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를 향한 ‘시나리오대로의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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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만도지부가 존재하는 만도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설립된 것은 금속 산별운동에 미묘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이것은 또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금속노조의 투쟁적인 부품사지회들을 공격해 왔던 이명박 정권과 자본의 탄압이 정점에 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속노조 탄압의 정점, 만도지부 사건

만도지부 사건을 ‘탄압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간 쌓아온 만도지부의 역사 때문이다. 만도지부는 비록 각 지회를 해당지역으로 편입하는 지역지부 전환을 거부하고 기업지부를 유지해 왔지만, 현대차, 기아차, 한국 지엠 등 완성차지부와 달리 금속노조의 시작부터 함께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12년 전 금속노조가 만들어진 2001년 2월8일 만도지부(조합원 3,077명)는 이미 조직을 전환해 금속노조에 가입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완성차 노동조합들이 산별노조로 조직 전환을 하기 전이기 때문에(완성차노조들은 2008년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만도는 금속노조 안에서 한국중공업지회(현 두산중공업지회) 다음으로 큰 조직이었다. 그러나 만도지부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단지 금속산별노조의 기틀을 잡았던 초창기 사업장이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만도지부는 2003년 금속노조가 산별중앙교섭을 성사시켰을 때 중앙교섭 참가 사업장 중 가장 큰 대공장이었다. 현재까지 그렇다. 2003년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금속노조는 현대차, 기아차노조 등 완성차노조들보다도 먼저 주40시간제를 쟁취했고, 만도지부는 이 투쟁의 주축 중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만도지부는 금속노조의 어떠한 파업투쟁에서도 단 한 번도 불참한 적이 없었다. 설사 현장에서 타협적 혹은 ‘어용’이라고 불리는 집행부가 들어설지라도 금속노조 파업 지침만은 반드시 이행했다.

만도지부뿐 아니라 구(舊) 만도공장이었던 지회들 역시, 자기가 속한 지역지부의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98년 만도 조합원들은 부도난 한라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 싸웠고, 회사는 공권력을 투입해 탄압했다. 결국 조합원 5천 명이었던 만도공장은 조각조각 분리돼 외국 부품사 자본에게 매각됐다.

만도지부(평택, 문막, 익산공장)는 체이스맨해튼 컨소시엄으로 넘어가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됐다. 경주 공장은 프랑스 자본 발레오에 팔렸고, 청주 공장은 독일 자본인 지멘스 VDO에 팔렸다가 몇 년 전 역시 독일 자본인 콘티넨탈로 넘어갔다. 또 다른 청주 공장은 프랑스 보쉬에 팔려 현재 보쉬전장지회가 됐다. 아산 공장은 지금의 위니아만도지회가 됐다. 만도의 일부였던 한라공조 역시 포드 자회사인 비스테온으로 지분이 옮겨가면서 1999년 분리됐다. 만도 문막 공장에 건물 한 동은 미국 깁스 자본에 팔려서 만도지부 깁스지회가 됐다. 

그러나 이렇게 나눠졌음에도 구(舊) 만도의 결속력은 매우 남다르다. 탄압에 대응하는 현장 조합원들의 강력하고도 일치된 저항정신 때문이다. 1998년 한라 자본이 공권력을 투입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만도노조를 탄압했을 때, 현장 조합원들은 자발적으로 방어 무기를 들고 새벽에 삼삼오오 공장으로 모여들었다. 조합원들은 공권력에 맞서 폭력에 끝까지 저항함으로써 공장을 사수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투력은 공권력 투입 이후에도 여전했다. 당시 만도기계노조에서는 활동가들이 공장과 떨어진 타지로 발령이 나는 등 극심한 탄압을 몇 년간 받았지만, 단 한 명의 해고자도 없었다. 한라 자본은 희망퇴직까지는 받았을지언정 격렬히 저항하는 노조 때문에 감히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전통 때문에 현재의 발레오만도지회는 더 이상 만도와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지회 이름에서 ‘만도’를 빼는 것을 거부하고 ‘발레오만도지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기승전결 = 노조 탄압-직장 폐쇄-제2노조 건설-금속노조 탈퇴 

이렇게 이어진 만도공장 지회들의 현장 전투성은 전투적 산별노조가 지향했던 지역연대와 비정규 조직화 과제와 맞물렸다. 즉, 현장 전투성과 사업장을 뛰어넘고 비정규․미조직 사업을 중시하는 산별노조운동이 만난 것이다.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는 비정규직이 없는 사업장이었고, 경비 노동자까지 정규직화 하는 데 앞장서 있었다. 지역연대도 활발해, 경주 지역 내 학교 비정규직, 청소용역 등과의 지역연대투쟁에서 선봉역할을 해왔다. 한라공조지회, 콘티넨탈지회, 보쉬전장지회 등도 대전충북에서 지역활동과 투쟁의 주축이었다. 만도지부는 2008년 한라자본으로 다시 인수된다. 이때 만도지부는 1억 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받아냈고, 이 돈을 투기자본 사업장 투쟁을 지원하는 금속노조 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이런 활동에 근간할 때, 정권과 자본이 보기에 만도와 지역지부의 중심이 되는 부품사지회들이 눈엣가시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대다수 언론들은 완성차 파업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실제로 싸움을 들여다보면 전투적인 부품사지회들은 완성차 공장을 세우기 직전까지 가는 과감한 파업을 통해 완성차 파업 못지않은 위력을 가해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성차 자본에게도 위협적인 것이었다.

 

2010년 발레오만도지회에 대한 탄압은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탄압 과정에서 인해 금속노조와 지역 모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에서 모범이었던 발레오만도지회에 대한 직장폐쇄와 탄압, 그리고 금속노조 탈퇴가 이뤄졌고, 대신에 회사가 좌우할 수 있는 복수노조가 세워진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정교한 시나리오에 맞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 사업장 외에도 노조 탄압, 직장폐쇄, 금속노조 탈퇴와 사측이 주도하는 복수노조 설립, 현장 조합원 분열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에는 금속노조에서 전투성과 투쟁성으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순위에 드는 유성기업지회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다. 주간 연속 2교대제에 대한 사측의 합의 파기가 직접적 원인이지만, 본질적인 목적은 완성차 자본이 영향력을 발휘하며 진행한 금속노조 탄압이었다.

지역 모범 사업장지회에 집중되는 탄압 

2012년 복수노조가 전면 허용되자 보쉬전장지회, 콘티넨탈지회에 복수노조가 생겨났다. 7월27일 용역 투입과 직장폐쇄가 경기지부 SJM지회와 만도지부에서 이뤄졌다.

SJM지회에 대한 용역깡패들의 폭력적 탄압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용역깡패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SJM지회가 사측의 해외공장 증설로 인한 물량 넘기기와 외주화에 대비해 올해 봄부터 탄압에 맞설 준비를 해 온 것도 다행한 일 중 하나였다. SJM지회는 현재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의 요구사항인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생산 공정에 비정규직이 없는 공장이다. 이곳 역시 지난 10년 동안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라 모범적으로 투쟁을 해왔던 조직이다.

앞서 말했듯 탄압의 절정은 금속노조에서 가장 큰 부품사인 만도에 대한 것이었다. 직장폐쇄 기간인 7월30일에 복수노조(만도 기업노조)가 설립돼 현장을 분할했다. 만도 기업노조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뚜렷한 명분 없이 투쟁을 남발한 금속노조와 만도지부는 사측의 직장폐쇄 한방에 총사퇴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정치투쟁과 허구적 산별주의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새로운 만도노동조합은 허세와 기만으로 일관한 금속노조와 결별합니다.” 만도기업노조는 그동안 만도투쟁의 역사를 부정하며,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 현대차 자본은 정권 내내 일관되게 노조를 탄압해 왔다. 2010년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법을 통해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활동에 제동을 걸었고, 2011년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법을 시행해 사측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와 더불어 금속노조에 대한 탄압도 동시에 이뤄졌다. 직장폐쇄법과 용역깡패를 동원한 것은 어쩌면 이러한 탄압의 장식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특히 올해는 금속노조가 2008년 6월 촛불파업 이후 4년 만에 15만 금속노조 파업을 단행한 해이며, 완성차지부들에서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실제 도입한 획기적인 해이다. 따라서 이들은 완성차지부 투쟁을 고립시키고 전투적인 부품사들을 현장에서 탄압하는 이중전략을 취하면서 금속노조의 투쟁 근간을 흔들려 했던 것이다.

흔들림 후에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금속노조가 폐허가 된 것은 아니다. 탄압에 맞서면서 금속노조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는 몇 가지 단초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노조법 개악과 만도지부 탄압으로 인해 만들어진 정세를 최근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 투쟁의 전투성이 뒤집고 있다. SJM지회에서 보였던 용역깡패의 행태는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관리자들이 비정규지회 간부들을 폭행 및 납치하는 것으로 변화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소극적으로 맞고만 있지 않았다. 단결된 모습으로 만장 깃대를 들고 관리자들을 겨눠 간담이 서늘해지도록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 비정규 투쟁의 결말이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 모르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새로운 전투성을 보여준 것이다.

둘째, 노동운동의 정치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진행된 노조법 개악 과정은 투쟁하다가 국회 개원하면 국회를 바라보는 식의 전술 분리가 완전히 파탄 났음을 보여준다. 특히 통합진보당 문제로 인해 노동운동이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또한 현장이 살려면 노동 정치가 살아야 하는데, 노동 정치는 국회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지난 금속노조 3년간 탄압 속에서 증명됐다. 현장을 살리고 현장투쟁과 함께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금속노조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은 기간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전투적 기반 위에 비정규 투쟁의 새로운 전투성을 더하여 체질 개선에 나서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 정치를 현장에서 구현할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다. 기회는 항상 위기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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