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산별교섭의 의미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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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금속노조 노사간의 산별 중앙교섭이 7월15일 잠정합의를 이루어 냄으로써 산별교섭의 첫 관문을 돌파했다. 노동계 안팎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지난 5월6일부터 시작된 중앙교섭은 13차례의 본교섭과 2차례의 축소교섭, 금속노조의 9차례 파업을 거쳐 잠정합의에 이르렀다.

금속노조가 2003년 중앙교섭에서 합의를 하게 된 데에는, 지난해 '기본협약 합의 없이 임단협 타결 없다'는 노조 방침에 따라 108개 회사에서 산별협약의 전 단계인 기본협약에 합의해 올해 중앙교섭의 발판을 마련한 바 있듯이, 올해도 '중앙교섭 타결 없이 임단협 타결 없다'는 방침이 합의를 이루는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사용자들이 임금이나 사업장 단협을 미끼로 노조 투쟁력을 약화시키고 중앙교섭을 해태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교섭 초반부터 전국의 조합원이 일사불란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또 중앙교섭 막바지에 사용자들이 중앙교섭을 이탈하려고 했을 때도 지부·지회에서 진행되던 모든 임단협 교섭을 중단시킴으로써 중앙교섭에 힘을 집중했다.

이로써 △ 기본협약 자동연장, △ 주40시간 주5일 근무제, △ 비정규노동과 차별 철폐, △ 근골격계 직업병 대책마련, △ 금속노조 조합활동 보장 등 5대 핵심요구에 대한 노사간 합의내용이 1백개 사업장 2만2천 조합원들에게 일괄 적용된다. 금속노조는 산별노조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였으며 산별교섭 정착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 금속산업 노사 중앙교섭 장면  - 출처:금속노조 ]

임금 저하 없는 주5일 근무 실현

금 속노조와 관계 사용자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기존 임금 저하 없는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주5일 근무 실시시기와 관련, 올해 단협을 갱신하는 사업장은 10월1일, 내년에 갱신하는 사업장은 7월1일부터 실시하기로 해 '주5일 근무제 즉각 실시'의 요구를 관철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종업원 50인 미만과 법정관리 등의 사업장은 지부교섭을 통해 늦어도 2005년까지는 실시하도록 했다.

경총을 위시한 사용자들이 월차축소, 생리휴가 무급화 등 대폭적인 임금삭감과 노동조건 후퇴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 중심의 금속노조 노사가 '기존 임금을 저하하지 않는' 주5일 근무에 합의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자는 노동자의 요구를 실현하게 됐다. 지난해 주5일 근무를 실시하면서 연월차를 소진하는 방식으로 일부 임금 저하를 가져왔던 금융권과 달리 노사합의 없이 임금수준을 저하하지 않기로 해 노동계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 권리 보장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중심으로, 근골격계 직업병 대책은 사업장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부서별 실행위원회 설치 등 6가지 세부사항을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합의했다.

조 합활동 보장부분은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 조합활동시간의 기본조건을 확보했다. 금속노조 대의원(본조·지부)은 월 5시간(연간 60시간), 중앙위원은 노조(지부)의 공문에 따른 회의참석을 유급으로 확보했다. 대의원 월 5시간은 연 2∼3회 개최되는 금속노조 전국대의원대회와 매월 한 번 열리는 지부대의원회의를 참석하는 데 사용된다. 금속노조(지부)의 회의참석이 그동안 관행으로 이루어지거나 사용자들이 허락해야만 가능했으나, 이제 협약으로 체결함으로써 노조활동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편 금속노조와 관계 사용자는 △ 세제·금융 지원, △ 노동시간단축 장려금, △ 사회보험료 감면, △ 근로소득 추가공제 등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따른 중소기업 지원방안'을 담은 대정부 요구서를 채택해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개개의 기업만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며 사회 차원의 제도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잠정 합의의 파장

금 속노조가 2003년 산별 중앙교섭에서 기존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 근무제 등을 합의해 낸 과정은 △ 2001년 금속 산별노조 건설, △ 2002년 사업장별 교섭을 넘어선 지역별 집단교섭의 정착과 사업장 단협을 넘어선 기본협약의 확보, △ 2003년 노사 모두 단일한 교섭단을 중심으로 한 산별 중앙교섭 실시와 산별중앙교섭 합의서 체결로 이어지는 숨가쁜 투쟁의 역사였고, 그 결과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겠다.

이번 중앙교섭 합의로 금속노조는 기본협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산별협약으로 발전하기 위한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아직 산별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기업단위 노조와 그 노동자들에게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교섭 쟁취를 눈앞의 목표로 받아들이고 희망과 자신감을 갖도록 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의는 노사관계의 잣대가 더 이상 민주노조냐 어용노조냐의 시대가 아니라, '산별노조냐 기업별노조냐'를 중심으로 한, 말 그대로 산별노조의 시대를 성큼 앞당기게 된 것이라 하겠다.

이와 함께, 금융노조의 2002년 주5일 근무제 합의가 하나의 기준선으로 논의되고 있는 조건에서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 근무제'를 쟁취해 냄으로써 전체 노사관계의 대립전선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자본의 저지 전선에 파열구를 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중소사업장이 대부분인 금속노조에서 주5일 근무제를 쟁취해 냄으로써 다른 노조와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금속노조의 100개 사업장에서 주5일 근무제가 본격 시행됨으로써 임단협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금속 노동자들도 주5일 근무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어질 예정이다. 특히 사용자단체의 완강한 저항으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주5일 근무제 요구가 관철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금속노조의 합의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금속노조와 관계 사용자들이 기존 임금 저하 없는 주5일 근무제에 합의함으로써 현재 주5일 근무제 관련 법안 처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정부입법안은 △ 월차 축소 생리휴가 무급화 등 휴일휴가 대폭 축소와 연월차 수당 폐지, △ 탄력근로제 확대, △ 단체협약 강제개정, △ 임금보전기간 1년으로 제한 등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크게 파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56.1%에 해당하는 20인 미만 업체 760만 명은 2010년에 가서야 실시하라는 것이고, 750만 비정규 노동자의 휴가는 월 하루로 제한하는 등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들을 크게 소외시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금속노조의 주5일 근무제 합의는 정부입법안을 크게 손질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합의로 금속노조는 올해부터 당장 주5일 근무를 실시하며 늦어도 2005년까지는 주5일 근무를 완료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국회에 계류중인 정부입법안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법안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산별교섭·산별노조 흐름의 전환점

이 와 함께 금속노사의 산별 중앙교섭 합의로, 그동안 산별교섭에 반대해왔던 경총과 재벌기업들의 입장이 상당히 흔들리게 됐다. 업종과 규모에서 많은 차이를 갖고 있는 금속노조 100개 사업장에서 교섭 체결권을 중앙에 위임해 노사합의를 이루어 냄으로써 산별교섭이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2002년의 사업장을 넘어서는 집단교섭과 기본협약 확보 및 2003년의 중앙교섭 합의를 바탕으로, 노사가 함께 사용자단체 구성에 대한 논의를 본격 시작할 계획이며, 2004년부터 더욱 안정적인 조건에서 산별교섭을 추진해 갈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산별노조를 거부하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꾸어 앞으로는 산별노조를 인정하고 산별교섭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그동안 금속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던 재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금속노조의 이번 산별 중앙교섭 합의는 현재 산별교섭을 앞장서 개척하고 있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와 한국노총 금융노조의 산별교섭 진전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되며, 산별노조로 전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여타 다른 기업별 노조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보 건의료노조는 6월10일 동아대의료원 영남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등 45개 병원이 2004년부터 산별교섭에 들어가기로 합의하였으나,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 상당수가 산별교섭을 거부해 왔다. 하지만 사업장별 차이가 큰 금속노조에서도 산별 중앙교섭의 합의를 이루어 낸 점에서 보건의료노조 사업장 단협의 주요 요구사항인 산별교섭 참가 확보에도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금속노사의 중앙교섭 합의 보도를 접한 금속산업연맹 산하 많은 기업별 노조들에서 합의사항의 적용이 어디까지인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적용을 받을 수 있는가는 등의 질문을 다수 질의해 오는 것으로 볼 때 아직 기업별로 남아 있는 여러 노조들에게도 산별전환 결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2003년 임단협투쟁 결의대회를 가지는 금속노조 조합원들 ]

현장과 함께 하는 산별교섭

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금속노조의 산별 중앙교섭은 여러 가지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고 따라서 이후 극복해나가야 할 과제도 쌓여 있다.

우 선 사업장간 격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출발한 올해 중앙교섭은 요구에서부터 금속산업 차원의 요구사항과 사업장단협의 요구사항으로 구분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이에 따라 교섭 과정에서 노사간에 많은 혼란이 드러났으며, 중앙교섭 합의내용과 기존 사업장 단협 간의 충돌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향후 산별교섭을 실질적으로 발전시켜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 같이 조합원 중심의 단체협약을 벗어나 비조합원·비정규노동자들까지 보호할 수 있는 산별 차원의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개편을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기업별 복지·임금에 대해서도 사회적 차원의 접근을 통하여 사업장별 격차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을 줄이는 동시에 사회개혁을 추구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요구사항의 재편과 함께, 교섭구조를 개편하는 것도 향후 중요한 과제이다. 전 조직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한 중앙교섭이 아니었기 때문에, 초기에 중앙교섭과 지부별 집단교섭, 사업장별 대각선교섭의 선후 관계와 결정력의 문제 등 여러 가지 혼선이 나타났다. 이런 시행착오를 극복해나가기 위하여 산업별 요구를 중심으로 한 중앙교섭을 중심 축으로 하고 지금까지 사업장 요구로 되어 왔던 사항들을 지부집단교섭에서 다루어나가는 식의, 크게 두 축의 교섭구조로 체계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산별교섭이 갖는 성격으로 인해 현장 조합원의 관심과 투쟁동력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요구의 준비에서부터 교섭 투쟁 및 타결까지의 세부방침들을 면밀하게 수립하여, 산별 중앙교섭이 현장 조합원과 함께 추진되도록 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사용자단체 구성 서둘러야

한 편 사측의 경우 중앙교섭을 책임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사용자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상태로, 예상한 바와 같이 이번 중앙교섭에서 많은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측은 6차 교섭까지도 자체 의견들을 모아내지 못해 아무런 안도 제출하지 못했으며, 특히 제11차 중앙교섭에서는 사측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중앙교섭을 이탈하려는 사태까지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산별교섭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금속노조 관계 사용자들이 하루 빨리 사용자단체를 구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금속노조와 관계 사용자들은 2002년 기본협약 합의에서도 사용자단체 구성방안을 노사가 공동팀을 꾸려서 논의해나가기로 하였고, 2003년 중앙교섭 합의에서도 2004년도 중앙교섭 실시를 분명히 합의함으로써 중앙교섭 조인식 이후 사용자단체 구성 및 산별교섭 추진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첫째 산별교섭 발전에 저지하기 위해 경총 전경련 등 자본가들이 광분에 가까운 협잡과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둘째 이와 같이 노사관계가 천민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노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논리로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노동조합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산별교섭을 이끌어나가려 해도 결국 힘의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노사관계의 민주적인 발전과 함께 산별노조·산별교섭에 대한 사회적인 차원의 법제도 개선투쟁까지 전개해야 하는 상황이며, 이런 조건에서 산별노조의 확대 강화와 산별교섭의 발전은 오로지 현장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인식과 통일적인 투쟁이 얼마나 힘있게 전개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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