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유연화, 미국보다 커

섹션:

글쓴이 :

yskim@klsi.org

1. 지난 5년 동안 김대중 정부는 '한국의 노동시장은 매우 경직적이다'는 전제 아래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노동정책 제1의 과제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99년 3월부터 임시일용직 비중이 50%를 넘어서고,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비정규직 비중이 55.7%(2001년 8월)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국의 노동시장은 경직적이지 않다. 지나치게 유연한 것이 문제이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작년말 대통령 선거 때는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의 노동시장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매우 유연하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금년 1월 30일자 포브스(Forbes) 지는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OECD 국가 가운데 미국, 캐나다에 이어 제3위'라고 발표했다.

2.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노동시장 유연화'가 지배적 담론으로 얘기되고, 김대중 정부 하에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노동정책 제1의 과제로 추진되어 왔음에도, 정작 노동시장 유연성을 실증분석한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1월 30일자 포브스지의 '노동시장 유연성 국제비교'도 '1년이상 장기실업자 비중, 단체협약 적용률, 해고의 용이성, 법정 휴가일수' 4가지 지표를 척도화하여 비교한 것으로, 경제학적 의미에서 노동시장 유연성을 추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경제학적 의미에서 노동시장 유연성이란 '경제성장 내지 산업생산이 변동할 때 노동시장이 얼마나 유연하게(탄력적으로) 조응하는가'를 의미한다.

3. 노동시장의 장단기 탄력성을 추정해 한국과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비교한 결과1), 산업생산이 변동할 때 1∼2개월 내에 즉각적인 반응을 의미하는 노동시장의 단기 탄력성은 한국이 -0.074(1개월), 0.152(2개월), 미국이 0.097**(1개월), 0.095**(2개월)로, 미국이 한국보다 높다. 그러나 산업생산 변동에 따른 종합적인 반응을 의미하는 노동시장의 장기 탄력성은 한국이 2.331**, 미국이 0.920**으로, 한국이 미국보다 2.5배 높다. 더욱이 한국의 장기 탄력성 2.331**은 1을 크게 상회하여 한국의 노동시장이 매우 탄력적임을 보여준다. 오차수정계수는 한국이 -0.250**, 미국이 -0.063**으로, 한국이 미국보다 4배 높다. 이것은 노동시장이 장기균형 수준에서 이탈하여 과잉인력 등이 존재할 때, 한국이 미국보다 4배 가량 빠른 속도로 과잉인력 등을 해소함을 의미한다.

4.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세계 제1위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자랑하는 미국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장기 탄력성이 2.5배, 조정속도가 4배 높다. 단기 탄력성만 미국보다 낮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은 '산업생산지수 즉 경기가 변동할 때 노동자수나 노동시간 또는 시간당 임금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가'를 의미하는 바, 노동자 개인에게는 그만큼 고용불안정, 노동시간의 급격한 변동, 임금소득 불안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와 재계는 '경제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노동시장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측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유연화가 노동자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경제운용의 효율성과 형평성 모두 저해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비정규직 남용을 근절하고 이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과도한 수량적 유연성을 방지해야 할 것이며, 직업소개·교육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활성화하여 노동시장의 기능적 유연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후주
1) 자세한 내용은 『노동사회』이번 호에 실린 필자의 「한국과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 비교」참조.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