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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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의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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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북관계가 제7차 장관급회담(8월12일)을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8월 하순 김정일-푸틴의 북러 정상회담이 있었고, 특히 9월17일에는 최근 한반도 정세변화의 꽃이라 할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시기만 문제지 미국 특사의 방북도 예정되어 있다. 


[ 2002년 서울에서 열린 8.15행사에서 자리를 함께한 남북한 노동계 대표들  ▷ 출처: 통일뉴스 ]

이른바 '2003년 한반도 위기설'

한반도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종착점은 어디이고, 또 누가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가? 일단 변화는 북한에 의해 시작됐고, 그 주도권도 북한이 쥐고 있는 듯이 보인다. 변화의 계기는 지난 7월25일 6·29 서해교전사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에서 비롯된다. 북한은 왜 '유감 표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그리고 이 '유감 표명'이라는 지렛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들어올리고자 하는 것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본질적인 문제와 그 동안의 과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반도 문제의 주요 축은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이다. 북한은 생존 및 노선상 그리고 미국은 세계지배전략상, 양국은 한반도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닥치고 있다. 그 가장 빠르게 다가올 사안이 흔히 회자되는 이른바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다. '2003년 위기설'이란 1994년 제네바에서 북미간에 합의한 기본합의서 내용이 실행될 수 없다는데 기초하고 있다. 
기본합의서에 의하면, 북한이 기존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책임지고' 2003년까지 200만KW 발전 능력의 경수로 발전소를 북한에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1년을 코앞에 둔 지금 이는 불가능하다. 4∼5년 지연될 수밖에 없는 형편에 있고, 북한은 경수로 발전소 건설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문제를 강력히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경수로 건설 지연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 없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이 먼저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제네바 협약의 운명은 2003년 ▲ 경수로 발전소 건설지연에 대한 북미간 합의가 이뤄지거나, ▲ 북한이 동결했던 핵 프로그램을 다시 가동하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양국 관계의 밑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종의 결전(決戰)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올해는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했듯이 2003년을 겨냥해 결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샅바잡기'의 해인 셈이다. 

선제 공격은 미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올해 1월 말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자 북한은 이를 '사실상의 선전포고'로 간주했다. 이후 양국관계는 최악이었다. 곧이어 미국의 핵태세보고서(NPR)의 '핵공격'에 대해 북한이 '미국과의 합의(제네바 협약)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것 등에서 보여지듯, 한반도는 용어상으로는 이미 전시 중이었다. 입심과 담화를 통한 양국의 설전(舌戰)이 언제 실전(實戰)으로 비화할지 모르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한반도 정세변화의 계기는 북한의 '유감 표명'

이에 따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남북관계 역시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즈음 남북관계에 최초의 변화가 있었다. 4월 초 북한이 남한 임동원 특보의 김대중 대통령 특사 자격 평양 방문을 받아들인 것이다. 쌍방 모두 대화의 절실함을 갖고 있었다. 이때 북한이 임 특사를 받아들이면서 낸 보도의 핵심은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엄중한 사태'란 바로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임동원 특사가 방북하여 4·5 공동보도문에 합의했다. 그 주요 내용은 '그 동안 일시 동결되었던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하기로 하면서 동해선과 경의선의 철도 및 도로 연결, 그리고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 회의,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제2차 회의,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사업, 경제시찰단 남측 방문,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 등의 개최였다. 그런데 이 공동보도문은 그 이행 초기 과정에서부터 두 가지 문제에 부딪쳤다. 하나는 미국의 '의도적인' 반대와 다른 하나는 6월29일 서해 해상에서 남북 해군간에 '우발적인' 교전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북미간 '결전의 해' 2003년을 1년 앞두고 더욱이 6·15 공동선언에 합의한 김대중 정부 말기에 남북관계가 다시 교착상태로 빠진 것이다. 이에 북한은 예전과 달리 남한에 7월25일 이른바 '유감 표명'이 담긴 전화통지문을 보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북한은 그때까지만 해도 '유감 표명'을 하더라도 '한참 늦게' 또는 '제3자'를 통해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사자인 남한에 '직접' 그리고 비교적 '빠르게' 유감 표명을 한 것이다. 이는 그만큼 북한이 다른 무엇보다도 남한과의 대화 재개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북한은 전화통지문을 통해 '얼마 전 서해 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오늘의 북남 관계에 주목을 돌리고 중단된 당국 대화를 조속히 재개하여 북남 관계를 원상 회복'하기 위해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 재개를 제의했다. 즉 남북대화를 원상복귀 시키되, 4·5공동보도문 이행 수준으로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북한은 '유감 표명' 이후 민간 차원의 8·15 서울행사 참여 합의, 남북장관급회담 전격 제의, 그리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의 북일 외무장관회의 제의와 동(同)포럼에서 백남순-파월 북미 외무장관 회담을 통한 대북 특사 재파견 합의 등을 주도적으로 행사함으로써 화해 분위기를 한반도 내외에 과시했다. 

'유감 표명'의 종착지는 북미관계 정상화

그렇다면 앞에서도 밝혔듯이 북한은 '유감 표명'이라는 지렛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들어올리고자 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은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과의 대화를 원한다. 그리고 그 대화의 끝은 양국 관계 정상화이다. 남한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중국 및 러시아와 국교 수교를 했듯이 북한도 일본 및 미국과 국교 수교를 하고픈 것이다. 그를 위해 북한은 2000년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양국이 합의한 '북미공동코뮤니케' 수준에서 관계 설정을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미간에는 대화다운 대화는커녕 제대로 된 만남조차 갖질 못했다. 부시는 대북 강경정책을 폈다. 북한으로서는 부시와의 직접 대화를 포기한 듯하다. 이는 곧 기존 대미 접근방법의 포기를 의미한다. 기존에 북한은 선미후남(先美後南),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 불릴 만큼 남한보다는 미국과의 관계 조성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 이후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병진(竝進)하더니,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북미관계가 고착화되자 최근엔 남한 및 한반도 주변국, 그리고 유럽연합(EU) 국가들과 관계개선에 힘써 왔다. 즉 남북 관계, 북-중-러 북방 3각 관계 그리고 북일 관계 등을 가동하면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려는 포석이라 보여진다. 결국 북한은 '유감 표명'이라는 지렛대를 사용해 남한, 러시아에 이어 일본이라는 돌을 움직인 뒤 미국이라는 큰돌을 들어올리고 싶은 것이다.

첫째,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를 6·15공동선언과 4·5공동보도문 이행 수준으로 복원시키고자 한다. 이미 남북은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로 서울에서 7차 남북장관급회담(8.12∼14)과 민간차원의 8·15민족통일대회(8.14∼17)가 진행됐고, 곧바로 경제협력추진위원회 2차 회담(8·27∼30), 그리고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9·6∼8)과 남북통일축구경기(9.6∼8) 등이 진행되었다. 

또한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 및 도로 연결 착공식(9.18), 그리고 이를 위한 군사실무회담 (9.18 이전)과 남북철도·도로연결실무협의회 제1차 회의(9.13∼15, 금강산), 임남댐 공동조사를 위한 실무접촉(9.16∼18, 금강산)이 예정돼 있으며, 제5차 이산가족 상봉(9.13∼18, 금강산)과 9월 말에는 북한도 참가하는 부산 아시아경기대회가 개막된다.

10월중에도 당국자간의 개성공단건설실무협의회 제1차 회의(개성), 임진강수해방지실무협의회 제2차 회의(개성), 북측 경제시찰단의 남측 방문(10.26),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3차 회의(11.6∼9, 평양) 등이 예정되어 있으며, 민간차원에서는 남북여성통일대회(금강산)와 남북청년학생통일대회(금강산) 등이 예정되어 있다. 이렇듯 봇물 터진 남북교류는 6·15선언 이후 제2의 전성기이자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고 있다.


[ 9월 7일 열린 남북축구대회에서 환호하는 시민들. 저고리를 입은 사람은 일본에서 온 총련계 여학생들  ▷ 통일뉴스 ]

대일 유인책, 북러정상회담

둘째, 북한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핵심인 미-일 동맹의 한 축인 일본을 한반도 문제에 (소외시킴으로써) 유인하기 위해 전통적인 우호국 러시아를 끌어들였다. 지난 8월2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사업과 ▲ 러시아의 대북한 전력지원 문제 등 경협 확대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TKR-TSR 연결사업은 남북간 철도연결로 이어지고 이는 러시아의 대(對)한반도 개입이 확대됨을 의미한다. 역으로 한반도에서 대칭관계에 있는 일본이 소외되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대북한 전력지원 문제는 그간 북한의 대미 전력지원 요구에 미국이 강짜를 부렸던 사안이 하나 상실됨을 뜻한다. 이는 곧 있을 미국과의 제네바 협약 재협상에서 북한이 우월한 지위에 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북러 정상회담은 일본과 미국 모두를 겨냥한 수였다. 

셋째, 이에 일본이 먼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8월26일 북일 양측은 국장급회담 후 발표한 공동보도문에 이어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및 북일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하였다. 고이즈미의 방북 결정은 시기가 매우 정교했다. 이른바 미국 일정표의 틈새를 노렸다. 부시는 11월 중간선거와 '이라크 공격 운운'을 앞두고 한반도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적었다. 몇 달간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의 힘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일본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미일의 미묘한 관계와 관련 고이즈미의 방북 결정이 이전 다나까 수상이나 실력자 가네마루의 전철을 밟을지 어떨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일본인 납치의혹'과 '일제 식민지 과거청산' 문제로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일 관계의 전기, 즉 수교교섭 재개를 마련하기 위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 일본이 '정치적 결단' 및 '일괄타결' 등을 내비치며 특히 남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 회담'을 요구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에의 개입과 동시에 북한과의 수교 교섭을 바라는 강한 집착을 읽을 수 있다.

미국의 선택은?

그렇다면 미국은 어쩔 것인가? 계속 대북 적대정책을 펼 것인가? 아니면 대화에 나설 것인가? 미국은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지난달 말 방한한 존 볼튼 미 국무부 차관의 입을 빌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재규정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최근 변화를 '긍정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마디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합의한 바 있는 대북 특사의 평양방문 시기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미결정은 고이즈미의 방북 결과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교섭 재개를 선언한다면 자연스런 도미노 현상에 의해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북한은 지금 '민족 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의 본질인 '2003년 한반도 위기설'에 대처하기 위해 한반도 정세에 변화를 일으키면서 그 변화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이 일으키고 있는 변화의 종착지는 어쨌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위해 남북관계를 원상복귀시키고 러시아라는 유인책을 써 일본 총리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을 일단 성사시켰다. 물론 이러한 북한의 대미접근 전략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북한이 서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가 어떤 식으로든, 특히 9월17일에 있을 고이즈미의 방북 결과가 북미관계에 '새로운 국면'을 조성할 것이라는 것도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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