로 민주노동당을 종전에 전국연합이 추구해온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 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러나 당 안과 밖의 제반 여건으로 인해 새 지도부가 크게 우려할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다. 민주노총, 전농, 환경단체 등 어떤 사회단체이든 국민들로부터 받는 지지도에 관계없이 자신의 회원들이 요구하는 것을 꾸준히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은 그렇지 않다. 당을 키워나가야 하고 유권자들로부터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가입하는 당원수가 매일 확인되고 있고, 정당 지지율이 2주 단위로 조사되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의 실현, 민주노동당의 그동안의 활동의 계승과 발전, 국민들에 대한 공약 이행과 지지도 상승의 성과 등이 새 지도부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도부는 실천과정에서 당원과 유권자들로부터 철저한 검증을 받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당내에서 일시적으로 헤게모니를 가졌더라도 정확한 실천을 하지 못하여 당원의 증가와 유권자들의 지지 상승에 실패하면 헤게모니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한국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의 존재 의의는 노동대중을 기반으로 하여 보수정당과 대결해서 민중의 정치경제적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민중을 기반으로 하는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 고용의 확대, 농가 실질소득의 저하 등 생활의 악화를 경험하고 있는 노동대중의 정치의식은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들을 확고한 기반으로 하지 않을 경우 민주노동당의 지지도는 급격히 하락하고 조만간 다른 정당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 변경하는 일 없어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직책을 맡게 된 민족해방파 중심의 새 지도부는 지금 큰 시험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지도부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잘 수행해주길 바란다.   

첫째, 민주노동당의 위상에 적합한 현실적 조직노선을 추구해야 한다. ‘재창당과 당명 개정’문제는 현재 지도부를 맡은 분들이 일정한 정도로 신뢰를 쌓은 이후에 그리고 여러 정치세력들이 결합하는 계기가 생겼을 때 추진하지 않으면 큰 부작용이 예상된다. 상당 기간 당내 논쟁을 격화시켜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게 될 것이다. 재창당과 당명 개정은 당원의 2/3가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이고, 만약 성공하더라도 많은 당원들이 당의 정체성이 변했다고 생각하여 탈당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통일전선 조직체를 강화한다는 민족해방파의 주장은 현재 한국사회의 실정에 맞지 않고 비현실적임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식민지도 파시즘체제도 아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전선조직론의 비현실성: 김창현 후보의 전선조직론을 비판한다”(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 2004. 6. 1)를 참고). 통일전선론에 따르면, 중국의 연합정부나 스페인과 프랑스의 인민전선정부처럼 통일전선조직이 전략적 조직으로서 집권의 주체가 되는 것인데 이것은 현재 한국의 사회여건과 선거제도 하에서는 적합한 모델이 될 수 없다. 사람의 생각은 과거의 사실에 기초한 이론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끊임없이 변한다. 교조에 얽매이지 않고 ‘구체적 사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충실할 때 진리에 다가가고 유효한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정책공약을 계승하고 이를 더욱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회주의적 가치와 원칙에 충실할 것을 천명했으며, 선거때마다 평등과 자주의 가치를 앞세우면서 부유세 도입,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사회복지의 확대와 미국과의 평등한 군사적, 경제적 관계 확립 등을 공약해왔다. 만약 그동안의 강령과 정책에 대해서 “대미관계에서 확실한 반미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다”, “대북한, 통일문제에 대해서 미국과 함께 북한의 책임을 지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현대 총수 정주영 회장은 애국적 자본가인데 미국이 현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면, 이것은 지금까지의 민주노동당 활동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투표한 것은 현재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정책과 실천을 믿었기 때문이다. 새 지도부가 그동안의 민주노동당의 정책 공약과 실천의 의의를 부정하면 당연히 기층민중들로부터 지지도가 내려갈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으로서는 큰 실패를 의미한다. 

새 지도부는 그동안의 정책 공약 가운데 총론적 수준에 머문 부분들을 더욱 세부화하고 심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현실에 맞춰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단계적 방안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유럽 좌파정당 정책연구소 운영사례를 참고하여 진보적인 정책연구소를 설립하고, 그동안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온 진보적 학자들을 참여토록 해 자율적 구조 하에서 진보적 정책대안을 연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리보다 일을 중시하는 자세가 필요

셋째, 의회투쟁과 대중투쟁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을 선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양자를 활성화하고 상호 상승하는 관계로 인식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4·15 국회의원 선거로 민주노동당이 의회 내에 열 석을 가지게 된 것은 의석이 한 석도 없는 경우에 비해 엄청난 발전이다. 따라서 의회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으로서는 기회임과 동시에 시험대이기도 하다. 의회활동은 대중투쟁의 증폭기와 같고 대중투쟁의 요구와 그것의 관철은 법률 제정과 개정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궁극적인 힘의 원천은 대중의 요구와 의식을 얼마나 높이고 이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응하는가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대중의 요구에 입각하여 작성된 총선공약을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새 지도부가 당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나갈 경우 의원들과의 갈등, 의회투쟁과 대중투쟁의 괴리, 지지도의 추락 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중 활동을 촉진시킴과 동시에 대중의 요구를 잘 수렴하고 이를 의회활동으로 연결하여 의원들이 국회에서 위력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만들어서 의원단에게 제공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무척 어려운 과제다. 새 지도부에 선출된 분들은 주로 사회단체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의원단 활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인식이 부족할 수 있다. 의원단과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넷째,  민주노동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활동에는 소극적인 무정파 평당원들의 투표 불참, 좌파 세력의 다수 입후보에 따른 표의 분산 등을 기반으로, 민족해방파가 최고위원의 다수를 배출했다. 그러나 전체 당원 가운데 민족해방파에 비판적인 당원이 민주노동당의 당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민족해방파 세력들은 일부 지구당의 중앙위원, 대의원 선출 과정에서도 자파 인사들로 싹쓸이를 했다. 이에 경쟁적 정파 내지 무정파 당원들은 엄청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일정 정도를 넘으면 탈당을 하겠다는 당원들이 늘어날 터인데 이것은 민주노동당으로서 큰 손실이다. 따라서 경쟁 정파들을 소외시키지 않고 그들의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가동시킬 것인가 하는 큰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이것에 실패할 경우 정치력 부족으로 당원들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고 다음 당 지도부 선거에서 당권에서 밀려나거나 당원들의 대량 탈당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새 지도부는 당내에 존재하는 여러 정파 세력들의 힘을 최대한 가동하여 당이 가지고 있는 힘을 극대화해야 한다. 정책위원회도 정파 구성비율을 고려하여 구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창당 당시 강령제정위원회나 최근의 당 발전전략위원회도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 운영해왔다. 권한을 보장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여 정파간 경쟁을 촉진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 쟁점에 대해 각 정파별로 의견을 개진하여,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최고위원들은 그동안 자신이 활동해온 부문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업무를 분담함으로써 ‘자리보다 일을 중시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 6월 6일 열린 민주노동당 당 대회 및 지도부 이·취임식. 신임자도부와 전임지도부가 함께 '당가'를 부르고 있다.  - 출처: 판갈이 ]

당직·공직 분리 재검토 해야    

다섯째, 정파 갈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정파간 경쟁을 통해서 잠재적 에너지를 키워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우선 기계적인 당직?공직 분리는 옳지 않다. 공직에 진출한 당원을 바로 당직에서 배제하는 것은 공직활동과 당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약화, 파괴하는 것이다. 의원이 된 분들은 당내 공직 후보 선거에서 승리하고 또 당에 대한 지지도에 힘입어 의원직에 진출했다. 이들은 그동안의 민주노동당을 키우는데 기여하면서 능력을 검증받은 지도급 당원들이다. 당은 의원들이 의회활동에서 요구되는 것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공직·당직 분리로 의원들이 당의 주요 의사결정구조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 ‘이중권력’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공직·당직 분리는 의욕적인 실험일 수 있으나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으므로 여러 나라의 사례를 많이 검토하여 개선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선출 최고위원 수와 같은 1인 7표를 행사하는 것은 특정 정파가 몰표를 통해 최고위원직을 독차지할 수 있으므로 매우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하다. 일개 정파가 최고위원 자리를 독점하지 못하게 하고 당원들의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되도록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동안 당이 공직선거에서 도입할 것을 주장하여 관철시킨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당내 선거에 도입해야 할 것이다. 정파를 등록하도록 하고 정파에 대해서 투표하여 그 지지율에 따라 후보들이 당선되도록 하되 후보자의 당선 순위는 당원 투표에 의해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모든 권한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새로이 당을 이끌고 나갈 최고위원들은 심사숙고하고 현명하게 활동하여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당원 가입이 늘어나고 당원들의 참여가 높아지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획기적으로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2년 집권전략을 세우는 일도 필요하지만 일상적 실천을 통해서 민중들에게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야말로 당을 반석위에 올리고 집권을 앞당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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