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언론 활용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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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론은 왜 노동자를 패는가

기자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동시에 문학적이다. 근대 부르주아지의 탄생과 함께 생겨난 신문과 기자는 당연히 그 시대적 배경과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다. 기자집단은 부르주아지의 언저리를 맴돌던 젊은 지식인들 가운데 태생적으로 유복한 환경이 아님에도 계급상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비교하자면 한국 사회의 판검사와 비슷한 계급적 속성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기자는 역사적으로 귀족층에 대한 '태생적 증오'와 함께 태어났으나 썩은 상층 계급을 경멸하면서도 노동자·민중을 '우매한 대중'으로 보고 계몽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이었다. 이상이 전통적인 기자관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전통적인 기준이 다소 모호해지긴 했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이런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기자 일반은 절대로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될 수 없다. 특히 신문의 경우 만성적인 경영난이 가속화되고 있어 이같은 현상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누가 먼저 여론을 장악하느냐

널리 읽힌다는 것과 유익하다는 것, 유익하다는 것과 올바르다는 것, 사실을 반영한다는 것과 본질을 꿰뚫는 것 등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때로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국적 특수성까지 고려한다면 대부분의 노동운동은 '옳음'을 위해 매진한다. 그러나 언론은 '널리 읽힘'을 그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다. 널리 읽히는 것 중에 유익하지 않은 것도 많다. 또 유익한 것 중에서도 올바르지 못한 것도 많다.

조선일보는 널리 읽히지만 노동자, 사용자 어느 쪽에도 유익하지 않다. 사용자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들에게만 유익하다. 조선일보가 '10년에 5억 모으기 비법'을 알려주는 서평기사를 실으면,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겐 유익하다. 그러나 다른 대다수의 국민들에겐 올바르지 못한 해악만 준다.

민주노총이 대규모 도심집회를 하면 교통체증 때문에 서울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 이건 '사실'이다. 그러나 집회 행위의 '본질'은 아니다. 1996년 노동법개악 저지 총파업 때 우호적인 여론과 언론환경 속에서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조그만 빈틈만 생기면 파업 집회로 인한 시민 불편을 기사화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러나 총파업 시기 전체를 놓고 볼 때 시민불편을 부각시킨 조선일보 기사는 12건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파업 관련기사 388건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관건은 여론 선점이다. 누가 여론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보도의 전체 판세가 달라진다.

이후 대부분의 민주노총 총파업은 언론의 몰매를 맞았다. 한국언론은 때로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여론을 무기로, 국민 여론이 중립일 땐 여론 조작으로, 여론이 노동자에게 유리하면 그 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집요하게 파업 파괴활동을 펴왔고 앞으로도 펼쳐 갈 것이다.

체계적이고 꾸준한 선전 사업이 필요

그럼 해결책은 있는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노동자 스스로가 매체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진보지 '뤼마니떼'는 4만5천여부를 팔면서도 프랑스 4대 신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신문이 지난 1982년까지 프랑스 공산당의 기관지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택동주의에 입각한 '리베라시옹' 역시 프랑스에서 10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한국에는 조선, 중앙, 동아, 한국, 한겨레, 경향, 국민, 문화, 서울, 세계, 내일신문까지 11개 중앙일간지가 있고,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뉴스 등 4대 경제지가 전체 신문 여론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 조선, 중앙, 동아 3대 메이저신문의 점유율이 80%를 넘는다. 이들 신문이 파업을 보도하는 태도를 보면 갈수록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신문사들의 경영난이 가속돼, 앞에서 소개한 15개 신문 가운데 지난해 흑자를 낸 곳은 서너 곳에 불과하다.

신문의 경영난은 결국 광고주의 영향력 증가를 가져 올 것이 뻔하다. 신문의 주요 광고주는 다름 아닌 재벌이다. 한국의 신문은 앞으로 더 재벌편이 될 수밖에 없는 경영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노동조합의 언론 활용법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1년에 반을 놀면서 연봉 6천만원(2003년 현대자동차)' '연봉 4500만원을 받으면서 한 달에 19일 출근하는 놈들의 파업(2004년 궤도연대)' '평균 연봉 7000만원짜리들의 배부른 파업(2004년 LG칼텍스정유노조)' 류의 기사를 보고서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제한적이나마 체계적인 선전사업을 꾸릴 필요가 있다.

2. 노조의 언론 활용

우선은 선전사업을 노동조합의 주요한 사업으로 인식하고 인력과 역량을 쏟아야 한다. 민주노조의 원칙을 강고히 하는 노조일수록 언론사업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2002년 경에 한 완성차 노조에서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교육시간에 선전사업 관련해서 얘기를 들어보니 그 노조는 얼마 전까지 기자가 취재를 위해 전화하면, "기자면 다요? 취재하려면 와서 할 일이지, 왜 전화질이야!"하고 끊었다고 했다.

며칠 뒤 이 노조는 동아일보 1면 머릿기사로 얻어맞았다. 제목은 " 車 노조 사실상 경영참여"(동아 2002년 7월20일)였다. 그러나 당시 합의 내용은 경영참여라기보다는 고용안정협약을 따낸 정도에 불과했다.

선전물은 '먹기 좋게'

"노무현 대통령은 장투사업장 문제 해결하라"
2년 전 민주노총에서 만든 대시민용 전단지의 큰 제목이다. 당시 많은 장기파업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이 유인물을 들고 서울 시내를 돌면서 시민들에게 전단을 나눠줬다. 이 전단을 받은 길가는 시민들은 '장투사업장'이란 단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신문방송에 자주 나오는 '장기투자금융회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민주노총 70만 조합원 가운데서도 파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나 쓰는 용어를 대국민용 전단지에 큼직하게 박아서 뿌리는 건 난센스다. 받아볼 사람의 정서와 감각을 고려하지 않은 선전물은 휴지와 같다.

이 선전물이 국민용인지, 일반조합원용인지, 노조간부용인지, 언론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내용을 여러 대상에게 뿌릴 땐 반드시 그 대상에게 맞는 언어로 재편집해서 나눠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복잡한 자료라면 언론사가 '먹기 좋게' 요리한 뒤 전달해야 한다.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뿌릴 때는 아무리 욕심나도 5장을 넘으면 그 자료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성명서 역시 A4용지 한 장을 넘어선 안 된다. 그래도 할 말이 남았으면 잘 정리된 별첨 자료를 첨부해서 전달해야 한다. 조합 내부에서 사용하는 은어나 약어의 남발도 위험하다. 언론사 기자들은 학력수준은 높을지 몰라도 입사한 뒤부터는 책 한 줄 보지 않아 '문맹'에 가깝다. 따라서 보도자료는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로 구성돼야 한다. 먹기 좋은 떡처럼 잘 포장된 보도자료는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파업 때 반짝 아닌 일상에서 꾸준히

파업 터지고 나서 언론사업 하려고 들면 이미 늦었다. 평상시 일상활동 속에서 언론사업을 꾸준히 해야 한다. 언론은 속성상 '최초'라는 단어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평소에는 기사가 되지 않다가도 최초라는 말만 붙이면 아귀처럼 달려든다. 그런데 우리 노조에는 최초라고 선전할 것이 없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언론이 보도하는 '최초의 '은 대부분 최초가 아니다. 기자들은 "하늘 아래 새로운 기사는 없다"는 명제로 자신들을 위로한다.

조선일보가 지난 9월10일 1면에 "초중고 지역간 학력격차 심하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의 작은 제목은 "학력차 자료공개는 평준화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는 지난 2월24일 1면에 "비평준화가 성적 향상에 도움"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미 나온 내용이었다. 자료의 출처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 같았고, 자료를 조선일보에 소개한 사람도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2월에는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신분)으로 동일했다. 이런 사기는 한 두 번이 아니다. 따라서 노조도 평상시 활동 속에서 특이한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언론사업을 펼쳐야 한다.

지난 8월30일 한겨레신문 사회면에는 "노조가 사랑한 공안검사"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박스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는 "울산대병원 노조 '대화중재로 노·사 정상화', 전출 앞둔 김병현 검사에 감사패 건네"라는 작은 제목이 달렸다. 이전에는 노조파괴에 혈안이었는데 새로온 한 공안검사가 지난해 울산대병원 파업 때 노사를 상대로 구속과 엄단이란 통상의 방법 대신 성실하게 중재해 노사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아무튼 파업 때 반짝하는 언론사업이 아니라 노조의 일상활동을 언론사업으로 잘 소화해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같은 내용을 두 번이나 '울궈먹은' 노조도 있다. 그것도 영세비정규직 조합원들로 구성된 부산지역일반노조라는 작은 노조였다. 이 노조가 송영수 공동위원장의 투병생활을 언론에 띄운 사례는 적극적인 언론사업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높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부산지역일반노조는 신부전증으로 다 죽게 생겼던 송 위원장의 안타까운 사연을 지난 2002년 5월14일 주간잡지 『한겨레21』에 큼직하게 소개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9월 어느 날 후배 하나가 전화를 했다. "선배님, 송영수 살립시다. 그놈이 신부전증으로 다 죽게 생겼소. 그런데 81년 5월에 선배가 송영수랑 같이 잡혀서 고문당했을 때, 그놈이 피오줌을 쌌던 걸 선배님이 봤다고 하지 않았소. 우리가 송영수 민주화운동보상신청 해줍시다. 선배가 증인 좀 해주시오." (중략)

그렇다. 그런 일이 있었다. 80년대 암흑의 시절, 말로만 듣던 '통닭구이', '비녀꽂기' 고문을 사흘 밤 동안 당해본 적이 있는데, 나로 하여금 그 고문을 당하게 했던 후배가 바로 송영수(42)다. 며칠 동안 거의 거꾸로 매달려 있다시피 하면서 고문을 당했던 송영수가 "나는 정말 모른다. 그러나 하종강 선배는 알지도 모른다"고 말해버리는 바람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가 며칠 동안 곤욕을 치렀던 것이다. (중략)

그는 요즘 하루에 네 차례씩 혈액투석을 한다. 복막투석이라는 방식인데 한번에 40분쯤 걸린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을 때에도 그는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피곤에 지친 얼굴로 비닐봉투 두개를 자신의 몸에 달린 파이프에 연결해놓고 투석작업을 하고 있었다.

"선배님, 송영수 살립시다"(한겨레21, 하종강의 휴먼 포엠, 2002년 5월14일 제408호)

몇 년 째 신부전증을 앓으면서도 노동운동의 현장을 지켜 온 부산일반노조 송영수(43·사진) 위원장이 결국 쓰러졌다.

"수술을 받으면 밤샘을 할 수 없다"며 수술도 미뤄 왔으나 신부전증 끝에 합병증으로 간경화까지 얻어 결국 병을 키우고 말았다.

… 수술비만도 1억2천만원이나 들어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그를 돕기 위해 나섰다. 29일 저녁 7시 부산일보사 대강당에서 '송영수 동지 후원의 밤'을 열기로 한 것이다.

그가 신부전증을 앓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반부터다. 대학생이던 1981년 지하서클 활동을 하다 공안기관에 붙잡혀가 심한 고문을 당했다. 교도소로 옮겨진 뒤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으나 당시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정의헌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은 "민주노조 동지들의 힘을 모아 그를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마에 쓰러진 '노동운동 지킴이'(한겨레신문 2003년 8월27일 사회면)

그 뒤 송 위원장은 수술비 1억5천만원 중 1억2천만원을 모금으로 해결하고 살아나 당당하게 노동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애프터 서비스까지

파업 당시 언론의 악의적 보도에 대해 거품을 물고 비난하다가도 파업만 끝나면 덮어 버리는 노조도 많다. 파업 후에도 왜곡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해 반론보도나 정정보도를 따내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물론 언론중재위가 언론사의 편이지 노동조합의 편일 수는 없지만 너무도 명백한 오보에 대해서는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또 그 성과를 조합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선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한다고 언론의 파업보도가 본질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최근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공세로 다소 조심스러워졌다. 이번 궤도연대 파업 때 조선일보가 한겨레신문과 비슷한 논조를 유지한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를 비난했던 중앙일보는 2003년 8월7일 1면에 "현대차 근로자 쉬는 날 세계 최고수준 男 166일 女 173일"이라고 왜곡 보도했다가 바로 다음날인 8일 7면에 "현대車 쉬는 날 실제 12일 늘어"라고 사실상 정정했다.

또 언론사업이라는 것이 성명서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보내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함도 극복해야 한다. 파업을 하는 사업장이라면 하루에 최소한 4번 이상 파업 상황을 속보형식으로 정리해서 언론사에 보내야 한다. 이때는 언론사의 마감시간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신문사 기자는 오후 4시쯤 초판 신문용 마감기사를 보내고, 밤 10시쯤 최종판 마감기사를 작성한다. 따라서 신문용 보도자료는 마감시간에서 최소 2시간 앞서 기자에게 메일 형식으로 전달돼야 한다. 방송사는 수시로 마감하는 체계라서 특정시간을 명시할 순 없지만 오전 9시 전에 전달하는 것이 좋다. 이때 보도자료는 형식보다는 파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스케치한 A4 용지 반장 정도면 족하다.

또 중재위에 제소할 정도는 아니지만 간단한 오보에 대해서는 해당 언론사 기자에게만 항의할 것이 아니라 전체 언론사에 해명 글을 보내야 한다. 이때는 무게 잡는 형식의 성명서보다는 '논평'이란 이름으로 보내면 된다. 간단한 오보라고 대응하지 않고 묵혀두면 기자집단 내부에 그 보도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일체감이 형성돼 더 큰 오보를 낳을 수도 있다.

언론사업은 문제해결의 근본적인 열쇠는 될 수 없다. 지나치게 언론에 매달리는 방법은 오히려 독이 된다. 그러나 언론을 무시하고 제 갈 길만 가겠다고 덤볐다간 조직력마저 바닥을 치는 통탄할 일이 자주 생기는 게 요즘 파업사업장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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