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산재보험제도의 뿌리를 흔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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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산재보험제도의 개편과 관련하여 중요한 두 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 하나는 노동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산재보험제도 발전계획’과 관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심사평가원과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산재보험?의료보험?자동차보험의 심사일원화’이다. 

산재보험제도 발전계획은 산재보험의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주축이 되어 산재보험제도 전반에 걸쳐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려 한다는 점에서 범위와 내용이 매우 포괄적이다. 반면, 심사일원화에 대한 주장은 ‘심사’ 측면에서만 산재보험제도의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논란 휩싸인 산재제도개혁과 산재환자 도덕성

그런데 산재보험의 산적한 문제점과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을 반영하듯, 이러한 논의들은 시작부터 많은 논란과 갈등을 불러왔다. 노동부 산재보험제도 발전계획의 경우 1차 워크숍에서부터 노동조합의 참여 문제로 파행을 겪었고, 심사일원화 주장도 산재관련 사회단체들의 격렬한 항의로 공청회가 무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노동부와 열린우리당이 들고 나온 제도개선안의 방향과 내용이 산재보험제도의 산적한 문제들의 핵심은 비껴가고, 오히려 산재보험이 결정적으로 후퇴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상황은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아직 명확한 제도개선안이 제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정짓기 어렵지만 1차 워크숍에서 제기된 내용으로 볼 때, 노동부의 제도개편 방향이 산재보험제도의 공공성 강화와는 거리가 먼 규제완화, 효율성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충분히 일으킬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문제의식이라면 왜 ‘제도발전’을 명목으로 들고 나왔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심사일원화 주장 역시 현재의 산재보험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점으로부터 한참 어긋나 있다. 때문에 문제 발생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마치 ‘심사’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게다가 심사일원화가 되면 산재보험의 산적한 과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주장하고 있어서 그 주장이 현실화될수록 산재보험의 문제를 풀기보다는 왜곡시킬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두 가지 흐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정부의 산재보험 개편전략의 문제점과 쟁점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우선, 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제도발전 계획 중 재정부분에서 제시된 주장을 살펴보겠다. 

노동부, “산재보험 재정안정과 효율성 제고가 필요” 

노동부는 산재보험의 급여지출이 점점 늘어나면 재정 불안정이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준비가 잘 갖추어져 있지 못함을 지적한다. 이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다양한 근거와 대안을 제시한다. 아래 주장들은 노동부가 주관한 워크숍에서 제시된 안들로서, 최종 의견은 아니지만 일단 노동부의 일차적인 시안으로 간주하고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첫째, ‘책임준비금’(보험계약상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적립하는 준비금)의 문제다. 노동부의 주장은 책임준비금을 적립하기 위한 산출방식과 운영체계가 재해보상에 따른 실제 부채수준과는 차이가 있고, 현행의 방식이 책임준비금 규모를 과소 책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금수급자 증가에 따른 기금 부족현상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보험요율(보험료를 결정하는 비율)의 급작스러운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부는 5년 동안 지급준비만을 고려하는 현재의 ‘부분기금화 방식’에서 책임준비금 규모를 훨씬 크게 확대하는 ‘완전기금화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최종 손해액 및 미래 보험금 지급 패턴에 대한 추정 등을 반영하는 새로운 책임준비금 산정방식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노동부는 산재보험과 국민연금에서 이중으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생겨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국민연금과 산재보험에서 중복급여 사유가 발생할 경우에는 국민연금의 지급금을 50%만 지급한다. 노동부의 주장은 이러한 제한규정이 있지만 중복급여의 여지가 여전히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또한 퇴직 후 기간에도 산재보험이 임금손실을 보상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퇴직 연령 이후에는 산재보험을 지급하지 않고 국민연금에게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산재보험에서 급여 수령자들을 위해 노후 국민연금 수령을 위한 연금보험료도 대납해, 퇴직연령 이후 노후소득 보장은 국민연금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노동부는 ‘등급별 평균요율’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현행 산재보험의 업종별 보험요율 산정방식에서는 업종별 보험요율의 기초율을 기초지급률(임금총액 대비 보험지급액)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된 사업장의 보험지급액을 다른 업종으로 분산한 이후의 지급률을 기초율로 삼아 계산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 때문에 각 업종의 보험요율에도 영향을 주는 업종 위험률 순위가 왜곡되고 기업이 안전관리에 대한 유인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방식이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업종 간 보험요율은 그 산업의 ‘위험률’에 따라 정해지도록 하고, 보험요율 안정화를 위하여 위험률이 일정수준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수준을 초과하는 부담을 분산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넷째, 노동부는 사업주의 안전관리에 대한 노력과 산재보험요율 체계가 연계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안전공단의 인증기업에 대해 보험요율을 감면해주는 등 기업의 특성에 따라 보험요율을 할인 또는 할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보험 공공성의 뿌리가 흔들린다

이제 이러한 노동부 주장의 문제점을 사회 연대와 공공성의 원칙에 비추어 살펴보겠다. 먼저, 책임준비금에 대한 노동부의 의견이다. 이는 민간보험의 원리를 사회보험에 적용하자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민간보험의 경우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보험사고에 대하여 최종적인 치료와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종 손해액을 계산하고 이에 따라 책임준비금을 마련한다. 반면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은 기금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 책임준비금을 확보하긴 하지만, 최종적인 보상액을 계산하여 책임준비금을 마련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노동부의 개선방안은 산재보험도 민간보험처럼 이미 발생한 모든 산재의 최종적인 보상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책임준비금으로 적립해 놓자고 주장한다. 이는 장해연금 등 연금지급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보면 일정정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산재보험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민간보험적 성격이 강화된다는 비판을 면키는 어렵다. 이미 발생한 산재에 대한 적립금이 모두 갖추어져 있지 않아도 산재보험 기금에서 급여가 지급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산재보험에 사회연대성의 원리가 작동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산재보험에 민간보험에 적용되는 완전기금화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연대성을 부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산재보험과 국민연금의 중복 급여지급 문제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장해연금의 수령을 퇴직 이후에도 계속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하는 질문이 있다. 현행 산재보험의 장해급여는 퇴직 유무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장애에 따른 근로손실 문제만을 고려한 것이다. 즉 현재의 제도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포함되어 있는 문제의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회보험의 취지에 더 부합한다. 만약 그러한 문제의식이 받아들여진다면 직장이 있거나 다른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는 장해급여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연금에서 지급하는 장애연금, 유족연금과 산재보험에서 지급하는 장해연금, 유족연금의 수급대상자가 동일할 경우 중복급여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평성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기에는 산재보험과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이 너무 낮다. 그리고 중복 급여 문제는 산재 장해와 일반 장애로 이원화되어 있는 장애인 복지정책이 통합적으로 전개되어 일반 장애의 급여 수준이 지금보다 상승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셋째, 등급별 평균요율에 관한 지적에 대한 비판이다. 노동부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보험요율이 산재발생 위험률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보험요율이 산재 위험률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그래야만 사업주가 산재보험 예방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실증적으로 검토해봐도 산재발생 위험률에 따른 보험요율 설정이 재해예방에 효과가 별로 크지 않다. 노동부의 새로운 방안이 재해예방 효과를 상승시킬 수 있을지도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위험률에 따른 보험요율 산정은 연대성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보험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보험요율에 차이를 두는 근거를 설명하는 사례로서 독일의 경험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조합별로 보험요율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국가가 단일보험자인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제로 재해예방 효과가 별로 없다면, 업종 간 재분배 기능을 담보할 수 있도록 등급별 보험요율이 아닌 ‘평균요율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연대성의 원리에도 맞고 오히려 타당할 것이다. 

넷째, 사업주의 안전관리에 대한 노력과 산재보험요율 체계를 연동하자는 주장이다. 산재 발생과 연동하는 것이 아닌, 예방 노력과 산재보험요율을 연계하여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주장은 고려해볼 만한 정책으로 판단한다. 다만 안전공단의 인증 절차에 신뢰도가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보험료 형평성 개선 빠진 ‘발전계획’

이상으로 재정 안정화와 관련한 노동부의 산재보험제도개선안과 그 주장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방안의 문제들과는 별도로, 노동부의 ‘제도발전방안’은 보험료 부과에 있어서 형평성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많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보험료 부담의 능력이 큰 대기업이 등급별 보험요율에 따라 보험료를 오히려 더 적게 내고 있는, 사회연대성의 원리가 훼손되고 있는 현실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도발전 계획을 내겠다고 생각했다면 문제의식의 핵심을 ‘재정 안정화’뿐만 아니라, ‘보험료 부과체계의 형평성’에도 맞추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 노동부 산재보험 발전위원회의 재정 분과를 담당하는 전문위원의 면면을 볼 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노동자의 시각에서 또는 사회보장의 시각에서 문제를 풀어나갈 위원이 많지 않아 보인다. 요양 및 재활 분과 등 다른 분과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해봐도 재정 분과는 자본측에 치우쳐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발전위원회의 구성 단계에서부터 양대 노총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우려된다. 

아직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1차 워크숍에 발표된 내용과 재정분과에 배치된 인사의 면면을 볼 때 최소한 재정 문제에 있어서 제출될 ‘개선안’이 산재보험의 공공성과 거리가 멀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산재보험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논리는 산재보험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민간보험적 성격을 강화하고자 하는 경총의 뜻과 배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심사일원화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다음으로 산재보험, 의료보험, 자동차보험의 심사일원화를 입법 추진하는 열린우리당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들 주장의 핵심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은 의료이용자 관점에서 볼 때 심사조정률에서는 차이가 없음에도 동일한 질병 또는 사고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사람들과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사람들 사이에 진료비, 입원 기간, 입원률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중요한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산재보험의 경우 보상금을 목적으로 한 ‘허위진료’, ‘과잉진료’가 일반화되어 있고, 이에 따른 부당한 지출에 의한 보험료 부담이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둘째, 의료제공자 관점에서 심사기준, 청구방법이 일원화되어 있지 않아 행정비용이 낭비되고, 산재보험의 경우 환자 요구에 편승하여 과잉진료가 발생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본인부담이 없고, 휴업으로 인한 임금손실이 보상되며, 산재환자에 대한 의료기관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진료량을 늘리려는 욕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롱 환자’ 때문에 병원관리가 어렵고, 또 이들 때문에 청구?심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된다는 점도 언급한다. 

셋째, 전체적인 관리운영의 관점에서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사이 상호 연계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국가차원의 효율적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심사기관의 의학적 전문조사기능의 미흡, 기왕증(산재 이전에 있던 병)으로 인한 진료비 분쟁 및 부당한 지출의 방치, 전문성이 결여된 부실 심사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넷째, 이렇게 현행 산재보험의 심사 및 요양지급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그 대안으로서 심사일원화를 제시한다. 심사일원화를 통해 요양급여와 관련된 모든 비용에 대한 심사와 평가를 통합할 수 있게 되면 보건의료정보를 효과적으로 관리?활용할 수 있으며, 의학적 근거에 따른 적정 진료를 할 수 있고 의료 질에 대한 평가도 실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심사일원화가 이루어지면 그 다음 단계로 지급의 통합, 즉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통합이 달성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 마창지역 노동자들의 산재상담 및 선전전   - 출처: 마창산재추방운동연합 ]

산재환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만 부풀려

이러한 심사일원화 주장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장 자체에 논리적 결함이 있다. 보험 수가가 다른 상황에서 건강보험 환자와 산재보험 환자의 입원진료비가 다르다고 지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리고 건강보험에서 입원기간은 청구자료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입원기간이 과소 평가되어 있는 반면 산재보험 자료는 승인부터 치료종결까지 모든 입원일수를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과대 평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입원률도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이 비율을 계산하기 위한 모수(분모)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단순비교가 어렵다.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으려면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의료보험은 병원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요통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을 예를 들면, 건강보험의 경우 요통으로 병원을 방문한 모든 환자 환자가 모수가 되지만, 산재보험의 경우는 입원이 필요할 정도의 심각한 경우만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입원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입원진료비, 입원기간, 입원률을 비교할 수 있는 논리적 객관성이 취약함에도, 심사일원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상적인 지표만 나열하고 단순 비교함으로써 산재노동자들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둘째, 부정확한 사실 제시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심사일원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산재보험이 진료에서 본인부담이 없고 휴업으로 인한 임금손실이 보상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산재보험이라고 항상 급여가 지급되는 것이 아니다. 산재보험에서도 비급여가 평균 20%정도로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들의 진료비의 부담도 매우 크다. 휴업급여 역시 임금손실의 70%만 보장되므로, 영세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산재가 발생하면 쉽게 가계 파탄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재환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주장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일뿐더러, 오히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입원기간을 줄이고 치료를 조기에 종결하려는 경향만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본인 부담과 휴업급여가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이를 ‘도덕적 해이’와 연결짓는 것은 잘못이다. 무상의료와 휴업급여 제공이 이뤄지고 있는 일부 서구 국가들에서는 입원기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통원 및 재활서비스가 잘 연계되어 있고, 직장복귀와 그 때까지의 임금손실에 대한 보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장기입원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잘못된 원인 진단의 문제이다. 심사일원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재 산재보험 환자에서 입원기간이 길어지는 원인이 ‘도덕적 해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문제 발생의 근본 원인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증도가 비슷한 경우,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이나 총 치료기간의 차이는 크지 않다. 다만, 산재보험 환자는 입원하여 치료하는 기간보다 외래에서 치료하는 기간이 긴 반면, 의료보험 환자는 외래에서 치료하는 기간보다 입원하여 치료하는 기간이 길 뿐이다. 그 이유는 산재보험에서는 통원치료를 받을 경우 치료가 종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게 되고, 급성기치료 이후 재활서비스를 포함한 연계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직장복귀의 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를 제외하면 장기입원은 일반적으로 의료제공자가 유도하는 경우구가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심사일원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언급을 일부분에 그치고 전체적으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가 지배적인 것처럼 부각시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서비스의 질이 좋은 병원은 산재의료기관 지정을 취소하거나 입원을 거부하는 경향이 큰 반면, 입원서비스의 질을 보장하기 어려운 소규모 병원이나 의원급에서는 산재환자의 입원을 유도하고 장기화하려는 경향이 큰 것이다. 

일원화 원하면 보장수준 확장하라 

장복심 의원은 이러한 잘못된 진단 속에서 진료비 심사제도를 일원화하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기간의 요양은 다른 제도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심사제도를 바꿔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만약 심사일원화가 현실화되고 제도적으로 다른 출구는 봉쇄된 상황에서 심사평가만 동일하게 적용하게 될 경우, 의료기관의 산재환자 회피 경향만 부추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치료와 적응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직장에 복귀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핵심적인 전제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심사평가의 통합은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그 핵심적인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입원하지 않고 급성기병원에 통원치료를 받거나 재활요양기관에 서비스를 받더라도 차별 없이 휴업급여가 지급되고 치료종결이 되지 않아야 한다. 둘째, 급성기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후 직업재활을 포함한 재활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모든 의료기관에서 산재보험으로 치료될 수 있어야 한다. 의료기관을 이용하는데 차별적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동일한 심사기준 및 체계의 적용은 정당성이 없다. 

또한 진료비 심사의 일원화 이후 2단계로 진료비 심사 및 지급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장복심 의원 측의 주장 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산재보험 수준으로 향상되고, 산재보험의 청구?지급절차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현 상태에서 유지되는 상황에서 일원화된다면, 산재보험 환자도 건강보험 환자와 동일한 본인부담을 하고 나중에 정산을 받게 되므로 산재환자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이 너무 높아서 의료의 접근성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재보험 환자도 그러한 체계로 밀어 넣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개혁은 사전승인제 폐지부터 시작해야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재 산재보험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이슈로 등장한 두 흐름은 이러한 산재보험의 핵심 문제에 대해 매우 형식적이거나 부차적으로 다룬다. 민주노총을 포함하여 노동안전보건운동 진영이 제시하는 산재보험 개혁의 3대 핵심과제는 △사전승인제도의 철폐와 선 보장 후 평가의 실시, △취약한 보장성의 강화, △직업재활 및 원직장 복귀를 포함한 재활체계의 구축 등이다. 

산재보험의 사전승인제도가 산재 발생 시점부터 적절한 치료와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고, 사업주가 산재를 은폐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사실은 노동안전보건운동 진영에서 그동안 핵심적으로 지적해온 사항이다. 산재보험의 급여 인정기준이 매우 협소하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의 관료성과 업무처리의 임의성이 현재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사전승인제도가 그 취지가 어떤 것이었든 간에 노동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건강보험공단과 달리 근로복지공단은 급여비 심사 업무뿐만 아니라 별도로 산재 신청에 대한 승인업무까지 결정할 권리를 독점하고 있다. 이처럼 근로복지공단에 모든 기능이 집중되어 있고, 견제 장치가 없다 보니 보험자의 횡포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업무상 재해와 질병이 발생한 시점부터 노동자가 요양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사전승인제도를 철폐하고, 산재보험 급여제공체계와 관리운영체계를 개혁해야 한다. 노동자가 진료를 의뢰하면 의료제공자는 객관적 분류기준에 의하여 산재보험인지 건강보험인지를 분류하고, 산재보험 환자로 분류된 경우 근로복지공단에 급여타당성을 의뢰한 후 우선 산재보험으로 치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산재은폐와 치료지연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시키는 사전승인제를 철폐하고 ‘선 보장 후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의 구조와 기능을 재편해야 한다. 심사기능을 폐지하여 산재보험심사평가원에 그 기능을 이전하고, 근로복지공단은 징수업무, 자격관리업무, 서비스업무를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그러한 구조 개혁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예방서비스부터 재활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고, 청구된 진료비의 심사 기능과 급여 제공의 타당성 평가를 수행하는 산재보험심사평가원이 설립되어야 한다.

노동자 저항이 싫으면 참여를 보장하라

이러한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있어야만 산재보험이 노동자 건강의 안전망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사회보험으로서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요양급여, 휴업급여 및 장해급여의 보장성을 높이고, 급성기치료 이후 재활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연계체계를 마련하며, 원직장 복귀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 또한 빠질 수 없는 제도개혁의 내용이라 하겠다. 그리고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하여 등급별 보험요율이 아닌 평균보험요율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역시 산재보험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달성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한편, 산재환자와 노동건강운동 진영이 요구하는 이러한 내용이 제도개혁에 충분하게 담겨 있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부가 효율성과 재정안정화에 초점을 맞추어 제도개혁을 추진한다면 이는 어떠한 정당성도 획득하기 어려울 것이며, 노동자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한 첫 출발은 당연하게도 논의 테이블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산재보험제도의 가장 핵심적인 당사자가 노동자이고, 오래 전부터 노동계에서 산재보험제도 개선안을 제출한 바가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참여 보장은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그리고 특히, 노동부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 재정분과의 경우 특정 입장으로 경도된 것으로 의심되는 위원들의 일방적인 구성에 대하여 전반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이 시기에 정부가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의 공공성 강화에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실천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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