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사태, 평가와 노조운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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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우자동차의 문제

혹심한 인플레와 노동탄압을 겪기는 했지만 고속성장 속에서 임금과 고용의 선순환만을 경험해 왔던 한국 노동자들에게 IMF관리체제하의 혹독한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임금삭감과 대량 실직은 끔찍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당시 노동자들이 ‘정신적 아노미’에 빠졌다고 한 바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기존 시스템의 낙후성을 고치겠다고 시작된 경제구조조정마저 재벌구조와 낡은 경쟁력구조를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채 금융시장 불안정성과 빈부격차 심화를 야기하며 노동자들에게 또 한번의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이중 대우차 노동자들이 최근 겪고 있는 고통은, 노동자들의 일터와 시민들의 막대한 재산을 볼모로 한 재벌의 ‘세계경영’ 놀음의 후과와 해외자본과 시장주의에 기대어 구체제에 대한 수술의 칼날을 잘못 사용해 온 정부의 잇단 실책이 중첩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무책임한 부실 경영

대우차 사태는 단순하게 말해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안고 있던 거대재벌의 한 핵심기업이 글로벌화한 자동차산업 경쟁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외부 자본을 끌어다 글로벌 자동차 생산판매망을 건설하려다가 IMF 관리체제 하의 금융경색을 견디지 못하고 허망하게 붕괴위기로 치달은 사건이다. 혹자는 대우차 부실화의 원인을 IMF가 강요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서 찾기도 하지만, 실상 대우자동차 경우만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탓을 하는 게 부적절한 경우도 별로 없다. 대우자동차는 잘 돌아가던 시절에도 적자를 면해 본적이 거의 없었으며 늘 막대한 부채에 시달렸고 유동성 위기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IMF가 아니더라도 96년 말부터 시작된 재벌기업들의 잇단 부도와 금융경색은 대우자동차를 비껴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대우자동차 부실화에 대한 판단은 외인보다는 대우차 경영 내부에서 찾는 것이 온당하다. 이럴 경우 부실 원인에 대한 탐구는 한 마디로 기본도 갖추지 않은 채 ‘글로벌 경쟁’을 위해 세계 각지에 조립생산기지 건설과 판매망 구축에 막대한 외부 자본을 부어넣은 경영전략과, 이를 기획하고 실행한 유일한 주체인 김우중 전회장에 맞추지 않을 수 없다. 

대우차 부실의 원인은 무언가 심오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개발, 품질, 생산비 등 기본적인 경쟁력 부문에서는 턱없이 역량이 부족함에도 외부 자본을 무리하게 동원하여 외연적인 확장에만 열을 올린 데 그 원인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없는 경영전략이 통했던 대우재벌의 김우중 독재체제가 원인 중의 원인일 것이다. 일전에 이코노미스트지(紙)에서 10억 달러 투자를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경영인으로 칭송해마지 않던 이 인물은 41조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대우차의 ‘세계경영’을 진두 지휘한 후, 물경 19조원의 부채를 대우차에 물려준 채 해외 어딘가에 숨어서 대우차 노동자들의 절규하는 사진을 쓴웃음 지며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김우중 전회장의 무책임한 도피행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일본의 한 파산은행 최고경영자가 눈물로 사죄하며 채권자들에게 노동자들의 생계를 부탁하던 TV화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자본가라도 어찌 이리 다른가?

18조가 넘는 빚더미

그런데 정작 문제는 외부 자본을 물 쓰듯이 사용하는 재벌의 실패가 한 사회경제에 미치는 파장의 크기이다. 어떤 자본이든 시장에서 실패하면 여러 이해 당사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재벌의 실패는 그 피해 규모가 일개 독립기업에 비할 바가 아니다. 대우차가 진 빚 18조 9천억 원은 정부가 금융구조조정 한다고 쏟아 부은 공적자금의 1/5에 육박하는 돈이다. 이 부채는 대우차에 굴러다니는 스패너까지 깡그리 팔아치워도 수조 원이 부족한 막대한 액수다. 채권단이 앞으로 대우차를 매각을 하든 어쨌든 일정한 부채 청산을 할텐데, 수조 원은 될 이 청산이야말로 실상 국민들 호주머니 터는 일에 다름 아니다. 

한편으로 대우차 부실화 이후 현재까지 이미 7천명 이상의 대우차 노동자들이 변변한 퇴직보상도 받지 못하고 이직 준비를 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다. 이들은 사회보장 수준도 아직 낮고 경력자 노동시장도 발달하지 못한 우리 노동시장 실정 때문에 재취업이 쉽지 않다. 남아 있는 노동자들도 30-~~50%의 임금삭감을 감수하고도 조마조마해 하면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대우차에 딸린 900여 개의 부품업체들이 입은 손실과 거기서 일하는 19만 노동자들이 겪는 실직과 임금삭감은 사실 대우차 노동자들이 겪을 어려움보다 더 엄청나다. 대우차에 돈 꿔주느라 동반 부실기업이 된 대우그룹 계열사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또한 어떠할 것인가? 기업이 얼마나 큰 사회적 책무를 지닌 조직인지, 따라서 창의와 책임 있는 경영을 가로막는 재벌시스템의 해체와 노동자들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의 기업 감시가 얼마나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일인지에 대해 대우자동차 사례만큼 분명하게 밝혀주는 예도 별로 없을 것이다. 재벌구조를 혁파하고 투명하고 책임 있게 사회에 반응하는 기업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이제 더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우차 부실화의 핵심 원인이 대우재벌 안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재벌과 유착을 일삼아온 정치권력의 원죄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부실 덩어리를 적당히 포장해서 해외매각 하겠다고 별로 남아 있지도 않은 기회를 탕진해 버린 다음, 자신의 정책 오류가 밝혀지자 마치 모든 책임이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처럼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에 내몰고 있는 정부의 책임도 만만치는 않다. 

2. 대우자동차 사태의 전개 과정

대우자동차 사태는 길게 잡으면 김우중 전회장의 ‘세계경영’이 시작된 시점이 될 수도 있고, 1999년 8월 워크아웃이 시작된 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작년 하반기, 특히 노조 집행부가 새로 서고 대우차의 부도가 나던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사태전개를 중심으로 요약을 해보자. 그러나 워크아웃 이후 작년 상반기까지의 대우자동차 상태와 주체들의 움직임은 간략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워크아웃과 해외매각 추진

대우차 부채규모는 작년 상반기말 현재 18조 2천억 원이었고 자본은 마이너스(-) 4천 4백억 원이었다. 영업손실은 상반기만 3,190억원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금융비용까지 합칠 경우 그 손실액은 9,294억원에 달하여 매일 51억원 이상 손해를 보며 기업을 운영하는 꼴이었다. 대우차 내부에서는 대당 판매손실이 170만원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경제논리로만 보자면 이런 상태에서는 당장 공장가동을 중단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손해와 사회적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그런데 시장논리를 그토록 강조한 정부가 이러한 막대한 경영부실에도 불구하고 워크아웃을 통해 대우차 회생을 결심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막대한 부실규모 때문이었다. 대우차의 청산이 금융, 인천지역 경제, 관련기업들, 고용 등에 미칠 파급효과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재벌문제와 자동차산업의 정치적 특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셈이다. 

워크아웃 이후 정부는 대우차의 해외매각을 추진하게 된다. 구멍 뚫린 독에 마냥 물만 부을 수도 없고, 대우차 때문이 아니라도 은행들의 부실 규모는 엄청났기 때문에 정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노조운동은 해외매각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는 작년 3-4월의 해외매각 반대 완성차 파업으로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매각문제는 6월 29일 포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되면서 사실상 약화되었다. 포드가 제시했다는 7조 7천억 원의 매각대금(후에 포드회장은 이 금액에 대해 부인했다)이 적지 않은 액수였고, 포드가 대우자동차를 하청조립기지보다는 아시아 전진기지로 삼기 위해 기술이전과 투자 등을 소홀히 않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당시 이미 대우차 부실규모나 부실 심화의 속도가 다른 판단을 어렵게 한 점도 있었다. 대우차 부실 규모는 회계법인의 실사결과가 작년 1월경에야 공개되었는데, 이것이 예상보다 엄청나서 주체들의 다른 판단을 제약한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우차 사무노동발전위원회의 입장 선회인데, 이들은 1999년 말까지 해외매각 반대에 노조운동과 입장을 같이 하다가 1월 실사 결과를 확인하고는 점차 해외매각반대 입장을 누그러뜨리기 시작, 3월부터는 대우차 정상화와 매각조건으로 기술연구소 보존, 판매망 보존, 고용보장 등 요구중심의 투쟁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도 입장이 나뉘어져 매각반대측의 대안으로 제기된 공기업화 요구가 약화되고 경영정상화 중심의 논의가 일기도 하였다. 

포드의 인수포기

그러나 포드는 7월부터 8월 중순까지 7만 쪽에 달하는 대우자료를 검토한 후 9월15일 최종적으로 대우차 인수포기를 선언하였다. 포기 이유가 즉각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포드회장의 기자 인터뷰를 보면, ‘김우중 전회장만 알고 있을 블랙홀 같은 대우차 경영 상태’에 포드가 겁을 집어먹은 것이 포기의 주요 이유로 추정되었다. 포드의 인수포기는 대우자동차에게 적지 않은 타격이 되었다. 정부가 워크아웃 직후부터 사실상 매각협상에 매달리는 바람에 대우차는 정상화할 기회를 상당 부분 놓쳐버렸고, 부실규모는 갈수록 증폭되었다. 포드의 인수포기는 여기에 기름 붓는 격이 되어 대우차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7조 7천억 원을 호가하던 매각대금이 불과 넉 달 사이에 3조 5천억이라는 반값으로 추정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 가격도 10월에 추정 가격이며, 최근 GM이 2천 2백억 정도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는 판국이다. 

해외매각 문제는 10월 7일 GM이 일괄인수의향서를 제출하면서 다시 원점에 섰지만, 사정은 이제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상반기에만 1조원 가까운 적자를 낸 대우차는 이제 채권단의 자금지원 없이는 하루도 지탱이 안될 만큼 사정이 악화되었다. 10월 들어 대우차의 부평공장 가동률은 40%에 불과했고, 임금체불은 600억 원에 달하였으며, 노동자들은 순환휴직 상태에서 공사판을 떠돌고 있었다. 기업가치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고, 신용경색의 재발로 제2차 기업구조조정이 코앞에 닥쳐 있었다. 게다가 포드와 GM과는 대우차에 대한 협상지위가 달랐다. 채권단이 하루빨리 협상을 매듭짓고 손을 털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던 반면, 대우차를 알만큼 알고, 포드만큼 대우가 아쉽지 않은 GM으로서는 급할 게 없었다. 채권단은 GM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자 ‘선인수-후정산’ 주장을 펴며 조기에 대우차를 정상화시키고자 했으나, 포드의 인수포기 이유를 알고 있던 GM이 이에 응낙할 리 만무했다. GM은 예비실사와 정밀실사 기간을 다 채우고도 추가적인 부실을 발견하기 위해 조사를 확대해 나갔다. 결국 정부와 채권단의 조기 해외매각을 통한 대우차 정상화 기조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최종 부도처리와 노조의 동의서 제출

조기 매각과 이를 통한 경영정상화에 실패한 정부와 채권단은 결국 매각방침은 고수한 채 대우차의 구조조정에 눈을 돌렸다. GM이 살만한 공장들을 제외한 공장과 법인들을 조속히 매각처리하고, 경상운영에서 적자를 면할 정도의 상태로 만들어 순조로운 매각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였다. 10월 17일 새 경영진을 임명한 채권단은 10월 27일 대우차 경영진 명의로 ‘대우차 자구계획안’을 공개하였다. 이 자구계획안은 채권단이 4천 6백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하는 대신, 대우차는 3,500명의 인원감축과 30%의 임금삭감, 판매수수료 및 부품가 인하 등으로 약 9천억 원의 경상비용을 절감한다는 대대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채권단은 노조가 이러한 자구계획안에 대한 동의서를 제출하여야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신임 노조집행부는 즉각 이에 반발하였다. 노조는 정상화자금 및 체불임금 선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조 동의서 문제로 공방이 거듭되는 동안 채권단은 계속 자금지원을 중단했고, 대우차는 11월 8일 결국 최종부도 처리되었다. 자구안이 노조에 전달된 10월 31일로부터 단 8일 만이었다. 

이 부도처리는 당시 대우차 사정의 절박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누가 보든 이는 의도된 부도가 분명했다. 정부와 채권단의 부도강행은 다목적이라 볼 수 있었다. 법정관리로 관리방식을 이전시켜 채권과 채무를 동결시킴으로써 경상운영상의 부담을 경감시킨 데는 막가고(?!) 있던 대우차의 궤도 이탈을 막기 위한 의도가 작용했던 반면, 부도와 법정관리는 노조에 커다란 압박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외적인 신용은 법정관리로 크게 악화될 수밖에 없다. 노조는 부도 후에도 동의서 제출 거부의사를 고수하였지만, 이미 조합원들은 부도의 충격 속에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으며, 사무관리기술직 조직인 사무노동발전위원회는 일치감치 동의서를 제출한 상태에서 집단사직서 제출 등으로 노조를 압박하였다. 결국 11월 27일 노조는 노사합의를 하고 법원에 구조조정 동의서를 제출하였다.          


[ 3월 1일 서울 신촌에서 대우차사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 대우차공동취재단 ]

경영혁신위원회 구성과 노사교섭의 파행

11월 27일 동의서 제출과 관련한 노사합의의 주된 내용은 결국 경영혁신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한 협의적 구조조정 시행에 있었다. 이에 대비하여 노조는 노조, 사무노위, 자문교수 등으로 구성된 경영혁신분석팀을 가동시켰다. 이를 통해 독자적인 회사정상화방안을 수립, 경영혁신위원회 교섭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경영진은 12월 16일 채권단이 미국 경영컨설팅사인 아더앤더슨에 의뢰하여 작성한 대우차 자력갱생방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생산규모를 연 56만대로 줄이고 인력을 6,847명(생산직 5,374명) 감축하며, 상여금을 연 800%에서 400%로 줄이는 등으로 총 9,973억원을 절감하겠다는, 훨씬 강화된 내용의 자구안을 노조에 발송하였다. 그와 동시에 회사는 사무직과 생산직에 희망퇴직 접수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부터 자구안 내용을 감지하고 있던 노조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였다. 노조는 비상투쟁체제로 전환을 선포하고, 12월 15일 모든 민중단체에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와 김우중 구속-재산환수 및 생존권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구성을 제안하는 등 투쟁준비를 서둘렀다.        

1차 희망퇴직으로 1603명이 퇴직한 가운데 12월 30일 경영혁신위원회가 정식 출범하였다. 그러나 경영혁신위원회는 첫 회의부터 노사간의 공방으로 얼룩졌다. 경영진은 노조가 총체적인 경영정상화 방안을 제기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인력감축 계획만 협의 가능하다는 입장을 강변했다. 노조는 경영혁신위원회 자리에서 70만대의 생산규모를 유지하고 현인원은 1년 간 순환휴직하는 방식으로 고용을 유지한다는 정상화방안을 제기했지만, 사용자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노조는 1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경영정상화 안을 공개하는 한편, 김우중 전회장 유출재산 환수, 채권단의 부채탕감과 지원을 통한 독자회생, 정부, 채권단, 노조, 금속연맹 등이 참가하는 4자 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하고 사측이 희망퇴직 강행 등 일방적 인력구조조정을 멈추지 않을 경우 쟁의에 돌입하겠다고 천명하였다. 정부와 채권단, 회사측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결국 노조는 10일과 16일 파업찬반투표를 한 후 투표자 대비 65.5%(조합원 총원 대비 53.6%)로 파업을 가결하고, 17일 경영혁신위원회 불참을 선언한 후 4시간의 부분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파업찬반투표 결과에도 엿보이듯 조합원들의 투쟁동력은 그리 높은 것이 아니었다.  17일 4시간 파업은 부평공장의 경우 1시간30분 정도 진행되다가 정상 가동으로 돌아섰으며, 이날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의 공투본 집회 참석 조합원도 300-400명을 넘지 못했다. 또한 창원과 군산공장은 파업을 하지 못했다. 한편 회사측은 1월 16일 ‘정리해고계획 신고서’를 노동부 인천북부지방사무소에 지출하여 정리해고를 기정 사실화한 후, 제2차 희망퇴직에 박차를 가하였다. 결국 1월 말까지 376명이 추가로 희망퇴직 처리되었으며, 쌍용차 정비부분(RV부문) 노동자 618명을 제외한 1,758명의 정리해고가 목전에 다다랐다. 노조는 17일 파업이 부진하자 대책마련에 부심 하였으나, 이렇다할 투쟁동력의 증대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갔다. 구정 휴가를 넘긴 후, 부평공장은 판매부진에 따른 재고의 소화를 위해 2월 12일(일부공장 15일)에서 3월 6일까지 휴업에 들어간다고 발표하는 한편, 2월 16일 정리해고를 단행하겠다고 공표 하였다. 한편 2월 들어 파상파업을 통해 조합원의 동력을 모아가던 노조는 2월 12일부터 ‘총파업’을 선언하였다. 노조는 10일부터 부평공장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으며 15일 휴업조치 이후에도 조합원들의 출근을 유도하여 점거농성을 강행할 예정이었다.

정리해고 단행과 노조의 저항

2월 12일 재개된 경영혁신위원회에서 회사측은 자신들의 최종안이라며 변경된 인원조정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이 안은 정리해고 대신 1개월 분의 임금을 지급하는 의원퇴직을 실시하고, 정리해고 대상 중 해고기준상 점수가 좋은 400명을 선별 2년 간 무급휴직 하는 조건으로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노조는 이 안을 거부하였다. 회사의 정리해고 통지서가 발송되기로 예정된 16일에 마지막 경영혁신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조는 정리해고 대신 노조와 회사가 퇴직보상금을 5:5로 부담하는 희망퇴직안을 최종안으로 제시하였다. 노조의 최종안은 회사 최종안과는 달리 희망퇴직을 원치 않는 조합원 모두에게 4개월의 무급휴직을 실시한 후 고용을 유지케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사측은 이를 즉각 거부하고 경영혁신위원회 회의를 결렬시킨 직후, 사상 최대의 1,752명에 대한 정리해고 통지서를 발송하였다. 노조 조직력의 한계를 오래 전부터 확인한 회사측이 원안대로 밀어붙인 것이다.   

2월17일부터 노조는 조합원 및 가족 총동원령을 내리고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총파업 대오는 조합원 300-400명에서 거의 늘지 않았으며, 지역노동자들과 가족들을 포함해 700-1000명 안팎을 유지하였다. 노조가 사실상 공장 점거농성에 돌입하자, 경찰은 부평공장을 완전 통제하고 노조 비상투쟁위원회에 속한 노조간부 30명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령을 내렸다. 정리해고 대상 조합원을 중심으로 한 조합원들의 파업합류를 막고 파업을 종결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유례 없는 1,752명에 대한 해고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은 2월 17일부터 연일 부평역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앞에서 집회와 시위를 벌였으며, 거리투쟁은 점차 격렬해졌다. 경찰은 2월 19일 45개 중대 4,200여명의 병력을 전격 투입 부평공장 내에서 농성 중이던 조합원 등 650여명을 강제 해산하였다. 점거농성을 핵심전술로 투쟁의 전국 확산을 계획 중이던 노조와 연맹, 민주노총은 어쩔 수 없이 공장을 경찰에 내주었다. 한편, 강제해산으로 부평 산곡성당에 임시거점을 마련한 노조와 연맹, 민주노총 지도부는 연일 대대적인 집회와 시위투쟁을 벌여나갔다. 이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상경투쟁대오가 합류했으며, 2월 24일 부평역 앞의 전국노동자대회는 경찰이 원천봉쇄에 맞서 화염병을 투척하는 격렬한 투쟁 속에서 치러졌다. 이날 전국적으로 5천명으로 추정되는 노동자들이 부평역 집결을 위해 상경대오를 조직했으나, 출발지부터 봉쇄를 거듭한 경찰의 방해로 2천여 명만 대회에 참석한 채 막을 내렸다. 28일에는 금속산업연맹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이 투쟁에는 약 3만 1천명이 파업에 참가하여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와 경찰탄압을 규탄하였다. 이후 투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으며, 장기 투쟁이 불가피해 졌다.      
  
3. 대우차 투쟁 평가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에 대해 투쟁주체도 아니면서 평론하듯이 의견을 밝히는 일이 편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우차 투쟁은 분명 노조운동이 짚어야 할 아쉬운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심스럽지만 이 점들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힘으로 일관한 정부와 자본

대우차 경영상태를 감안하면 고용조정은 쉽게 회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노동자들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책임을 져야 할 김우중 전회장은 도피 중이었고, 그가 나타난다고 해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채권단의 추가 지원이나 부채 탕감이 절실하지만, 이를 받고자 한다면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피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개별 기업의 고용보장 능력은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대우차의 경우는 고용보장 능력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있고 없음, 즉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아도 5천명을 강제 퇴직시키고도 1,752명을 기를 쓰고 정리해고한 행위는 이해하기 어렵다. 노동자들이 받은 심리적 충격도 크다. 

이런 무자비한 일이 생긴 데는 알려진 것처럼 정부가 대우자동차 문제 해결방식을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증거로 삼아 월가를 비롯한 국제자본에 널리 과시하려고 한 의도를 빼놓고 지나갈 수가 없다. 재경원과 채권단은 대우차 사태가 악화되어 가면서 금속연맹과 노조가 제기한 4자 협의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우차 경영혁신위원회에서 사용자는 인원조정 방법 이외의 논의를 거부했다. 포드의 대우차 포기 이후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초기의 혼란스러운 모습에서 10월 들어서는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정부와 채권단, 경영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과정에서는 어떠한 추가 논의나 협의도 사실상 부재했다. 제2차 구조조정을 원칙대로 강행하고 역사 속에서 평가받겠다던 김대중 정부의 강변만이 이 과정에서 돋보였을 뿐이다.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일을 담당한 대우차 경영진은 사실상 재경부, 채권단의 지침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게다가 신임 사장은 강경파로 정평이 나있던 이미지에 충실하게 행동했다. 경영진은 채권단의 주문대로 노조를 틀어막고 피 묻히는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노조가 제시한 순환휴직을 통한 고용보장은 그들이 구조조정의 준거인 ‘비용’ 절감의 견지에서도 교섭의 여지가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힘과 힘의 관계로만 대우차 구조조정을 처리했다. 대우차 문제는 정리해고가 자행되고 난 뒤에는 경찰의 ‘작전’ 대상에 불과했다. 일이 다 저질러진 다음에 나타난 노동부장관은 실업문제 해결에 주력하겠다고 한 마디 하고는 떠나버렸다. 정부가 대우차 문제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삼아 올해 노조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본을 보이려한다는 노조운동측 견해가 개연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신임 노조 집행부가 들어서서 대응준비를 갖추고 있을 무렵은 경영상태가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었고, 정부와 채권단은 자금줄을 틀어쥐고 노조의 양보를 요구하는 형국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실 노조에게 유리한 조건이라곤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노조나 그 지원세력들은 경영상태와 채권단 의도 파악, 투쟁역량과 우호 여론 형성, 현실에 바탕한 교섭안 등을 신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과정을 조합원들과의 솔직한 교감 속에서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실상은 어떠했을까? 이를 정세인식과 주체형성 측면을 중심으로 짚어보자.

노조의 잘못된 상황판단

대우차의 경영상태를 들여다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떤 식으로든 대우차가 대폭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한다. 특히 하반기 경영상태는 일촉즉발이었다. 따라서 사실상 완전한 고용보장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오히려 부평공장의 공중분해를 막는 일을 고민해야 할 지경이었다. 노조 주변에는 경영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던 그룹들이 일정하게 존재했었는데, 사무노동발전위원회나 경영분석팀에 참가했던 전문가집단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들의 판단도 고용은 최대한 방어하되 경영정상화를 핵심문제로 놓고 사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과 노조의 결합은 무위로 끝났다. 

이 점은 대우차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데 대우차 투쟁과정에서 경영위기를 사실로 인정하고 정상화 문제를 중심으로 고민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핵심적인 논란거리였고, 이 문제를 중심으로 대응의 방식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노조는 이 점에서 입장이 불분명했다. 하지만 노조가 대우차 부도나 경영위기 상황을 적극적으로 고민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채권단의 의도도 뻔했고, 구조조정이 매각의 발판 놓기라는 것도 자명했지만, 1999년 말과 작년 말의 대우차 경영사정은 분명 달랐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 노조나 노조운동 모두 솔직한 토론이 필요했다. 이 토론은 조합원들과도 필요했고, 사실 이 과정은 조합원들로부터 새롭게 동력을 얻기 위해서도 절실해 보였다. 

그러나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노조는 다만 고용보장만을 고수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경영위기를 부인하는 꼴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판단은 대우차를 바라보는 시민이나 대우차 노동자들과도 괴리가 있는 것이었다. 특히 대우차 노동자들은 오랜 비정상적 경영상태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으며, 부도 이후에는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다. 이들은 회사의 희망퇴직 공세가 관철되고, 노조가 고민에 빠져있는 자신들과 대화하지 않자 노조로의 결합 의사를 이내 거둬들였다. 

한편 노조의 정세 인식은 노조에 결합했던 노조운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상급단체들은 대우차 투쟁을 올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의 선제고지로 보고, 대우차 투쟁을 비타협적인 기조로 유지하여 상반기 구조조정투쟁의 대대적인 확산을 꾀했다. 사실 이런 의지가 노조의 판단에 상당 부분 작용했고, 이 때문에 노조의 투쟁주체 형성은 더욱 곤경에 쳐했다.   

고립 분열된 투쟁동력

투쟁주체 문제는 이번 투쟁에서 결정적인 문제였다. 노조가 고용보장 투쟁을 택했든, 차선으로 고용안정투쟁을 택했든 대우차 투쟁은 대우차 내부 주체들의 총단결은 물론 공장을 넘어선 지역과 사회여론의 향방이 크게 작용할 사안이었다. 따라서 이를 조직하는 일은 만만치는 않지만 꼭 넘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노조는 그 무엇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구조조정 동의서를 쓴 직후, 노조는 사무노동발전위원회 및 부품사 노조들과 함께 ‘대우차회생을 위한 비대위’를 구성했으며, 인천시 및 대우차 경영진까지 포함하는 ‘대우차 살리기’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과 운동들은 그 적잖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노사간 구조조정 공방이 치열해 지자 이내 중단되었다. 

그리고 상급단체들은 대우차 투쟁을 구조조정 저지투쟁의 선제고지

로 삼는다고 했지만, 사실 대우차 투쟁을 엄호할 준비는 미비한 상태였다. 금속산업연맹과 민주노총 모두 정리해고가 발생하고서야 서둘러 조직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대우차 투쟁 지원을 위해 조직된 민중위원회 산하 ‘대우차대책위’로는 역부족이었다. 치명적인 것은 조합원들을 조직하는데 실패한 점이다. 노조는 고용보장투쟁을 선택하고, 교섭이 여의치 않을 경우 총파업과 함께 대중적인 공장점거투쟁을 핵심전술로 채택했지만, 이에 호응한 조합원들은 간부들을 제외하고는 소수에 불과해서 투쟁에 합류한 조합원들은 많을 때도 500명을 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정리해고 이후에도 별반 달라지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집행부는 조합원들과의 솔직한 대화에 소극적이었다. 동원 이전에 조합원들의 불안감과 소극성을 뿌리부터 드러낼 솔직한 대화가 필요했으나, 이 작업은 몇 번의 시도는 있었으되 거의 실천되지 않았다. 노조내의 다양한 그룹들도 단결에 실패했다. 여러 현장조직과 전직 위원장 그룹과 집행부는 대우차의 위기에 공동으로 대응하려 한 흔적이 별로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집행부의 독선 등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어느 조직도 정리해고가 코앞에 닥친 시점까지 공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위기감보다는 조직간의 견제심리가 각 조직들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사무노위와의 관계도 원만치 못했다. 노조는 사무노위를 이내 내쳤지만, 이들이 어용도 아니었고 그들의 이중적 처지에서 나오는 짧은 투쟁전망은 노조가 전망을 열어주어야 하는 문제였다. 이들은 또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대우차 사태가 위기로 치달을수록 노조는 혼자 싸워야 했으며, 결정은 고립된 집행부의 몫이었다. 단결의 실패는 대우차 투쟁의 향방을 사실상 결정지어 버렸다. 정리해고가 완료된 후, 대우차 사장이 했다는 후일담이 여기저기 떠돌고 있는데, 그 내용인 즉 슨 “나도 이렇게 풀릴 줄은 몰랐다. 고용조정 목표의 절반 정도 달성할 줄 알았는데, 노조가 우리 입장을 정리해주었다”는 것이었다.   

유리된 정세인식과 주체형성의 실패로 노조의 투쟁은 실패로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정세인식과 주체형성의 실패가 투쟁의 실패를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정세와 역량이 크게 불리할 경우 노조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문제의식은 여전히 남는다. 소수만 남아도 끝까지 싸우는 것이 노조인가? 타협을 끌어내어 최대한 조합원들을 보호하는 것이 노조의 본령일까? 칼로 자르듯이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노조는 대중조직이다. 대중의 요구와 이익에 기반 하여 활동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노조 투쟁이 전체 운동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은 주체역량에 괴리된 꼴이 아니라, 그에 기반 하여 다양하게 고민할 문제이다. 역량도 안되면서 전체운동의 요구를 받아 안고 산화(散華)하는 게 미덕도 아니고, 그를 부추기는 게 올바른 노조운동이라고도 볼 수 없다.     
         
3. 무엇을 할 것인가
 
대우차 노사관계로만 보자면, 대우차투쟁은 노조의 패배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은 예상치도 못했던 고용조정 목표 100% 달성에 성공했으며, 노조활동가들과 노조활동의 주축을 이루던 젊은 노동자들 다수를 대우차에서 몰아냈다. 노조 조직력의 미약함으로 인해 정리해고자에 대한 뒤처리도 회사 주도로 이끌려갈 가능성이 다분하며, 이후 대우차 노사관계는 사용자 주도의 암울한 모습을 띨게 분명하다. 정부 역시 상반기에 집중될 구조조정 과정에서 폭발할 노조운동의 투쟁에 대해 기선을 제압한 꼴이 되었다. 사실 정부의 올해 구조조정 과제 중 대우차처리 문제만큼 심각한 사안이 없기 때문에 정부로써는 큰 고비 하나를 넘긴 셈이다. 

그러나 노조운동은 타격을 입었다. 1,700여명의 대규모 정리해고는 노조운동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으며, 이것이 향후 상시적으로 벌어질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용자들의 태도에 미칠 영향은 우려되는 바 적지 않다. 또한 노조운동에게 대우차 투쟁의 패배는 작년 말 동계 구조조정투쟁부터 시작된 거듭된 후퇴의 결정판이다. 새롭게 집행부를 구성한 민주노총이나 대공장의 산별노조 불참으로 결집력이 이완된 금속산업연맹에게 대우차 투쟁의 패배는 잇단 악재임에 분명하다. 

교섭 테이블을 복원해야 한다

그러나 수습하고 정리해야할 문제들은 남아있다. 대우차노조의 경우 빨리 내부를 수습하고 노조로서 조합원들을 보호하는 책임을 다시 맡아야 한다. 정리해고된 조합원들의 일자리와 이후 재고용 문제, 남아있는 조합원들의 보호문제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 지금이라도 대우차노조운동을 이끌어 왔던 여러 주체들이 합심하여 비상체제를 구성하고 회사와의 교섭에 나서야 한다. 연맹과 민주노총 또한 채권단, 집권당, 청와대 등 가능한 모든 통로를 찾아 대우차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투쟁한 조직들의 반발도 예상되지만 그것이 우산조직(umbrella organizations)의 본래 역할이다. 

해고된 조합원들의 보호와 관련하여 리콜제 도입, 현재 ‘희망센터’란 이름의 취업알선조직의 내실화와 노조 참여, 해고보상금 등은 여전히 유효한 교섭안건이다. 쉽지 않을 지라도 대우차노조와 금속연맹, 민주노총이 각 수준에서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노조가 할 일은 더 남아 있다. 매각문제와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유린될 잔류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 그것이다. 매각문제는 정부 뜻대로 쉽사리 진행될 사안이 아니며, 게다가 매각국면에서도 일자리 안정 문제는 다시 교섭이 필요하다. 매각이 여의치 않을 경우 부평공장 존립 여부는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구조조정은 다 ‘신자유주의’인가

다른 한편으로 대우차 투쟁에 대해 바르게 평가하고, 이후 활동에서 같은 잘못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번 투쟁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식의 편향을 바꾸어야 한다. 

이번 대우차 투쟁에 참여했던 주체들은 구조조정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인식에만 치우쳐, 결과적으로 대우차의 경영현실과 조합원 보호는 뒷전으로 내친 것이나 다름없다. 노사관계의 대립성에 대한 인식이 투철한 만큼, 힘이 결집되지 못했을 때 조합원들이 어떤 시련을 겪어야 할 지를 잘 인식하고, 조합원들을 보호할 다른 방안들도 고루 고민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투쟁주체들은 오로지 이데올로기화한 입장의 고수에만 골몰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론’의 개념적 모호함과 물신화 가능성에 대한 경계도 필요해 보인다. 작금의 ‘신자유주의론’은 자본운동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론’에 근거한 운동방식들의 상당 부분은 당장 자본주의를 변혁하자는 최대강령적 성격을 다분히 품고 있다. 가능하지도 않은 ‘세계화 반대’가 그렇고, ‘정리해고 철폐’가 그렇다. 대중의 구체적인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노조투쟁에서 정세와 역량에 맞지 않게 과도한 구호를 내오는 경우가 다 이런 인식에서 생기는 것이다. 

구조조정 문제에서는 구조조정의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구조조정의 필요성 문제를 착각하고 있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구조조정의 방식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모든 구조조정이 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아니다. 부실기업은 구조조정 돼야 한다. 문제는 구조조정의 방향과 방법이지,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꼴이 되어서는 노조의 실천이 비현실적이 되기 십상이다. 

상급단체의 역할 

어떤 사회경제든 체제를 불문하고, 경제구조의 변화와 함께 구조조정 자체는 불가피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아니더라도 한국경제는 전환기를 겪을 것이었다. 이미 수출의 35%는 정보통신(IT)산업의 생산물이며, 주력산업이던 중화학공업은 적절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고 쇠퇴를 겪을 수도 있는 조건에 놓여 있다. 독과점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국제화된 시장의 수혜자이기도 했던 한국 주요 기업들은 이제 더 치열해진 나라 안팎의 경쟁에 처해 있고, 노동에 대한 이들의 공세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다가온다. 개별 기업의 고용보장 능력은 이제 시장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변동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이 이런 변화와 직결됨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행동반경은 그리 넓지 못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기업의 생존에 필수적인 구조조정은 반대할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파생될 문제를 기업의 울타리 밖으로 끌어내고, 이를 계기로 구조조정 문제를 ‘사회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국가/지역 차원의 고용정책에 개입하고,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하여 1차 안전망을 짜고, 여기에 기업을 끌어들여 보다 촘촘한 2차 안전망을 짜는 작업이 시급하다. 또한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어렵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계급적 형성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폐쇄적이고 분단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고쳐 나가는 일도 중대한 과제이다. 

기업과 시장은 둘 다 중요한 자본주의 경제 구성단위이다. 단위 기업에서 백날 고용보장을 외쳐봤자 기업의 고용보장 능력은 시장변동에 따라 변한다. 시장원리의 남용을 규제하고, 그 폐해를 고쳐 가는 데 노조의 힘이 투여되어야만 고용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과제는 아무리 대기업노조라 하더라도 단위노조 차원에서 수행하기 어렵고, 상급단체의 과제로 남는다.  

글을 마치며

대우차 투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때리는 시어미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인데 투쟁이 ‘패배’했다고 단정하거나, 약자였던 노조운동의 대응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점 때문에 오해를 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여러 모로 한계가 있다. 대우차 문제는 사실 1999년 8월 워크아웃 지정 당시부터 본격화된 것이어서 다루는 시간의 범위도 더 넓어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시간을 이번 투쟁으로 좁히더라도 부정확한 정보에 의지하거나 긴박한 흐름 속에서 존재했던 여러 반전의 계기들에 주목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투쟁의 성과들에 주목하지 않은 점도 이 글의 한계이다. 

그러나 대량의 정리해고는 필자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리고 짧지 않은 기간 대우차 투쟁을 지켜보면서, 기존의 구조조정 대응과정에서 드러났던 문제점들이 여전히 되풀이되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노동조합의 구조조정 투쟁과 관련해서 여러 사례가 있었다.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서울지하철노조의 사례가 그것이다. 하지만 투쟁 과정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투쟁이 종료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그와 관련된 제대로 된 평가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경험들이 제대로 평가되고 그 교훈들이 올바로 정리되었더라면, 대우자동차 사태에 대한 노조운동의 대응이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

대우자동차 사태는 대우노조와 해당 조합원들에게는 물론 전체 노동운동에도 중요하다. 따라서 투쟁이 마무리 된 후에도 토론하고 정리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작업에 작은 도움이나마 된다면, 이 글의 역할은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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