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아름다운 운동가, 박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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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30일은 수많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헌신했던 고 박상윤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처장이 37세의 나이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맑고 아름다운 운동’이 삶의 지표였다는 그의 죽음은 “활동가들이 안고 있는 내면적 갈등과 고충을 가장 비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김금철 덤프연대 의장의 회고를 통해 그의 삶과 죽음이 남긴 것은 무엇인지 돌아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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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윤! 

이름만 불려도 가슴 한쪽에서 뭔지 모를 뭉클함이 치솟는다.

인간 박상윤을 처음 본 것은 덤프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준비할 때인 2004년 6월경 민주노총 서울본부 회의실에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민주노총이 덤프노동자들에게 뭘 해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평생 동지로 함께 하겠다”고 맑은 얼굴로 힘주어 답했다. 이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덤프노동자들 조직하러 참 많이도 함께 다녔다. 서울 구석구석, 경기, 인천 멀게는 부산으로, 울산으로 주말도 없이 쫓아다니고 또 쫓아다녔다. 덤프는 조직화 준비모임이 대부분 일과가 끝나는 저녁시간에 진행된다. 그래도 그는 피곤하거나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노동자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그에게는 당찬 노동활동가의 모습도, 이념에 골똘한 모습도 아닌,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맑은 친구의 모습이 있었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 덤프노동자들 곁에서 조직화를 위해 있는 힘, 없는 힘 다 쏟아 부었던 그였다.

그날, 나는 선전물을 들고 현장을 돌고 있었다.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박상윤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비보였다. 고개가 힘없이 쳐들어졌다. 그 순간 막막한 심정으로 올려다본 파란 하늘의 아득함이란…. 그 파랗던 하늘이 얼마나 차게 느껴지던지…. 

2005년의 총파업을 준비하던 우리에게 모든 시간이 멈추었다. 조직 전체가 공황 상태가 되고 그걸 극복 하는 데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친구 같은 활동가, 그가 만든 단단한 신뢰

“당신이나 민주노총이나 뭘 할 수 있냐?”,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해줄 거냐?” 생소하게만 느껴왔던 노동조합을 막상 만들려고 하니 우리 덤프노동자들에게서는 이렇게 생뚱맞은 질문들이 많이 쏟아졌다. 그동안 그 누구도 우리에게 동지감을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 경쟁에 내몰려 스스로를 경쟁관계로 무장한 소위 특수고용노동자 아니었던가! 이런 우리들에게 그가 했던 답변은 한결 같았다.   

“해줄 것은 없지만 여러분들의 가는 길에 동지로서 함께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여러분과 함께 고민 하겠습니다.” 어느 지역, 어느 자릴 가나 대부분 매번 똑같은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그는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성의껏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때로는 개구쟁이처럼, 때로는 진지하게, 그리고 항상 가까이 다가서서. 조직은 술로 만들어지고 다져진다고, 회의 때 못 다한 얘기와 앙금을 풀기 위해선 꼭 뒤풀이가 필요하다며, 술잔을 높이 들고 단결투쟁을 외치던 그였다. 호탕하게 웃던, 안경 낀 그 때 그가 그립다.

창립총회를 앞두고 처음으로 확대 간부수련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동갑내기 어느 조합원과 형 아우 서열을 가린다며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금방 돌아오길래, 그 조합원에게 무슨 얘기 했냐고 물었다. 

“그냥 사석에서는 반말하고 공석에서는 자기가 처장이니까 존댓말 해달라고 하던데요.”

무슨 어린애들도 아니고, 야유가 쏟아졌다. “그래도 내가 처장이야!”면서 큰소리로 웃던 그였다. 수련회가 끝나고 오전에 퇴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해장국에 소주 한잔을 했다. 가볍게, 허심탄회하게 시작됐던 이야기는 길고 깊어져, 덤프노동자들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어떤 방향이 옳은가 등을 두고 늦은 밤 편의점 앞 길가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의견들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간들이, 그 편의점 앞이 그립다.

무엇이 그를 지치게 했는가 

“역시, 덤프 형들은 귀족 노조야!” 어느 날 불쑥 그가 이런 얘길 꺼냈다. 내가 무슨 얘기인지 의아해했더니, “○○지역 준비모임을 갔는데 역에서 내리니깐 까만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태우고 가더라니깐!”이라며 너스레를 떨고 호탕하게 웃던 그였다. 
덤프연대 창립 후 첫 집회를 앞두고서였다.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려면 연습을 해야 된다면서 회의실로 내몰고, 막상 집회 당일 연단에서 대회사를 힘주어 말하니까 단상 아래서 연신 눈을 찔끔거리며 “짧게! 짧게!” 사인을 보내던 그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였다. 그러나 조합원이 현장에서 폭행당했다는 제보에 당장 전화통을 들고 현장소장을 찾아 호통을 치며 항의하던 그 모습은 어느 활동가보다도 당차고 단호했다.

사무실 입구에서 근심에 찬 모습으로 담배를 물고 있노라면 그가 사무실 계단을 뛰어오르다 내 모습을 보고 “형 덤프연대 잘 돼가? 잘 될 거야! 너무 걱정 하지 마!”라며 씨익 웃고는 사무실 안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항상 덤프연대를 생각하고 걱정해주고, 격려해주던 그였다. 마지막엔 안식년 휴식기를 갖게 된다고 참 좋아했다.

“그럼 덤프연대는 어떻게 하라고!” 

“걱정 마, 덤프연대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올게.”

물 좋고 공기 좋은 지리산 자락에 집을 마련하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가질 거라고

정말 좋아 하며 입이 귀에 걸려서 다녔는데….

그러던 그에게 어느 순간부터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침에 출근했을 때부터 지쳐했고 “아, 피곤하다”를 입에 달고 다녔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피곤함을 이겨내지 못한 것인지…. 무엇이 그를 피곤하게 했단 말인가? 짧고도 짧은 생을 모질게도 끊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때 우리는 정말 바빴다. 그렇게 바빴다는 핑계로 그의 고민을 함께 해주지 못했던 것에, 그를 괴롭혔던 고민에 우리도 포함된다는 것에 항상 미안하고 죄스럽다. 

호탕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

노동 활동가 박상윤!
그가 추구한 맑고 아름다운 노동운동. 
2년이 넘는 활동 속에서 난 아직 그 해답을 온전하게 찾지 못하고 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은 파벌, 정파, 이런 것을 배제한 노동운동이 그가 꿈꾸던 맑고 아름다운 노동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권과 비리, 정파, 파벌 등 민주노동 운동에서 거론 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그가 우리 곁을 그렇게 속절없이 떠난 지 어언 2년이 다 된다. 또다시 찬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계절이 왔다. 
그가 그립다. 
호탕하게 웃던 모습이….
금방이라도 “형! 뭐해!”하며 나타 날것만 같다.
함께 나누던 소주한잔이 그립다.
덤프연대의 가슴 한쪽에 그가 자리 잡고 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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