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자본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의 상태

부 제목: 
김금수의 세계노동운동사 [10]

글쓴이 :

1870년대 이후 자본주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임금노동자가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노동자들이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반대로 인구에서 부르주아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었고, 동시에 도시와 농촌의 중간층도 축소되었습니다. 한편 세계적으로도 노동자계급의 구성과 상태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깁니다.


[ 19세기말 독점자본주의가 발흥하던 무렵의 뉴욕, 마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

노동계급 구성의 변화

1870년대 초기에 영국, 프랑스, 미국 세 나라의 산업노동자 수는 모두 1천3백 만에 이르렀고, 그 가운데 절반은 영국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자본주의 발전과 공업화 수준에서 보면 세 나라의 상황은 서로 달랐죠. 영국에서는 산업노동자가 취업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미국은 1/4, 프랑스는 1/5 정도였습니다. 

1900년대 들어서는 상황이 크게 달라집니다. 미국에서는 산업노동자 수가 1천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30년 전 수준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독일에서도 산업노동자 수가 급증했는데, 1907년에 86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독일에 앞섰던 영국에서는 산업노동자 수의 증가세가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1870년 600만 선이었던 노동자수가 1900년 즈음에 850만 명으로 늘어 40% 정도 증가한 것이죠. 프랑스에서 공업노동자의 증가세는 영국보다 낮았습니다. 이탈리아도 서서히 산업화에 들어섰는데, 1901년의 인구조사에서 산업노동자는 260만 명이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과 미국의 산업노동자 수는 모두 합쳐 4천만 명 가량 되었어요.

노동자계급의 구성, 특히 산업노동자계급의 구성 변화는 노동자계급의 발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산업노동자 구성에서 공장노동자의 비중이 점점 높아졌고, 그 가운데서도 생산부문의 노동자 비중이 증가했죠. 1850∼1875년 사이에는 산업노동자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이 섬유산업에 종사했으나, 20세기 들어서는 기계제조 노동자, 야금 노동자, 철도 노동자 등이 크게 불어났습니다.

한편, 생산의 집적과정에서 산업노동자들이 점점 대기업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어요. 영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에서도 노동자 1천 명 이상을 고용한 대규모 공장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죠. 1890년대 중반 자료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대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43만 명, 프랑스에서는 31만3천 명에 이르렀죠. 러시아에서도 산업노동자 집중도는 높은 수준을 나타냈어요. 산업노동자와 광산노동자의 3/4이 노동자 100인 이상을 고용한 기업에 집중되었죠. 이런 생산과정의 집적이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여전히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었어요.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의복, 내의, 양말, 가구, 가정용 잡화 등의 생산에 종사했죠. 

여성고용의 확대와 화이트칼라의 등장 

이런 가운데 산업부문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가 늘어납니다. 여성노동은 섬유와 봉제부문에 집중되었죠. 예컨대 독일에서는 1882년에만 해도 섬유제품과 의류 생산에서는 남성 노동자 쪽이 많았으나, 1907년에는 여성노동자 쪽이 더 많이 고용되어 역전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866년부터 1901년 사이에 여성노동자가 50% 정도 증가했죠. 여성은 흔히 비숙련 직종에서 일하면서 중노동을 수행해야만 했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제도가 유지되었어요.

또 아동노동은 점점 제한되는 추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광범하게 행해졌죠. 아동노동이 제한된 곳은 주로 공장과 광산노동 쪽이었고, 농업이나 상업을 위시하여 거의 모든 부문에서 아동노동과 연소노동이 이루어졌어요. 예컨대 미국의 제조업에는 1880년 당시 18만2천 명의 아동노동과 연소노동이 고용되었는데, 이 수치는 산업노동자 총수의 6.7%에 달했습니다. 독일은 1895년의 조사에 따르면, 각종 산업에 속한 기업에 14세 이하 아동 21만5천 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3만8천 명은 공장에서 일했어요. 어떤 나라에서는 아동노동의 고용에 아무런 제한이 없기도 했습니다.

산업구조의 발전에 따라 임금노동자의 숙련도별 구성에도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의 기점이었던 섬유산업의 출현으로 수공업자와 매뉴팩쳐 노동자의 숙달된 손노동은 단순기계 노동으로 대체되었고, 나아가 기계제 생산이 기계제조업과 기타 금속가공 부문으로 확대되면서 공장산업 자체가 숙련노동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냈습니다. 숙련노동자의 주요 부분은 특수기술 부문, 건축, 공장생산의 신규 부문 등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노동자계급 전체로 보면 여전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죠. 한편, 사무, 상업, 기술 서비스 부문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산업노동자들에 비해 기능수준과 교육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19세기 말 수십 년 동안 생산의 집적, 과학기술의 발전, 유통부문의 발달로 이들 직업그룹은 더 확산되었죠. 

장시간 노동

자본주의적인 수탈의 형태와 방법은 생산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합니다. 19세기 말 당시의 생산 조직과 기술 측면에서 볼 때, 산업은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 주로 증기력(蒸氣力)을 사용했던 대기업들은 1890년대 이후로 전력을 도입하는 한편,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수력을 사용했고 가내공업과 수공업들은 순전히 손 작업에 의존했습니다. 자본주의적 기계제 대공업의 발전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일의 연장과 노동 집약화 추구가 대표적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건은 전반적으로 열악했어요. 1870년대 중반까지 공장제 산업의 노동일은 대부분 10시간이 넘었고, 어떤 나라에서는 12시간이 넘었죠. 영국과 미국의 통상 노동일은 10시간이었고, 독일은 10∼12시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1∼12시간, 네덜란드는 12시간, 에스파냐는 12∼13시간, 러시아는 12∼15시간, 일본은 12∼16시간이었어요. 

이처럼 노동시간이 길고, 거기에다 안전·보건을 위한 투자와 관리체계가 매우 부실하여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이 크게 위협받았어요. 노동자들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황폐도 겪게 되었죠. 당시의 노동자들은 '인류가 축적한 진정한 문화가치'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20세기 초 탄광에서 일하는 미국 어린이들 ]

노동자의 저항과 정치적 성장 

노동자계급의 발전은 자본주의 착취에 대한 저항과 노동·생활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어떤 나라에서는 노동자계급이 노동조합의 기본 권리와 자유를 쟁취하여 이를 확대했으며, 또 어떤 나라에서는 이제 막 그런 권리와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는가 하면, 많은 식민지 국가들에서는 노동자의 무권리 상태가 유지되기도 했습니다.

결사의 자유와 쟁의권이 다른 나라 보다 일찍 승인된 영국에서조차 1870년대까지 노동조합은 법률상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으며, 파업 주도자와 참가자들은 '공모죄', '폭력', 기업활동에 대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당하거나 투옥되었죠. 1871년에야 노동조합은 법률상 승인되었고(노동조합법),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재산이나 자금을 소유할 권리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875년 '주종법'(主從法)이 폐지됨으로써 파업참가 노동자의 권리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장되었죠.

19세기 후반 들어 미국에서는 노동조합 활동이 19세기 전반처럼 법률상의 박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지방관리들의 전횡과 판례(노조 지도부의 파업 선동 금지 등)로 제약 당했고, 1890년 이후에는 '셔만 반트러스트법'으로 억압당했어요.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의 조직활동을 금지한 법률 규정이 제2제정 말기에 폐지되었으나, 노동조합이 합법화를 쟁취하게 된 것은 1884년부터였습니다.

독일에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일반적 입법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1869년 북부 독일연방이 채택한 '영업조례'는 결사의 자유를 인정했어요. 그러나 개별 주들, 특히 프로이센과 작센에서 시행되었던 법률은 산업분야에서만 노동조합 활동을 인정하면서 갖가지 부대 조건과 제한들을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경찰과 재판소 역시 부당하게 개입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886년에야 노동자의 상호부조협회가 법적으로 승인되었고, 1889년에는 파업의 자유가 인정되었어요. 1890년부터 시행된 새로운 형법에서는 파업이 형식상으로는 범죄행위로 규정되지 않았으나, 파업 노동자가 폭력이나 협박 행위를 했을 경우, 그것은 범죄행위에 해당되었습니다. 

한편, 입헌의회 제도가 확립됨에 따라 노동자들의 시민적 권리와 자유도 확장되었어요.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보통선거권(남자에만 해당)의 공포가 지배층의 강압적 음모와 밀접히 결합되었는데, 그들은 노동자계급을 기만하기 위해 이 선거제도를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영국의 부르주아지는 이와는 반대로 장기간에 걸쳐 노동자의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양보를 하면서도 그들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손상하지 않는 방향에서 매우 조심성 있게 대처했지요. 

1884년 제3차 의회개혁은 남자노동자에 대해서만 선거권을 확장했습니다. 선거 캠페인을 포함한 합법적 정치활동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현존 질서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되었죠. 그러나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선거에서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한 사람은 전체 국민의 10∼1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선거(1871년)에서 국민의 10%가 투표에 참가했고, 1907년에는 15%가 투표에 참가했죠. 영국에서는 12%가 투표에 참가했고,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았는데, 19%가 투표에 참가했습니다. 

노동자 보호 법제도의 출현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노동운동의 강력한 요구로 공장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어요. 칼 마르크스는 공장법을 두고 "생산 과정의 자연발생적 발전형태에 대한 사회 최초의 의식적이며 계획적인 반작용"이라고 말했죠.

공장법은 산업자본주의 초기에 자본가들이 저지른 노동자에 대한 난폭하고도 비인간적인 착취를 막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 도입이 완만하기는 했지만 적용 분야가 확대되었어요. 또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노동보호 대책이 취해졌고, 임금으로 현물을 지급하는 행위가 금지되었으며 성과급 임금제도에 대한 통제가 설정된 경우도 있었죠. 공장보건과 노동안전에 관한 강제 규칙 등이 여러 공장에서 도입되기도 했어요. 19세기 말에는 몇몇 나라에서 기업주가 부담하는 산재보험제도와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었고,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아무래도 연소자와 여성노동에 대한 보호대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야간작업과 지하작업 금지 또는 규제, 아동과 연소자의 공장노동 연령제한 규정, 여성과 연소노동자에 대한 노동일 제한 등이 주요 내용이었죠.

한편, 노동시간 단축 추세는 노동자 투쟁의 결과로써 성년 남성노동자에게까지 확장되었어요. 이런 경향은 영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죠. 19세기 전반 시기 영국 섬유산업의 주당 노동시간은 90∼100시간이었는데, 19세기 마지막 30년에는 56.5시간이었고, 다른 산업의 노동시간은 60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불균등하면서 완만하기는 했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졌어요. 쿠진스키의 계산으로는 자본주의 세계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1870∼1879년의 74시간에서 1900∼1909년의 61시간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 20세기 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동노동이 비일비재했다. ]

노동조건의 하락 

다른 한편, 생산력이 발전하고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저항이 증대함으로써 명목 임금수준은 상승하거나 생계비 저하를 통해 개선되는 경향을 보였어요. 이것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육체적 쇠퇴가 극한에 이르자 이에 대한 저항이 거세게 일었고, 공장제 산업이 확산되면서 일정한 노동·생활조건의 개선 없이는 노동의 집약성을 높일 수 없었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었죠. 이런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의 변화는 노동자 가족의 생활비용 지출 증대를 가져왔는데, 식료품을 비롯하여 의복, 주거뿐만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새로운 욕구와 관습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임금수준이 노동·생활조건의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되지 못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빈곤은 오히려 증대되는 경향을 보였어요. 

노동자계급의 노동·생활조건에서 가장 큰 고통은 역시 실업이었습니다. 특히 경제공황과 불황 시기에는 노동자 수백만 명이 직장을 잃고 거리를 방황했습니다. 실업자들은 극도의 곤궁상태에 놓이게 되었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저임금으로 제대로 저축을 하지 못했고, 사회보험이나 사회보장의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가내공업 노동자나 비숙련 노동자들의 경우, 고용 형태가 대부분 비정규적이었기 때문에 언제 실업을 당할지 모르는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죠. 게다가 노동조건 마저 매우 열악했어요.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도시에는 빈곤과 절망으로 가득 찬 빈민가가 형성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를 두고 "실업을 당했을 때는 기아라는, 일이 있을 때는 육체적 퇴화와 정신적 황폐라는 정체적(停滯的)인 곤궁과 황폐가 끊임없이 확대되는 수렁"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