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현대차 노사가 바뀌어야 한국 노사관계의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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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 8월23일 오후 2시~6시

참석: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 정갑득 전 금속노조 위원장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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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주) 대담에 앞서 제가『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를 쓴 취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본 출발점은 현대자동차의 노사관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현대차 노사관계를 ‘유형 설정자’라고 할만큼 현대차 노사는 우리 사회,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두 번째로, 현대차는 한국의 노사관계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점을 원형적인 형태로 보존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현대차의 변화를 주장함과 동시에 한국의 노사관계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의도한 바는 문제제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차 노사관계에 대한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자는 차원에서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내고 보니 노동조합과 사용자 모두 굉장히 불편해하는 느낌입니다. 생산적 논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대응이 앞서는 상황이기에 저자로서 안타깝습니다. 
 
현대차 노조 연대투쟁의 진정성을 묻다
정갑득) 현대차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낸 사람의 입장에서 책을 보니 아프더라고요. 현대차 노조는 노동운동의 울타리 밖에서 키워졌습니다. 현대차 노조에서 공식행사를 하면 항상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진보정당의 국회의원들이 와서 “여러분들이 앞서 연대투쟁을 잘해줬다.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중심이다”라고 연설했습니다. 실제 현대차 노조는 노개투(노동법 개정 총파업 투쟁)도 열심히 했습니다. 초기에는 총연맹에서 지침이 내려오는대로 연대투쟁도 다 했습니다. 현대차 노조만큼 연대투쟁을 열심히 한 노조는 없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연대투쟁을 하다가 4번의 징역살이를 했습니다. 박유기 전 현대차 노조위원장도 1년 동안 민주노총 지침에 따라 파업을 12번이나 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위원장이던 시절 36일 동안 총파업을 할 때 월급이 나오지 않자, 여성 조합원 한 분이 생계를 위해 조개를 잡아서 시장에 팔고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열심히 연대했습니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이 망해가는 과정을 보면, 상급단체의 지침을 잘 수행한 단위부터 깨졌습니다. 연대투쟁을 한 번 하고 나면 그 후유증이 엄청 오래갑니다. 물론 수습은 온전히 단위 사업장의 몫이고요. 그래서 깨지고 나면 온건한 성격의 집행부가 들어섭니다. 그렇게 민주노조가 하나씩 파괴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노조운동은 파업을 못해서가 아니라 파업을 잘못해서 망한 겁니다. 요즘 같이 생산 시스템이 고도화되고 생산성이 향상된 시대에 파업을 며칠 한다고 해서 회사에 충격이 가지 않습니다. 현대차만 해도 특근을 몇 번 하면 목표 생산물량을 다 회복합니다. 아마 현대차가 대한민국에서 파업을 제일 많이 한 사업장일 겁니다. 그런데 연간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반면 파업만 하면 나쁜 걸로 몰아갔습니다. 
책에서 “노조가 경제주의에 빠져있다, 사회적 연대를 안했다”고 표현했는데, 요즘처럼 노조가 실리화된 부분에 대한 비판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는 2년에 한 번씩 선거를 하거든요. 조합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물론 조합원들의 의식이 실리주의로 갔다는 것과 연대투쟁에 대해 우리의 책임을 추궁한다면 달게 받아야겠죠. 그럼에도 현대차 노조의 연대투쟁에 관한 내용,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은 이 책에 전혀 나오지 않더라고요. 
 
 
박태주) 제가 책에 1987년에 현대차 노조가 만들어졌고,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노사가 이른바 ‘계급 전쟁’을 했는데, 사측과 노조 모두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고 썼습니다. 노조가 승리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회사가 고용불안을 내부적으로 구조화시키고, 외부적으로는 노조가 연대를 하지 못해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고립되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정 전 위원장님은 ‘우리만큼 연대투쟁 한 사람들이 있느냐’고 하십니다.  말씀하신대로 현대차 노조만큼 예를 들어 비정규직법과 같은 노동법 개정을 위해, 한미 FTA 저지를 위해 싸운 노조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규직지부가 바로 곁에 있는 비정규직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연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정규직지부는 국내 경기가 나빠지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의 안전판으로 쓰겠다고 했습니다. 해외 노동자에 대해서는 경기가 나빠지면 공장 폐쇄를 통해 그들부터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005년에는 국제 기본협약도 맺었지만 형식적이었을 뿐 국제 노동자와의 연대를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현대차 노조가  열심히 정치투쟁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조합원의 입장에서는 그 투쟁이 상징성은 강했을지 몰라도 자신에게 큰 손해를 가져오는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연대는 우산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으며 같이 걷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노동자의 문제를 얼마만큼이나 자신의 문제로 삼아 진정성을 갖고 대했는가를 말하는 거죠. 이처럼 연대는 이웃사랑이고 자신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라면, 현대차 노조가 추구하는 노동운동은 연대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형식적, 체면치레로 동참한 측면도 있죠. 최근에는 그마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정갑득)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여기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런데 약속이 안 지켜지는 부분도 봐야 합니다. 예전에도 정규직이 1사1노조를 하자고 제안했는데 비정규직들이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정규직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이는 거죠. 지금도 여전히 비정규직지회가 정규직지부를 압박합니다. 연대도 서로 간에 원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꾸 약속이 깨집니다. 정규직지부도 노력하려는 측면이 있었지만, 온전하게 하지 못한 겁니다. 그리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위해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개선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협약도 맺었는데 현실화가 되지는 않더라고요. 회사가 약속을 불이행한 것이고 기업별 노동운동의 한계라고 봅니다. 또 2년마다 노조 지도부가 바뀌니 연속성이 없는 것이고요. 
저는 노조가 연대와 정치세력화 중 하나라도 포기하면 ‘어용노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대투쟁을 하다 지도부가 구속되고 단위노조가 어려워지는 것이 반복되면 조합원들이 연대투쟁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연대투쟁에 대해 회의를 갖기 시작하고 연대투쟁하면 항상 다 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박태주) 비정규직 지회에서 리더십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이는 2010년 1공장 CTS(도어탈착공정) 점거 때 확연하게 드러났죠. 정규직 지부와 한 약속이 깨졌고 자신들끼리는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청인 회사와의 관계를 외면한 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만 봐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회사와 비정규직의 갈등상황에서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연대세력이 아니라 중재자로 나선 측면이 더 컸죠. 이 과정에서 정규직 지부는 점거 투쟁을 끝내려고 비정규직지회를 압박했습니다. 회사의 양보를 압박한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사이에서 정규직 지부에 대한 불신도 작용하고, 갈등도 생겨났죠. 
 
정갑득)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저도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의 책임도 같이 짚어줘야 합니다. 비정규직도 그런 방식으로 노동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정규직지부와 연대투쟁을 할 때는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합의 등에 대해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지키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1사1노조에 대해 엄청 비판했는데, 우리가 먼저 하자고 한 것을 비정규직지회가 안 하겠다고 한 겁니다. 그러니 우리 대의원들이 등을 돌린 것이고요. 제가 금속노조 위원장 재직 당시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안 됐습니다. 또 회사는 가만히 있나요. 회사는 노조를 장악하고, 파괴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집단입니다. 대의원대회에도 깊이 관여하고요. 
 
비정규 문제의 본질, 회사가 법부터 지켜야
박태주)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무엇이 본질인지 봐야 합니다. 정규직지부와 비정규직지회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회사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의 본질입니다. 현대차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노동위원회의 판정, 법원의 판결까지 지키지 않았죠. 극단적으로 “최병승 씨에 대한 판결은 개인에 대한 판결이다, 대표소송의 의미가 없다”며 일관된 주장을 했습니다. 또한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 정부입니다. 예를 들어 법 이행을 강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정부의 특별근로감독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있는데다 도급과 파견의 구분 지침도 있거든요. 여기에 따라 불법파견 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정명령을 내려 시정조치를 했으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차의 비정규직 문제는 ‘최소한의 정의’라고 하는 사법정의조차 실현시키지 않은 자본과 그것을 방치 내지는 조장한 정부의 합작품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외면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은 뭐랄까, 구덩이를 판 사람은 따로 있는데 너 때문에 빠졌다고 싸우는 꼴이죠. 
 
정갑득)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회사는 대법원의 판결이 났으면 당연히 이를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사법부의 결정이 통하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연대해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같이 싸웠죠. 그러니까 책임을 정규직지부에게만 돌리지 말고, 일사분란하게 올바른 방향으로 연대투쟁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지적해야 한다는 겁니다.
 
노사담합의 산물인 비정규직
박태주) 1990년대 후반에 비정규직 비율에 대한 현대차 노사합의가 있었습니다. 16.9%로 제한하는 합의요. 그 때 회사는 비정규직을 고용유연성의 수단으로 삼았다면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을 고용의 안전판이자,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비정규직이 합법화됩니다. 노사가 담합한 거죠. 물론 비정규직이 다 잘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정규직 지부가 대리교섭도 하고, 연대기구도 만들었지만 실제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보니 회사와의 관계에서 분명치 못한 지점들이 있었다는 거죠. 정규직 조합원의 정서를 반영한 결과겠지만 정규직 지부는 그간 비정규직과 어깨 걸고 함께 싸우기보다는 기껏해야 중재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번에 방한하신 교황의 말씀마따나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중립적이 될 수는 없는 거죠. 
 
정갑득) 비정규직 비율 16.9%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대해 합의해준 것이 아니냐는 건데 합의한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배경이 있습니다. 7대 노조위원장 당시 회사가 1만 명에 대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했습니다. 그 후 회사가 생산량을 늘리면서 직원을 더 뽑아야 했습니다. 이 때 회사가 쓴 대책은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차는 직원 수가 원체 많기에 노조가 현장 상황을 속속들이 알기 힘듭니다. 그래서 제가 현장에 가보니 조합원들이 “위원장님, 큰일 났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사업장 한 단위가 통째로 파견업체로 넘어갔고, 대의원들은 노조에 보고도 하지 않고 이에 합의해줬습니다. 막을 길이 없더라고요. 당시 금속연맹 산하 다른 사업장의 비정규직 비율은 30%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고민하다가 비정규직 비율을 따져보니 1998년 당시 16.9%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비정규직을 더 고용하지 못하도록 이 수준으로 비율을 고정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비정규직 양산을 막아보려고 했음에도 한 라인이 통째로 파견업체로 넘어가고 1주일 안에 다 무너지더라고요. 1만 명의 정규직이 나가고 수천 명의 비정규직이 들어왔습니다. 비정규직 비율 16.9%는 그렇게 탄생한 겁니다. 물론 이 일로 많이 욕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정규직이 편하려고 노사가 담합해서 비정규직을 들여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박태주) 인정합니다. 우리나라 노조가 기업별로 분권화되어 있다고 하지만 기업별 노조로서 현대차 노조 역시 분권화된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인원협상도 지부와 무관하게 사업장 단위에서 이뤄지다보니 그런 일이 생긴 거죠. 정 전 위원장님의 말씀을 들으면 현장의 운동성은 구조조정의 여파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일찌감치 붕괴됐다는 지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죠. 1사1노조에 대해 비정규직의 반발도 있었지만, 정규직지부 대의원 대회에서도 3번이나 부결됐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대의원대회에 안건으로 상정조차 못하는 상태입니다. 지금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지부의 공식 입장은 “불법파견”이라는 것인데, 이는 정규직이라는 얘기입니다. 불법파견 비정규직은 유니온숍 제도에 의해 1사1노조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조합원입니다. 더욱이 지금도 노조는 직접고용(촉탁) 계약직을 조합원으로 받지 않고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입니다. 
지난 8월18일 합의만 해도 그렇습니다. 법에 의하면 비정규직은, 최소한 직접생산 공정의 비정규직은 신규채용이나 특별채용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근속연수를 인정해주고 체불임금을 지불해주는 것입니다. 그게 최소한의 사법적 정의죠. 그런데 회사는 특별채용만 이야기 하고 있으니, 울산 비정규직지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겁니다. 정규직 지부는 결과적으로 불법파견문제를 덮어버리는 데 협조하게 된 거죠.
 
정갑득) 노조가 불법파견 비정규직이나 촉탁계약직을 조합원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다만 교섭에서 촉탁계약직과 관련해 소위 협상 성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더 크다고 봅니다. 노조는 저항하는 집단입니다. 지난 8월18일에 있었던 사내하도급 관련 노사 합의는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밖에 없는 차선책이었습니다. 받아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는 거죠. 합의 내용을 보니 울산 빼고 전주, 아산 비정규직지회가 다 동의했습니다. 한계를 받아안을 수 밖에 없는 현실문제가 있다는 거죠. 
물론 이번 합의에서는 회사가 가장 나쁘고, 정부도 나쁩니다. 법원에서 판결을 이행하라고 해도 안하는데, 그러면 노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년 동안 싸워왔는데 계속 싸우는 방식이 있고, 타협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실 속에서 한계를 인정하며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합니다. 
한편으로는 화도 납니다. 회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하지 않고, 통상임금 문제도 법원 판결대로 안 합니다. 재정적 여력이 없어서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어서 이행하지 못한다면 이해하는데, 54조 원의 돈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잖아요. 
 
 
 
단위사업장이 갖는 시스템의 한계
박태주) 원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현실이 어쩔 수 없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많았습니다. 비정규직 울산지회가 바로 그런 경우죠. 그들은 최소한의 정의, 즉 사법적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잖습니까. 저도 화가 나는 일입니다만,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이 법의 집행을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외면하는 희안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규직지부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지난 8월18일의 합의는 누가 뭐래도 지금까지도 법을 지키지 않은 회사가 법망을 피하기 위해 부린 꼼수였죠. 재판을 불과 사나흘 앞두고 재판의 불확실성이나 장기화에 따른 조합원의 부담을 활용한 거죠. 정규직지부로서는 원칙을 깨뜨리며 합의를 해줬구요. 당사자들은 싸우겠다는데 정규직지부가 왜 마음이 조급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세월호 유가족의 입장에서 봐야 하듯이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의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봅니다. 그게 정의겠죠.    
조합원의 생각을 말씀하셨습니다만 집행부가 운동성을 살렸다면 조합원들의 접근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성과 포퓰리즘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는 지도부 누구라 할 것 없이 고민사항입니다만, 이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있다는 얘깁니다. 
 
정갑득) 한국 노동운동의 태동과 발전의 역사를 보면, 노조 간부들은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교육훈련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지금과 같이 민주노조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구속수감되면서 독학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금의 노동운동을 곳곳에서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상급단체에서 노조간부에 대해 체계적으로 교육을 실시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지부장, 위원장이 된 후배들에게 “그 위치에 가려고 욕먹어가며 싸워왔을 텐데 사회를 바꿀 위치에 있는 시간은 짧더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2년은 사실 긴 시간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비난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0% 동의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니 다수의 의견을 참고하되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무엇을 했느냐고 되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노개투를 하고 완성차4사 해외매각 반대투쟁, 금속노조에서는 FTA반대투쟁과 쇠고기수입 반대투쟁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노동운동은 상당히 경제주의에 빠져 있죠.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회사 측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제가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특정한 날까지 파업을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단위사업장에서도 올라와서 함께 결정한 거였죠. 그런데 대의원대회 중인 모사업장에서 전화가 와서 “정 위원장님 뜻대로 안 됩니다. 대대를 무산시키겠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로 대대가 유회됐습니다. 회사가 그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이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위원장 선거가 끝나자, 온 언론이 ‘초강성파’가 당선됐다고 보도하더라고요. 그런데 강성이 아니고 민주노조가 들어선 겁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이 지금 임단협을 하고 있는데 민주적으로 잘 운영되는지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대의원 거의 다수가 회사에 장악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위사업장인 현대차 노조에 대한 구조적 한계에 대해서도 같이 지적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차라는 모래성 위에 쌓은 산별체제
박태주) 일차적으로 자본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정규직지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협력업체 문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조가 책임을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원하청업체 구조가 ‘갑’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고, 이 문제는 정부도 손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별체제가 중요한데, 회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현대차 노조조차 산별체제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습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산별체제 아래에서는 높은 임금, 고용안정을 상당 부분 포기하거나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한다는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실제로 내부노동시장을 유지․강화하는 데는 기업별 체제가 더 유리하죠. 이런 점에서 2006년에 박유기 전 위원장 당시 산별체제 전환투표가 성공한 것은 현대차 노조의 쾌거입니다. 그런데 전환 이후 현대차 노조가 산별체제 안에서 정말로 헌신하는가를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지 않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일반적인 정서가 되면서 당분간 산별체제 자체는 구축하기 힘들어졌고,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사회적 존재 의미도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정갑득) 노조 활동가들의 의식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산별노조체제 현실화 역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처음부터 대산별을 반대했습니다. 산별노조는 공동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단위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요하다면 현대차그룹 안에서도 기아차와 연대를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금속노조 내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를 비롯한 현대차그룹의 비중이 3분의 2 가량은 될 겁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 다양한 방식의 교섭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현대차지부는 안 하고 있느냐, 금속노조 규약도 안 지키고 있지 않느냐’고 비판하면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 
활동가들과 관련해서는 내가 왜 노동운동을 하고, 지부장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정립하지 못한 것이 제일 큰 문제라고 봅니다. 가장 큰 실리투쟁은 정치투쟁입니다. 물론 연대투쟁을 하면 사측과 조합원으로부터 압박을 받겠죠. 그 압박을 벗어던지고 투쟁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조의 집행권을 맡은 지도자들이 운동성을 가지고 하나라도 해내자는 의지가 필요한 겁니다. 그런데 대개 집행부는 노조 관리만 하고 임기를 마치는데, 그러면 임금인상 단협갱신이라는 성과 외에는 내세울 것이 별로 없습니다. 조합원 의식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돈을 많이 받게 되어 좋으니까 한 번 더 집행하라’고 하지만, 이는 전체 조합원의 실패이자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닌 기업별 노조의 한계입니다. 산별체제는 소위 우파를 견제하기 위해 노조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이 집권을 하게 되면, 그 때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대차 노동자의 연봉 1억은 과한 것인가
박태주) 현대차의 고임금에 대해 얘기해보죠. 저는 현대차의 임금이 사회적으로 높다며, ‘현대차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져있다’는 담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언론은 현대차 노동자들이 1억 원의 연봉을 받는 것을 두고, ‘노조가 칼을 들고 와서 회사 돈을 강탈해갔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노사합의에 의해 회사가 주기로 한 임금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노조는 임금 인상을 위해 단체교섭을 하고, 교섭이 잘 안 되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파업을 할 수 있도록 헌법과 노동법에 의해 권리가 보장된 단체입니다. 
회사가 고임금을 줄 수 있는 배경은 물적 토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현대차는 기적이라고 할 만큼 잘 나갔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돈을 많이 받는 것입니다. 저는 현대차 노동자들이 많은 임금을 받는 것에 이의가 없고 더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문제삼는 것은 ‘아반떼’를 만드는데 정규직들만 열심히 일했냐는 겁니다. 협력업체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한숨과 눈물이 아반떼에 같이 녹아있는데 현대차는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지부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버립니다. 사내하청 노동자,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현대차 노사가 갈취해서 공유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죠. 
노조가 만일 사내하청, 협력업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삼고 나서면 회사는 훨씬 피곤해지겠죠. 그래서 현대차 노동자들에게 고임금을 주고 전체적으로 임금 격차를 키움으로써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혐의를 두고 있는 겁니다. 즉 노조가 고임금과 연대의 상실을 회사와 교환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갑득) 현대차가 임단협을 통해 임금을 1억 원까지 올린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노사가 열심히 일해서 벌고 협상을 통해 분배하는 과정에서 싸우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돈을 버는데 있어 정규직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노동자도 기여했는데 정규직이 분배를 도외시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습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동등하게 나누자고 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한계였습니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집단이 아닙니다. 국가도 원하청불공정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내부도 취약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들만 배를 불리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회사는 54조 원의 사내유보금을 쌓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는 건가요. 조선시대에도 추수를 하고 나면 지주가 7할을 가져가고 소작농이 3할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져가는 몫은 3할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조선시대만큼도 분배가 안 되고 있는 겁니다. 회사는 분명히 지불 능력이 있습니다. 작년에 현대차가 9조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는데 그 중 2조 원만 써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정의입니다. 
 
박태주) 이런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죠. 정규직이 임금인상을 양보하면 그것이 비정규직에게 돌아갈까요? 정규직이 임금 인상율을 낮추는 것은 ‘정규직 양보론’이라며 그건 오히려 회사만 배불리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비판을 했더군요.  
 
정갑득) 제가 사적인 자리에서 사측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임금 일부를 포기하고 내가 조합원한테 불신임을 받고 내려가겠다. 그 임금을 어떻게 쓰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회사가 답을 내놓지 못하더라고요. 그럴 바에는 정규직노조가 챙기는게 맞죠. 
 
박태주) 정규직의 양보가 비정규직의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양보도 가능한 겁니다. 보건의료노조가 2007년에 산별교섭을 하면서 놀라운 합의를 이끌어낸 적이 있습니다. 정규직이 “임금인상률의 일부를 포기할 테니 그 금액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쓰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임금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과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산별노조입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위해서 현대차 정규직노조는 한 번이라도 그런 식의 공식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정규직노조가 돈 내놓을테니, 회사도 매칭펀드로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노조가 더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협력업체와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노조, ‘귀족노조’에 맞설 ‘연대노조’ 담론을 제기해야 
박태주) 제가 앞서 현대차 노조가 패배했다고 얘기한 이유는 제대로 연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공동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조가 제대로 고민하지 못한 상황에서 연대의 고리가 끊어짐으로써 사회적으로 고립된 거죠. 물론 언론, 자본, 권력의 농간이 그 배경으로 작동했고요. 노조 역시 노동귀족 담론에 맞서는 연대노조라는 담론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동운동이 패배했다고 보는 겁니다. 노동운동이 위기인데 현대차 노조만 주구장창 독야청청할 수는 없습니다. 
 
정갑득) 회사의 ‘귀족노조’ 담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대를 강구해야 합니다. 노동계를 포함한 사회적 연대 말입니다. 노동법 개정 시기에는 연대가 활발해서 여론도 우리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연대가 실종된 현재 상황에 대해 활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또한 ‘귀족노조’와 함께 얘기되는 노조의 파업은 언론으로부터 비난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파업은 합법 공간에서 노조가 가진 가장 큰 무기입니다. 그것을 내려놓으라는 언론의 태도도 잘못된 것입니다. 노조가 사회적 연대를 통해 언론에 맞서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역할에 대해 소홀했습니다.
 
박태주) 파업이라는 노조의 기본 권리를 포기하고 노조의 이해관계를 사측의 이해관계와 일치시키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 생산차질이 안 나는 것은 이상합니다. 회사는 노조가 파업을 하면 생산차질이 몇 대라며 피해액을 대대적으로 선전합니다. 그런데 생산차질이 벌어진 것은 틀림없지만 연간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회사가 손해를 보려면 판매차질이 나야 합니다. 그런데 파업을 하면 대기물량 생산에서 일부 차질이 발생하겠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현대차를 욕하면서도 기다려줍니다. 게다가 현대차 노조는 전면파업을 하기도 어렵지만 파업을 길게 끌고 갈 역량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파업은 이제 노조의 효과적인 무기가 아닙니다. 따라서 노조도 파업 외에 다른 압력 수단을 개발해야 합니다. 연대가 파업의 약점을 보강할 무기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노조가 파업을 하면 회사는 막말로 ‘퍼주기’를 하고, 노조는 다른 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회사가 파업을 유도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겁니다. 노조로서는 파업을 해야 임금인상률이 높아집니다. 또한 파업을 안 하면 집행부가 어용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파업을 해야 임금인상에 대한 찬반투표가 가능하고 또 통과가 됩니다. 회사로서는 임금을 인상시켜줄 명분을 찾는 거죠. 올해도 이 메커니즘이 반복되는지 지켜보죠. 결론적으로 제가 보는 현대차의 파업 메커니즘은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부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 됐습니다. 담합을 하기 위한 하나의 절차로 파업을 배치한다는 혐의가 짙다는 겁니다.
 
회사에 더 유리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정갑득) 통상임금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회사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적용을 거부하고 법원의 판단에 맡긴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통상임금 문제를 법원으로 넘기는 순간, 회사가 체불임금에 대해서는 문제제기하지 말라는 등의 합의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입니다. 혹 재판에서 노조가 패배한다면 이후 각종 선거의 첫 번째 공약은 ‘외상값’을 받아준다는 것이 되겠죠. 회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하는데 한꺼번에 주기 부담스러우면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태주)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것이 회사에 더 유리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번에 회사가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적용하지 않으면 임금인상률을 낮출 명분이 없습니다. 예년만큼 임금을 줘야 하죠. 게다가 앞으로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훨씬 악화될 것이고, 갈등에 따른 비용도 회사가 지불해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간다면 적어도 4~5년은 가야되겠죠. 또한 장기적으로는 인건비를 낮출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을 할 기회도 없어집니다. 그러다가 재판에서 덜컥 지기라도 하면 또 어쩔 작정인지도 궁금합니다. 지금 주지 않은 걸 나중에 줘야 한다면, 그리고 “그 때 나는 회사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면 전형적으로 ‘폭탄 돌리기’가 되는 셈이죠. 그런데 회사가 쓰는 계산기와 제가 쓰는 계산기는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현대차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데 거기에 걸맞는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현재 노조가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고용안정을 위한 미래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공동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임금체계 개편 등 중요 아젠다도 포함되겠죠. 회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 효율화로 인건비를 낮출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정갑득) 회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자동차 생산비용이 올라가고 이익금은 감소하겠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는 해외생산을 확대하거나 아웃소싱을 확대할테고요. 또 특근시간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겠죠. 중장기적으로 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노조의 입장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이 높아지는 동시에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으로 임금이 올라갑니다. 저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지만 이는 틀린 말입니다. 낙수효과가 틀렸다는 것은 이미 판명났습니다. 기업 창고에만 돈이 쌓일 뿐입니다. 일자리 창출의 기본은 소비여력입니다. 물건을 살 사람이 늘어나야 일자리가 창출되는 겁니다. 그리고 소비여력은 임금인상으로 가능하고요. 1987년에 우리가 노조를 만들고 3년 만에 임금 100여% 인상, 7년만에 300여% 임금인상을 달성했습니다. 실물경제 안에서 그토록 짧은 기간 안에 국민의 삶을 높인 적이 있었나요. 7년 만에 셋방살이에서 아파트와 자가용을 소유하게 됐습니다. 노조의 투쟁 효과가 공무원, 경찰과 군인들에게까지 퍼졌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엄청난 일을 한 겁니다. 
 
박태주) 그 말에 이의는 없습니다. 1억 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1억 2천만 원을 받는 것과 3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 3천 5백만 원을 받는 것 중 어느 것이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죠. 꼭 임금인상이 아니더라도 양극화의 해소가 소비진작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통상임금 문제를 정상화시키면서 체불임금의 일부라도 연대기금으로 내놓을 용의는 왜 없는 겁니까. 그 돈으로 비정규직이나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지원하거나 고용안정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으리라 봅니다. 노조의 입장에서는 망외의 소득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 
 
정갑득) 전 연대기금 얘기에 동의합니다. 조합원 총회를 거쳐서 체불임금의 일부를 사회연대기금으로 내겠다는 것을 공약화하고 정치투쟁을 하는 것이 우호적인 여론 형성에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실리주의와 연대 상실의 배경인 고용불안
박태주) 고용에 관해 얘기해보죠. 현대차 노사관계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단기 실리주의의 원인과 연대를 포기하는 중요한 이유는 고용불안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는 ‘있을 때 벌자’는 의식이 보편화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차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지금은 현대차가 순항하고 있으니 고용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물론 고용문제가 생겨도 노동시간 단축 등 여러 완충 장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1998년의 구조조정 경험에서 보듯, 회사는 고용안정에 대한 의지가 없습니다. 자동차산업은 경기변동에 매우 취약한 산업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고용불안이 경기호황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현안 이슈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시기가 내년이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현대차의 고용불안은 발등의 불인데 노조는 강 건너 불을 보는 듯 합니다.  
 
정갑득) 책에 저급한 생산성으로는 현대차의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짧은 기간 내에라도 고용불안이 올 수 있습니다. 노조가 이 문제에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인상적입니다. 현대차의 작업 편성효율이 50~60%로 낮다고 하니 이 문제의 원인을 보고 대안을 얘기하죠. 
작업 편성효율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 회사 인사정책의 실패 탓입니다. 제가 위원장이던 당시 신차가 들어올 때마다 모듈 확대, 부품 공유 등을 통해 150~300명의 여유인원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여유인원을 4공장으로 전입시켰습니다. 그 다음에 다른 집행단위에서 여유인원들을 연수원에 넣었습니다. 우리는 잔업 특근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든 구조잖아요. 그래서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현장배치를 받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이것을 경험하고 나서는 현장 조합원과 노조 간부들의 대응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신차가 들어오면 인원을 빼지 않았고 작업 편성효율이 낮아진 겁니다. 
노조의 대안은 사내모듈을 하고, 여유인원을 흡수하자는 겁니다. 현대차는 미국공장이 인원수 대비 차를 많이 생산한다고 선전하지만 미국과 국내공장의 자동화 수준은 천지차이입니다. 장비나 자동화 수준을 쏙 빼고, 미국에선 10명이 100대를 생산했는데 한국은 15명이 왜 100대 밖에 생산하지 못하냐고 하면 안 됩니다. 생산대수를 단순 평가해서 노조를 공격하고 보수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는 것은 회사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생산성이 낮아서 앞으로 현대차가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하지만 곧 대량의 정년퇴직자들이 생길테니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대차가 잘나갈 때 대량의 퇴직자가 발생하는 겁니다. 이걸 잘 활용하면 제가 위원장일 때의 작업 편성효율인 83% 정도를 곧 회복할 겁니다. 회사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이 문제를 유연하게 풀어간다면 생산성을 경쟁 업체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근무형태 변화와 생산성 향상의 딜레마
박태주) 현대차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동화, 모듈화, 외주화입니다. 인원을 구조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동화로 생산성이 높아지니 여유인원이 발생하고 따라서 노동생산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숙련의 바탕이 없다보니 생산성을 올리려면 노동강도를 높여야 하는데 그러면 노조가 또 반발을 하죠. 편성효율이 그렇잖습니까. 이것이 현대차 생산방식의 한계입니다. 노조는 그것도 모자라서 신차가 들어올 때마다 인원을 더 달라고 요구했고 상당부분은 비정규직으로 채웠습니다. 거기에다 장시간 노동을 해왔습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 현대차의 낮은 생산성을 구조화시키는 요인이 된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현대차 생산방식이 직면할 중요한 딜레마라고 봅니다. 앞으로 대량퇴직이 있으니 자연히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하는데, 생산성 향상과 연결되는 메커니즘을 미리 만들어 두지 않으면 물량이 바깥으로 빠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겠죠.
 
정갑득) 회사가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강요한 것이 생산성 딜레마의 가장 큰 원인이죠. ‘8/8(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 형태)’ 근무형태 실시로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회사는 굳이 잔업 및 특근으로 높은 임금을 주면서 생산을 늘리지 않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려 할 것입니다. 이번에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면서 생산성은 향상됐습니다. 1.5 시간 적게 일하면서 같은 양을 생산하잖아요. 8/8 형태로 가면 생산성은 더 향상되겠죠.
 
박태주) 현재의 8/9 근무형태에서는 새벽 1시 반부터 6시 50분까지 5시간 넘게 공장의 불이 꺼집니다. 그런데 8/8 체제로 근무형태가 바뀌면 공장가동시간은 다시 한 시간이 줄어듭니다. 노조는 앞으로 8/8 형태로 가면 물량이 줄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일부 차종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제 주장은 설비 가동률을 높이고, 물량을 확보하며 노동시간도 줄이기 위해서는 3교대제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물론 전 공장을 3교대제로 할 필요는 없겠지만 엔진·변속기 공장이나 일부 차종을 생산하는 공장은 그 대상이 되리라 봅니다. 그게 특근은 줄이겠지만 일자리를 늘리는 길이라면 연대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죠.  
 
정갑득) 8/8로 가면 생산량이 감소한다는 것은 회사는 8/8만 하고, 특근을 안 시키려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3교대제에 대해서도 임금보전을 어떻게 해줄지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회사가 3교대제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노조는 생산량을 보존해주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했습니다. 현재의 8/9 형태에서 생산량 보존이 가능하니, 8/8 형태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박태주) 유럽 자동차산업의 대표적인 근무형태는 3교대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을 줄이되, 가동시간을 늘리자는 겁니다. 설비 가동을 높여서 감가상각비를 높이자는 거죠. 이는 중요한 경쟁의 요소가 됩니다. 현대차도 3교대제를 통해 물량을 보존하고 사회적으로는 고용도 창출해야 하지만 이제는 주말 특근을 없애야죠. 물론 이 경우 임금보전도 문제겠지만 인력의 재배치 역시 관건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3교대제를 시행하는 라인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죠. 3교대제는 심야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10/10 근무형태에서 심야노동을 문제로 삼았던 것은 그게 장시간 노동과 결합된 최악의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심야노동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 8/8/8 형태 논의입니다. 
 
정갑득) 지금 8/8 형태도 시행하지 않았는데, 3교대제를 미리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8/8 형태를 실시하고 나서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노조와 회사 중 누가 먼저 바뀌어야 하는가
박태주) 앞으로 현대차 노사관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또 누가 먼저 바뀌어야 할까요. 저는 회사가 먼저 양보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사가 노조에 비해서는 강자이고 따라서 노사관계의 주된 설계자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회사에 ‘제발 노조를 인정 좀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의미로 ‘부당노동행위 하지 마라, 단체협약 좀 지켜라, 법 좀 지키라’는 것입니다. 지금 현대차 노사관계는 회사에 대해 7∼80년대식의 부당노동행위 좀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수준입니다. 법치국가에서 법을 지키라는 것이 어떻게 요구사항이 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놀랍게도 현대차에는 노사관계 전문가가 없습니다. 노동관련 지식도 중요하고 경험도 중요하지만 노조를 깨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고 생각하는 노무관리자를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에는 노동의 인문학이란 말이 쓰입니다만, 이는 노동철학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현대차에는 노동 전문가가 없다는 겁니다. 적극적으로 노조를 인정하는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겁니다.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석하는 것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왜 안되는 겁니까. 그런데 누군가 이런 변화가 현실 가능성이 있는 건지 저한테 묻더라고요. 현대차 최고경영자의 경영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의 가능성은 사실상 없습니다. 
 
정갑득) 회사는 부당노동행위를 상습적, 상시적으로 합니다. 노무담당자는 노조의 각종 의결기구와 대의원들을 관리하고요. 그래서 저는 노조 상근자를 줄이고 변호사를 2명 정도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대응 및 지난 27년간의 모든 협약이행을 점검해서 회사에 법률 대응을 해야 합니다. 
또한 노조가 일반직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일반직이 회사로부터 얼마나 억압을 당하는지 아십니까. 월차휴가를 신청해놓고도 일하고, 특근을 해도 특근 수당을 받지 못합니다. 노조는 이들을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감싸지 않았고 방치했습니다. 앞서 연대를 얘기했는데 같은 사업장의 직원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노조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태주) 저는 회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 정 전 위원장님은 바뀔 것 같지 않으니 노조가 회사를 압박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네요.    
 
정갑득) 노조가 적극적인 방법을 써야 합니다. 대대적인 선전전을 통해 법을 지키라고 회사에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거에 개입한 것은 범법행위라는 것을 깨우쳐주고, 부당노동행위 관련자는 처벌해야 합니다. 
일반직의 정치의식을 높이기 위한 선전전도 필요합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범법이고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교육을 통해 알려야 합니다. 또한 노조가 얼마나 중요하고, 노조가 일반직들의 고용을 지켜줬다는 것에 대해 알려야 합니다. 
 
 
 
국민이 키운 현대차, 문제 해결 위해 사회가 나서야
박태주) 현대차 노사관계를 바꾸려면 현대차 노사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사가 담합하고 있는데 ‘셀프 개혁’이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현대차 노사관계는 개별기업의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이 있으니 사회적 개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 부당노동행위,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를 방치한 것이고 사실상 노사관계 담합의 고리를 인정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정부의 존재 이유가 법의 집행이라면 이제는 그걸 해달라는 거죠. 언론에 대해서도 다들 할 말이 많을 겁니다. 여태껏 중립을 가장한 채 흔들림 없이 사측을 편들었죠. 또한 학계와 시민단체도 나서서 현대차 노사관계 문제 해결을 위해 개입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현대차는 국민기업입니다. 현대차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쓰고 국내에 독과점시장을 만들어줬으며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감면해줬습니다. 차가 안 팔리면 노후차를 교체하라고 세금으로 지원해주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은 현대차가 비싼 줄 알면서도 국산차라는 이유로 구입해줬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국민이 키운 회사입니다. 그래서 현대차 문제에 우리가 개입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정갑득) 좋은 얘기인데, 현실성이 있는 겁니까? 
 
박태주) 비정규직을 예로 든다면 정부가 특별근로감독만 실시해도 많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을 보면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불법파견이 확인될 경우 행정명령을 통해 시정하게끔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사법부도 현대차 사내하청에 대해 불법파견 판단을 내렸고, 여당 국회의원들조차 국정감사에서 현대차의 법원판결 불이행에 대해 화를 냈습니다. 최병승 씨가 철탑농성을 하던 당시에는 대선 후보들이 농성 현장에 가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현대차는 이행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법위의 재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부당노동행위도 그렇고 장시간 노동만 하더라도 법 위반의 산물이잖습니까. 게다가 정부가 올바른 노동정책만 가지고 있다면 정책적으로 개입할 소지가 있을 겁니다. 정부의 정책이라는 게 늘상 옆길로 새니까 문제죠.
이런 상황에서 노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노사한테만 맡겨둘 일이 아니니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겁니다. 학계와 시민단체가 나서서 정부나 언론에 요구해야 합니다. 
 
정갑득) 앞서 말했듯이 대한민국 노동운동은 파업을 못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잘못해서 망한 겁니다. 현대차도 파업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봐야 합니다. 파업을 하든 안하든 단협의 내용은 비슷합니다. 그간의 파업은 전 조합원이 참여하고 정치의식을 높이는 파업이 아니었습니다. 파업 전술을 쓰더라도 전면 총파업이 아니라 사업부별로 진행해서 전체를 모이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강의하고 토론을 해서 조합원 집단교육을 하는거죠. 
그리고 현대차 노조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현장제조직이 있었기 때문임을 인정하고 제조직이 선택받기 위해서 잘 싸워야 하며 집행권을 견제해야 합니다. 절대 권력은 항상 부패하고 망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조합원 재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게 정치의식을 높이고 이를 통한 노조의 지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그래야 현대자동차의 경영에 대한 진단 내지 판단을 하고 이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파업도 지금과 같은 현장정리용이 아닌 내용있는 파업을 하자는 것입니다. 
 
비관의 땅에서 싹트는 변화의 기운
박태주) 다른 노조 활동가들도 꾸준히 노조의 자주성 회복, 혁신, 교육의 필요성, 정치세력화를 얘기해왔습니다. 그런데 변화없이 그대로 27년이 흘렀습니다. 담합으로 귀결되기는 했지만 노사의 절대적인 대립과 불신의 관계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노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니라, 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 해도 해낼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회사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데 정 전 위원장님은 노조의 혁신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노조 혁신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저는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외부 충격이 와야 조합원들 사이에 위기의식이 생기고 그래야 대타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위기가 닥치면 대타협이 아니라 1998년처럼 구조조정을 둘러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정갑득) 외국의 경우 경제위기가 왔을 때 노사가 빅딜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하나 잡아서 해결해 나가자는 거죠. 노조가 자주성을 회복하고 회사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리면 못할 일도 없다고 봅니다. 노사관계 개선 및 경쟁력 제고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면 회사도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박태주) 지금처럼 회사가 여력이 있을 때 비정규직, 통상임금,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전략적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큰 비전을 이 문제들 속에 녹여내야 합니다. 회사의 선도적인 변화가 먼저 필요한 이유입니다. 또한 현안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노사의 장기적인 전망까지도 엮어내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노조가 회사를 압박해야겠죠. 
 
정갑득) 컨베이어 시스템이 있는 한 현대차 노조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30명만 있어도 공장을 세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회사와 극한 대립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극한 대립을 통해 임금을 더 받는 것은 노동자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 힘을 키우고 그 힘으로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는 겁니다. 
또한 현대차 노조의 발전전망을 얘기하면서 산별노조와 총연맹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사실 산별노조와 총연맹이 올바르게 제 역할을 했다면 현대차 노조에 이렇게 과부하가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행동하게 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총연맹의 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산별노조체제도 정권의 성격 변화에 따라 다시 도약할 수 있습니다. 
노사관계는 힘과 힘의 관계입니다. 노조에 유연하면서도 폭넓은 고민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탄생한다면 회사의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노동조합운동은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현재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보면 한없이 비관적이겠지만 저는 현대차 노조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박태주) 아직도 할 말이 남았지만 시간 관계상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현대차 노사관계는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유형 설정자이자 마지막 보루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노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현대차 노사관계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투쟁, 연대투쟁이야말로 실리투쟁이라는 정 전 위원장님의 말씀은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갑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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