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대타협, 무엇을 남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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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의 미약한 대표성과 신뢰의 느슨한 고리
한국사회에서 대타협이란 게 가능할까? 혹시라도 성사될 대타협은 정의로운 것일까? 부정의한 대타협이라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지난해 9월19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특위)가 구성되고 올해 4월8일 한국노총이 협상 결렬을 선언하기까지 202일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궁금증이다. 첫 번째 질문은 우선 노사 대표의 대표성 문제에 관한 것이다. 노동계 대표로 특위에 참여한 한국노총은 전체 1,800만 노동자 가운데 불과 4.6% 만을 대표한다. 그것도 주로 정규직 중심이다. 사실상 사용자 쪽을 대표하는 경총에는 국내 법인 40만여 개 가운데 0.1%남짓 가입했을 뿐이다. 이런 미약한 대표성을 지닌 단체들만 모여 이 시대 노동자의 삶의 양태, 고용질서, 노사관계의 변화 등 다가올 한국사회 큰 물줄기 변동에 합의를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르냐 그르냐를 떠나, 도출된 결론이 산업현장이자 노동현장에서 실행력과 구속력 있게 집행되긴 힘들다.
또한 각 주체들 간의 신뢰가 너무 약하다. 이번 특위 논의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한국의 노사정은 서로 믿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는 일반해고(통상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명확화”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과 지침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한국노총은 “요건 명확화가 아니라 완화”라며 끝내 정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물론 그 책임은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규정 지침 논란 등 그 동안의 행정행위 과정에서 스스로 말의 권위를 떨어뜨린 정부에 있다. 이처럼 서로 믿고 도장 찍을 만큼의 사회적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힘들다.
 
힘으로 억누르는 정부, 과연 진정성 있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은 역사적 배경과 노동자를 대하는 현재 정부의 태도에서 비롯한다. 1998년 노사정은 사용자가 경영위기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노동자와의 집단적인 고용관계를 끝낼 수 있는 정리해고제와 기존 노동법이 금지하는 중간착취의 일종인 파견노동 제도를 도입키로 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이처럼 노동자 삶의 안정성을 크게 흔드는 합의문에 당시 노동계가 눈물을 머금고 도장을 찍어준 데는 나름 얻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법을 만들어 공무원과 교사도 노조를 결성할 수 있는 단결권을 얻고, 노조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정치자금법을 개정했다. 지금의 언어로 얘기하자면 ‘비정상의 정상화’에 불과한 것이나 당시로서는 그것도 큰 성과였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하자는 지금 공무원노조는 법외노조고, 전교조에 대해서는 법외노조화를 추진 중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부 해직자를 이유로 이명박 정부 때 법 밖으로 밀려난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 필증을 내어주기 직전 없던 일로 했고, 9명의 해직자를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1998년 합의 때 노동계가 그나마 건진 제도적 성과를 17년 뒤 사소한 이유로 부정하는 현실에서 또 다른 대타협을 하자는 건 무슨 말인가?
이처럼 대화의 다른 축을 끊임없이 힘으로 억누르고, 잇단 법외노조화와 까다로운 노조 설립신고 필증 발급으로 노조의 대표성을 계속 떨어뜨려 온 정부가 말하는 ‘사회적 대화’에서 진정성을 느끼긴 쉽지 않다.
물론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야 할 필요는 작지 않다. 이미 경제는 저성장의 궤도에 진입했고 현재 산업·노동 구조로는 한국 사회가 버티기 쉽지 않다. 일부 재벌 대기업이 경제활동의 과실을 독점하는 구조를 바꿔 사회적으로 창출된 이익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거쳐 중소기업 노동자와 소상공인들한테까지 흘러들게 하고, 기존의 틀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비정형화한 노동 형태도 제도의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 학교를 나와도 일자리를 찾지 못 하는 청년들의 실존적 고통도 크다. 일차적으로는 기업, 이차적으로는 기존 노동자의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소위를 만들어 논의하고도 해답을 찾지 못해 여전히 법원 판결문에만 돋보기를 들이대야 하는, 통상임금·노동시간 단축 등 산적한 노동현안들도 이번에 노동법 개정안에서 큰 줄기를 정리해야 했다. 언제까지 논란만 거듭할 순 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잘못 그린 그림인 노사정 논의
그럼에도 이번 특위 논의가 끝내 결렬로 치달은 건 대화 주체의 대표성 부족, 미약한 노사정 신뢰라는 밑바탕 위에 잘못된 의제를 스케치 한 탓이 크다. 애초 그림을 잘못 그렸다. 1997년 구제금융 이후 노동소득분배율은 끊임없이 하락해 노동자보다 기업이 가져가는 생산의 이익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와 사용자는 ‘가난한 비정규직을 위해 부유한 정규직이 희생하라’고만 요구했다. 2000∼2013년 국가경제가 평균 4.4% 성장할 동안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2.3%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저 수백 개 통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10대 재벌 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500조원을 넘어서지만 중소 상공인은 먹고 살기도 빠듯하고, 중소기업 정규직의 임금이 대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에도 못 미치는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구조라는 줄기 위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가지에 불과한 데도, 특위는 줄기를 바로잡기보다 가지치기에만 집중했다. 특위 이름조차 ‘시장 이중구조 개선특위’가 아니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특위’로 그 범주가 잘못 설정됐다. 고용노동부 간부조차 사석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라는 큰 틀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격차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풀기가 쉽지 않다”고 말 한 바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도 마찬가지다.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율을 높인다며 기간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전문직·55살 이상 고령자·농어업 분야의 파견 제한을 없애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기간제의 경우 사용사유를 제한해 지금처럼 정규직 노동자가 맡는 것과 같거나 유사한 상시지속적인 직무에는 쓸 수 없도록 하고 ‘고용불안’을 뺀 나머지 임금 등 노동조건의 차별을 근절할 대책과 강력한 집행의지가 있다면 기간제한은 유동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용부는 앞의 전제조건에는 답하지 않았다.
파견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업종제한이나 기간제한같은 파견법 규제를 피하고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도급같은 간접고용으로 빠져 나가는 흐름을 되돌릴 강력한 대책도 없이 파견 확대에 동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법 모색 대신 노동자‧세대 간 갈라치기 택한 정부 
정부는 이런 합리적 의심을 수용하고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특위 논의 내내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특위가 지난해 12월23일 기본 의제에 합의하기 전부터 최경환 부총리와 기획재정부 관리들이 나서 ‘정규직 과보호론’에 풀무질을 해댔다. 노동자 55%에 불과한 정규직, 특히 그 중 열에 하나밖에 안되는 대기업 정규직과 전체 노동자의 10.3%만 가입한 노동조합 때문에 이 나라의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프레임 전파에 나선 것이다. 본질적으로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형성된 전선을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로 옮겨 놓는 방식의 의제설정은 결과적으로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의 전선 형성이 여의치 않자 타결 시한을 보름가량 앞둔 3월 중순부터는 세대 간 갈등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특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고용절벽’에 시달리느라 ‘삼포세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엄포로 한국노총을 압박했다.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라진 자리에 청년을 끼워 넣은 것이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3월16일 기자간담회에서 “노사정 모두가 이제까지 개혁의 주체로 인식됐으나, 이달 말까지 타협이 안 되면 청년과 국민들에게서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노사정 합의=청년고용 문제 해결’의 등식을 들고 나왔다. 이 장관은 1주일 뒤 간담회 때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지난해 12월23일 노사정이 합의한 1445자짜리 문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는 청년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시각을 가지고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추진한다”거나 “좋은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지 못하는 가운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사회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등의 표현은 등장하지만 청년고용 문제 해결을 노동시장 구조개편의 핵심 배경으로 설명하진 않았다.
이 장관과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김대환 전 노사정 위원장도 부쩍 청년고용 문제에 주력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3월18일에는 고려대에서 ‘청년고용을 위한 노동시장구조개선 관련 대학 강연’을 한 데 이어 다음날엔 몇몇 청년단체들로 이뤄진 청년대표단을 만났다. 당시 노사정위원회는 청년대표단이 “미래세대에 희망 주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해달라”고 김 위원장에게 주문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목적은 사회적 대타협 아닌, 논의 과정이었다
합의시한을 넘겨 4월에 접어든 뒤부터 특위 논의는 파행했다. 특위 회의 대신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매일 거듭됐다. 1년을 내리 논의해도 다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세부 과제를 놓고 대화 주체 쪽 실무자들이 석 달 동안 수십여 차례 이상 논의 하고도 결국 합의하지 못 한 상황에서 이 장관, 김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우두머리 4명이 저녁에 모여 타결을 시도한 것이다. 3대 1로 포위당한 김동만 위원장이 항복 선언을 하지 않는 한 합의문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4월8일 한국노총이 ‘결렬 선언’을 한 뒤에도 정부의 ‘제 논에 물대기’는 멈추지 않았다. 이튿날 이 장관은 노동시장 구조개편 강행을 발표하면서 “노사정은 지난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협의해서 많은 부분에 공감대를 이뤘고 몇 가지 쟁점을 남겨두고 있었다”고 했다. 합의에 이르진 못 했으나 특위 논의 과정에서 한국노총과 공감대를 이룬 부분은 추진하겠다는 선언이다. 그 공감대가 어떤 것인지, 공감대를 이뤘다는 증빙은 과연 있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명은 없다.
결국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 자체를 중요시한 게 아니라, 노사정 논의의 과정만 거치면 이를 ‘알리바이’ 삼아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는 사실로 확인됐다.
대화 테이블이 깨진 자리에 이제 남은 건 ‘힘의 과시’뿐이다. 정부의 ‘마이웨이’에 맞서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시작했고 한국노총은 5월 말 총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국노총이 특위 논의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으로 꼽아 마지막까지 배수진을 쳤고 민주노총도 절대 수용 불가를 외치고 있는 두 가지 쟁점 사안의 실체가 곧 드러난다. 고용부가 5월에 내놓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관련 개정된 근로감독관 지침이 1차 고비가 될 것이다. 6월께 모습을 드러낼 일반해고 요건 관련 가이드라인은 노사 갈등의 장약에 불을 붙일 도화선이다.
힘과 힘이 계속 맞부딪고 나면 남는 건 멍자국과 흉터뿐이다. 그렇다면 노사정 대화가 재개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은 가능할까? 이 질문의 답을 구하려면 우선 아래 질문을 던져야 할 듯하다. 정부는 사용자 편향이 아닌 공정한 중재자로서 구실을 할 자세가 돼 있는지, 사용자 쪽은 노조를 대등한 대화의 상대방으로 인정하고 양보할 준비가 돼 있는지, 대화를 거절한 노동계는 정부와 사용자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의 역량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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