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개혁의 큰 그림으로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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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개혁이 사회정치적 의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올 4월9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대타협이 무산된 이후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노동개혁 논의가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 이후 하반기 정국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 것이다. 방치되었던 노동문제의 공론화는 그 내용이 어떠하든 반가운 일이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현재의 노동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노동시장 구조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정치 의제로 급부상한 노동개혁
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정책을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하다 못해 안쓰럽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되었던 초기만 하더라도 노동시장 내 격차와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의제가 집중되었으나, 그 의제들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노동 개혁이 경제활성화를 위한 부속물로 바뀌었다. 사회적 대화의 기본 원리는 무시된 채, 노동조합은 대화의 파트너가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한 양상이다. 개혁이라는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살은 개악이다.  
노동시장 개혁을 둘러싼 첨예한 노정 갈등은 개혁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추진 방안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정부의 노동개혁은 8월6일 대통령 담화에서 그 목표와 방향이 분명해졌다. 박 대통령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첫 번째 과제로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기본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노동개혁은 일자리입니다.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중략… 예전처럼 일단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고,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으로는 기업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능력과 성과에 따라 채용과 임금이 결정되는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 고용을 유지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정규직 과보호’가 고용창출의 걸림돌이며 그 해법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의 해법은 임금피크제와 성과형 임금체계, 저성과자 퇴출제 도입으로 귀결된다. 
 
노동현실과 거꾸로 가는 노동개혁
정부 정책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배치되며, 노동현실과도 동떨어져 있다. 박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일자리를 늘리고(늘)·지키고(지)·질을 올리겠다는(오) ‘늘지오 공약’을 제시했으며, 근로시간단축, 정리해고 요건 강화,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고용, 비정규직 사회보험 적용확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었고 ‘쉬운 해고, 임금 삭감, 비정규직 양산’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정부 관료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일을 잘하든 못하든 고용이 보장되고,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노동자들은 얼마나 되나. 공공부문과 일부 대기업의 생산직노동자들을 다 합쳐봐야 전체 노동자의 8%에 불과하다. 고용이 안정된 반듯한 일자리는 10%도 안 되며, 나머지 90%는 고용불안정과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오정’과 ‘오륙도’는 정년 60세 시대에 감추어진 너무나 유연화 된 일터의 현실이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요하며, 임금피크제를 청년고용의 ‘마법 열쇠’로 선전하고 있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회사는 하지 않는 곳보다 30세 미만 청년층을 16%나 더 고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모든 기업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같은 기간에 26조 원이 절감돼 29세 이하 정규직 31만 명을 채용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를 통한 청년고용 해소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청년고용 악화 원인을 아버지세대의 이기주의 탓으로 돌리고 정부와 기업 책임에는 나 몰라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이 통계가 과장되었다고 지적한다. “근로자가 60세까지 일한다는 가정에 기초해 있어 현실과 동떨어졌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2014년 기준)은 53세로 정년 이전에 퇴직한 근로자비중이 67.1%를 차지하는 실정에서 가정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노동조합 개혁으로 바뀌었고, 사회적 대화는 실종되었다. 정부는 연일 노동조합의 일방적인 양보를 강요하며 몰아붙인다.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요청하면서도 노총이 요구한 ‘일반해고 기준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중단에는 묵묵부답이다. 더욱이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무산에 대해 ‘지도부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 안 하고 있다. 지도부가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선생이 학생 꾸짖듯 나무란다. 결국 지난 6월 발표한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에 이어 ‘플랜B’(노·사·정 합의 불발시 공익안에 근거해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안)를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프레임을 바꿔, 공세적 대응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정부와 경영계의 찰떡궁합이야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문제는 노동의 대응이다. 한국노총은 ‘노동시장 구조개악저지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확인된 89.8%의 압도적 찬성에도 번번한 투쟁 한번 못한 채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두고 좌고우면(左顧右眄)했고, 민주노총은 총파업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들었으나 투쟁 동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더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시장 개혁 논의의 지형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청년고용 활성화 대책으로 바꾸어 놓았고, 10%의 조직노동자들을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으로 만들었다. 비정규노동을 남발하고 간접고용을 확산시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통해 이익을 전유하고 있는 재벌대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갈라쳐 분열시킨다. 
노동의 대응을 위한 출발점은 정부와 자본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파괴한 재벌과 이를 방조한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임금피크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일반해고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정부와 자본의 담론을 뛰어넘어 ‘청년고용 확충, 재벌개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의 의제를 전면화하여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노동시장의 격차해소와 공정성을 위한 노동연대 전략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거짓 개혁에 맞선 참 노동개혁을 위한 의제와 정책을 국민 앞에 내놓고 싸워야 한다. ‘빈부격차 심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저임금노동자의 비중,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화된 고용불안정,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의심케하는 노동현장의 현실이다. 참 노동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은 노동만이 아닌 전 국민이 같이 살기 위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조직 혁신 및 변화를 앞당겨야  
87년 노동자대투쟁을 밑거름으로 성장한 민주노총이 올 11월이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민주노총이 주도한 노동기본권 확보, 사회 개혁 및 공공성 투쟁 등은 한국 사회의 노동 인권을 발전시킨 견인차였다. 하지만 ‘성공의 역설(逆說)’인가. 노동운동을 통한 한국 사회의 발전은 거꾸로 노동운동의 약화와 위기를 가져왔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은 긴 호흡으로 한국 사회와 노동 현장을 변화시킬 전략적 대응방향을 모색하여야 한다. 급하면 돌아가라고, 앞만 보고 달려온 경주를 잠시 멈추고 주위와 바깥을 응시할 때이다. 노동조합의 주체 역량을 강화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전진하기 힘든 상황이다. 외부 환경 변화에 조응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이념 및 노선을 마련하기 위해 금기 없는 개방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지난 20여 년간 추진한 산별노조운동과 정치세력화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좌절을 넘어서야 한다. 산별노조의 권위와 중앙집행력은 왜 갈수록 약화되는가. 산별노조의 계급연대전략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의 지점이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맬 수는 없다. 당면 투쟁과 함께 미래를 위해 투자하자. 학습과 토론은 그 출발점이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변화의 시작이다. 현장을 토대로, 그러나 현장에 갇히지 말고 일터 바깥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넓히자. 그리 시간이 많지는 않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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