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산별교섭, 성과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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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은 2002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 개정을 포함한 주5일 노동제 실시에 합의했다. 2000년 3월 산별노조로 전환한 금융노조는 그 해 국내 최초로 산별단협을 제정한데 이어 2001년도에는 단협 내용을 확충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금융노조는 노동자들의 염원인 주5일 노동제를 쟁취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에 따라 금융 노동자들은 7월1일부터 주5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금융노조가 주5일 노동제 도입을 합의할 수 있었던 데는 산별노조 체제의 일사분란함이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사측도 비용절감과 종업원 자기계발 기회 확대 차원에서 주5일제 실시에 호의적이었던 점도 합의를 이끌어낸 배경이다. 


[ 주5일제 실시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금융노조 지도부   ▷ 출처:금융노조 ]

지난 2년 동안의 산별교섭 과정 

금융노조는 2000년 3월 3일 산별노조로 전환한 다음, 산별단협을 쟁취하기 위한 활동에 돌입했다. 특히 금융부분 구조조정 와중에서 이뤄진 그해 7월 11일 금융노동자 총파업은 산별노조 강화와 산별협약 체결의 원동력이 되었다. 

2000년 10월 23일 금융노조는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최초로 산별협약을 체결했다. 수년간 시중은행노조, 국책은행노조, 지방은행노조, 농수축협중앙회노조협의별 공동교섭 경험이 있다는 점, △ 따라서 단협 내용이나 임금구조 등 노동조건이 비슷하다는 점, △ 사업장 단위에서 노사마찰을 갖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공기업 사용자들의 특성, △ 7월 파업 등 급격한 구조조정에 따른 노조의 거센 물리적 대응 등이 협약 체결의 배경이었다. 단체협약 구조는 기본협약(산별차원의 노사 체결)과 보충협약(지부차원의 노사 체결)으로 이원화했으며, 보충협약은 사업장 현실에 맞게 해당 지부에서 교섭하고 본조 승인 하에 체결토록 하였다. 

2001년 8월 16일 산별협약이 개정 체결되었다. 2000년 12월 파업을 이유로 이용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구속되었고, 이후 금융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공세는 계속되었다. 여기에 맞서 금융노조는 산별 통일교섭 기조를 유지하면서, 실무단위 교섭위원회를 가동했다. 두 번째 산별협약은 첫해의 것을 보완한 것이었다. 기본협약 108개(기존 103개) 조항, 고용안정에 관한 협약 11개(기존 11개) 조항, 회사발전협의회에 관한 협약 7개(기존 7개) 조항을 신설·변경했다. 임금은 산별에서 공통 기본율을 정하고 지부에서 +α를 정하도록 노사가 합의하고 회의록에 명기하였다. 인상률은 합의 당시 노총 산하조직의 평균인상율 7.4%+α로 권고키로 합의하였다. 노조가 교육훈련에 관한 협약(14개 조항) 제정을 요구했으나, 사측의 완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사측은 교육훈련이 고유 경영권한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산별교섭 과정과 합의 내용  

지난 3월 19일 금융노조는 임단협 담당자 전략회의를 통해 산별협약 개정안을 확정하고, 3월 27일 중앙위원회에서 임금·단협 요구안을 확정했다. 이어 3월 29일 노조 요구안을 26개 사용자 대표에 전달하고 교섭을 요구하는 한편, 4월 10일, 11일 이틀에 걸쳐 단위노조대표자 워크숍을 열고 주5일제 추진을 결의했다. 5월 2일 1차 대표단 교섭을 거쳐, 5월 5일 2차 대표단교섭에서 노사는 주5일제 관련 원칙 5개항에 합의했다.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① 현행법 범위에서 주5일 근무제를 조속한 시일에 시행한다. ② 휴가일수 등 조정 및 임금수준 관련 사항은 실무자 회의에서 방안을 도출한다. ③ 회사 특성상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별도로 정한다. ④ 시행시기는 실무 절차와 방법 등을 확정한 후 준비 기간을 감안하여 별도로 정한다. 다만, 7월 1일 시행이 가능하도록 노사 양측은 성실한 자세로 노력한다. ⑤ 주5일 근무제와 관련하여 근로기준법이 개정될 때는 그에 상응하여 재협의한다.

5월 6일 열린 2차 전체대표자교섭에서 주5일제 관련 5개항 원칙 합의가 추인되었고, 이어 5월 15일 열린 대표단 교섭에서 ① 휴가 총26일 사용, ② 월차 12일 임금보전 논의하지 않고, 연차8일은 전액보전, 체력단련휴가 6일은 실무단 협의, ③ 청원휴가 조정은 실무협의, ④ 위 내용이 5월말까지 합의될 시 7월 1일부터 주5일제 도입 등 네 가지 사항에 합의했고, 5월 23일 열린 4차 전체대표자교섭에서 최종적으로 합의 서명했다.     

금융노조는 1998년부터 1일 8시간 주40시간(주5일 노동제)을 사측에 요구해왔으며, 1999년부터는 노사가 낮은 수준의 시간단축에 관한 별도협약을 맺어왔다. 동시에 노조는 정부 측에도 주5일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 은행장들도 주5일 도입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노사는 실무자 교섭, 임원급 전체 교섭, 임원급 대표단 교섭, 대표자 교섭, 대표단 교섭, 대대표 교섭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섭을 진행해왔다. 특히 노조는 노사정위원회 주5일제 합의 실패, 월드컵 도래, 정권말기, 두 개의 선거 등으로 파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조기 타결을 서둘렀다. 정부와 국민정서를 고려해 노사공동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5월 23일 합의 내용에는 주5일제말고도 다양한 사항이 있다. 우선 임금은 6.5%±α로 합의하였다. 이는 국책은행 임금 가이드라인 6.0% 돌파했다는 의미가 있으며, -α적용 사업장은 일부 공적자금투입 기관에만 해당되도록 하였다. 국책기관 가이드라인을 사측이 완강히 주장해 교섭이 결렬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산하 지부는 산별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지부 사정에 맞는 임금인상 합의를 추가로 할 것이다.  

올해 단체협약 개정은 주5일 노동제에 집중하느라 다른 부문에는 크게 집중하지 못했지만, 사측이 본조에 조합비 일부를 직접 입금하는 성과를 낳았다. 협약 부칙에 따라 사용자는 2003년 조합비의 10%, 2004년 15%, 2005년 20%, 2006년 25%를 본조에 직접 입금하고 나머지는 지부 통장에 입금해야 한다. 이는 조합비 전액은 아니지만, 한국 노동조합 최초의 산별차원 조합비 일괄공제(check off)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에 노사공동선언문도 채택했는데, 이는 정부가 사용자에게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도 주5일제에 대한 정부와 국민정서를 의식하여 교섭 막바지에 갑자기 요구하였다. 처음에는 사측이 노사평화선언문을 요구했으나, 노조는 노동계에 끼칠 영향을 감안해 ‘평화’ 삭제를 주장했고, 결국 ‘노사공동선언문’을 체결 당일 발표하였다. 사측은 대외 여론을, 노조는 노동계 여론을 의식한 결과였다.    

주5일제 합의의 의미와 과제  

이번 합의는 우리나라 경제와 노사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첫째, 은행의 입장에서 주5일제에 따른 토요 휴무는 경비절감 효과를 줄 것이다. 전기세 등 일반시설 경비와 출근일수에 따라 지급하는 중식대, 교통비 등 그 규모는 2500억 원에 이른다. 또한 인터넷 뱅킹, 자동화 기기 확충, 일부 업무 아웃소싱 등으로 경영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지식정보 경영을 앞당겨 금융산업의 질적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노동조건 변화, 고용증대 효과, 여가활동 개선이 이뤄질 것이고, 서비스 산업과 여가산업 발달로 내수가 진작되어 국민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다. 장시간 노동(현재 주 56.5시간)의 단축은 물론, 악화되는 노동강도(1997년 이후 심장마비 등 과로사 45명, 뇌혈관계 등 기타 재해 76명)의 개선, 자기계발의 기회 확대가 예상된다. 임금은 평균 3~4%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토요일 52일을 휴일로 확보했다. 비정규노동자의 경우 임금 저하가 없도록 회의록에 남겼고, 지부별로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셋째, 금융부문의 합의에 따라 다른 산업도 주5일 노동제를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대부분 금융노조의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제2 금융권을 포괄하는 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노련도 5주일제 도입을 본격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넷째, 산별노조 차원의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노동운동사적 성과를 남겼다. 향후 법개정 이후라도 법적 노동시간 안에서 산업별 노동시간 합의가 가능하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이와 함께 노사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던 주5일제 논의를 새롭게 자극하는 효과도 있었다. 

다섯째, 결과적으로 금융산업의 주5일제 합의는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한 정부 노동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노사정위원회의 시간단축 논의를 촉진할 것이며, 이를 통해 재계의 반발과 노동계 내부의 이견으로 늦춰지고 있는 주5일제 도입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은 시대의 흐름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운동 과제다. 금융노조가 단협 체결로 주5일제를 이뤄냈지만, 이것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 다른 산업에 아직 확산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중소영세사업장과 비정규노동자들의 경우 그 혜택을 누리기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제화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금융노조의 주5일제 단협 쟁취는 노동시간 단축 법제화를 촉진하는 좋은 압박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한다. 


[ 2002년 임금단체협약에 합의하고 노사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

향후 과제    

금융산업 교섭을 돌아볼 때, 사용자단체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교섭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은행연합회는 산하 단체에 대한 조정·규제 권한이 없어 사용자단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사용자 교섭단체가 없는 상황에서는 산별노조가 개별 사용자 26명(내년은 28명 예상)을 교섭장에 나오도록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앞으로 산별노조 가입이 늘어남에 따라 교섭이 더 번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교섭 진행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은행 사용자들은 교섭 방식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지부 역시 산별 단협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산별교섭 경험을 정리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연구해,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산별 교섭의 모습을 제대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단협에 대한 지부의 관심 저하도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지금까지 단위노조의 활동은 임금인상과 복지향상에 집중되어 왔다. 노조가 고용안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IMF 이후부터며, 지금은 사업장의 존립과 경영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산별노조 전환에 따라 교섭·체결권이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이동하면서 단체교섭에 대한 산하 지부의 관심이 저하되고 있음이 각급 회의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단협에 대한 지부의 무관심이 커지는 반면, 개별 사업장의 문제를 본조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주문이 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조와 지부의 역할과 위상을 다시 점검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도 고민할 과제다. 경제 위기 전에는 5% 수준이던 비정규직 비율이 지금 30%를 넘어서고 있다. 심한 경우 42%가 되는 사업장도 있으며, 비정규직이 더 많은 사업장도 있다. 노동조합이 특수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을 지나치게 허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인사·임금제도의 변동에 따른 노조의 대응 방안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IMF 이후 연공급에 기반한 호봉체계가 무너지고 성과급, 집단성과급, 성과연봉제, 연봉제 도입 등 임금제도가 바뀌고 있다. 일부 은행의 경우, 완전 연봉제를 겨냥한 임금·직급체계 개편을 노조에 요구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은 인사 파괴를 통한 조직 슬림화를 시행중이다. 

임금·직급체계의 변동과 비정규직의 급증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현재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30~40%를 받고 있다. 비정규직이 기업 복지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의 정도는 매우 심하다. 사용자들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정규직 일자리에 비정규직을 앉혀 놓는 경우가 많으며, 정규직노동자들은 이렇게 생긴 수익으로 사용자에게 정규 상여금 외에 성과급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점에서 노조와 정규직노동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노조가 비정규 조직화를 계속 방기한다면, 머지않아 20%의 고임금 정규직과 80%의 저임금 비정규직이 금융사업장에서 함께 일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 연대는 파괴되고, 노조 조직력은 약화될 것이며, 70% 정규직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올해 시중은행은 63 : 37로 비정규직을 더 많이 채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5일 실시에 따라 조합원들의 여가 문화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는 금융노조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 대중문화는 소비, 향락, 돈, 물질로 뒤덮여 있다. 주5일 노동제를 한다니까 ‘놀러 다니려면 돈이 들어가니까 임금이나 많이 올려 달라’는 전화를 받기도 한다. 주5일제가 확산됨에 따라 돈과 물질, 소비와 향락 중심에서 사람과 자연 중심의 여가 문화를 만들어낼 과제가 노조운동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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