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영어[3] Strike! Strike! Str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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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은 영어로 strike이다.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일을 중단하는 행동이 역사에 기록된 것은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 판테온 신전을 세울 때 동원되었던 노예들이 일을 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시기에도 ‘파업’이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당시 문학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최고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타’라는 연극은 도시 국가 간 전쟁의 중단을 요구하며, 요즘 같으면 중앙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거점 농성’을 진행하는 그리스 여성들의 ‘성파업’ 형태의 정치파업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근대에 들어와 파업이라는 행동이 처음 기록된 것은 14세기쯤이다. 1303년 영국에서 가죽세공 노동자들이 모여서 주인에 대항하는 모의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령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1329년에는 여성들의 거들을 만드는 유랑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는 기록도 있고 프랑스에서도 1349년에 피혁노동자들의 파업이 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1538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체교섭의 일환으로 전개된 ‘파업’을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 위스베크(Wishbech)라는 지역에서 21명의 유랑신발노동자들이 마을 밖 언덕에 모여 세 명의 대표를 뽑아 마을로 보냈다. 대표들은 마을의 모든 신발 장인들에게 다 나와서 ‘단체교섭을 하자’는 요구를 전달하였다. 그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무도 마을에 들어가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한국에서 최초로 기록된 파업은 1898~1903년 사이에 목포 부두노동자들이 임금 인하 반대, 십장의 중간착취 거부 등을 요구하며 진행한 동맹파업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같으면 ‘노동자성’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법한 사건도 있었는데, 1932년 1월 제주도 ‘잠녀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일본이 강제한 해녀조합의 운영권을 확보하고 해산물을 독점적으로 수매하는 과정에서 자행되는 지정가격의 자의적 인하에 대한 반대, 잠녀들의 작업 허가증이라고 할 수 있는 출가증의 무료 발급 등을 요구하고 파업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잠녀 투쟁은 1920년대부터 계속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서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1936년 5월에는 영일군 창주면에서 130여명의 해녀가 납품 가격 인하에 항의하여 총파업을 벌였고, 전남 무안군 태도에서도 무안 해녀 170여명이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야구에서도 볼링에서도 strike!

strike는 야구 용어로도 친숙한 단어이다. 야구에서 스트라이크가 처음 도입되어 사용된 것은 1840년대 전후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야구는 애초에는 공을 치는 사람이 공을 던지는 사람에게 높은 공, 낮은 공 등 자기가 치기 좋게 공을 던지라고 지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1845년에 처음으로 방망이를 휘둘러 세 번 치지 못하면 다음 타자에게 공을 칠 기회를 넘겨준다는 규칙이 도입되었고, 1858년에는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도 스트라이크가 되는 규칙이 처음 생겨 1860년대 말 보편화되었다. 

1887년에 들어서야 타자가 투수에게 공을 어떻게 던지라고 지시하던 관행이 사라졌다. 이로써 박순철, 선동렬 등과 같은 투수의 스트라이크 행진도 볼거리로 등장할 수 있었다. 한편, 볼링 용어로서 strike는 1859년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고, 군사적인 용어로서는 1942년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구는 일찍부터 전업 선수(프로 선수)를 고용한 팀들 간의 경기로 발전하였는데, 이로 인해 구단과 선수들 간에는 사용자와 피사용자간의 갈등이 항상 존재했다. 1885년에 최초의 야구 선수 노동조합이 조직되었고, 지금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노조는 1966년에 건설되었다. 야구선수노조는 구단 마음대로 선수를 사고 팔 수 있는 그리고 선수를 영원히 구단에 묶어두는 계약제도를 철폐시키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선수가 구단을 선택하여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 제도를 확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재의 노조가 설립되기 전에 6,000달러에 불과했던 최저 연봉은 노조의 활동으로 1982년에 이르러 33,500달러로 인상되었고 19,000달러였던 전체 선수 평균 연봉은 240,000달러로 상승하였다. 이러한 과정에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1972년에 13일간 최초의 파업을 시작으로 1981년에 50일 간의 파업 등 수차례의 파업을 전개하였다. 

strike는 언제, 왜 ‘파업’을 뜻하게 됐나

우리말 파업(罷業)은 한자 뜻풀이 그대로 ‘하던 일을 중지함’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영어 strike는 어떻게 우리가 이해하는 ‘파업’을 뜻하게 되었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strike라는 영어 단어는 ‘강하게 때리다’, ‘부딪치다’, ‘공격하다’, ‘공습을 감행하다’, ‘병을 앓게 되다’, ‘자판 또는 건반을 치다’, ‘(종소리를) 울리다’, ‘불씨를 일으키다’, ‘말을 걸어 대화를 시작하다’,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 연주를 시작하다’, ‘(오자 또는 글자를) 지우다’ 등의 뜻으로도 사용됨을 알 수 있다. 

strike라는 단어가 사용자에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들이 집단적 작업을 거부 행위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중반에서 1800년대 초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이는 뱃사람들이 선주에 저항하여 출항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돛이나 돛대를 내리는 것을 ‘striking the sail’이라고 표현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도 이러한 뜻으로 strike를 사용한 사례를 발견하였다. 바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If the WTO fails to meet its Hong Kong goals, the job for the next director-general gets even tougher. At that point, negotiators in Geneva may be inclined to declare a hollow victory and strike their tents.
(만일 WTO가 홍콩 각료회담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차기 사무총장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보다 더 험난할 것이다. 그 시점에 이르게 되면 제네바에 상주하는 각국 통상협상 전문가들은 알맹이 없는 승리를 선언하고 [야영 사령탑으로 사용하던] 텐트를 접는 게[strike]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strike는 파업을 일컫는 다른 영어 표현인 ‘down the tools(도구를 내려놓다)’ 또는 ‘walk off the job(일자리를 박차고 나오다)’과 함께 사용되면서 파업을 지칭하는 일반명사와 동사로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 외에 다른 유럽 언어에서 파업을 무엇이라 하는지 살펴보면, 스페인어에서는 huelga, 이탈리아어에서는 sciopero, 독어에서는 streik, 스웨덴어에서는 strejk, 프랑스어에서는 gr?ve라고 한다. 프랑스어에서 파업을 뜻하는 단어는 원래 파리 시청광장의 옛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9세기 많은 실업자, 노동자들이 이 광장에 몰려와 항의했던 데서 ‘?tre en gr?ve(Gr?ve 광장에 간다)’는 말이 생겨 그 단어가 ‘파업하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피켓 라인(picket-line)을 아시나요

한편 strike와 관련된 다른 용어로는 농성을 뜻하는 sit-in strike와 작업장 공간에서 진행하는 파업(또는 농성)으로 sit-down strike도 있다. 이 두 파업 양식의 차이는 sit-down strike는 출퇴근하면서 파업하는 것을 뜻하고 sit-in strike는 노동자들이 파업 기간 동안 작업장 공간을 떠나지 않는데 있다. 미국에서 sit-down strike가 주요한 파업 투쟁 양식으로 등장한 것은 1930년대였는데, 사용자들은 여기에 참여한 노동자들 중에 상당수가 폴란드에서 온 이민자라는 점을 의식하여 인종차별적인 ‘Polish Disease(폴란드 병)’라는 명칭을 갖다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Sit-in에서 파생된 다른 형태의 집단행동으로는 미국에서 민권운동과 베트남전쟁반대운동 과정에 광범위하게 전개된 teach-in, swim-in, kneel-in 등이 있다. teach-in은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 같은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대학교 등의 공공 장소를 ‘점거’하여 그 사안에 대해 대중적인 교육과 토론회를 전개하는 것을 뜻하고 swim-in은 흑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던 백인 전용 수영장에 집단적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kneel-in은 백인 전용 교회에 집단적으로 예배드리러 가는 행동이었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출입과 생산에 필요한 자재의 반입 또는 생산물이나 장비의 반출을 저지하는 행동을 picketing이라고 한다. 서양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면 파업 과정에 파업 노동자들이 사업장 출입구에 유지하는 picket-line을 건너지 않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자재를 실은 트럭의 기사가 조합원이라면, 자기가 속한 노조의 규약에 ‘picket-line을 뚫고 지나지 않는다’는 조항에 따라 파업이 진행 중인 사업장 진입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럭 기사들이 파업 때문에 진입을 거부하는 것은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secondary strike 또는 sympathy strike으로 규정되어 귀책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진입을 가로막는 노동자들을 뚫고 지나가려 한다면 사람이 다칠 수 있고 이를 피하는 것이 기사로서의 우선적인 책임이기 때문에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Picket-line을 건너 작업장에 들어가는 노동자를 scab이라고 불렀다. 이와 반대로 한 작업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른 사업장에서 감행하는 파업을 secondary strike 또는 sympathy strike, 즉 ‘동조파업’이라고 한다. 한편 우리가 집회 현장에서 자주 보는 police-line이나 기자들의 취재 대상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photo-line도 picket-line에서 본 뜬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총파업에서 살쾡이파업까지

Strike의 종류로는 노동조합의 공식 의결을 거치지 않고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전개하는 wild-cat strike(살쾡이파업),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general strike(총파업) 등이 있다. 전국의 모든 산업의 노동조합 조합원이 파업을 전개하는 ‘총파업’은 역사적으로도 많지 않은데, 아나코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이라는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노동운동의 한 줄기를 형성했던 세력은 이러한 총파업을 핵심전략으로 채택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사회 체제를 한꺼번에 뒤집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든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일제히 생산을 거부하는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을 꿈꾸었다.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 독재 시절에 welgang bayan이라는 민중파업, 집단행동이 종종 있었는데, 이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모두가 정권에 저항하는 파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항하여 사용자들은 lock-out(직장 폐쇄)를 단행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산별노동조합이 파업에 참가시킨 노동자 수에 비례해서 단체교섭 단위에 포괄되어 있는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직장 폐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사용자들의 직장 폐쇄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파업이 아닌 다른 쟁의행위로는 work-to-rule(규칙대로 일하기, ‘준법투쟁’)도 있다. 이는 작업 공정에 관한 규칙과 법률을 글자 그대로 지켜가며 일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전술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평소에는 작업 관련 규칙과 법률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전술로는 go slow(천천히 일하기)도 있다. 파업과 직장폐쇄를 포함한 이러한 노사의 제반 쟁의행위를 일반적으로 work stoppage라고 하고 전문 용어로는 industrial action이라고 한다. 
파업이 허용되지 않는 업종의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병가를 내기도 하는데 이를 sick-ou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경찰노조 조합원들의 ‘집단병가 투쟁’을 파란 경찰복에 빗대어 blue flu(파란 감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연가투쟁, 간부파업, 총회파업 등 다양한 형태의 집단행동이 고안되어 진행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파업은 아니지만 strike가 들어가는 다른 ‘투쟁’ 양식으로 hunger strike가 있다. 단식투쟁이다. 건강상의 이유나 참회 혹은 마음수련의 뜻으로 굶는 것은 fast라 한다. 아침밥을 breakfast라 하는데 밤 동안의 ‘굶음’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파업권 없는 노동기본권 ‘앙꼬 없는 찐빵’

한국에서는 파업권을 노동3권의 하나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에서는 노동3권이라 부르지 않고 basic labour rights(노동기본권) 또는 basic trade union rights(노동조합기본권리)라고 표현한다. 이를 세분화하면 right to organise(단결권, ILO 용어로 하면 right to freedom of association 결사의 자유 권리), right to bargain collectively (단체교섭의 권리), 그리고 right to strike (파업권, 다른 표현으로는 right to industrial action)인데 바로 우리의 ‘노동3권’과 같다. 

재미있는 것은 노동기본권을 규정하는 ILO 협약에는 단결권(87호 협약)과 단체교섭권(98호 협약)은 규정되어 있지만 파업권을 규정하는 협약은 없다는 점이다. 파업권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침해에 대한 감시감독으로 진행된다. 이는 파업권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라는 일반 원칙에 내재 또는 전제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독일노동법원은 어떤 판결에서 “단체행동권 없는 단체교섭권은 단체구걸권(right to beg collectively) 밖에 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노동자계급과 노동조합은 상황과 처지 그리고 조건에 따라 다양한 행동을 해야 하는데 파업권을 협약으로 규정하게 되면 협약이라는 것이 사용자 측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성립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 많은 것이 배제되거나 제한될 수 있고 규율의 적용에 따라 제약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 사용자 측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파업권에 관한 협약을 명문화하는 것을 막아왔다고 한다. 

노동자의 Strike는 ‘타격’이 아니라 ‘헌신’ 

파업 행위를 최초로 문학적으로 다루었던 ‘뤼시스트라타’를 보면, 고대 그리스 여성들은 성파업을 감행하게 되면 자신의 쾌락이 희생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갈등하기도 하고 누군가 성 욕구를 참지 못해 이탈하여 파업 대오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신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남성들의 성생활이 여성과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파업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도 있다. 파업을 뜻하는 strike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타격하다’라는 뜻에서 ‘파업’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strike의 어원은 ‘일을 하지 않는다’에 있다. 일을 해야만 먹고사는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희생이 전제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파업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쟁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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