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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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가 8월부터 39일 동안 벌였던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단식농성을 접었다. 끝내 발산역 리프트 사고에 대한 서울시 공개사과를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저상버스와 모든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 등 작은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소식을 듣고 생각났는데 몇 달 전 한 후배가 장애인 이동권 집회에 참여했다가 다짜고짜 닭장차에 실려 이틀만에 경찰서에서 나온 적이 있다. 한국에서 인권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권리가 아닌가보다.

다르게 사는 사람들

『다르게 사는 사람들』은 넝마주이, 외국인 노동자, 비전향 장기수, 소외 어린이, 장애 여성,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등 이 땅에 살지만 배제되고 주변으로 밀려난 소수자들이 세상을 향해 한마디씩 던진 얘기를 모았다. 그렇다고 자신을 저버린 세상을 탓하는 넋두리는 아니다. 책 속의 소수자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생활을 하고 있다. 단지 세상을 향해 그 ‘나름의 방식’을 존중해 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상한’ 사람, ‘병든’ 사람, ‘추악한’ 사람, ‘낙오한’ 사람 등등 ‘정상적인’ 사람으로 나뉘는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부정한 수식어를 붙이지 말고 ‘사람’으로 대우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을 일컬어 ‘소수자’라고 하는데 ‘소수자’란 무슨 의미일까? 엮은이는 소수자가 반드시 수가 적은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수자란 ‘표준화된 인간상을 거부하는 사람’이며 표준화된 인간상과의 거리정도에 의해 규정된다고 한다. 표준적인 근대 인간상은 백인-남성-어른-이성애자-건강인-지성인 등으로 표현된다. 반면 소수자는 유색인-여성-어린이-동성애자-이주민-환자-무지렁이 등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 위치들 사이사이는 지배와 권력으로 연결되어 있다. 유색인의 시점은 백인의 그것으로 걸러지고, 여성은 남성의 시점에서 파악될 뿐이다. 결국 표준화된 인간상에 가까울수록 세상은 살만하지만 소수자에게는 하루하루가 투쟁의 나날들이다.

내 안의 소수자성

김효진씨는 장애 여성으로 어린 시절 겪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전다. 장애는 그냥 육체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존재로 키워졌으며, 부모님에게서 “이 다음에 크면 엄마 아빠와 같이 살자”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 장애 여성이 어린 시절 겪게 되는 일반적인 이야기란다. 아무도 장애 여성에게 여성의 권리를 인정치 않기 때문에 스스로도 여성성을 부정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덧 당당한 사회인으로 흠잡을 데 없는 실력을 갖추고 취업을 하려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동정의 시선만을 보낼 뿐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취업을 했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더이상 전망과 미래는 없어 보였다. 지금 그녀는 장애인 인권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장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사회가 배제시키고 주변으로 몰아 넣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지 위치가 소수자여서 모든 소수자가 자신이 소외되었거나 주변화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장애 여성의 “살아오면서 얼마나 인권 침해를 받았기에 인권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처럼 자신의 소수적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할 수 있으며 혹은 다른 다수적 정체성에 의해 가려지기도 한다. 엮은이가 얘기하듯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 안에 소수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수자성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부정하거나 사회에 의해 배제된다. 마치 어렸을 적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면 꾸중을 듣고 힘들게 오른손 사용법을 배워야 했듯이 말이다. 해결 방법은 두 가지이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표준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애쓰던가, 자신의 소수자성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사회와 부딪치며 살던가. 

연대를 위한 지도 그리기

다수자와 소수자란 낯선 낱말을 써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리 먼 소리만은 아니다. '근로자'에 갇혀 있었던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했던 투쟁들도 결국 소수자의 발언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소수자의 논리가 중심을 향함으로써 새로운 배제와 주변이 생기는 것이다. 주변성의 경험이 소수자들간의 연대로 나타나지 못한다면 이 이분법의 질서는 영원히 깨지지 않을 듯 싶다. 

나의 위치를 그려본다. 동양인에다, 남자고, 이성애자이고, 노동자에다, 신체건강하구…. 허, 갈 길이 머네. 다들 한번씩 그려보고 주위를 둘러보자. (김비 외 짓고 이학사 펴냄.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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