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활동을 빙자한 갈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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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건설산업노조 활동가 구속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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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klsi.org

지난 10월 중순, 대전충청지역 건설산업노조와 천안아산지역 건설산업노조의 활동가 8인이 구속되었다. 경찰이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강요, 협박, 금품갈취”로, “일용직 근로자의 안전·복지 문제를 핑계로 단체협약 의무 없는 건설회사 원청업체에게 단협 체결을 강요하여 전임자 활동비를 갈취했다”는 것이 구속 사유였다.

혐의 내용도 황당하지만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활동을 범죄 행위로 몰아간 것이 마치 군사독재 시대의 노동활동 탄압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건설업체의 치밀한 계획과 경검의 반노동자적 태도가 스며들어 있어 더욱 문제가 된다.


[ 10월 21일 청와대 앞에서 '건설일용노조 공안탄압분쇄를 위한 투쟁결사대' 발대식을 하는 건설산업연맹 ]

노조활동이 “금품갈취”로 둔갑

지금까지 대전충청지역의 건설산업노조는 지역별 소산별노조로서 건설현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하여 교섭을 요구하고 적법하게 단체협약을 체결해 왔다.

그런데 9월17일 느닷없이 노조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경찰의 소환장이 접수되었다. 그리고 19일 대전지역 건설노조와 단협을 맺고 있는 모든 현장에 대전 중부서 경찰이 방문하여 단협을 복사하고, 단협 과정에서 협박이 있었는지와 전임비 지급과정에 강압이 있었는지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10월1일 대전건설노조 이성휘 위원장을 비롯한 6명에게 영장이 발부되었고, 다음날 총 6명이 구속되었다.

천안건설노조의 경우는 9월19일 경찰청 출입기자로부터 노조 압수수색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사 내용을 파악해 본 결과, 경찰이 각 현장의 단협 관련 서류, 협상과정에서의 협박 유무, 전임비 지급내역 등을 조사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리고 10월3일 박영재 위원장과 노선균 부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10월11일 구속되었다.

경찰은 이들의 구속에 대해서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는 노조활동가 전임비 지급을 ‘협박’하여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강요와 협박’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는 것이다. 즉 형법상 ‘공갈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현재 경찰 수사가 마무리되어 법정으로 넘어간 상태로, 향후 법정에서는 원청사와 대부분 하청 조합원들로 조직될 수밖에 없는 노조가 원청사 관할 현장의 노동자들을 위하여 교섭을 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쟁점이 될 예상이다.

그러나 경찰의 이같은 판단에 대해 지역건설노조와 건설산업연맹 그리고 민주노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며 노동탄압을 위한 빌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경찰이 주장하는 두 가지 사안 모두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검찰에 따르면 노조 활동가가 건설업체 사용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하면서 “전임비를 받은 것이 갈취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근로자의 근무 환경과 직결된 사용자의 위법 형태를 지적하는 것은 노사 양측의 교섭력에 따라 진행되는 동적인 단체교섭 과정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법률상 책임을 부인하며 교섭에 응하지 않는 사용자를 교섭테이블로 유도하는 통상적인 방법에 불과하다. 게다가 “단협에 전임비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공사기간 동안 월 일정액을 노조에게 지급하기로 노사간 계약을 체결하고 조합통장에 입금된 것이지 결코 ‘뒷돈’이 아니다”라고 연맹은 주장하고 있다. 결국 검찰의 논리는 노동조합의 활동과 단체교섭 과정에 대한 몰이해가 아니라면, 반노동적 태도와 노조에 대한 비뚤어진 선입견에 근거한 논리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원청과의 단협은 불법?

다음은 단협 체결 과정에서 단협 체결을 요구하는 강요가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검찰은 협약체결 의무가 없는 원청 회사에 협약 체결을 강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건설 현장은 여러 차례의 도급에 의해 고용관계가 뒤엉켜있어 도대체 임금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직접 근로계약의 상대방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근로기준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건설근로자의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 등도 산업안전, 재해보장, 퇴직공제 등에 대한 책임과 임금지불 연대책임을 원청 회사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또한 현장의 전체 관리권이 원청에 있기 때문에 식당, 화장실, 음료수대 설치 등 복리후생 부분을 원청이 책임지고 있다. 또한 현장 내에서 노조활동의 보장, 노조간부의 현장 출입 보장 등은 원청만이 합의할 수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법원이나 노동위원회도 이미 철도 하역노조 등의 사례에서 직접 고용당사자가 아닌 현장사용자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인정한 적이 있다. 

현재 건설산업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은 “원청 회사의 책임과 권한이 있는 범위 내에서 적법하고 정당하게 체결된 것”이라고 건설산업연맹 백석근 부위원장은 지적했다. 백 번 양보해서 협약 의무에 관해 노동법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이것은 체결된 협약의 효력 문제일 뿐 단체협약 체결 과정을 협박에 의한 갈취로 판단하여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민주노총 법률원 및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의모임)의 해석이다.

치밀하게 준비된 노조 탄압

건설산업연맹은 10월21일 ‘건설일용노조 탄압 분쇄를 위한 투쟁결사대’ 발족식을 갖고 지금의 사태를 건설일용노조 죽이기로 규정하였다.

연맹은 경찰의 수사를 표적수사로 보고 있는데, 건설자본이 준비중인 ‘전임비 반환 청구’소송의 내용과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전임비 지급과 관련한 수사 내용이 너무나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연맹 조사에 따르면 2년 전부터 몇몇 건설회사들이 중심이 되어 노조 활동가 전임비 지급과 관련해 노동부와 검·경찰에 진정서를 내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건설업체 인사관리자들의 모임인 ‘건인회’(건설업체인사관리자협의회의)와 한국건설경제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정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하여 전임비 반환 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연맹 백석근 부위원장은 “이와 관련한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태평양 법무법인의 소송 관련 권고사항에 대한 자료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경찰이 노조 활동가의 공갈과 협박을 통한 갈취 사실과 관련한 진술을 받기 위해 유도 심문식 조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연맹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건설업체 현장 관리자들의 진술서를 입수했다. 그 진술서에 따르면 경찰의 갈취 사실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변자가 “갈취가 아니다”라고 대답했으나, 경찰이 갈취에 대해서 설명을 한 후, “이에 해당하냐”고 질문하였다고 한다. 즉 경찰은 금품갈취를 기정사실로 하고 취조를 시작한 것이었다.

경찰 수사 과정의 의혹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활동가 연행과정에서도 경찰이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근거가 있다. 천안건설노조에서는 10월1일 위원장을 비롯한 3인에 대한 출두요구서가 나오자 10월9일 이전까지 변호사와 자진 출두할 것을 공문으로 보냈다. 그러나 경찰은 위원장과 부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10월3일 발부하고, 긴급체포의 형태로 구속하였다. 뿐만 아니라 건설노조에 가입한 지 1개월 밖에 되지 않아 단 한 건의 단체협약 과정에도 개입되지 않은 사람을 구속 수사하였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차장은 “이 사건은 검사 혼자 판단한 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건설자본과 공안 검찰의 협조 하에 진행되고 있는 정황 증거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수사 과정을 보면 법적으로 과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도 구속이 이뤄졌다면 대검찰청의 공안과가 개입되어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건설산업연맹은 현재의 사태가 단순히 대전과 천안지역 건설산업노조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차원으로 벌어지고 있는 있다는 근거 자료를 수집 중이다. 자체 조사에 따르면, 대전과 천안을 비롯해 경기 서부, 서울, 인천 등 수도권 지역은 대부분 경찰과 검찰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전북과 대구 부산의 경우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지난달 10일 민주노총은 '건설노조 탄압 강력 규탄, 구속자 즉각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국회 앞에서 열었다. ]

건설 자본의 반노동 태도가 원인

건설산업노조 활동가들의 구속에는 건설업체 경영자들의 반노동자적 태도가 사태 발단의 원인이 되었다.
“건설업체 경영자들이 건설노동자를 일용노동자라 얕잡아 보고 노동조합의 조직화나 활동에 대해서 염두를 하지 않고 있다가, 건설노동자들이 ‘지역노조’로 묶여 노동조합 활동을 벌이자 이에 대한 위기의식과 반감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9개 지역 건설산업노조의 활동으로 인해 3백개 현장에서 단협이 체결되었으며, 노동조합이 임금체불, 산재처리, 산안법 준수 여부,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 등을 감시하고 있어, 건설업체에서 보면 비용 부담과 함께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상대가 생겨난 것이다.

즉,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놓여져 있던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자, 건설현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건설자본이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의 해석에서 사례가 없는 부분을 이용하여 건설노조 활동 자체를 언론에 비도덕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건설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려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현재 건설산업연맹은 검찰과 경찰의 표적수사 중단요구와 구속 노동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청와대 앞 1인 시위, 건설업체 항의방문, 경찰서 항의방문 그리고 1백 명의 투쟁결사대를 조직하여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채 1년이 안 된 노무현 정부에서 벌써 두 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택했다. 노정관계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국면이다. 여기엔 정부 탓도 있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자들이 노동조합을 마치 “적”으로만 간주하는데도 책임이 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이다. 건설업체는 노동조합을 있어선 안될 조직으로 간주하였으며, 거기에 경찰과 검찰이 손을 들어 주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란 말을 최근 들어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대할 때마다 정부와 경영계에게 ‘사회통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건지, 사회통합을 누가 방해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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