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가 북미·한미 관계 제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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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남북관계는 한반도 정세, 특히 북미관계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사실 3, 4년 전 만해도 온당한 의미에서의 남북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북미관계만이 진행되는 가운데 제대로 된 남북대화는 성사되지 못했고, 남한은 항상 미국의 종속변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장관급회담을 필두로 한 남북대화가 활발히 진행됨으로써 남북관계는 나름대로 독자성을 갖게 되었다.

참여정부 햇볕정책 계승 안 해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6·15 남북공동선언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한반도 평화증진과 공동번영을 목표로 하는 '평화번영정책' 4대원칙을 제시했다. 4대원칙은 △ 대화해결, △ 신뢰와 호혜, △ 남북 당사자 중시의 국제협력, △ 국민 참여와 초당적 협력 등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햇볕정책'의 기조는 유지하되 그동안 비판받았던 추진방식을 '투명성과 참여' 방식으로 극복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의 소산이자 대북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햇볕정책과 6·15 공동선언'의 계승에서 연속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참여정부의 2003년 남북관계는 김대중 정부 당시 남북이 합의했던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여러 회담들이 그냥 관성적으로 열린 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참여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 특별히 새로운 정책을 수립한 것이 없었고, 다만 이미 국민의 정부 당시 다져진 발판 위에서 진행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남북관계는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었고 또 여러 사안들이 제도화되어, 이른바 '북핵문제'의 악재 속에서도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가져오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런 가운데 핵문제 해결과 관련해서 북한은 남한에 대해 민족공조를 요구했고, 이에 남한은 한미일 3자 공조로 맞섰는데, 이는 특히 6자회담을 둘러싸고 나타났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지켜

참여정부는 대북정책을 두 가지로 접근했다. 하나는 북핵문제의 해결이고 다른 하나는 통상적인 남북관계의 개선이라는 병행전술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접근에 있어서 전자는 단순히 일상적인 남북관계만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2003년은 북핵문제가 한반도 정세 전반에 강력한 그림자를 드리운 한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북미관계에서는 3자회담과 6자회담을 비롯한 모든 과정이 핵공방으로 점철됐으며, 남북관계에서는 장관급회담조차 북핵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심지어 한미관계에서도 이라크 파병문제를 둘러싸고 북핵문제와 연관성이 나올 정도였다.

이제까지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공방을 보면, 미국은 '선(先) 핵포기', 북한은 '선(先) 대북 적대정책 포기 =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주장해 왔다. 특히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은 한미일 3자 공조체제 속에서 이뤄졌는데, 이는 작년 5월 한미 및 미일 정상회담에서 대북 '추가조치'와 '보다 강경한 조치'를 거론하며 대북 제재 가능성을 내비친 것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이런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양국 사이에 의미있는 대화가 두 차례 있었다. 2003년 4월 베이징 3자회담(4월23∼25일)에서 북한은 미국에 '새롭고 대담한 해결방도'를 제시했고, 이어 8월 베이징 6자회담(8월27∼29일)에서 북한은 기조발언을 통해 자신의 '총적 목표'와 '일괄타결도식', '동시행동순서' 등을 제시함으로써 북핵문제의 근원과 해결의 목표와 방도 등을 총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이러한 3자회담과 6자회담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핵문제의 해법과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중국 및 러시아와 일정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이들로부터 미국의 적대정책이 문제해결의 걸림돌이라는 공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남한과 일본으로부터도 핵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보다 성의있고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을 통해 북핵문제를 국제화·다자화 하는데 일정 성공했다. 하지만 정책과 대안 없이 회의에 참가하여 참가국들로부터 무성의하고 불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아 미국에게는 역으로 6자틀이 족쇄로 작용하기도 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2차 6자회담의 2003년 개최가 각국의 각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 건너갔지만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참여정부는 북핵문제의 경우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강화하는데 역점을 뒀고, 이를 위해 한미일 공조를 긴밀히 하여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반 마련에 애썼다. 그 결과 대체로 '평화해결 원칙이 잘 지켜졌고 핵문제 해결의 추진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성과'라는 평가다. 전체적으로 보아 참여정부가 한편으로는 한미일 3자 공조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적 관점에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고수한 결과, 일상적인 남북관계는 양자가 커다란 대립 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남북관계의 꾸준한 발전과 제도화

이처럼 북미간의 시끌벅적한 북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조용한 가운데 일상화되고 제도화되었다. [표]에서 보여지듯 남북관계가 이벤트에 치중하기보다는 실무적으로 진행된 점이 눈에 띤다. 이는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참여정부가 특별한 대북정책을 세우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

남북 당국자 차원의 경우, 6·15 공동선언 이행의 징표인 남북장관급 회담과 차관급 회담인 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2003년에 각각 네 차례씩 열렸다. 또 각종 실무협의회 등을 포함하면 올 들어 남북 당국간 회담은 2003년 11월말 현재 33회가 열려 남북대화가 이미 '제도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은 대화를 바탕으로 남북간 철도·도로연결 사업과 개성공단 사업, 금강산 관광사업 등 3대 경협사업을 순조롭게 진전시켰다. 특히 남북은 작년 6월14일 한반도 동서 양쪽의 군사분계선(MDL)에서 남북관계의 상징인 동해ㆍ경의선 철도연결식을 가졌다. 1906년 개통된 경의선은 1951년 6월12일 운행이 중단된 지 52년, 동해선은 50년 만에 연결된 것이다. 실제 열차가 다니지는 못하지만 이 상징적인 궤도 연결로 철조망과 지뢰를 걷어내고 민족의 동맥을 잇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경의ㆍ동해선 철도연결 공사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경의·동해선 철도 연결과 함께 개성공단 착공식, 금강산 육로관광 정례화가 이뤄졌고 또한 4개 경협합의서 발효, 원산지 확인 합의서 발효, 남북직거래 확대 합의 등 참여정부에서 국민의 정부이래 추진돼온 경협사업의 여러 결실이 맺어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제5차 적십자회담(11.4∼6)에서 6천평 규모의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에 합의함으로써 지난 1972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및 제도화를 위한 숙원이 반쯤 풀린 것이 커다란 결실이다. 또한 남북 민간 차원도 당국 차원 못지 않게 남북관계가 비교적 활발히 이뤄졌다. 주요하게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 민족대회'가 서울에서, '6·15 3주년 민족통일대축전'이 '사스'로 인해 각각 남과 북에서 분산개최 되었으며,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가 평양에서 열렸다.

아울러 북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주변상황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와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을 위해 남과 북이 각각 대규모 인원을 보낸 것도 민족화해 분위기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이다. 특히 류경 정주영체육관 개관행사는 남한의 방문단이 군사분계선을 육로로 넘어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가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다소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남북 민족통일 평화체육 문화축전'이 진행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남북관계의 추진력 유지 중요

2003년 북핵문제의 악재 속에서도 남북관계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참여정부의 특별한 노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김대중 정부가 이룩한 일정한 성과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형태가 올해에도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지난 해 증명이 됐지만 분명한 것은 꾸준한 남북관계의 진행이 불안정한 북미관계나 한반도 정세에 안정성을 가져다 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2004년 참여정부가 남북관계를 더욱 개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에 대한 지지와 이행의지를 명백히 밝히는 게 중요하다. 북한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6·15 공동선언 이행의지에 대한 정도에서 평가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참여정부는 한미공조와 한미일 3자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6·15 공동선언의 정신인 민족공조의 단초를 내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제까지 해 왔듯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미공조에 금이 가는 한이 있더라도 평화적 해결을 고수해야 한다. 그것이 넓은 의미에서 민족공조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2003년은 남북관계가 북핵문제로 인한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에 안정성을 준 감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래 왔듯이 남북관계는 언제고 북미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고 교착·단절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2004년에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추진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민족공조를 위한 남북관계의 추진력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어차피 한반도에서 통일의 길은 '남북관계'가 종국에는 '북미관계'와 '한미관계'를 제치고 주요 상수로 떠올라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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