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바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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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보물찾기 그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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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디오 가게 - 잠재된 보물이 손짓하는 신대륙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비디오 가게는 탐색의 여정과 발견의 기쁨이 함께 하는 일종의 난지도다. 평균 만장을 넘어가는 비디오들이 빼곡이 들어찬 진열장을 향해 한 걸음을 성큼 내디딜 때, 그 미지의 신대륙 앞에서 우선 가슴이 설렌다. 과연 오늘은 어떤 보물이 내 손에 걸릴 것인가? 아니면 어떤 쓰레기에 내 소중한 천 원을 낭비할 것인가? 결과는 오로지 집에 가서 비디오의 버튼을 누른 지 십 분이 경과해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 비디오 탐사의 참재미가 있다. 만화와 달리 겉장을 열어 그림과 내용의 일부를 미리 맛 볼 수 없으므로, 만화방보다 훨씬 더 성공 확률이 낮은 게임이고, 그만큼 발견의 기쁨도 크다. 주어진 단서라고는 겉장에 적혀진 열 줄 안팎의 스토리 요약, 배우의 이름, 제작진의 이름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사람들의 손과 눈을 자극하는 신간 코너(보통은 극장 개봉 당시 대박이거나 화제작이었던 작품들이 한 편 당 일고여덟 개씩 꽂혀 있기 마련이다)의 유혹을 과감하게 벗어나 구석진 뒤편 진열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라. '여기에 보물이 있답니다'라고 간판을 걸고 있는 보물섬에서 예정된 보물을 건져내는 것과는 비견할 수 없이 쓰레기더미로 가득 찬 난지도에서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내 '심봤다'를 외쳐 보는 탐험의 원초적 재미가 바로 거기 구석 진열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고르는 요령? 별 것 없다. 몇 번의 실패를 거치는 것말고는. 자기 입맛을 알기 위해 다년간 여러 가지 음식을 접해왔던 경험이 뒷받침되는 것처럼, 영화도 마찬가지다. 단지 실패의 대가가 담뱃값보다 싸다는 사실을 원군 삼아 몇 번 저질러 보면 나중에는 겉장만 척 봐도 자기 식성인지 아닌지 감이 착착 감기는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으니, 비디오 가게는 '내 이웃의 보물섬'인 셈이다. 

참고로 비디오 가게 주인이 내 취향과 비슷하지 않다고 판단되거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말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별반 없다. 마찬가지로 이번 달부터 몇 달간 이어질 비디오 보물찾기란에 소개되는 비디오 또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의 취향에 입각해서 걸러진 보물들이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런 고로 보고 나서 재미없을 경우, '거 참 이상한 사람이네. 이게 뭐가 재밌지?' 정도로 의견을 정리하시고, 자신만의 지도와 나침반으로 비디오 탐사를 계속 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어차피 목적은 '비디오 보기'의 재미를 같이 느껴보자는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별 새로울 것이 없는 똑같은 스트레스와 지루하게 반복되는 또 하루를 접고 집에 돌아가는 길. 골목 어귀의 비디오 대여점에서 남들이 뭐라든 내가 보고 즐거울 수 있는 영화를 손 가는 대로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연 오늘은 어떤 세상의 어떤 사람들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란 기대가 충족되는 시간을 향해 달려가는 그 기분이 말이다. 

2. 드라마 - 찻잔 속 태풍인 우리네 일상

액션, 스펙터클, 미스터리, 멜로, 코미디. 어느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장르를 흔히 드라마라고 부른다.  

살인도 음모도 가슴 뛰는 연애 사건도 그 어느 하나 시끌벅적하게 화면을 수놓지 않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한 대목을 피자 자르듯 한 조각 뚝 잘라 보여준다. 가령 삶이 70년 가량 이어진다면 드라마라는 장르로 묶인 영화들은 이 삶의 행로중의 단 몇 달을 보여주는 식이다. 태어나서 자라서 결혼을 하고 그냥 살다가 죽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평생 중 며칠의 기록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그렇다면 자기 삶을 한번 돌아보자. 

매일 똑같은 것 같아도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사건이 도사리고 있는지 말이다. 광활한 스크린에서 포탄이 날아가고, 지구를 외계인의 침공으로부터 지켜내는 것 못지 않게, 남들 눈에 하찮아 보여 그렇지 당사자에게는 태풍과도 같은 사건들로 채워진 것이 이 평범한 삶이라는 것의 진상이다. 생각해 보라. 첫 실연의 기억, IMF 당시의 정리 해고 바람, 끝내 자신의 길을 인정해 주지 않으려는 부모와의 갈등…,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정말로 풀기 힘든 전화번호부 두께의 난제 풀이집을 받아든 것 같은 것이 우리의 삶 아닌가 말이다. 

누구의 삶이든 알고 보면 헐리웃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성찰에 바탕하되,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영화들의 카메라가 그러했듯, 자기 주변의 사람과 그들의 삶을 따스한 클로즈업으로 바라볼 이해심과 측은지심(惻恩之心)을 북돋워주는 기본적으로 '착한 영화' 한편이 이번 달에 소개하는 보물이다. 결국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똑 부러진 해답이나 현명한 충고가 아니라, 함께 어깨걸이를 해 주는 손길인 것이고, '니가 도끼로 사람을 죽였대도 이해하는'('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감호소에 들어간 지영에게 태희가 면회소 유리를 사이에 두고 건네는 대사다) 그런 이해의 한마디인 것이므로 추운 겨울 이런 영화 한두 편쯤 보는 게 나쁠 것이 없다. 물론 우리 못지 않은 못난이들이 자기 삶의 난제에 좌충우돌 대처하면서 빚어내는 리얼한 웃음이 가장 큰 재미라는 점도 강조되어야겠지만 말이다. 삶이란 자기 삶의 주연인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맞춰나가는 모자이크라는 점을 웃음의 결속에 곱게 심어 일깨워주는 영화를 만나는 것. 분명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자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무시'라는 범죄를 예방해 주는 훌륭한 백신이다. 

3. 타고 난 패자의 뒤늦은 승전보 - 노스바스의 추억 

원제는 'Nobody's fool'. 아무도 바보가 아니다 정도로 직역될 수 있는 제목이 이 영화가 펼쳐 보이는 세상을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60대의 주택 개조 전문 목수인 설리(나이 70의 폴 뉴먼이 연기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뉴욕주 근교의 조용한 소도시, 노스바스에서 자기 명의의 집 한 칸 없이, 중학교 시절의 은사(제시카 탠디 분)집에 세 들어 살고 있고,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빌미로 연금 지급 소송 중이며, 동네 술집에서 술내기 포카나 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서로의 약점을 찾아내고 골리는 게 낙인 영원한 숙적이자 건축회사 사장(브루스 윌리스 분), 정상적인 지능에 한참 미달하는 덜 떨어진 조수, 없어진 다리만큼이나 기억력도 부실한 외다리 변호사, 몇 년만에 처음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아들, 아직도 연애 장난을 걸 대상이 되는 사장의 마누라(멜라니 그리피스 분)등. 노스바스의 주민들이 맞이하는 어느 한 철의 크리스마스 무렵이 이 영화의 골격이다. 각자 자기 고민이 있지만 어느 한 사람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지도 않고, 육십이 되도록 아무 것도 이뤄놓은 것 없는 설리가 이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는 방식도 요란하지 않다.

난생 처음 만난 할아버지를 어색해 하는 다섯 살 박이 손자에게는 무릎에 앉혀 픽업 운전을 시키는 위험한 짓을 하면서 거리를 좁혀간다. 별 것 아닌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하지만 이 영원한 패자가 사람들을 대할 때 택하는 변칙적인 방법들과 등장인물들이 툭툭 내뱉는 대사들의 재치다. 아들을 질투하는 저능아 조수를 다시 오게 하려고 눈 쌓인 인도로 차를 모는 범법을 서슴지 않고, 그 과정에서 총을 쏘는 얼간이 경찰을 엿 먹일 줄도 알며, 몇 년만에 처음 만나 서먹서먹한 아들과는 사장의 개에게 약 먹인 고기를 던져주고 제설기를 훔쳐내는 범죄행위에 동참시키면서 평생 처음의 공감을 이뤄낸다. 나이 육십에 무슨 짓이냐고 반문할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살다 보면 사람의 장난기란 이런 식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고질병이기가 쉽다. 70대 노인끼리 한 노파를 놓고 주먹질을 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니 말이다. 평생 서로 갈구기도 하고 상처주기도 하면서도, 어느 날 마을 장례식에서는 사이좋게 관을 같이 들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점(사장과 설리의 관계가 바로 그런 식이다). 당장 실패한 것 같이 보여도 서투르나마 그것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며, 극적인 행동이나 비장한 각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옆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점. 각자는 다 자기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그 역할을 잘 하고 못 하고의 여부로 욕할 수는 없다는 것. 성공적인 역할 수행 여부와 무관하게 어쨌든 사랑하는 법을 알아나가는 것. 성공한 삶의 가장 큰 조건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게 설리의 크리스마스다. 

어머니의 집과 토지를 팔아 관광단지를 세우려던 은사의 아들이 사기를 당해 잠적하고 난 후, 쓰러진 노파를 입원시키는 건 설리의 몫이다. 치매에 걸려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서는 식당의 노파를 눈길에 맨발로 쫓아가 데려오는 설리가 노파에게 건네는 말도 일방적인 경고의 말이 아니다. 그 노파가 평생의 기억 속에서 골라낸 현재인 그 시절로 들어가 정중하게 팔짱을 끼고 모셔오는 것. 바로 그 다음 순간.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며 팔짝 팔짝 뛰더라도 그 순간의 선택이 인간에 대한 예의인 것이고 이해다.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늘 달콤한 연가를 불러주는 연인이라기보다는 잔소리를 하고 핀잔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옆에 있어 줄 잔소리쟁이 마누라나 남편, 혹은 숙적인 이웃 친구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만드는 영화.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채워주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 내 인생의 보물일 수 있다는 일깨움 말이다. 퇴원해서 돌아오자마자 설리에게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하는 중학교 시절의 은사. 그 할머니에게는 잔소리를 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고, 설리는 그 정도쯤은 진작에 깨닫고 있는, 알고 보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도 누군가의 그런 이유들을 깨닫고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자기 주변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라도, 아니면 단지 웃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봐 볼만한 좋은 영화. 그게 노스바스의 추억이 전하는 성공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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