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현실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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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대선과 지난 4월 총선 두 차례 선거가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갔다. 노동자 대투쟁으로 열기가 달아올랐던 1987년 여름 이래 약 20년이 지난 시기에 치러진 두 차례 선거는 노동계에 좌절감과 낭패감만을 남겼다. 두 차례 선거는 오랜 동안 시도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9 총선에서 친노동계 후보들이 얻은 표는 2004년 총선에서 얻은 것보다 훨씬 적은 것이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염원했던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두 가지 차원: 일상과 선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일상적인 차원의 정치세력화’이다. 노동자들을 정치주체로 만들고,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통해서 연대와 통합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러한 정치는 제도권 정치가 아니라 작업장과 지역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정치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조합원이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는 정도나 조합원들 사이의 단결력, 파업이 있을 시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파업 참여도를 높이는 활동이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선거 정치세력화’이다. 이것은 유권자들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정치인이나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여 제도 정치에서 노동자들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선거 정치세력화는 노동자들로부터의 지지와 더불어 자영업자, 농민이나 학생들과 같은 노동계급이 아닌 유권자들로부터 얻는 지지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에 대한 일반 대중의 지지도 등에 영향을 받는다. 

두 가지 차원의 정치세력화는 서로 다른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일상적인 정치세력화는 노동자들의 작업장, 거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동료관계, 가족관계, 이웃관계 등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정당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보다는 노동조합과 같은 공식 조직이나 동료들과의 관계와 같은 비공식 모임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반면 선거 정치세력화는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노동자를 포함한 유권자들의 투표를 통해서 노동자 정당의 정치세력화가 판가름 난다.

노동운동 논리와 선거경쟁 논리는 전혀 달라 

지난 선거를 통해서 드러난 문제는 선거 정치세력화 차원에서 나타난 문제다. 선거는 ‘수의 게임’이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는 어느 정도 수의 열정적인 활동가들만 있으면 성공적인 활동을 지속할 수 있으나, 선거는 투표소에 갈 정도만의 낮은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다. 노동운동의 논리와 선거경쟁의 논리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참여자들의 열정과 참여의지에 영향을 받는다면, 선거경쟁은 열정이 없는 다수에 영향을 받는다. 선거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표하는 정당이 표를 많이 얻어야 한다. 

선거 결과는 크게 두 가지 요소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하나는 구조적 차원으로, 산업화의 정도나 노동조합의 조직 정도 등이 노동자 정당 득표에 영향을 미친다. 농업사회에서 노동자 정당이 높은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또한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은 곳에서 노동자 정당이 높은 지지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다른 하나는 국면적인 요인이다. 특정한 사건에 의해서 선거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지난 대선과 총선은 참여정부의 무능과 실정으로 인하여 진보 정치 전반이 불신을 당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야당이 유능해서가 아니라 여당이 무능했기 때문에 민심이 여당으로부터 멀어졌고, 그 여파를 노동자 정당도 피할 수 없었다. 국면적인 요인들은 예측이 어렵고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선거분석에서 간과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러 갈래 갈린 정치세력화의 길, 시민 지지가 중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성공적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차원과 선거정치 차원 정치세력화가 모두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일상적인 차원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선거를 통한 정치세력화가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대체로 힘들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차원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수준이 낮은 한국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다양한 집단의 지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전국적으로 13%가량의 높은 지지를 얻었던 이유도 선거 정치세력화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반 유권자의 지지 덕분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도는 직업별로 보면, 화이트칼라에서 가장 높았고(17%), 그 다음이 블루칼라(9.4%)와 학생(9.4%)이었으며, 농민(2.6%)에서 가장 낮았다. 민주노동당은 조직 노동자들만의 지지가 아니라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에 기초하여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2008년 총선은 매우 다른 조건에서 치러졌다. 먼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는 정치세력이 다수가 되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과 더불어 한국노총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면서, 조직된 노동자들 자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조직 노동자들을 양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노총의 한나라당 지지는 독자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또한 조직 노동자 지지 이외의 다양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내세우는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일상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민주노총에 대한 일반 시민의 지지가 중요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동일한 조직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활동이 곧 민주노동당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민주노총의 활동이 일반 시민의 지지를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노동운동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운동과 관련하여 자본과 국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반응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노동정치 현실에 근거한 종합적인 모색이 필요

일상적인 차원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관련하여 가장 어려운 점은 기업별 노조라는 조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산업구조가 변하여 서비스업 중심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제조업의 위축과 서비스업의 급팽창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조업 노동자들의 지지뿐만 아니라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조직 문제가 커다란 과제가 되었다. 또한 서비스업은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산업이다. 

후발 산업국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선발 선업국에서 이루어진 정치세력화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응하는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노동정치 현실을 고려하면서, 일상적인 차원과 선거 차원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동시에 도모하는 종합적인 모색이 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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