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국민연금운용위원회에 관심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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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연금이라고 한다. 천문학적인 적립기금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외국에 비해 도입이 늦은 만큼 제도설계도 독특하였다. 가입자가 미래에 받을 연금액을 스스로 미리 모아두는 ‘적립’방식이 국민연금제도의 골격으로 채택된 것이다.

이러한 적립방식 연금에서는 필연적으로 연금기금 운용이 핵심 문제로 등장한다. 국민연금기금은 2003년 9월 현재 107조에 달한다. 같은 시기 주식시장에 상장된 총 687개 회사의 주식시가총액이 294조원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상장주식의 35%를 차지하는 외국인 소유 주식을 지금이라도 모두 인수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후에도 국민연금기금은 계속 쌓일 예정이어서 그 규모가 정부예산의 3배에 이른다 한다.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을 민주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연금기금은 가입자의 노후예탁금이면서 동시에 국민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민연금기금 운용 문제가 국민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곧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정부 개정안에는 급여율과 보험료율 개악뿐만 아니라 국민연금기금 운용권에 관한 심각한 내용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는 급여율이나 보험료율 개악보다 훨씬 위험한 것으로, 국민연금의 뿌리 자체를 흔들 수 있다. 


[ 국민연금관리공단노조는 9월21일 오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집회를 갖고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 저지와 공단 이사장 퇴진을 요구했다.   - 출처:매일노동뉴스 ]

들러리 위원회 구성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운용계획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심의된다. 1999년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어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심의·의결하는 최고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 대표가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다(직장 가입자 대표 6인, 지역 가입자 대표 6인, 정부 및 정부산하기관 9인). 

이러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재구성을 두고 정부는 가입자의 권한을 강화시킨 조치라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가입자 대표가 과반수로 참여하고 있지만 국민연금기금운용은 여전히 정부의 의도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다. 

그 원인은 가입자 대표로 선정된 조직이 ‘대표성’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원회 구성에서 전체 위원 21명 중 가입자 대표가 12인이지만 그 실제 내용을 보면, 농어촌지역 가입자 대표로는 농업협동중앙회, 수산업협동중앙회가 참여하며 특수전문가집단인 공익회계사협회가 도시지역 가입자 대표로 참가하고 있다. 또한 정부(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음식업중앙회가 도시지역 가입자 대표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직장 가입자 위원 중 절반을 차지하는 경영계 위원들은 국민연금기금을 자본시장 활성화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어 국민연금 운용의 공공적 성격에 걸맞지 않다. 

결국 전체 21인의 위원 중 국민연금 가입자의 편에서 진지한 관심을 가진 위원은 노동계, 개혁적 시민사회단체 위원 등 소수에 불과한 것이 실상이다. 

이밖에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운영방식에서도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부여된 막중한 사회경제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분기별 회의체로 운영되며, 그것도 두 시간 남짓 소요되는 새벽 조찬회의로 개최된다. 이러한 회의체계에서 내실있게 기금 운용계획안, 평가안 등을 심의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 결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정부가 입안한 운용계획안을 추인하는 들러리 기구로 전락해 있다.

기획예산처의 농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민주노총과 참여연대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개혁을 위하여 위원회 구성의 실질적 민주화, 전문성 제고를 위한 위원회 상설화를 요구해 왔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개혁 요구에 부응하기는커녕 반대로 가입자로부터 국민연금기금 운용권을 빼앗는 만행을 2001년 12월 국회에서 저질렀다. 

내용은 이렇다. 기획예산처는 국민연금의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운용의 의결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게 알리지도 않고 기습적으로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하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권을 박탈해 버렸다.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국민연금기금도 기획예산처가 관장하는 기금관리 대상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단지 기획예산처가 수립한 계획안을 심의하는 기구로 전락하였고, 기획예산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심의한 계획안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기획예산처는 국민연금기금 운용계획에 대한 국회의결권을 도입했다고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도 모르게 기금운용계획 결정권을 정부가 탈취해 가는 ‘민주사회’에 우리 가입자는 살고 있다.

정부가 진정 국민연금 개혁을 원한다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민주화하여 가입자에게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권리와 책임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가입자단체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를 제안하자, 이를 명분으로 위원회를 개편하면서 오히려 위원회 구성을 개악하는 반민주적 개정안을 내놓았다. 

만약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가입자들은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정부의 위원회 개정안은 급여율, 보험료율 개악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 정부가 국민연금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사민당과 금융노조가 10월8일 국민연금 개악저지를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였다.   - 출처:매일노동뉴스 ]

‘국민’을 배제하는 정부안

첫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 대표가 소수로 내몰린다. 지금까지 가입자 대표들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별다른 역할을 해 오지 못했으나 형식적으로는 21명 중 12명을 차지하여 과반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 개정안은 위원회에서 가입자를 소수로 전락시켜 형식적 과반수마저 빼앗고 있다. 정부 개정안은 위원 수를 9명(위원장, 상임위원, 정부(3), 단체 추천(4))으로 재편하면서, 가입자위원 수를 4명으로 축소한다. 이 4명 중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에 큰 관심을 가질 사용자위원을 제외하면 실제 가입자위원은 3명에 불과하다. 

둘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들의 권한이 추천권으로 제한된다. 새로이 재편될 위원회에서 가입자단체들은 직접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고 ‘기금운용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금융전문가’를 추천하는 권한만을 가진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은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정치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지위에 있다. 직접 조직의 성원을 추천하든 혹은 신뢰할만한 전문가를 추천하든 이것은 전적으로 가입자단체가 정할 일이다. 그런데 참가 위원의 자격을 금융전문가로 한정하겠다는 것은 소수 전문가그룹으로 위원을 제한하여, 가입자단체의 직접적인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이다. 

셋째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정부 부처 소속으로 두어 위원회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어느 부처 소속으로 둘 것인가를 놓고 경제부처와 보건복지부의 다툼이 가관이다. 정부가 준비중인 국민연금개정법안에는 위원회가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정부 내부 논의를 보면, 국무위원으로 구성된 연금정책협의회라는 옥상옥 기구를 두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통제하려는 꼼수도 모색되고 있는 듯 하다. 

국민연금기금은 다른 정책성 기금과는 상이한 성격을 지닌 가입자의 노후예탁금이다. 따라서 기금 운용이 정치권에서 독립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위원회는 정부부처 소속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완전 독립할 수 있는 기구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응 절실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가입자의 우려와 불신이 매우 깊다. 그런데도 정부 개정안은 오히려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가입자를 내몰아 가입자의 저항을 부르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주인은 가입자이다.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 대표가 다수가 되도록 위원 구성이 개혁되어야 하고, 가입자위원도 실질적인 가입자단체에서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1)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구성의 민주화: 전체 위원수를 현행 21인에서 13인으로 재편한다. 당연직위원은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 보건복지부 차관, 가입자를 대표해서 노동자단체 2인, 사용자단체 2인, 지역가입자단체 2인, 시민사회단체 2인 등 총 10명이 된다. 위 10인의 당연직위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 1인과 공익위원 2인을 추천한다. 따라서 위원수는 총 13명이 된다. 이 중 상임위원은 위원장, 공익위원 2인, 가입자단체 추천위원 2인 등 5인이다.

(2)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정치적 독립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정부 부처에 속하지 않는 특별위원회로서 지위를 갖는다. 가칭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법’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구로 인정되어야 한다.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은 사회경제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

(3)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상설조직으로 강화된다. 위원장을 비롯하여 총 5인이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이를 보좌하기 위하여 산하에 사무국을 둔다. 사무국은 투자정책, 감시감독, 성과평가 작업을 수행한다.

(4) 국민연금기금의 기금관리기본법 적용 제외: 국민연금기금은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행정적 기금이 아니므로 기금관리기본법 적용기금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기금관리기본법을 조속히 개정하여 기금운용계획 심의과정에서 기획예산처의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 이후에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심의한 기금운용계획이 행정당국에 의해 수정되어서는 안되며 최종적으로 국회 의결과정에서만 조정될 수 있다. 

이제 곧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것이다. 정부의 행보로 보아선 개정안을 그래도 강행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이를 막을 주체는 가입자들이다. 노동계가 먼저 나섰고 민중연대 산하에도 국민연금대응기구가 만들어져 활동을 시작하였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와도 긴밀한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사회운동의 새로운 진전을 국민연금투쟁에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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